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래의 최강시사] 송기인 신부 “과거 잘못 덮으면 사회발전 안돼”

입력 2019.05.23 (11:56) 수정 2019.05.2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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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S “부산서 국회의원 후보 내라” 독촉, 노무현 설득했던 게 ‘정치고생’의 시작
- 괜히 정치 권했나 죄인같았는데... 대통령 당선됐던 2002년 평생 중 제일 좋았어
- 권력 내려놓은 최초의 대통령. 이번 검찰총장 항명 보며 오히려 ‘민주주의 발전’ 느껴
- 적폐청산이 정치보복? 보복받을 일 했으면 받아야... 사회발전 위해 야당협조 필요해

■ 프로그램명 : 김경래의 최강시사
■ 코너명 : <최강 인터뷰2>
■ 방송시간 : 5월 23일(목) 8:05~8:20 KBS1R FM 97.3 MHz
■ 진행 : 김경래 (뉴스타파 탐사팀장)
■ 출연 : 송기인 신부



▷ 김경래 : 2부에서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관련된 인터뷰를 할 건데요. 10주기 맞아서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까 제가 2009년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당시에 봉하마을에 취재를 갔었어요. 그때가 기억이 나네요. 그때 KBS 상황이 굉장히 안 좋은 상황이었고 사실상 당시 정부에 장악되어 있던 상황이었고 봉하마을에서 KBS 중계차가 쫓겨나고 방송을 못하는 상황이었어요, 사실. 그리고 사무실에도 이렇게 팻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KBS 출입 금지” 붙어 있었고. 저는 방송을 하다가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KBS 취재 차량에다가 밤에 시민들이 촛불을 집어던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앞에 차량에 운전하시는 분이 안 보일 정도로 촛농이 달라붙어서.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습니다.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을까요? 참여정부 초대 과거사위원장이시기도 하고 사실은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까지 멘토로 알려져 있죠. ‘정신적 버팀목’, ‘지주’ 여러 가지 표현들을 많이 씁니다. 송기인 신부님 오늘 특별히 연결해 보겠습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 송기인 : 안녕하십니까?

▷ 김경래 : 오늘 10주기인데 봉하는 미리 다녀오셨다는 말씀을 전해 들었습니다.

▶ 송기인 : 예, 그러니까 전부터 이날이 너무 복잡한 날이니까 과거사위원장들끼리 대개 둘째 화요일에 참배를 하고 옵니다. 금년에도 그랬어요.

▷ 김경래 : 다녀오실 때마다 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10년이니까 또 새로운 각별한 생각이 드실 것 같은데.

▶ 송기인 : 그래요. 해마다 가서 아쉽게 생각이 들고 우리끼리 모여서 같이 얘기를 나누고 그러죠.

▷ 김경래 : 10년이 지났으니까 이런 질문을 신부님께도 감히 여쭤볼 수 있을 것 같아요. 2009년도에 그 일을 전해 들으시고 어떤 마음이 드셨습니까?

▶ 송기인 : 당일에 말이죠? 그때는 정신이 멍하더라고요. 뻥 뚫린 것처럼 무슨 생각이 나는 게 아니라 이럴 수가 있을까하는 그런 생각이었죠, 그런 상태였죠.

▷ 김경래 : 오늘은 송기인 신부님께 옛날 얘기 좀 조금씩 여쭤볼게요.

▶ 송기인 : 그래요.

▷ 김경래 : 노무현 대통령님과 처음 어떻게 만나시게 된 거예요?

▶ 송기인 : 그러니까 82년 부산에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있었죠. 그 미문화원 사건 변론인이 8명으로 구성을 했었는데 8명 중에는 박찬종 변호사가 들어가 있었어요. 그 변호인단 중에서 한 사람이 찾아와서 “박 변호사는 적합하지 않다. 그런데 그 양반을 자기들로서는 그만두라고 하기가 힘들다, 선배이기 때문에. 그래서 신부님이 해결해달라.” 그래서 제가 가서 박 변호사한테 얘기를 했고 한 사람이 빠지니까 숫자를 맞춰야 되는 모양이에요. 7명밖에 안 되니까 한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때 “변호사님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그걸 나한테 말하냐.”고 그러니까 “신부님이 말해주면 거절 안 할 것 같아서입니다.” 노 변호사가 그래서 변호인단에 합류하게 됐었죠. 그때부터 매주 월요일에 재판을 했는데 재판이 끝나면 저녁을 같이하게 돼요, 변호사들하고. 그 자리가 소주 한잔하면서 친하게 되는 가까워지게 되는 그런 자리였죠. 그때 노 변호사를 알게 된 거예요.

