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 오도독] 누구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 1편 전두환
입력 2019.03.13 (07:00)
수정 2019.03.1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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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2019년 3월 현재 KBS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 3사는 “전두환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에 대해 거의 의견이 일치된 것 같다.
3월 10일 MBC 뉴스데스크, 기자의 첫 문장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당시 내란과 내란목적 살인 등을 저지른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전두환 씨…"로 시작한다.
비슷한 시각, SBS도 마찬가지로 보도했다. 앵커 멘트에서부터 “내일 아침 앞으로 12시간 쯤 뒤에 전두환 씨가 광주로 출발”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같은 날 KBS 9시 뉴스 앵커멘트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내일 피고인으로 다시 재판대에 선다”고 했으나 기자의 보도 내용에서는 줄곧 “전두환”을 전두환 “씨”로 지칭했다.
이런 경향성은 각 정당의 성명서에서도 드러났다. 3월 11일 전두환 씨가 광주 법정으로 향하는 걸 보면서 민주평화당은 “살인마 전두환”이라고 불렀고, 정의당은 “전두환 피고인”, 여당인 민주당은 “전두환 씨”로 호칭했으며, 바른미래당도 민주당과 같이 “전두환 씨”로 전두환을 불렀다. 전두환을 성명서 내내 “전두환 전 대통령” 또는 “전 전 대통령”으로 부른 곳은 5당 중, 자유한국당이 유일했다.
언론사 중, 자유한국당과 판박이 행태를 보인 곳은 조선일보였다. 대부분의 신문사들이 전두환을 부를 때 “전두환 씨”라고 자연스럽게 불렀지만 조선일보는 기사 내내 “전두환 전 대통령” 또는 “전 전 대통령”이라고 호칭했다. 기사 제목도 엽기적이었다. “퇴임후 첫 광주 방문 전두환, 오늘 5.18 법정에”가 기사 제목이다. 전직 대통령이 퇴임후에 처음으로 광주에 '나들이' 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 희생자 유족들에게는 이런 어감은 모멸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니면 일부러 그랬던 것일까?
그러나 조선일보가 늘 이랬던 것은 아니다.
1996년 8월 27일 서울중앙지법이 군사반란과 내란,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전두환에게 사형을 언도했을때 조선일보는 “전씨 사형 선고”라고 큼지막하게 헤드라인을 잡았다. 거의 모든 언론사들이 전두환을 전두환 씨로 불렀을 때다.
조선일보 1996. 8. 27.
그러나 조금만 더 역사를 반추해보면 전두환이 백담사에 칩거한 뒤인 90년대에도 여전히 전두환은“전두환 전 대통령”이라고 불렸었다. 심지어 전두환은 1994년 12월 24일 KBS에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기도 했는데, 이때 KBS가 전두환을 부른 호칭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게다가 전두환이 낸 불우이웃돕기 성금은 그 금액을 적시하지도 않았다.
KBS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금일봉을 맡겨왔습니다”라고만 보도했다. 액수를 밝히지 않은 금일봉...이는 당시로서도 극도의 예우였다. 바로 뒤이어 당시 김숙희 교육부 장관과 그 직원들이 150만원을 기탁했다고 KBS가 밝혔으니 말이다.
전두환이 금일봉을 맡긴 1994년 말이면 검찰이 전두환과 노태우를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한 직후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지 못한다”는 논리가 떠돌고 있을 당시만 해도 전두환은 여전히 전직 대통령으로 대접받았고, KBS는 감히 전두환에게 전두환 씨라고 호칭하지 못했다. 그가 12.12 군사 반란의 주역이자, 5.18 광주 학살의 배후 주범이라는 국민적 의심이 팽배했을 때였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이런 경향성은 2000년대에 들어서까지도 유지된다.
“전두환”은 1997년 내란범으로 확정돼 전직 대통령 예우법 7조에 따라 명백히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KBS를 비롯한 상당수 언론사들은 전두환의 아들 전재국 씨의 막대한 재산이 전두환의 비자금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 보도를 할 때도 전두환을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고 호칭했다. 2013년의 일이다.
누구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는 언론에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실체를 실체에 맞게 부르는 것이 보도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독재자를, 그것도 형이 확정된 독재자를, 전 대통령이라고 자꾸 예우해 불러주는 우리 언론은 대체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세계 최대의 통신사 AP를 비롯해 뉴욕타임스나 LA타임즈 등 유수의 신문사들은 그동안 “전 독재자 전두환(ex-dictator Chun Doo-Whan)”, “전두환 군사 독재정권(military dictatorship of Chun Doo-hwan) ”이라는 말을 줄곧 사용해 왔는데 말이다.
