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을 불러다오” 임종헌·이명박·전두환은 닮았다

입력 2019.03.13 (11:50) 수정 2019.03.1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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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헌·이명박·전두환의 공통점
■ 갑자기 '증인'을 외치는 이유?

"재판장님, 잠시만요!"

결정적인 순간, 변호인이 외치고 법정 문이 열립니다. 그동안 숨어지내던 핵심 증인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진실을 증언하고 사건이 뒤집힙니다.

법정에서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긴 합니다만,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증인의 '존재감'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증인에게 기대합니다. 진실을 말해줄 것이라고, 재판에 꼭 필요한 존재일 것이라고.

하지만 요즘 주요 피고인들이 증인을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다릅니다.


"현직 법관 100여 명을 증인으로"...구속 기간 만료일 다가와

먼저, 법이라면 우리나라에서 손 꼽히게 잘 알고 있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입니다.

당초 임 전 차장은 이규진 전 양형위 상임위원 등 증인 7명만 법정에 세우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현직 법관 100여 명을 증인으로 세우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들이 검찰에서 진술한 조서만으로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낸 겁니다.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날짜를 조율하고 법원에 나와 증언을 하려면 재판은 한없이 길어집니다. 그 증언이, 검찰에서 한 진술과 똑같아도 다시 다 들어야 합니다.

앞서 임 전 차장 변호인이 다함께 사임하면서, 재판은 안 그래도 늦어졌습니다. 지난해 말 재판에 넘겨졌는데, 봄이 오도록 재판이 진행된 게 없습니다.

그가 선배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기다리는 게 아닐까. 법조계에선 이런 해석도 나옵니다. 임 전 차장이 먼저 기소됐기 때문에, 양 전 원장보다 앞서서 1심 선고를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면 사법농단의 책임을 혼자 떠안는 모습이 될까봐 저어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양 전 원장이 '따라오도록' 자신의 재판을 늦추는 전략을 쓴다는 분석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이렇게 재판이 길어질수록 임 전 차장의 구속 기간 만료일도 다가옵니다.


"밤낮없이 근무한 동료들, 증인 부를 수 없다"→"증인으로 나와라"

또 다른 닮은꼴, 이명박 전 대통령입니다. 뇌물 등 혐의를 받고 있는 이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증인을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이 전 대통령은 '동료애'로 설명했습니다.

"증인들은 세계 금융위기를 극복하고자 나와 함께 밤낮없이 근무한 사람이다. 국정을 함께 이끈 사람들이 국민 앞에서 다투는 모습 보이는 것은 나에게 견디기 힘든 참담한 일이다. 고심 끝에 부르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돌연 항소심에서 이 증인들을 갑자기 부르겠다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재판부도 '증인을 불러보자'고 받아들였습니다. 문제는 이 증인들이 대부분 출석하지 않는다는 것. 항소심 재판이 늘어지는 상황에서, 인사이동으로 재판부까지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 대통령에게도 적용되는 공식, '재판이 길어진다=구속 기간 만료가 다가온다'. 이 덕분에 이 전 대통령은 보석으로 풀려나 현재 논현동 자택에 있습니다.


전두환 씨 재판도 길어진다

고(故)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는 전두환 씨 재판도 비슷한 이유로 길어질 상황입니다.

이미 전 씨는 재판을 서울에서 받게 해달라며 계속 미뤘습니다. 결국 광주에 직접 가서 재판이 시작은 됐습니다만, 전 씨 측은 "1980년 5월 21일 광주 불로교 상공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조비오 신부 증언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21일 헬기 사격과 계엄사령부의 사격 지시 사실은 이미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가 밝힌 내용입니다. 하지만 전 씨 측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재판에서 다시 증인을 세워야 합니다. 전 씨 측은 증거 목록도 확인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재판부도 증거조사를 위해 정식 재판이 아닌 준비기일을 한 차례 더 열기로 했습니다.

'무더기 증인 신청' 부메랑되지 않을까

증인들은 법정까지 어려운 걸음을 합니다. 진실을 말하기 위해 자신의 상사나 동료가 잘못했던 일을 진술해야 하고, 잊고 싶은 과거를 다시 더듬어야 합니다.

이 주요 피고인들은 증인을, 진실을 밝혀줄 사람이 아닌 '시간끌기' 전략의 '팻감'으로 취급하는 듯 합니다. 물론 피고인들도 방어권을 보장받아야 하고, 어떤 전략이든 쓸 수 있지요.

