‘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별세…마지막까지 “일본에 분노”
입력 2019.01.29 (19:13)
수정 2019.01.2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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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위안부 피해자에서 인권운동가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에 평생을 바쳤던 김복동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 할머니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염원했습니다.
정유진 기자입니다.
[리포트]
공장에서 일한다는 말에 속아 중국과 동남아 등으로 끌려다니며 성 노예 생활을 해야했던 14살 소녀.
[김복동 할머니/1992년 : "그리 끌려다니는 거를 갖다가 말로 어떻게 다 표현 할 수 있나 이 사람아."]
40년 넘게 숨겨왔던 가슴 속 응어리를 세상에 꺼내놓은 뒤, 김복동 할머니는 같은 상처를 가진 이들을 위해,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여생을 바쳤습니다.
["증인이 왔는데 왜 회피하고 안 만나 주느냐. 그런 증거가 없다는 말을 갖다가 함부로 해 놓고..."]
유엔 인권위원회, 국제전범재판에서의 당당한 피해 증언은 세계 역사에 남았고 영화의 모티브도 됐습니다.
[영화 '아이캔 스피크' : "(일본은)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대장암 투병 중에도 1인 시위에 나서 화해 치유 재단 해산을 촉구했습니다.
["위로금이라고 하는 건, 천억 원을 줘도 우리는 받을 수 없다."]
어젯밤 10시 40분, 94살을 일기로 끝내 눈을 감았습니다.
20년 넘게 오로지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만을 요구하며 지칠 줄 모르고 싸워왔던 할머니.
눈을 감는 순간까지 염원은 하나였습니다.
[윤미향/정의기억연대 대표 : "이마에 송글송글 진땀이 맺힐 정도로 온 사력을 다해서 말씀을 하셨어요. (위안부 문제 해결) 끝까지 해달라."]
어제 또다른 '위안부' 피해자 이 모 할머니도 세상을 떠나면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이제 23명으로 줄었습니다.
정의기억연대는 김복동 할머니의 뜻에 따라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으로 장례를 치릅니다.
KBS 뉴스 정유진입니다.
위안부 피해자에서 인권운동가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에 평생을 바쳤던 김복동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 할머니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염원했습니다.
정유진 기자입니다.
[리포트]
공장에서 일한다는 말에 속아 중국과 동남아 등으로 끌려다니며 성 노예 생활을 해야했던 14살 소녀.
[김복동 할머니/1992년 : "그리 끌려다니는 거를 갖다가 말로 어떻게 다 표현 할 수 있나 이 사람아."]
40년 넘게 숨겨왔던 가슴 속 응어리를 세상에 꺼내놓은 뒤, 김복동 할머니는 같은 상처를 가진 이들을 위해,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여생을 바쳤습니다.
["증인이 왔는데 왜 회피하고 안 만나 주느냐. 그런 증거가 없다는 말을 갖다가 함부로 해 놓고..."]
유엔 인권위원회, 국제전범재판에서의 당당한 피해 증언은 세계 역사에 남았고 영화의 모티브도 됐습니다.
[영화 '아이캔 스피크' : "(일본은)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대장암 투병 중에도 1인 시위에 나서 화해 치유 재단 해산을 촉구했습니다.
["위로금이라고 하는 건, 천억 원을 줘도 우리는 받을 수 없다."]
어젯밤 10시 40분, 94살을 일기로 끝내 눈을 감았습니다.
20년 넘게 오로지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만을 요구하며 지칠 줄 모르고 싸워왔던 할머니.
눈을 감는 순간까지 염원은 하나였습니다.
[윤미향/정의기억연대 대표 : "이마에 송글송글 진땀이 맺힐 정도로 온 사력을 다해서 말씀을 하셨어요. (위안부 문제 해결) 끝까지 해달라."]
어제 또다른 '위안부' 피해자 이 모 할머니도 세상을 떠나면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이제 23명으로 줄었습니다.
정의기억연대는 김복동 할머니의 뜻에 따라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으로 장례를 치릅니다.
