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가에 판다더니”…대기업 연구원의 억대 사기극

입력 2019.01.30 (12:38) 수정 2019.01.30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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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만약, 고가의 가전제품을 직원가에 싸게 구매해주겠다고 하면 솔깃하시죠?

이런 심리를 악용해 사기행각을 벌인 남성을 경찰이 쫓고 있습니다.

피해자만 수십 명에 수억 원의 돈을 받아 챙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이쯤되면 가짜 대기업 직원이겠지 싶지만, 명문대를 졸업해 전자회사 선임연구원으로 고액의 연봉까지 받고 있었습니다.

사건의 전말을 따라가보시죠.

[리포트]

이사를 앞두고 가전제품을 사려던 신 모 씨는 중고 물품 사이트에서 눈에 띄는 글을 발견합니다.

대기업의 가전제품을 업체 코드를 이용해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A 씨의 글.

[신OO/피해자/음성변조 : "자기는 OO 전자 연구원이고 물류 담당하는 사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물건을 좀 저렴한 가격에 구매를 할 수 있다. 시중가의 3분의 1 정도로 저렴했어요."]

처음엔 의심스러웠지만 A 씨가 신분증과 재직증명서, 사원증, 명함까지 보내온 겁니다.

대기업 연구소 앞에서 A 씨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는데요.

[신OO/피해자/음성변조 : "연구소로 직접 찾아갔어요. 정문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어요. 정문으로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아 진짜 OO 전자 직원이구나.' 믿음을 가졌고…."]

결국 신 씨는 A 씨에게 물품 대금 등으로 2400만여 원을 송금했고, 저렴하다는 생각에 지인까지 A 씨를 통해 가전제품을 구매하게 했는데요.

그런데 4개월이 넘도록 물건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연락은 꾸준히 됐다고 하는데요.

[신OO/피해자/음성변조 : "아직 더 기다려 달라.' 아직도 OO전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을 믿을 수밖에 없었던 거죠."]

결혼을 앞두고 A 씨에게 가전제품을 주문했던 예비 신혼부부도 있었습니다.

[예비 신부 피해자/음성변조 : "10만 원, 20만 원 밖에 차이가 안 난다면 저희가 그런 선택을 안 했을 건데 혼수라서 200만 원 정도가 아껴지더라고요."]

모두 1500만 원 어치의 물건 값을 보냈지만, 신혼집 입주가 지나도록 물건은 오지 않았습니다.

독촉 끝에 일부 금액을 돌려받긴 했지만, 결국 결혼까지 미루게 됐고, 신혼의 꿈은 엉망이 돼버렸습니다.

[예비 신부 피해자/음성변조 : "제가 애원했거든요. 돌려달라고 제발 나는 이거 혼수인데 파혼된다고…. 이 일이 터져서 6개월 동안 텅 빈 집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결혼 날짜도 못 잡고 있어요."]

가전제품 대리점도 A 씨에게 당했습니다.

직영 대리점에서 일하는 이 모 씨는 어느 날 A 씨의 전화를 받았는데요.

[이OO/피해자/음성변조 : "전화 와서 OO전자 연구원이다. 주문을 하고 싶다고…. 대화를 하다 보면 저희 OO전자 가전제품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더라고요. TV에 대해서 물어봐도 A 씨가 설명을 다 해줄 정도로 전문 지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의심을 다 거두게 되었죠."]

이렇게 A 씨는 이 대리점에서 물건을 받아 중고 물품 사이트를 통해 사람들에게 보내고 정작 돈은 자신이 챙겼습니다.

물건 값을 받지 못한 대리점은 직원인 이 씨에게 책임을 물었고 이 씨는 결국 자신의 돈으로 제품값을 물어줘야만 했습니다.

[이OO/피해자/음성변조 : "2500만 원이라는 돈은 어느 사회초년생의 연봉 금액인데 나는 내가 쓸 거 쓰지도 못하고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돈을 다 갖다 바친 거잖아요. 얼굴도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인데."]

이렇게 A 씨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30여 명.

피해 금액은 4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이런 피해자도 있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만난 여자친구에게도 A 씨가 돈을 빌렸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A 씨 지인/음성변조 : "친구들이 '야, 그래도 확인을 하고 만나야지.'하면서 사원 검색을 해줬었어요. 사원검색을 하니까 '거기에 선임 연구원으로 TV 개발본부에 있다.'라고…."]

번듯한 직업에 넉넉한 월급을 받는 줄 알았던 남자친구.