▷ 김경래 : 처음 만날 때도 그렇고 초창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에는 변호사. 노무현 변호사는 인상이 어땠습니까?

▶ 송기인 : 인상이 그냥 정말로 평민이지, 보통 시민이죠. 신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동자도 아니고 일반 시민인데 좀 성격이 급한 것처럼 보였고 그런데 무슨 말 같은 것, 언어에서도 세련되게 하는 게 아니고 그냥 직접 바로 말하는 그런 성격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죠.

▷ 김경래 : 노무현 전 대통령 그렇게 인연을 처음 맺으시고 나중에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것도 송기인 신부님 덕분이라고 얘기를 들었어요, 맞나요?

▶ 송기인 : 제 덕보다는 김영삼 대통령, YS가 저에게 전화를 했어요.

▷ 김경래 : 신부님한테요?

▶ 송기인 : 네, 그래서 전화로 부산 시민 측에서 네 사람을 추천해달라, 네 군데 부산에 출마를 시키겠다고 말을 했어요. 제가 뭐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어떻게 찾죠?” 그러니까 “아니, 그냥 찾아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변호사들 많이 모인 데서 제가 “국회의원 할 사람?” 그러니까 김광일 변호사 혼자만 하겠다는 거예요. 나머지는 아무도 없어요. 할 수 없이 그대로 연락을 했습니다, YS에게. 이렇다 그러니까 “그럴 수가 있느냐 말이지? 좋은 분 많을 텐데. 다만 한 분이라도 더 해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제가 노 변호사를 만났어요. “서울에 가서 일하면 부산에서 하는 것보다는 효과적일 거다. 서울로 가는 용기를 내봐라.” 그러니까 “지금이 좋습니다.”하고 거절하는 거예요.

▷ 김경래 : 아, 처음에 거절했어요?

▶ 송기인 : 자기는 현재 상태가 좋다, 가장 일하기. 다른 생각이 전혀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할 수 없구나하고 고민을 하는데 다시 독촉을 하는 거예요, 서울에서는. 다시 만나서 설명을 했죠. 그러니까 자기가 “해보겠습니다. 다만 선거운동을 한번 멋지게 해보고 싶은 거지, 국회의원 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때는 남구에 살았기 때문에 남구로, 그다음에 김광일은 중구로 이렇게 해서 둘 다 신문에 발표가 됐어요, 그 당에서. 그러면 그렇게 하면 되겠다 그랬는데 다시 나한테 와서 하는 이야기가 “남구는 재미가 없습니다. 동구에 가야 재미가 있겠습니다.” 이러는 거예요. 그때 동구가 허삼수 선거구였습니다.

▷ 김경래 : 5.18의 주역 중에 1명이요.

▶ 송기인 : 그럼요. 거기서 해야 선거운동을 재미있게 하지, 남구는 재미없다고 그래서 그때는 이미 발표가 됐기 때문에 힘들잖아요. 그래서 다시 그때 미안해서 YS한테 제가 최성모 목사에게 서울 좀 다녀오라 했어요. 서울 가서 “형편이 이렇답니다.” 그러니까 웬걸, 바꿔준 거예요, 그대로. 동구로 가서, 바꿔서 동구에 출마했는데 제가 선거 사무실 한번 가보니까 바쁘더라고요. 그래서 사람은 안 만나고 그때는 후원만 하고 왔는데 당선된 거예요. 그때 세상 사람들이 허삼수도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 없었습니다.

▷ 김경래 : 그때도 승부사였군요.

▶ 송기인 : 그때 정치 고생을 시작하게 된 거죠.

▷ 김경래 : 보통 외부 사람들 생각에는 의외로 당선이 된 노무현 당시 국회의원이 그 이후로 사실은 그런데 굉장히 정치적인 여정이 복잡했습니다. 그렇죠? 3당 합당에 반대하고 그리고 험지에 출마를 또 해서 지역감정을 타파하겠다고 해서 낙선하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겪었어요. 그때 보시면서 신부님은 정치 괜히 시켰다, 너무 힘들게 산다, 이런 생각 안 해보셨어요?

