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경리단길의 몰락…“빈 상가 늘었는데 임대료 안 떨어져”

입력 2019.04.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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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세를 탄 동네가 있다. 불과 1km도 안 되는 거리지만 이른바 '맛집'들도 즐비하게 들어섰고, 조금만 더 들어가면 재벌들이 사는 부촌도 형성돼 있다. 비탈에 형성된 이 거리는 위로 올라가면 서울 시내도 내려다보이고 한쪽으로는 남산도 시야에 들어온다.

개인적으로는 이 동네에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좁은 길에 주차할 데가 마땅치 않고 경사가 심한 곳도 있어 돌아다니기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몇 년 전 TV에서 본 맛집으로 알려진 곳을 찾았다가 기다리는 것도 힘들고 심지어 맛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돌아섰던 기억이 크게 한몫을 했다. 그곳에 형성된 '부촌'이나 남산 역시, 현재 내 삶의 기준으로는 별로 가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버틸 수 있나요? 다 망해서 나갔어요."


그런데 소위 '핫'했던 그 동네가 몇 년 새 한산해진 느낌이다. 차를 타고 지나갈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현실과 마주하게 된 것인데, 입구부터 시쳇말로 '폭망한' 동네에 들어온 것 같았다. 한때 손님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던 스테이크 집도 문을 닫았고 그 옆으로 점포 서너 개가 ‘임대 문의’ 딱지를 붙인 채 텅 비어있었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비어있는 점포를 바라보는 시선들도 당연하다는 듯, 익숙하다는 듯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빈 점포 앞에서 모자를 늘어놓고 노점을 하는 상인은 “몇 년 됐어요. 임대료가 그렇게 비싸져서야 버틸 수 있나요. 다 망해서 나갔어요”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임대료가 얼마나 뛰어서 나갔는지, 장사가 망해서 나갔는지 내막은 자세히 모른다. 다만 인파로 북적이던 상가들이 비어있는 건 현실이었다.


건너편 다른 상가도 사정은 비슷했다. 1층의 점포들이 거의 다 비었다. 커피숍이며 네일숍, 휴대전화 대리점 등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와중에 점포 한 곳에선 입주 준비가 한창이었다. 동네 초입이라 임대료가 제법 비쌀 것 같은데 임차인이 용기를 낸 모양이다. 한참을 더 걸어 올라가다 보니 빈 점포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 골목골목 들어가 볼 순 없었지만 제법 많은 가게가 임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동네엔 공인중개사 사무실이 제법 많았다. 대충 눈에 들어온 것만 대여섯 곳은 됐다. 그 가운데 한 곳에서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동네에서 오랫동안 부동산 사무실을 해온 공인중개사는 "2015년쯤이 정점이었는데 지금은 그때만 못하다"고 했다. 임대료나 동네 활기 모두 말이다. "지금 그때처럼 임대료를 올려 받는다면 임차인을 구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꽤 오랜 기간 비어있는 점포의 경우엔 절반 아래로 내려야 누군가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대기업 대리점 진출, 임대료 인상 촉매 역할"


흥미로운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대기업 계열의 대리점들이 임대료 인상에 한 축을 맡았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임차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임대료를 제시하면서 들어왔고 그러다 보니 다른 상가들도 덩달아 그에 맞춰 임대료를 올렸다는 것이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기업들이 임대료 인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 모양이었다.

경리단길 공실률 21.6%…서울에서 가장 높아

이 동네가 어딘지 눈치챘을 것이다. 서울 용산구 경리단길이다. 이른바 망리단길, 연리단길, 전주 객리단길 등 ‘*리단길’의 원조다. 그 원조가 지금 변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즉 상권 내몰림 현상으로 상인들이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떠나면서 공실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임대료 외에 경기 부진, 불황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한국감정원의 지역별 공실률 자료를 보면, 지난해 4분기 경리단길이 위치한 이태원 상권의 중대형 상가(건축 연면적이 50% 이상이 임대되고 있으며 3층 이상이거나 연면적 330㎡ 초과) 공실률은 21.6%로 나타났다. 서울에서 가장 높다.