전두환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이제 거의 모든 언론사들이 전두환을 전두환 씨로 호칭하고 있으니 앞으로 한국 언론에서는 전두환을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고 통칭하는 일은 없을 것인가?
조선일보의 현재나 KBS의 과거 사례를 보면 꼭 그럴 것이라 단언하기는 힘들다. 조선일보가 지금 전두환을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고 꼬박꼬박 부르는 이유에는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5.18 망언이나 5.18 진상조사위원회와 같은 정치적 현안, 정치적 이해관계에 대한 고려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정치 세력들의 역학 관계는 늘 바뀐다. 지금이야 민주당이 집권해서 전두환을 전두환 씨라고 부르는 언론이 일반적인 것 같지만, 자유한국당이 집권하고 나면 또 다른 '눈치보기'가 등장할 수 있음을 한국의 비루한 언론사는 웅변해주고 있다.
그러나 정치 세력들의 역학관계가 바뀐다고 해서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가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독재자는 독재자로 불려야 하고, 전두환은 전두환 씨 정도로 호칭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품격에 어울린다.
2019년 3월 현재 KBS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 3사는 “전두환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에 대해 거의 의견이 일치된 것 같다.
3월 10일 MBC 뉴스데스크, 기자의 첫 문장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당시 내란과 내란목적 살인 등을 저지른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전두환 씨…"로 시작한다.
비슷한 시각, SBS도 마찬가지로 보도했다. 앵커 멘트에서부터 “내일 아침 앞으로 12시간 쯤 뒤에 전두환 씨가 광주로 출발”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같은 날 KBS 9시 뉴스 앵커멘트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내일 피고인으로 다시 재판대에 선다”고 했으나 기자의 보도 내용에서는 줄곧 “전두환”을 전두환 “씨”로 지칭했다.
이런 경향성은 각 정당의 성명서에서도 드러났다. 3월 11일 전두환 씨가 광주 법정으로 향하는 걸 보면서 민주평화당은 “살인마 전두환”이라고 불렀고, 정의당은 “전두환 피고인”, 여당인 민주당은 “전두환 씨”로 호칭했으며, 바른미래당도 민주당과 같이 “전두환 씨”로 전두환을 불렀다. 전두환을 성명서 내내 “전두환 전 대통령” 또는 “전 전 대통령”으로 부른 곳은 5당 중, 자유한국당이 유일했다.
언론사 중, 자유한국당과 판박이 행태를 보인 곳은 조선일보였다. 대부분의 신문사들이 전두환을 부를 때 “전두환 씨”라고 자연스럽게 불렀지만 조선일보는 기사 내내 “전두환 전 대통령” 또는 “전 전 대통령”이라고 호칭했다. 기사 제목도 엽기적이었다. “퇴임후 첫 광주 방문 전두환, 오늘 5.18 법정에”가 기사 제목이다. 전직 대통령이 퇴임후에 처음으로 광주에 '나들이' 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 희생자 유족들에게는 이런 어감은 모멸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니면 일부러 그랬던 것일까?
그러나 조선일보가 늘 이랬던 것은 아니다.
1996년 8월 27일 서울중앙지법이 군사반란과 내란,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전두환에게 사형을 언도했을때 조선일보는 “전씨 사형 선고”라고 큼지막하게 헤드라인을 잡았다. 거의 모든 언론사들이 전두환을 전두환 씨로 불렀을 때다.

그러나 조금만 더 역사를 반추해보면 전두환이 백담사에 칩거한 뒤인 90년대에도 여전히 전두환은“전두환 전 대통령”이라고 불렸었다. 심지어 전두환은 1994년 12월 24일 KBS에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기도 했는데, 이때 KBS가 전두환을 부른 호칭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게다가 전두환이 낸 불우이웃돕기 성금은 그 금액을 적시하지도 않았다.
KBS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금일봉을 맡겨왔습니다”라고만 보도했다. 액수를 밝히지 않은 금일봉...이는 당시로서도 극도의 예우였다. 바로 뒤이어 당시 김숙희 교육부 장관과 그 직원들이 150만원을 기탁했다고 KBS가 밝혔으니 말이다.
