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서 2·8 독립선언으로 금고형 받은 유학생들 진술서 발견
입력 2019.03.29 (18:07)
수정 2019.03.2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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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일본 도쿄에서 2·8 독립선언을 발표, 출판법 위반 혐의로 금고형을 받은 조선인 유학생들의 진술서가 전문도서관에 소장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도쿄신문이 29일 전했습니다.
2·8 독립선언은 1919년 2월 8일 조선인 유학생 600여명이 도쿄에서 조선의 독립을 외친 독립운동으로, 3·1운동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 역할을 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출판법 위반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묶인 550쪽 분량의 해당 자료에는 1919년 2월 8일 등에 이뤄진 유학생 9명의 공술 조서(진술서)와 기소 내용, 도쿄지방재판소의 공판기록이 포함됐습니다.
당시 이들의 변호인이 보관하던 사본으로 추정됩니다.
도쿄신문은 "2·8 독립선언의 기초를 만든 것은 와세다대 유학생으로 작가인 이광수"라며 "조서에는 이외에 최팔용, 김도연, 김철수, 백관수 등 4명도 원안을 생각했던 것으로 여겨진다"고 전했습니다.
이 중 최팔용은 조서에서 한일병합에 대해 "조선인 모두의 자유의사가 아니라 일본에 의한 압박을 받았던 결과 어쩔 수 없이 병합됐다는 것으로 밖에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의 진술서는 도쿄변호사회와 제2도쿄변호사회 합동도서관이 1900~1950년대 형사재판기록 79건 중 한 권으로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2·8 독립선언은 1919년 2월 8일 조선인 유학생 600여명이 도쿄에서 조선의 독립을 외친 독립운동으로, 3·1운동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 역할을 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출판법 위반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묶인 550쪽 분량의 해당 자료에는 1919년 2월 8일 등에 이뤄진 유학생 9명의 공술 조서(진술서)와 기소 내용, 도쿄지방재판소의 공판기록이 포함됐습니다.
당시 이들의 변호인이 보관하던 사본으로 추정됩니다.
도쿄신문은 "2·8 독립선언의 기초를 만든 것은 와세다대 유학생으로 작가인 이광수"라며 "조서에는 이외에 최팔용, 김도연, 김철수, 백관수 등 4명도 원안을 생각했던 것으로 여겨진다"고 전했습니다.
이 중 최팔용은 조서에서 한일병합에 대해 "조선인 모두의 자유의사가 아니라 일본에 의한 압박을 받았던 결과 어쩔 수 없이 병합됐다는 것으로 밖에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의 진술서는 도쿄변호사회와 제2도쿄변호사회 합동도서관이 1900~1950년대 형사재판기록 79건 중 한 권으로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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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서 2·8 독립선언으로 금고형 받은 유학생들 진술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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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3-29 18:07:35
- 수정2019-03-29 18:08:58

100년 전 일본 도쿄에서 2·8 독립선언을 발표, 출판법 위반 혐의로 금고형을 받은 조선인 유학생들의 진술서가 전문도서관에 소장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도쿄신문이 29일 전했습니다.
2·8 독립선언은 1919년 2월 8일 조선인 유학생 600여명이 도쿄에서 조선의 독립을 외친 독립운동으로, 3·1운동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 역할을 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출판법 위반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묶인 550쪽 분량의 해당 자료에는 1919년 2월 8일 등에 이뤄진 유학생 9명의 공술 조서(진술서)와 기소 내용, 도쿄지방재판소의 공판기록이 포함됐습니다.
당시 이들의 변호인이 보관하던 사본으로 추정됩니다.
도쿄신문은 "2·8 독립선언의 기초를 만든 것은 와세다대 유학생으로 작가인 이광수"라며 "조서에는 이외에 최팔용, 김도연, 김철수, 백관수 등 4명도 원안을 생각했던 것으로 여겨진다"고 전했습니다.
이 중 최팔용은 조서에서 한일병합에 대해 "조선인 모두의 자유의사가 아니라 일본에 의한 압박을 받았던 결과 어쩔 수 없이 병합됐다는 것으로 밖에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의 진술서는 도쿄변호사회와 제2도쿄변호사회 합동도서관이 1900~1950년대 형사재판기록 79건 중 한 권으로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2·8 독립선언은 1919년 2월 8일 조선인 유학생 600여명이 도쿄에서 조선의 독립을 외친 독립운동으로, 3·1운동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 역할을 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출판법 위반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묶인 550쪽 분량의 해당 자료에는 1919년 2월 8일 등에 이뤄진 유학생 9명의 공술 조서(진술서)와 기소 내용, 도쿄지방재판소의 공판기록이 포함됐습니다.
당시 이들의 변호인이 보관하던 사본으로 추정됩니다.
도쿄신문은 "2·8 독립선언의 기초를 만든 것은 와세다대 유학생으로 작가인 이광수"라며 "조서에는 이외에 최팔용, 김도연, 김철수, 백관수 등 4명도 원안을 생각했던 것으로 여겨진다"고 전했습니다.
이 중 최팔용은 조서에서 한일병합에 대해 "조선인 모두의 자유의사가 아니라 일본에 의한 압박을 받았던 결과 어쩔 수 없이 병합됐다는 것으로 밖에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의 진술서는 도쿄변호사회와 제2도쿄변호사회 합동도서관이 1900~1950년대 형사재판기록 79건 중 한 권으로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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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현정 기자 thisis2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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