▶ 송기인 : 그것보다는 그냥 어쨌든 간에 제가 죄인처럼 생각이 되는 거예요. 저 고생을 하라고 내가 보냈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런데 본인은 선거운동 할 때 동구에서 재미있게 했다는 거예요. 권총을 차고 흉내를 내고 이런 식으로. 어쨌든 그래서 실제로는 그분이 조금 발전하게 된 것은 청문회였죠. 청문회에서 시원하게 해결하니까 박수를 보낸 것 아니겠어요?

▷ 김경래 : 노무현 대통령이 당연히 당시에 노무현 국회의원이죠. 대통령에 출마하게 될지는 생각을 못하셨을 것 같아요, 신부님도. 그렇죠?

▶ 송기인 : 저도 대통령까지 생각해본 적도 없고 국회의원으로서 충실히 일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었죠.

▷ 김경래 : 대통령에 출마한다는 말씀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 송기인 : 그때 부산에 내려와서 같이 작은 행사가 있었는데 시장이랑 모여서 얘기할 때 제가 그랬어요. “고생을 너무 할 거 아니냐?” 그러니까 “그래도 힘껏 해봐야죠.”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대단한 용기다, 그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 김경래 : 그래서 대통령이 되어버렸어요, 또. 그렇죠?

▶ 송기인 : 그래서 제가 그해를 지금 80여년을 살아오면서 제일 좋은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후보가 된 거예요. “아이고 이럴 수가 있다!” 그리고 그다음에 월드컵이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그때 첫골도 부산에서 넣었고 월드컵 아주 재미있게 했고 가을에도 아시안게임이 아마 그때 한국이 가장 많은 금메달을 끌어모았을 겁니다.

▷ 김경래 : 그때 아시안게임도 부산이었나요?

▶ 송기인 : 그럼요.

▷ 김경래 : 아, 그랬구나.

▶ 송기인 : 아주 잘됐고 그다음에 12월에 진짜 당선이 된 거 있죠? 그렇게 놀라운 즐거운 해였습니다.

▷ 김경래 : 그런데 또 그뒤에 여러 가지 정치적으로 공격도 많이 받고 힘들게 지내고 탄핵까지 당했어요, 결국은. 탄핵소추까지 받았고 그리고 결국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그런 마지막에 몇 년 있지 않습니까? 한 6~7년.

▶ 송기인 : 탄핵 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결국 지금 탄핵하는 건 일부 정치 반대자들이지 진실은 이길 거다. 그런 신념이 있었어요. 비록 탄핵을 실제로 당하더라도 결국 역사는 바른 자세, 바른 일을 하려고 했다, 그렇게 기록될 거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 김경래 : 신부님, 참여정부 때 과거사정리위원장으로 지내셨잖아요. 당시도 그렇고요, 지금도 적폐청산 여러 가지 부분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저항들도 만만치 않고 피로감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렇습니다. 당시도 그렇고 지금 상황도 돌이켜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신부님은?

▶ 송기인 : 과거사가 정리되지 않고는 아무리 길게 가더라도 세월이 가더라도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겁니다. 이걸 정리하고 나야 제대로 바른 사회로 이끌어갈 수 있지 과거사 이걸 덮어놓고 그대로 가자, 그것 가지고는 절대로 저는 우리나라가 성공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적폐청산 과거사 정리는 꼭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야당이 훨씬 더 협조하지 않고는 불가능해요. 만약에 협조하지 않고 지금처럼 버틴다면 한없이 늦어지는 거죠, 우리나라 바른 발전이.

▷ 김경래 : 야당에서는 그런데 이걸 “정치적인 보복 아니냐? 이게 우리나라 정치에 좋은 것이냐, 앞으로도?” 이런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 송기인 : 글쎄요, 제가 막말을 하자면 정치적인 보복을 받을 일을 했으면 보복을 받아야 됩니다. 그만큼 잘못해놓고도 덮고 지나가자는 것은 비정상이죠. 바른 발전할 수 없는, 결국 자해가 되는 거죠.