그러나 그 시간끌기가 결과적으로 이들에게 유용할 지는 의문입니다. 그들이 전략으로 요구한 증인들이, 드라마처럼 진실을 말해주길 기다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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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증인을 불러다오” 임종헌·이명박·전두환은 닮았다
    • 입력 2019-03-13 11:50:08
    • 수정2019-03-13 11:50:27
    취재K
■ 임종헌·이명박·전두환의 공통점
■ 갑자기 '증인'을 외치는 이유?

"재판장님, 잠시만요!"

결정적인 순간, 변호인이 외치고 법정 문이 열립니다. 그동안 숨어지내던 핵심 증인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진실을 증언하고 사건이 뒤집힙니다.

법정에서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긴 합니다만,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증인의 '존재감'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증인에게 기대합니다. 진실을 말해줄 것이라고, 재판에 꼭 필요한 존재일 것이라고.

하지만 요즘 주요 피고인들이 증인을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다릅니다.


"현직 법관 100여 명을 증인으로"...구속 기간 만료일 다가와

먼저, 법이라면 우리나라에서 손 꼽히게 잘 알고 있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입니다.

당초 임 전 차장은 이규진 전 양형위 상임위원 등 증인 7명만 법정에 세우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현직 법관 100여 명을 증인으로 세우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들이 검찰에서 진술한 조서만으로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낸 겁니다.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날짜를 조율하고 법원에 나와 증언을 하려면 재판은 한없이 길어집니다. 그 증언이, 검찰에서 한 진술과 똑같아도 다시 다 들어야 합니다.

앞서 임 전 차장 변호인이 다함께 사임하면서, 재판은 안 그래도 늦어졌습니다. 지난해 말 재판에 넘겨졌는데, 봄이 오도록 재판이 진행된 게 없습니다.

그가 선배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기다리는 게 아닐까. 법조계에선 이런 해석도 나옵니다. 임 전 차장이 먼저 기소됐기 때문에, 양 전 원장보다 앞서서 1심 선고를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면 사법농단의 책임을 혼자 떠안는 모습이 될까봐 저어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양 전 원장이 '따라오도록' 자신의 재판을 늦추는 전략을 쓴다는 분석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이렇게 재판이 길어질수록 임 전 차장의 구속 기간 만료일도 다가옵니다.


"밤낮없이 근무한 동료들, 증인 부를 수 없다"→"증인으로 나와라"

또 다른 닮은꼴, 이명박 전 대통령입니다. 뇌물 등 혐의를 받고 있는 이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증인을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이 전 대통령은 '동료애'로 설명했습니다.

"증인들은 세계 금융위기를 극복하고자 나와 함께 밤낮없이 근무한 사람이다. 국정을 함께 이끈 사람들이 국민 앞에서 다투는 모습 보이는 것은 나에게 견디기 힘든 참담한 일이다. 고심 끝에 부르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돌연 항소심에서 이 증인들을 갑자기 부르겠다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재판부도 '증인을 불러보자'고 받아들였습니다. 문제는 이 증인들이 대부분 출석하지 않는다는 것. 항소심 재판이 늘어지는 상황에서, 인사이동으로 재판부까지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 대통령에게도 적용되는 공식, '재판이 길어진다=구속 기간 만료가 다가온다'. 이 덕분에 이 전 대통령은 보석으로 풀려나 현재 논현동 자택에 있습니다.


전두환 씨 재판도 길어진다

고(故)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는 전두환 씨 재판도 비슷한 이유로 길어질 상황입니다.

이미 전 씨는 재판을 서울에서 받게 해달라며 계속 미뤘습니다. 결국 광주에 직접 가서 재판이 시작은 됐습니다만, 전 씨 측은 "1980년 5월 21일 광주 불로교 상공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조비오 신부 증언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21일 헬기 사격과 계엄사령부의 사격 지시 사실은 이미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가 밝힌 내용입니다. 하지만 전 씨 측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재판에서 다시 증인을 세워야 합니다. 전 씨 측은 증거 목록도 확인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재판부도 증거조사를 위해 정식 재판이 아닌 준비기일을 한 차례 더 열기로 했습니다.

'무더기 증인 신청' 부메랑되지 않을까

증인들은 법정까지 어려운 걸음을 합니다. 진실을 말하기 위해 자신의 상사나 동료가 잘못했던 일을 진술해야 하고, 잊고 싶은 과거를 다시 더듬어야 합니다.

이 주요 피고인들은 증인을, 진실을 밝혀줄 사람이 아닌 '시간끌기' 전략의 '팻감'으로 취급하는 듯 합니다. 물론 피고인들도 방어권을 보장받아야 하고, 어떤 전략이든 쓸 수 있지요.

그러나 그 시간끌기가 결과적으로 이들에게 유용할 지는 의문입니다. 그들이 전략으로 요구한 증인들이, 드라마처럼 진실을 말해주길 기다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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