전두환이 금일봉을 맡긴 1994년 말이면 검찰이 전두환과 노태우를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한 직후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지 못한다”는 논리가 떠돌고 있을 당시만 해도 전두환은 여전히 전직 대통령으로 대접받았고, KBS는 감히 전두환에게 전두환 씨라고 호칭하지 못했다. 그가 12.12 군사 반란의 주역이자, 5.18 광주 학살의 배후 주범이라는 국민적 의심이 팽배했을 때였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이런 경향성은 2000년대에 들어서까지도 유지된다.
“전두환”은 1997년 내란범으로 확정돼 전직 대통령 예우법 7조에 따라 명백히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KBS를 비롯한 상당수 언론사들은 전두환의 아들 전재국 씨의 막대한 재산이 전두환의 비자금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 보도를 할 때도 전두환을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고 호칭했다. 2013년의 일이다.
누구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는 언론에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실체를 실체에 맞게 부르는 것이 보도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독재자를, 그것도 형이 확정된 독재자를, 전 대통령이라고 자꾸 예우해 불러주는 우리 언론은 대체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세계 최대의 통신사 AP를 비롯해 뉴욕타임스나 LA타임즈 등 유수의 신문사들은 그동안 “전 독재자 전두환(ex-dictator Chun Doo-Whan)”, “전두환 군사 독재정권(military dictatorship of Chun Doo-hwan) ”이라는 말을 줄곧 사용해 왔는데 말이다.
전두환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이제 거의 모든 언론사들이 전두환을 전두환 씨로 호칭하고 있으니 앞으로 한국 언론에서는 전두환을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고 통칭하는 일은 없을 것인가?
조선일보의 현재나 KBS의 과거 사례를 보면 꼭 그럴 것이라 단언하기는 힘들다. 조선일보가 지금 전두환을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고 꼬박꼬박 부르는 이유에는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5.18 망언이나 5.18 진상조사위원회와 같은 정치적 현안, 정치적 이해관계에 대한 고려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정치 세력들의 역학 관계는 늘 바뀐다. 지금이야 민주당이 집권해서 전두환을 전두환 씨라고 부르는 언론이 일반적인 것 같지만, 자유한국당이 집권하고 나면 또 다른 '눈치보기'가 등장할 수 있음을 한국의 비루한 언론사는 웅변해주고 있다.
그러나 정치 세력들의 역학관계가 바뀐다고 해서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가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독재자는 독재자로 불려야 하고, 전두환은 전두환 씨 정도로 호칭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품격에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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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2019년 3월 현재 KBS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 3사는 “전두환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에 대해 거의 의견이 일치된 것 같다.
3월 10일 MBC 뉴스데스크, 기자의 첫 문장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당시 내란과 내란목적 살인 등을 저지른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전두환 씨…"로 시작한다.
비슷한 시각, SBS도 마찬가지로 보도했다. 앵커 멘트에서부터 “내일 아침 앞으로 12시간 쯤 뒤에 전두환 씨가 광주로 출발”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같은 날 KBS 9시 뉴스 앵커멘트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내일 피고인으로 다시 재판대에 선다”고 했으나 기자의 보도 내용에서는 줄곧 “전두환”을 전두환 “씨”로 지칭했다.
이런 경향성은 각 정당의 성명서에서도 드러났다. 3월 11일 전두환 씨가 광주 법정으로 향하는 걸 보면서 민주평화당은 “살인마 전두환”이라고 불렀고, 정의당은 “전두환 피고인”, 여당인 민주당은 “전두환 씨”로 호칭했으며, 바른미래당도 민주당과 같이 “전두환 씨”로 전두환을 불렀다. 전두환을 성명서 내내 “전두환 전 대통령” 또는 “전 전 대통령”으로 부른 곳은 5당 중, 자유한국당이 유일했다.
언론사 중, 자유한국당과 판박이 행태를 보인 곳은 조선일보였다. 대부분의 신문사들이 전두환을 부를 때 “전두환 씨”라고 자연스럽게 불렀지만 조선일보는 기사 내내 “전두환 전 대통령” 또는 “전 전 대통령”이라고 호칭했다. 기사 제목도 엽기적이었다. “퇴임후 첫 광주 방문 전두환, 오늘 5.18 법정에”가 기사 제목이다. 전직 대통령이 퇴임후에 처음으로 광주에 '나들이' 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 희생자 유족들에게는 이런 어감은 모멸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니면 일부러 그랬던 것일까?
그러나 조선일보가 늘 이랬던 것은 아니다.
1996년 8월 27일 서울중앙지법이 군사반란과 내란,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전두환에게 사형을 언도했을때 조선일보는 “전씨 사형 선고”라고 큼지막하게 헤드라인을 잡았다. 거의 모든 언론사들이 전두환을 전두환 씨로 불렀을 때다.