▷ 김경래 : 신부님이 평가를 하신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여러 가지 보통 일반적인 다른 대통령하고는 많이 달랐어요, 스타일도 그렇고 정책도 그렇고요. 우리 현대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진 대통령이다, 이렇게 평가를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 송기인 : 지금 제가 평가하는 게 바른 평가라고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우리가 발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생각해요. 그때 검찰, 국정원 다 마음대로 하라고 그랬잖아요. 지난 대통령들이 한 번도 그런 편리한 권력을 놓은 그런 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과감하게 그런 것을 대통령이 보통 사람도 대통령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그러니까 가장 기본되는 기초 바닥을 인식해준 그런 대통령이라고 생각해요.

▷ 김경래 : 지금 서거한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10년이 지났는데 제가 아까 신부님하고 연결하기 직전에 말씀드렸듯이 10년 동안 변한 것도 있고 변하지 않은 것도 있을 겁니다. 10년의 세월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도대체 뭐가 변했느냐? 뭐가 달라졌냐, 뭐가 발전했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은데 “답답하다.” 신부님께서 한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 송기인 : 그렇지만 지금 국민이 예컨대 이번에 검찰총장의 발언 같은 것을 보면 이렇게 자유로운 사회가 있느냐? 우리야말로 현재 민주주의가 잘 진행되는 게 아니냐, 그런 제가 즐거운 생각이 들어요. 옛날 같으면 감히 대통령이 뭐라고 했는데 검찰총장이 거기에 이의를 달겠습니까? 그런데 그럴 수 있는 사회, 그게 정상적인 사회가 아닌가. 거기에서 오히려 우리는 귀찮다, 짜증난다 그렇게 생각할 게 아니고 우리 희망 발견의 동력이다, 이렇게 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늘 사람 사는 세상 얘기했잖아요. 거기에서 분권, 특별히 공평하게 공평한 사회를 위한 노력, 이런 게 우리에게 주는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경래 : 알겠습니다. 마지막에 그래도 어떤 희망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 송기인 : 그래요, 수고하세요.

▷ 김경래 :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적인 멘토였던 송기인 신부님과 말씀 나눠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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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래의 최강시사] 송기인 신부 “과거 잘못 덮으면 사회발전 안돼”
    • 입력 2019-05-23 11:56:54
    • 수정2019-05-23 14:26:55
    최강시사
- YS “부산서 국회의원 후보 내라” 독촉, 노무현 설득했던 게 ‘정치고생’의 시작
- 괜히 정치 권했나 죄인같았는데... 대통령 당선됐던 2002년 평생 중 제일 좋았어
- 권력 내려놓은 최초의 대통령. 이번 검찰총장 항명 보며 오히려 ‘민주주의 발전’ 느껴
- 적폐청산이 정치보복? 보복받을 일 했으면 받아야... 사회발전 위해 야당협조 필요해

■ 프로그램명 : 김경래의 최강시사
■ 코너명 : <최강 인터뷰2>
■ 방송시간 : 5월 23일(목) 8:05~8:20 KBS1R FM 97.3 MHz
■ 진행 : 김경래 (뉴스타파 탐사팀장)
■ 출연 : 송기인 신부



▷ 김경래 : 2부에서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관련된 인터뷰를 할 건데요. 10주기 맞아서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까 제가 2009년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당시에 봉하마을에 취재를 갔었어요. 그때가 기억이 나네요. 그때 KBS 상황이 굉장히 안 좋은 상황이었고 사실상 당시 정부에 장악되어 있던 상황이었고 봉하마을에서 KBS 중계차가 쫓겨나고 방송을 못하는 상황이었어요, 사실. 그리고 사무실에도 이렇게 팻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KBS 출입 금지” 붙어 있었고. 저는 방송을 하다가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KBS 취재 차량에다가 밤에 시민들이 촛불을 집어던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앞에 차량에 운전하시는 분이 안 보일 정도로 촛농이 달라붙어서.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습니다.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을까요? 참여정부 초대 과거사위원장이시기도 하고 사실은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까지 멘토로 알려져 있죠. ‘정신적 버팀목’, ‘지주’ 여러 가지 표현들을 많이 씁니다. 송기인 신부님 오늘 특별히 연결해 보겠습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 송기인 : 안녕하십니까?