KBS 뉴스 정유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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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별세…마지막까지 “일본에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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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1-29 19:19:16
- 수정2019-01-29 20:2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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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에서 인권운동가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에 평생을 바쳤던 김복동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 할머니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염원했습니다.
정유진 기자입니다.
[리포트]
공장에서 일한다는 말에 속아 중국과 동남아 등으로 끌려다니며 성 노예 생활을 해야했던 14살 소녀.
[김복동 할머니/1992년 : "그리 끌려다니는 거를 갖다가 말로 어떻게 다 표현 할 수 있나 이 사람아."]
40년 넘게 숨겨왔던 가슴 속 응어리를 세상에 꺼내놓은 뒤, 김복동 할머니는 같은 상처를 가진 이들을 위해,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여생을 바쳤습니다.
["증인이 왔는데 왜 회피하고 안 만나 주느냐. 그런 증거가 없다는 말을 갖다가 함부로 해 놓고..."]
유엔 인권위원회, 국제전범재판에서의 당당한 피해 증언은 세계 역사에 남았고 영화의 모티브도 됐습니다.
[영화 '아이캔 스피크' : "(일본은)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대장암 투병 중에도 1인 시위에 나서 화해 치유 재단 해산을 촉구했습니다.
["위로금이라고 하는 건, 천억 원을 줘도 우리는 받을 수 없다."]
어젯밤 10시 40분, 94살을 일기로 끝내 눈을 감았습니다.
20년 넘게 오로지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만을 요구하며 지칠 줄 모르고 싸워왔던 할머니.
눈을 감는 순간까지 염원은 하나였습니다.
[윤미향/정의기억연대 대표 : "이마에 송글송글 진땀이 맺힐 정도로 온 사력을 다해서 말씀을 하셨어요. (위안부 문제 해결) 끝까지 해달라."]
어제 또다른 '위안부' 피해자 이 모 할머니도 세상을 떠나면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이제 23명으로 줄었습니다.
정의기억연대는 김복동 할머니의 뜻에 따라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으로 장례를 치릅니다.
KBS 뉴스 정유진입니다.
위안부 피해자에서 인권운동가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에 평생을 바쳤던 김복동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 할머니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염원했습니다.
정유진 기자입니다.
[리포트]
공장에서 일한다는 말에 속아 중국과 동남아 등으로 끌려다니며 성 노예 생활을 해야했던 14살 소녀.
[김복동 할머니/1992년 : "그리 끌려다니는 거를 갖다가 말로 어떻게 다 표현 할 수 있나 이 사람아."]
40년 넘게 숨겨왔던 가슴 속 응어리를 세상에 꺼내놓은 뒤, 김복동 할머니는 같은 상처를 가진 이들을 위해,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여생을 바쳤습니다.
["증인이 왔는데 왜 회피하고 안 만나 주느냐. 그런 증거가 없다는 말을 갖다가 함부로 해 놓고..."]
유엔 인권위원회, 국제전범재판에서의 당당한 피해 증언은 세계 역사에 남았고 영화의 모티브도 됐습니다.
[영화 '아이캔 스피크' : "(일본은)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대장암 투병 중에도 1인 시위에 나서 화해 치유 재단 해산을 촉구했습니다.
["위로금이라고 하는 건, 천억 원을 줘도 우리는 받을 수 없다."]
어젯밤 10시 40분, 94살을 일기로 끝내 눈을 감았습니다.
20년 넘게 오로지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만을 요구하며 지칠 줄 모르고 싸워왔던 할머니.
눈을 감는 순간까지 염원은 하나였습니다.
[윤미향/정의기억연대 대표 : "이마에 송글송글 진땀이 맺힐 정도로 온 사력을 다해서 말씀을 하셨어요. (위안부 문제 해결) 끝까지 해달라."]
어제 또다른 '위안부' 피해자 이 모 할머니도 세상을 떠나면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이제 23명으로 줄었습니다.
정의기억연대는 김복동 할머니의 뜻에 따라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으로 장례를 치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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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기자 trul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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