그러나 조금만 더 역사를 반추해보면 전두환이 백담사에 칩거한 뒤인 90년대에도 여전히 전두환은“전두환 전 대통령”이라고 불렸었다. 심지어 전두환은 1994년 12월 24일 KBS에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기도 했는데, 이때 KBS가 전두환을 부른 호칭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게다가 전두환이 낸 불우이웃돕기 성금은 그 금액을 적시하지도 않았다.
KBS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금일봉을 맡겨왔습니다”라고만 보도했다. 액수를 밝히지 않은 금일봉...이는 당시로서도 극도의 예우였다. 바로 뒤이어 당시 김숙희 교육부 장관과 그 직원들이 150만원을 기탁했다고 KBS가 밝혔으니 말이다.
전두환이 금일봉을 맡긴 1994년 말이면 검찰이 전두환과 노태우를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한 직후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지 못한다”는 논리가 떠돌고 있을 당시만 해도 전두환은 여전히 전직 대통령으로 대접받았고, KBS는 감히 전두환에게 전두환 씨라고 호칭하지 못했다. 그가 12.12 군사 반란의 주역이자, 5.18 광주 학살의 배후 주범이라는 국민적 의심이 팽배했을 때였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이런 경향성은 2000년대에 들어서까지도 유지된다.
“전두환”은 1997년 내란범으로 확정돼 전직 대통령 예우법 7조에 따라 명백히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KBS를 비롯한 상당수 언론사들은 전두환의 아들 전재국 씨의 막대한 재산이 전두환의 비자금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 보도를 할 때도 전두환을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고 호칭했다. 2013년의 일이다.
누구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는 언론에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실체를 실체에 맞게 부르는 것이 보도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독재자를, 그것도 형이 확정된 독재자를, 전 대통령이라고 자꾸 예우해 불러주는 우리 언론은 대체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세계 최대의 통신사 AP를 비롯해 뉴욕타임스나 LA타임즈 등 유수의 신문사들은 그동안 “전 독재자 전두환(ex-dictator Chun Doo-Whan)”, “전두환 군사 독재정권(military dictatorship of Chun Doo-hwan) ”이라는 말을 줄곧 사용해 왔는데 말이다.
전두환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이제 거의 모든 언론사들이 전두환을 전두환 씨로 호칭하고 있으니 앞으로 한국 언론에서는 전두환을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고 통칭하는 일은 없을 것인가?
조선일보의 현재나 KBS의 과거 사례를 보면 꼭 그럴 것이라 단언하기는 힘들다. 조선일보가 지금 전두환을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고 꼬박꼬박 부르는 이유에는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5.18 망언이나 5.18 진상조사위원회와 같은 정치적 현안, 정치적 이해관계에 대한 고려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정치 세력들의 역학 관계는 늘 바뀐다. 지금이야 민주당이 집권해서 전두환을 전두환 씨라고 부르는 언론이 일반적인 것 같지만, 자유한국당이 집권하고 나면 또 다른 '눈치보기'가 등장할 수 있음을 한국의 비루한 언론사는 웅변해주고 있다.
그러나 정치 세력들의 역학관계가 바뀐다고 해서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가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독재자는 독재자로 불려야 하고, 전두환은 전두환 씨 정도로 호칭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품격에 어울린다.
2019년 3월 현재 KBS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 3사는 “전두환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에 대해 거의 의견이 일치된 것 같다.
3월 10일 MBC 뉴스데스크, 기자의 첫 문장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당시 내란과 내란목적 살인 등을 저지른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전두환 씨…"로 시작한다.
비슷한 시각, SBS도 마찬가지로 보도했다. 앵커 멘트에서부터 “내일 아침 앞으로 12시간 쯤 뒤에 전두환 씨가 광주로 출발”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같은 날 KBS 9시 뉴스 앵커멘트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내일 피고인으로 다시 재판대에 선다”고 했으나 기자의 보도 내용에서는 줄곧 “전두환”을 전두환 “씨”로 지칭했다.
이런 경향성은 각 정당의 성명서에서도 드러났다. 3월 11일 전두환 씨가 광주 법정으로 향하는 걸 보면서 민주평화당은 “살인마 전두환”이라고 불렀고, 정의당은 “전두환 피고인”, 여당인 민주당은 “전두환 씨”로 호칭했으며, 바른미래당도 민주당과 같이 “전두환 씨”로 전두환을 불렀다. 전두환을 성명서 내내 “전두환 전 대통령” 또는 “전 전 대통령”으로 부른 곳은 5당 중, 자유한국당이 유일했다.