▷ 김경래 : 오늘 10주기인데 봉하는 미리 다녀오셨다는 말씀을 전해 들었습니다.

▶ 송기인 : 예, 그러니까 전부터 이날이 너무 복잡한 날이니까 과거사위원장들끼리 대개 둘째 화요일에 참배를 하고 옵니다. 금년에도 그랬어요.

▷ 김경래 : 다녀오실 때마다 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10년이니까 또 새로운 각별한 생각이 드실 것 같은데.

▶ 송기인 : 그래요. 해마다 가서 아쉽게 생각이 들고 우리끼리 모여서 같이 얘기를 나누고 그러죠.

▷ 김경래 : 10년이 지났으니까 이런 질문을 신부님께도 감히 여쭤볼 수 있을 것 같아요. 2009년도에 그 일을 전해 들으시고 어떤 마음이 드셨습니까?

▶ 송기인 : 당일에 말이죠? 그때는 정신이 멍하더라고요. 뻥 뚫린 것처럼 무슨 생각이 나는 게 아니라 이럴 수가 있을까하는 그런 생각이었죠, 그런 상태였죠.

▷ 김경래 : 오늘은 송기인 신부님께 옛날 얘기 좀 조금씩 여쭤볼게요.

▶ 송기인 : 그래요.

▷ 김경래 : 노무현 대통령님과 처음 어떻게 만나시게 된 거예요?

▶ 송기인 : 그러니까 82년 부산에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있었죠. 그 미문화원 사건 변론인이 8명으로 구성을 했었는데 8명 중에는 박찬종 변호사가 들어가 있었어요. 그 변호인단 중에서 한 사람이 찾아와서 “박 변호사는 적합하지 않다. 그런데 그 양반을 자기들로서는 그만두라고 하기가 힘들다, 선배이기 때문에. 그래서 신부님이 해결해달라.” 그래서 제가 가서 박 변호사한테 얘기를 했고 한 사람이 빠지니까 숫자를 맞춰야 되는 모양이에요. 7명밖에 안 되니까 한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때 “변호사님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그걸 나한테 말하냐.”고 그러니까 “신부님이 말해주면 거절 안 할 것 같아서입니다.” 노 변호사가 그래서 변호인단에 합류하게 됐었죠. 그때부터 매주 월요일에 재판을 했는데 재판이 끝나면 저녁을 같이하게 돼요, 변호사들하고. 그 자리가 소주 한잔하면서 친하게 되는 가까워지게 되는 그런 자리였죠. 그때 노 변호사를 알게 된 거예요.

▷ 김경래 : 처음 만날 때도 그렇고 초창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에는 변호사. 노무현 변호사는 인상이 어땠습니까?

▶ 송기인 : 인상이 그냥 정말로 평민이지, 보통 시민이죠. 신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동자도 아니고 일반 시민인데 좀 성격이 급한 것처럼 보였고 그런데 무슨 말 같은 것, 언어에서도 세련되게 하는 게 아니고 그냥 직접 바로 말하는 그런 성격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죠.

▷ 김경래 : 노무현 전 대통령 그렇게 인연을 처음 맺으시고 나중에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것도 송기인 신부님 덕분이라고 얘기를 들었어요, 맞나요?

▶ 송기인 : 제 덕보다는 김영삼 대통령, YS가 저에게 전화를 했어요.

▷ 김경래 : 신부님한테요?

▶ 송기인 : 네, 그래서 전화로 부산 시민 측에서 네 사람을 추천해달라, 네 군데 부산에 출마를 시키겠다고 말을 했어요. 제가 뭐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어떻게 찾죠?” 그러니까 “아니, 그냥 찾아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변호사들 많이 모인 데서 제가 “국회의원 할 사람?” 그러니까 김광일 변호사 혼자만 하겠다는 거예요. 나머지는 아무도 없어요. 할 수 없이 그대로 연락을 했습니다, YS에게. 이렇다 그러니까 “그럴 수가 있느냐 말이지? 좋은 분 많을 텐데. 다만 한 분이라도 더 해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제가 노 변호사를 만났어요. “서울에 가서 일하면 부산에서 하는 것보다는 효과적일 거다. 서울로 가는 용기를 내봐라.” 그러니까 “지금이 좋습니다.”하고 거절하는 거예요.