그런데, 사귄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A 씨 지인/음성변조 : "'은행 보안카드를 놓고 왔다.' 이런 식으로 50만 원, 백만 원. 처음에 현금으로 통장에 가지고 있던 천몇백만 원을 빌려준 게 만남을 갖고 나서 한 달이 채 안 됐었어요."]

차츰 사업을 한다는 빌미로 요구하는 돈이 많아지기 시작했다는데요.

A 씨는 여자 친구의 카드를 빌려 물건을 구매하고 현금으로 돌려받는 이른바 '카드깡'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A 씨 지인/음성변조 : "'진짜 숨을 쉴 수가 없다. 나 숨 쉴 수가 없고 죽을 거 같다. 제발 내 돈 좀 갚아 달라.' 퇴직금을 받아서 갚는다는 말들도 다 거짓말이었고 퇴직금도 이미 압류가 되었더라고요."]

명문대를 졸업해 대기업 연구원으로 일해온 A 씨는 왜 이런 일을 저지른 걸까요?

경찰 조사에서 A 씨는 불법 도박 자금으로 썼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하지만, 피해자들은 회사 측이 A 씨의 사기 행각을 알면서도 징계 처리가 늦어 피해를 키웠다고 주장합니다.

[피해자/음성변조 : "회사 번호로 전화를 하면 그 사람이 꼬박꼬박 받으니까 그래도 회사는 잘 다니고 있구나. (회사에) 사원 비리 제보를 했는데 아무런 답을 못 받았어요. '아 이 사람 그래도 정상적인 사람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문제는 없구나.'라고 인지를 한 거죠."]

[OO 전자 관계자/음성변조 : "작년 8월에 처음으로 제보가 들어와서 저희가 두 달 정도 그 친구를 조사했었습니다. 여러 가지 데이터들을 받고 또 피해자들에게 연락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된 거죠. 그때 당시에 저희가 확인된 게 한 30명 정도 이렇게 피해자분들이 있다고…. 피해자들 일부가 경찰에 신고했거든요."]

회사 측은 그러면서, 직원이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며 주의를 당부했는데요.

[OO 전자 관계자/음성변조 : "(직원이) 개인적으로 싸게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개인의 사기 행위고 일탈 행위거든요."]

사기 혐의로 조사를 받던 A 씨는 지난달 돌연 미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경찰은 A 씨의 행방을 쫓는 한편 인터폴 수배 절차를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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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원가에 판다더니”…대기업 연구원의 억대 사기극
    • 입력 2019-01-30 12:44:27
    • 수정2019-01-30 13: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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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만약, 고가의 가전제품을 직원가에 싸게 구매해주겠다고 하면 솔깃하시죠?

이런 심리를 악용해 사기행각을 벌인 남성을 경찰이 쫓고 있습니다.

피해자만 수십 명에 수억 원의 돈을 받아 챙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이쯤되면 가짜 대기업 직원이겠지 싶지만, 명문대를 졸업해 전자회사 선임연구원으로 고액의 연봉까지 받고 있었습니다.

사건의 전말을 따라가보시죠.

[리포트]

이사를 앞두고 가전제품을 사려던 신 모 씨는 중고 물품 사이트에서 눈에 띄는 글을 발견합니다.

대기업의 가전제품을 업체 코드를 이용해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A 씨의 글.

[신OO/피해자/음성변조 : "자기는 OO 전자 연구원이고 물류 담당하는 사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물건을 좀 저렴한 가격에 구매를 할 수 있다. 시중가의 3분의 1 정도로 저렴했어요."]

처음엔 의심스러웠지만 A 씨가 신분증과 재직증명서, 사원증, 명함까지 보내온 겁니다.

대기업 연구소 앞에서 A 씨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는데요.

[신OO/피해자/음성변조 : "연구소로 직접 찾아갔어요. 정문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어요. 정문으로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아 진짜 OO 전자 직원이구나.' 믿음을 가졌고…."]

결국 신 씨는 A 씨에게 물품 대금 등으로 2400만여 원을 송금했고, 저렴하다는 생각에 지인까지 A 씨를 통해 가전제품을 구매하게 했는데요.

그런데 4개월이 넘도록 물건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연락은 꾸준히 됐다고 하는데요.

[신OO/피해자/음성변조 : "아직 더 기다려 달라.' 아직도 OO전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을 믿을 수밖에 없었던 거죠."]

결혼을 앞두고 A 씨에게 가전제품을 주문했던 예비 신혼부부도 있었습니다.

[예비 신부 피해자/음성변조 : "10만 원, 20만 원 밖에 차이가 안 난다면 저희가 그런 선택을 안 했을 건데 혼수라서 200만 원 정도가 아껴지더라고요."]