언론사 중, 자유한국당과 판박이 행태를 보인 곳은 조선일보였다. 대부분의 신문사들이 전두환을 부를 때 “전두환 씨”라고 자연스럽게 불렀지만 조선일보는 기사 내내 “전두환 전 대통령” 또는 “전 전 대통령”이라고 호칭했다. 기사 제목도 엽기적이었다. “퇴임후 첫 광주 방문 전두환, 오늘 5.18 법정에”가 기사 제목이다. 전직 대통령이 퇴임후에 처음으로 광주에 '나들이' 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 희생자 유족들에게는 이런 어감은 모멸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니면 일부러 그랬던 것일까?
그러나 조선일보가 늘 이랬던 것은 아니다.
1996년 8월 27일 서울중앙지법이 군사반란과 내란,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전두환에게 사형을 언도했을때 조선일보는 “전씨 사형 선고”라고 큼지막하게 헤드라인을 잡았다. 거의 모든 언론사들이 전두환을 전두환 씨로 불렀을 때다.

그러나 조금만 더 역사를 반추해보면 전두환이 백담사에 칩거한 뒤인 90년대에도 여전히 전두환은“전두환 전 대통령”이라고 불렸었다. 심지어 전두환은 1994년 12월 24일 KBS에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기도 했는데, 이때 KBS가 전두환을 부른 호칭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게다가 전두환이 낸 불우이웃돕기 성금은 그 금액을 적시하지도 않았다.
KBS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금일봉을 맡겨왔습니다”라고만 보도했다. 액수를 밝히지 않은 금일봉...이는 당시로서도 극도의 예우였다. 바로 뒤이어 당시 김숙희 교육부 장관과 그 직원들이 150만원을 기탁했다고 KBS가 밝혔으니 말이다.
전두환이 금일봉을 맡긴 1994년 말이면 검찰이 전두환과 노태우를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한 직후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지 못한다”는 논리가 떠돌고 있을 당시만 해도 전두환은 여전히 전직 대통령으로 대접받았고, KBS는 감히 전두환에게 전두환 씨라고 호칭하지 못했다. 그가 12.12 군사 반란의 주역이자, 5.18 광주 학살의 배후 주범이라는 국민적 의심이 팽배했을 때였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이런 경향성은 2000년대에 들어서까지도 유지된다.
“전두환”은 1997년 내란범으로 확정돼 전직 대통령 예우법 7조에 따라 명백히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KBS를 비롯한 상당수 언론사들은 전두환의 아들 전재국 씨의 막대한 재산이 전두환의 비자금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 보도를 할 때도 전두환을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고 호칭했다. 2013년의 일이다.
누구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는 언론에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실체를 실체에 맞게 부르는 것이 보도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독재자를, 그것도 형이 확정된 독재자를, 전 대통령이라고 자꾸 예우해 불러주는 우리 언론은 대체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세계 최대의 통신사 AP를 비롯해 뉴욕타임스나 LA타임즈 등 유수의 신문사들은 그동안 “전 독재자 전두환(ex-dictator Chun Doo-Whan)”, “전두환 군사 독재정권(military dictatorship of Chun Doo-hwan) ”이라는 말을 줄곧 사용해 왔는데 말이다.
전두환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이제 거의 모든 언론사들이 전두환을 전두환 씨로 호칭하고 있으니 앞으로 한국 언론에서는 전두환을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고 통칭하는 일은 없을 것인가?
조선일보의 현재나 KBS의 과거 사례를 보면 꼭 그럴 것이라 단언하기는 힘들다. 조선일보가 지금 전두환을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고 꼬박꼬박 부르는 이유에는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5.18 망언이나 5.18 진상조사위원회와 같은 정치적 현안, 정치적 이해관계에 대한 고려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정치 세력들의 역학 관계는 늘 바뀐다. 지금이야 민주당이 집권해서 전두환을 전두환 씨라고 부르는 언론이 일반적인 것 같지만, 자유한국당이 집권하고 나면 또 다른 '눈치보기'가 등장할 수 있음을 한국의 비루한 언론사는 웅변해주고 있다.
그러나 정치 세력들의 역학관계가 바뀐다고 해서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가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독재자는 독재자로 불려야 하고, 전두환은 전두환 씨 정도로 호칭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품격에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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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영 기자 nuro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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