▷ 김경래 : 아, 처음에 거절했어요?

▶ 송기인 : 자기는 현재 상태가 좋다, 가장 일하기. 다른 생각이 전혀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할 수 없구나하고 고민을 하는데 다시 독촉을 하는 거예요, 서울에서는. 다시 만나서 설명을 했죠. 그러니까 자기가 “해보겠습니다. 다만 선거운동을 한번 멋지게 해보고 싶은 거지, 국회의원 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때는 남구에 살았기 때문에 남구로, 그다음에 김광일은 중구로 이렇게 해서 둘 다 신문에 발표가 됐어요, 그 당에서. 그러면 그렇게 하면 되겠다 그랬는데 다시 나한테 와서 하는 이야기가 “남구는 재미가 없습니다. 동구에 가야 재미가 있겠습니다.” 이러는 거예요. 그때 동구가 허삼수 선거구였습니다.

▷ 김경래 : 5.18의 주역 중에 1명이요.

▶ 송기인 : 그럼요. 거기서 해야 선거운동을 재미있게 하지, 남구는 재미없다고 그래서 그때는 이미 발표가 됐기 때문에 힘들잖아요. 그래서 다시 그때 미안해서 YS한테 제가 최성모 목사에게 서울 좀 다녀오라 했어요. 서울 가서 “형편이 이렇답니다.” 그러니까 웬걸, 바꿔준 거예요, 그대로. 동구로 가서, 바꿔서 동구에 출마했는데 제가 선거 사무실 한번 가보니까 바쁘더라고요. 그래서 사람은 안 만나고 그때는 후원만 하고 왔는데 당선된 거예요. 그때 세상 사람들이 허삼수도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 없었습니다.

▷ 김경래 : 그때도 승부사였군요.

▶ 송기인 : 그때 정치 고생을 시작하게 된 거죠.

▷ 김경래 : 보통 외부 사람들 생각에는 의외로 당선이 된 노무현 당시 국회의원이 그 이후로 사실은 그런데 굉장히 정치적인 여정이 복잡했습니다. 그렇죠? 3당 합당에 반대하고 그리고 험지에 출마를 또 해서 지역감정을 타파하겠다고 해서 낙선하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겪었어요. 그때 보시면서 신부님은 정치 괜히 시켰다, 너무 힘들게 산다, 이런 생각 안 해보셨어요?

▶ 송기인 : 그것보다는 그냥 어쨌든 간에 제가 죄인처럼 생각이 되는 거예요. 저 고생을 하라고 내가 보냈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런데 본인은 선거운동 할 때 동구에서 재미있게 했다는 거예요. 권총을 차고 흉내를 내고 이런 식으로. 어쨌든 그래서 실제로는 그분이 조금 발전하게 된 것은 청문회였죠. 청문회에서 시원하게 해결하니까 박수를 보낸 것 아니겠어요?

▷ 김경래 : 노무현 대통령이 당연히 당시에 노무현 국회의원이죠. 대통령에 출마하게 될지는 생각을 못하셨을 것 같아요, 신부님도. 그렇죠?

▶ 송기인 : 저도 대통령까지 생각해본 적도 없고 국회의원으로서 충실히 일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었죠.

▷ 김경래 : 대통령에 출마한다는 말씀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 송기인 : 그때 부산에 내려와서 같이 작은 행사가 있었는데 시장이랑 모여서 얘기할 때 제가 그랬어요. “고생을 너무 할 거 아니냐?” 그러니까 “그래도 힘껏 해봐야죠.”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대단한 용기다, 그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 김경래 : 그래서 대통령이 되어버렸어요, 또. 그렇죠?

▶ 송기인 : 그래서 제가 그해를 지금 80여년을 살아오면서 제일 좋은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후보가 된 거예요. “아이고 이럴 수가 있다!” 그리고 그다음에 월드컵이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그때 첫골도 부산에서 넣었고 월드컵 아주 재미있게 했고 가을에도 아시안게임이 아마 그때 한국이 가장 많은 금메달을 끌어모았을 겁니다.

▷ 김경래 : 그때 아시안게임도 부산이었나요?

▶ 송기인 : 그럼요.

▷ 김경래 : 아, 그랬구나.

