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초 다큐> '얼굴'
입력 2019.04.03 (21:52)
수정 2019.04.03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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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속에 묻고 살았던 '얼굴']
73살 이숙자 씨는 부모 얼굴을 모릅니다.
상상으로 그린 부모님의 얼굴...
<이숙자/여순사건 유족>
"(부모님이) 참 건장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거 가지고 상상으로 그렸어요."
1948년 10월,
제주 4.3 진압 명령에 대한
항명으로 시작된 여순사건,
당시 2살이던 이숙자 씨는
그때 부모를 잃었습니다.
<이숙자/여순사건 유족>
"저 사람은 좌익이라고 그렇게 손가락질 받았대요.
엄마, 아빠 부르는 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어요."
2017년, 우연히 라디오로 들은 여순사건,
부모님의 기록을 찾고 싶었습니다.
<이숙자/여순사건 유족>
"대전 기록원으로 갔고요, 서울 기록원에 갔고,
광주 기록원에 갔어요.
그런데 찾아보니까 기록이 없었어요."
그러다 찾은 한 장의 사진.
칼 마이던스 촬영, 1948. 10.
수소문 끝에 안 사실,
사진이 찍힌 장소가
이숙자 씨의 고향마을 근처라는 것.
수십 년 만에 찾아간 고향,
사진을 본 외당숙
"너희 엄마와 아빠, 너다"
<김인환/이숙자 씨 외당숙>
"(이건) 강인례 (이숙자 씨 엄마).
그때 우리 동네 사람들이 48명, 49명이 죽었어.
제사가 같은 날이 일곱인가, 여덟 집인가 되고 그랬어."
당시 이숙자 씨의 외삼촌은
인민위원회 활동을 했습니다.
<주철희/여순사건 연구자>
"그 가족들이 색출된 거죠.
부역자라는 이름 하에.
그래서 강인례의 집안과 관련된 이유로 체포됐다고 보입니다."
꿈에 그리던 부모님의 얼굴을 마주했지만
반가움보다 슬픔이 컸습니다.
<이숙자/여순사건 유족>
"가슴이 미어 터지는 거예요.
경찰들 총부리 앞에 서 있는 걸 보니까.
세상에, 젊은 청춘에 이렇게 살아보지 못하고 갔구나..."
그러나
진실화해위원회에 신청하지 않았다며
인정되지 않는 '희생'.
민간단체 추정 희생자 1만 명,
진화위 인정 희생자 9백 명.
<이숙자/여순사건 유족>
"그저 특별법이 제정돼서
돌아가신 분들 빨리 명예회복만 됐으면..."
73살 이숙자 씨는 부모 얼굴을 모릅니다.
상상으로 그린 부모님의 얼굴...
<이숙자/여순사건 유족>
"(부모님이) 참 건장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거 가지고 상상으로 그렸어요."
1948년 10월,
제주 4.3 진압 명령에 대한
항명으로 시작된 여순사건,
당시 2살이던 이숙자 씨는
그때 부모를 잃었습니다.
<이숙자/여순사건 유족>
"저 사람은 좌익이라고 그렇게 손가락질 받았대요.
엄마, 아빠 부르는 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어요."
2017년, 우연히 라디오로 들은 여순사건,
부모님의 기록을 찾고 싶었습니다.
<이숙자/여순사건 유족>
"대전 기록원으로 갔고요, 서울 기록원에 갔고,
광주 기록원에 갔어요.
그런데 찾아보니까 기록이 없었어요."
그러다 찾은 한 장의 사진.
칼 마이던스 촬영, 1948. 10.
수소문 끝에 안 사실,
사진이 찍힌 장소가
이숙자 씨의 고향마을 근처라는 것.
수십 년 만에 찾아간 고향,
사진을 본 외당숙
"너희 엄마와 아빠, 너다"
<김인환/이숙자 씨 외당숙>
"(이건) 강인례 (이숙자 씨 엄마).
그때 우리 동네 사람들이 48명, 49명이 죽었어.
제사가 같은 날이 일곱인가, 여덟 집인가 되고 그랬어."
당시 이숙자 씨의 외삼촌은
인민위원회 활동을 했습니다.
<주철희/여순사건 연구자>
"그 가족들이 색출된 거죠.
부역자라는 이름 하에.
그래서 강인례의 집안과 관련된 이유로 체포됐다고 보입니다."
꿈에 그리던 부모님의 얼굴을 마주했지만
반가움보다 슬픔이 컸습니다.
<이숙자/여순사건 유족>
"가슴이 미어 터지는 거예요.
경찰들 총부리 앞에 서 있는 걸 보니까.
세상에, 젊은 청춘에 이렇게 살아보지 못하고 갔구나..."
그러나
진실화해위원회에 신청하지 않았다며
인정되지 않는 '희생'.
민간단체 추정 희생자 1만 명,
진화위 인정 희생자 9백 명.
<이숙자/여순사건 유족>
"그저 특별법이 제정돼서
돌아가신 분들 빨리 명예회복만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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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초 다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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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4-03 21:52:20
- 수정2019-04-03 23:38:11

[가슴 속에 묻고 살았던 '얼굴']
73살 이숙자 씨는 부모 얼굴을 모릅니다.
상상으로 그린 부모님의 얼굴...
<이숙자/여순사건 유족>
"(부모님이) 참 건장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거 가지고 상상으로 그렸어요."
1948년 10월,
제주 4.3 진압 명령에 대한
항명으로 시작된 여순사건,
당시 2살이던 이숙자 씨는
그때 부모를 잃었습니다.
<이숙자/여순사건 유족>
"저 사람은 좌익이라고 그렇게 손가락질 받았대요.
엄마, 아빠 부르는 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어요."
2017년, 우연히 라디오로 들은 여순사건,
부모님의 기록을 찾고 싶었습니다.
<이숙자/여순사건 유족>
"대전 기록원으로 갔고요, 서울 기록원에 갔고,
광주 기록원에 갔어요.
그런데 찾아보니까 기록이 없었어요."
그러다 찾은 한 장의 사진.
칼 마이던스 촬영, 1948. 10.
수소문 끝에 안 사실,
사진이 찍힌 장소가
이숙자 씨의 고향마을 근처라는 것.
수십 년 만에 찾아간 고향,
사진을 본 외당숙
"너희 엄마와 아빠, 너다"
<김인환/이숙자 씨 외당숙>
"(이건) 강인례 (이숙자 씨 엄마).
그때 우리 동네 사람들이 48명, 49명이 죽었어.
제사가 같은 날이 일곱인가, 여덟 집인가 되고 그랬어."
당시 이숙자 씨의 외삼촌은
인민위원회 활동을 했습니다.
<주철희/여순사건 연구자>
"그 가족들이 색출된 거죠.
부역자라는 이름 하에.
그래서 강인례의 집안과 관련된 이유로 체포됐다고 보입니다."
꿈에 그리던 부모님의 얼굴을 마주했지만
반가움보다 슬픔이 컸습니다.
<이숙자/여순사건 유족>
"가슴이 미어 터지는 거예요.
경찰들 총부리 앞에 서 있는 걸 보니까.
세상에, 젊은 청춘에 이렇게 살아보지 못하고 갔구나..."
그러나
진실화해위원회에 신청하지 않았다며
인정되지 않는 '희생'.
민간단체 추정 희생자 1만 명,
진화위 인정 희생자 9백 명.
<이숙자/여순사건 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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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분들 빨리 명예회복만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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