이 같은 현상은 경리단길에서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논현역과 청담, 테헤란로 등 강남을 비롯해 동대문, 신촌 등도 공실률이 10%를 넘었다. 논현역 상권의 경우, 공실률이 2017년 4분기 1.7%였지만, 2018년 1분기에는 7.9%, 2분기에는 18.4%로 치솟더니 1년 만에 10배 넘게 올랐다. 청담동 상권 역시, 2017년 1분기에 4.7%이던 공실률은 2017년 4분기에 1.5%까지 떨어졌지만, 다시 오르기 시작해 지난해 4분기에는 10.8%까지 올라갔다.


"공실률 높아져도 임대료는 꿈쩍 안 해"

그렇다면 같은 기간 이들 지역의 임대료는 어떨까? 이태원 상권은 500원/㎡, 논현역 상권은 200원/㎡, 신촌 상권은 400원/㎡, 테헤란로 상권은 700원/㎡ 씩 올랐다. 서울 전체적으로는 1,000원/㎡ 내려간 것과 대조적이다. 다만 청담동 상권은 공실률이 반영된 듯 2,500원/㎡ 내려갔다. 공실률이 올라가더라도 모든 임대인들이 임대료를 내리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현실이다.



임대인과 임차인은 공존해야 한다. 한쪽 없이는 다른 한쪽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금 부자거나 다른 부동산이 많은 임대인은 여유를 부릴지 모른다. 잠깐 점포를 비워 놓아도 버틸 수 있으니까. 심지어 오랫동안 비워 놓는다고 해도 결코 의지를 꺾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규모 임대사업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점포를 놀려서 좋을 리 없다. 오래 비워두다 보면 상가의 이미지도 떨어지고 해당 상권에도 악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그런 상가, 그런 상권에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들어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임대인? vs 건물주?

때로는 '갑을관계'가 바뀌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임대인이 '갑'의 위치에 선다. 간혹 마음대로 임대료를 올리기도 하고, 임차인을 내몰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임차인이 없는 한 그는 임대인이 아닌 그냥 '건물주'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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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K] 경리단길의 몰락…“빈 상가 늘었는데 임대료 안 떨어져”
    • 입력 2019-04-26 07:00:33
    취재K
유명세를 탄 동네가 있다. 불과 1km도 안 되는 거리지만 이른바 '맛집'들도 즐비하게 들어섰고, 조금만 더 들어가면 재벌들이 사는 부촌도 형성돼 있다. 비탈에 형성된 이 거리는 위로 올라가면 서울 시내도 내려다보이고 한쪽으로는 남산도 시야에 들어온다.

개인적으로는 이 동네에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좁은 길에 주차할 데가 마땅치 않고 경사가 심한 곳도 있어 돌아다니기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몇 년 전 TV에서 본 맛집으로 알려진 곳을 찾았다가 기다리는 것도 힘들고 심지어 맛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돌아섰던 기억이 크게 한몫을 했다. 그곳에 형성된 '부촌'이나 남산 역시, 현재 내 삶의 기준으로는 별로 가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버틸 수 있나요? 다 망해서 나갔어요."


그런데 소위 '핫'했던 그 동네가 몇 년 새 한산해진 느낌이다. 차를 타고 지나갈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현실과 마주하게 된 것인데, 입구부터 시쳇말로 '폭망한' 동네에 들어온 것 같았다. 한때 손님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던 스테이크 집도 문을 닫았고 그 옆으로 점포 서너 개가 ‘임대 문의’ 딱지를 붙인 채 텅 비어있었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비어있는 점포를 바라보는 시선들도 당연하다는 듯, 익숙하다는 듯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빈 점포 앞에서 모자를 늘어놓고 노점을 하는 상인은 “몇 년 됐어요. 임대료가 그렇게 비싸져서야 버틸 수 있나요. 다 망해서 나갔어요”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임대료가 얼마나 뛰어서 나갔는지, 장사가 망해서 나갔는지 내막은 자세히 모른다. 다만 인파로 북적이던 상가들이 비어있는 건 현실이었다.