▶ 송기인 : 아주 잘됐고 그다음에 12월에 진짜 당선이 된 거 있죠? 그렇게 놀라운 즐거운 해였습니다.

▷ 김경래 : 그런데 또 그뒤에 여러 가지 정치적으로 공격도 많이 받고 힘들게 지내고 탄핵까지 당했어요, 결국은. 탄핵소추까지 받았고 그리고 결국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그런 마지막에 몇 년 있지 않습니까? 한 6~7년.

▶ 송기인 : 탄핵 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결국 지금 탄핵하는 건 일부 정치 반대자들이지 진실은 이길 거다. 그런 신념이 있었어요. 비록 탄핵을 실제로 당하더라도 결국 역사는 바른 자세, 바른 일을 하려고 했다, 그렇게 기록될 거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 김경래 : 신부님, 참여정부 때 과거사정리위원장으로 지내셨잖아요. 당시도 그렇고요, 지금도 적폐청산 여러 가지 부분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저항들도 만만치 않고 피로감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렇습니다. 당시도 그렇고 지금 상황도 돌이켜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신부님은?

▶ 송기인 : 과거사가 정리되지 않고는 아무리 길게 가더라도 세월이 가더라도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겁니다. 이걸 정리하고 나야 제대로 바른 사회로 이끌어갈 수 있지 과거사 이걸 덮어놓고 그대로 가자, 그것 가지고는 절대로 저는 우리나라가 성공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적폐청산 과거사 정리는 꼭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야당이 훨씬 더 협조하지 않고는 불가능해요. 만약에 협조하지 않고 지금처럼 버틴다면 한없이 늦어지는 거죠, 우리나라 바른 발전이.

▷ 김경래 : 야당에서는 그런데 이걸 “정치적인 보복 아니냐? 이게 우리나라 정치에 좋은 것이냐, 앞으로도?” 이런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 송기인 : 글쎄요, 제가 막말을 하자면 정치적인 보복을 받을 일을 했으면 보복을 받아야 됩니다. 그만큼 잘못해놓고도 덮고 지나가자는 것은 비정상이죠. 바른 발전할 수 없는, 결국 자해가 되는 거죠.

▷ 김경래 : 신부님이 평가를 하신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여러 가지 보통 일반적인 다른 대통령하고는 많이 달랐어요, 스타일도 그렇고 정책도 그렇고요. 우리 현대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진 대통령이다, 이렇게 평가를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 송기인 : 지금 제가 평가하는 게 바른 평가라고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우리가 발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생각해요. 그때 검찰, 국정원 다 마음대로 하라고 그랬잖아요. 지난 대통령들이 한 번도 그런 편리한 권력을 놓은 그런 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과감하게 그런 것을 대통령이 보통 사람도 대통령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그러니까 가장 기본되는 기초 바닥을 인식해준 그런 대통령이라고 생각해요.

▷ 김경래 : 지금 서거한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10년이 지났는데 제가 아까 신부님하고 연결하기 직전에 말씀드렸듯이 10년 동안 변한 것도 있고 변하지 않은 것도 있을 겁니다. 10년의 세월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도대체 뭐가 변했느냐? 뭐가 달라졌냐, 뭐가 발전했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은데 “답답하다.” 신부님께서 한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 송기인 : 그렇지만 지금 국민이 예컨대 이번에 검찰총장의 발언 같은 것을 보면 이렇게 자유로운 사회가 있느냐? 우리야말로 현재 민주주의가 잘 진행되는 게 아니냐, 그런 제가 즐거운 생각이 들어요. 옛날 같으면 감히 대통령이 뭐라고 했는데 검찰총장이 거기에 이의를 달겠습니까? 그런데 그럴 수 있는 사회, 그게 정상적인 사회가 아닌가. 거기에서 오히려 우리는 귀찮다, 짜증난다 그렇게 생각할 게 아니고 우리 희망 발견의 동력이다, 이렇게 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늘 사람 사는 세상 얘기했잖아요. 거기에서 분권, 특별히 공평하게 공평한 사회를 위한 노력, 이런 게 우리에게 주는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경래 : 알겠습니다. 마지막에 그래도 어떤 희망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 송기인 : 그래요, 수고하세요.

▷ 김경래 :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적인 멘토였던 송기인 신부님과 말씀 나눠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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