모두 1500만 원 어치의 물건 값을 보냈지만, 신혼집 입주가 지나도록 물건은 오지 않았습니다.

독촉 끝에 일부 금액을 돌려받긴 했지만, 결국 결혼까지 미루게 됐고, 신혼의 꿈은 엉망이 돼버렸습니다.

[예비 신부 피해자/음성변조 : "제가 애원했거든요. 돌려달라고 제발 나는 이거 혼수인데 파혼된다고…. 이 일이 터져서 6개월 동안 텅 빈 집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결혼 날짜도 못 잡고 있어요."]

가전제품 대리점도 A 씨에게 당했습니다.

직영 대리점에서 일하는 이 모 씨는 어느 날 A 씨의 전화를 받았는데요.

[이OO/피해자/음성변조 : "전화 와서 OO전자 연구원이다. 주문을 하고 싶다고…. 대화를 하다 보면 저희 OO전자 가전제품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더라고요. TV에 대해서 물어봐도 A 씨가 설명을 다 해줄 정도로 전문 지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의심을 다 거두게 되었죠."]

이렇게 A 씨는 이 대리점에서 물건을 받아 중고 물품 사이트를 통해 사람들에게 보내고 정작 돈은 자신이 챙겼습니다.

물건 값을 받지 못한 대리점은 직원인 이 씨에게 책임을 물었고 이 씨는 결국 자신의 돈으로 제품값을 물어줘야만 했습니다.

[이OO/피해자/음성변조 : "2500만 원이라는 돈은 어느 사회초년생의 연봉 금액인데 나는 내가 쓸 거 쓰지도 못하고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돈을 다 갖다 바친 거잖아요. 얼굴도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인데."]

이렇게 A 씨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30여 명.

피해 금액은 4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이런 피해자도 있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만난 여자친구에게도 A 씨가 돈을 빌렸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A 씨 지인/음성변조 : "친구들이 '야, 그래도 확인을 하고 만나야지.'하면서 사원 검색을 해줬었어요. 사원검색을 하니까 '거기에 선임 연구원으로 TV 개발본부에 있다.'라고…."]

번듯한 직업에 넉넉한 월급을 받는 줄 알았던 남자친구.

그런데, 사귄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A 씨 지인/음성변조 : "'은행 보안카드를 놓고 왔다.' 이런 식으로 50만 원, 백만 원. 처음에 현금으로 통장에 가지고 있던 천몇백만 원을 빌려준 게 만남을 갖고 나서 한 달이 채 안 됐었어요."]

차츰 사업을 한다는 빌미로 요구하는 돈이 많아지기 시작했다는데요.

A 씨는 여자 친구의 카드를 빌려 물건을 구매하고 현금으로 돌려받는 이른바 '카드깡'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A 씨 지인/음성변조 : "'진짜 숨을 쉴 수가 없다. 나 숨 쉴 수가 없고 죽을 거 같다. 제발 내 돈 좀 갚아 달라.' 퇴직금을 받아서 갚는다는 말들도 다 거짓말이었고 퇴직금도 이미 압류가 되었더라고요."]

명문대를 졸업해 대기업 연구원으로 일해온 A 씨는 왜 이런 일을 저지른 걸까요?

경찰 조사에서 A 씨는 불법 도박 자금으로 썼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하지만, 피해자들은 회사 측이 A 씨의 사기 행각을 알면서도 징계 처리가 늦어 피해를 키웠다고 주장합니다.

[피해자/음성변조 : "회사 번호로 전화를 하면 그 사람이 꼬박꼬박 받으니까 그래도 회사는 잘 다니고 있구나. (회사에) 사원 비리 제보를 했는데 아무런 답을 못 받았어요. '아 이 사람 그래도 정상적인 사람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문제는 없구나.'라고 인지를 한 거죠."]

[OO 전자 관계자/음성변조 : "작년 8월에 처음으로 제보가 들어와서 저희가 두 달 정도 그 친구를 조사했었습니다. 여러 가지 데이터들을 받고 또 피해자들에게 연락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된 거죠. 그때 당시에 저희가 확인된 게 한 30명 정도 이렇게 피해자분들이 있다고…. 피해자들 일부가 경찰에 신고했거든요."]

회사 측은 그러면서, 직원이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며 주의를 당부했는데요.

[OO 전자 관계자/음성변조 : "(직원이) 개인적으로 싸게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개인의 사기 행위고 일탈 행위거든요."]

사기 혐의로 조사를 받던 A 씨는 지난달 돌연 미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경찰은 A 씨의 행방을 쫓는 한편 인터폴 수배 절차를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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