건너편 다른 상가도 사정은 비슷했다. 1층의 점포들이 거의 다 비었다. 커피숍이며 네일숍, 휴대전화 대리점 등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와중에 점포 한 곳에선 입주 준비가 한창이었다. 동네 초입이라 임대료가 제법 비쌀 것 같은데 임차인이 용기를 낸 모양이다. 한참을 더 걸어 올라가다 보니 빈 점포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 골목골목 들어가 볼 순 없었지만 제법 많은 가게가 임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동네엔 공인중개사 사무실이 제법 많았다. 대충 눈에 들어온 것만 대여섯 곳은 됐다. 그 가운데 한 곳에서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동네에서 오랫동안 부동산 사무실을 해온 공인중개사는 "2015년쯤이 정점이었는데 지금은 그때만 못하다"고 했다. 임대료나 동네 활기 모두 말이다. "지금 그때처럼 임대료를 올려 받는다면 임차인을 구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꽤 오랜 기간 비어있는 점포의 경우엔 절반 아래로 내려야 누군가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대기업 대리점 진출, 임대료 인상 촉매 역할"


흥미로운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대기업 계열의 대리점들이 임대료 인상에 한 축을 맡았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임차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임대료를 제시하면서 들어왔고 그러다 보니 다른 상가들도 덩달아 그에 맞춰 임대료를 올렸다는 것이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기업들이 임대료 인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 모양이었다.

경리단길 공실률 21.6%…서울에서 가장 높아

이 동네가 어딘지 눈치챘을 것이다. 서울 용산구 경리단길이다. 이른바 망리단길, 연리단길, 전주 객리단길 등 ‘*리단길’의 원조다. 그 원조가 지금 변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즉 상권 내몰림 현상으로 상인들이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떠나면서 공실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임대료 외에 경기 부진, 불황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한국감정원의 지역별 공실률 자료를 보면, 지난해 4분기 경리단길이 위치한 이태원 상권의 중대형 상가(건축 연면적이 50% 이상이 임대되고 있으며 3층 이상이거나 연면적 330㎡ 초과) 공실률은 21.6%로 나타났다. 서울에서 가장 높다.


이 같은 현상은 경리단길에서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논현역과 청담, 테헤란로 등 강남을 비롯해 동대문, 신촌 등도 공실률이 10%를 넘었다. 논현역 상권의 경우, 공실률이 2017년 4분기 1.7%였지만, 2018년 1분기에는 7.9%, 2분기에는 18.4%로 치솟더니 1년 만에 10배 넘게 올랐다. 청담동 상권 역시, 2017년 1분기에 4.7%이던 공실률은 2017년 4분기에 1.5%까지 떨어졌지만, 다시 오르기 시작해 지난해 4분기에는 10.8%까지 올라갔다.


"공실률 높아져도 임대료는 꿈쩍 안 해"

그렇다면 같은 기간 이들 지역의 임대료는 어떨까? 이태원 상권은 500원/㎡, 논현역 상권은 200원/㎡, 신촌 상권은 400원/㎡, 테헤란로 상권은 700원/㎡ 씩 올랐다. 서울 전체적으로는 1,000원/㎡ 내려간 것과 대조적이다. 다만 청담동 상권은 공실률이 반영된 듯 2,500원/㎡ 내려갔다. 공실률이 올라가더라도 모든 임대인들이 임대료를 내리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현실이다.



임대인과 임차인은 공존해야 한다. 한쪽 없이는 다른 한쪽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금 부자거나 다른 부동산이 많은 임대인은 여유를 부릴지 모른다. 잠깐 점포를 비워 놓아도 버틸 수 있으니까. 심지어 오랫동안 비워 놓는다고 해도 결코 의지를 꺾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규모 임대사업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점포를 놀려서 좋을 리 없다. 오래 비워두다 보면 상가의 이미지도 떨어지고 해당 상권에도 악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그런 상가, 그런 상권에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들어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임대인? vs 건물주?

때로는 '갑을관계'가 바뀌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임대인이 '갑'의 위치에 선다. 간혹 마음대로 임대료를 올리기도 하고, 임차인을 내몰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임차인이 없는 한 그는 임대인이 아닌 그냥 '건물주'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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