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해방 위한 선구자 될 것”…러 신문 속 안중근 의사
입력 2019.05.28 (19:08)
수정 2019.05.2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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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하얼빈 의거 당시 안중근 의사의 행적과 발언을 상세히 소개한 러시아 신문기사가 최초로 공개됐습니다.
기사에 나타난 안 의사의 모습은 당당했고, 순국한 뒤 현지 기독교 묘지에 묻혔다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이수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나는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을 위해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첫 심문 과정에서 나온 안중근 의사의 발언입니다.
석 달 뒤, 사형 선고를 받던 날, 안 의사의 어머니는 "가치 있게 죽음을 맞이하라"고 전했습니다.
아들에게 건넨 마지막 인사말이었습니다.
하얼빈 의거 당시 안 의사의 말과 행적을 담은 러시아 지역신문 보도 내용입니다.
[김형국/국가기록원 연구협력과 과장 : "독립운동 관련 기록들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국립 중앙도서관에서 안 의사 관련된 기록들을 발견해서 수집하게 되었습니다." ]
공개된 기사는 하얼빈 의거 다음 날인 1909년 10월 27일부터 1910년 4월 21일까지, 모두 24건입니다.
특히 한 지역신문은 일본 아사히 신문을 근거로 안중근 의사의 유해 매장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했습니다.
사형이 집행된 뒤 안 의사가 교도소 근처 기독교 묘지에 묻혔다고 보도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안 의사의 유해가 감옥 묘지에 매장된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박환/수원대 사학과 교수 : "안중근 의사의 유해 찾기에 새로운 어떤 장소를 한 번 지정해 볼 수 있는 그런 내용이 하나 실려있는 거예요."]
안중근 의사와 관련해 블라디보스토크 등 러시아 극동지역 신문 기사가 대거 공개된 것은 처음으로 역사적 사료 가치도 충분할 것으로 평가됩니다.
KBS 뉴스 이수민입니다.
하얼빈 의거 당시 안중근 의사의 행적과 발언을 상세히 소개한 러시아 신문기사가 최초로 공개됐습니다.
기사에 나타난 안 의사의 모습은 당당했고, 순국한 뒤 현지 기독교 묘지에 묻혔다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이수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나는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을 위해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첫 심문 과정에서 나온 안중근 의사의 발언입니다.
석 달 뒤, 사형 선고를 받던 날, 안 의사의 어머니는 "가치 있게 죽음을 맞이하라"고 전했습니다.
아들에게 건넨 마지막 인사말이었습니다.
하얼빈 의거 당시 안 의사의 말과 행적을 담은 러시아 지역신문 보도 내용입니다.
[김형국/국가기록원 연구협력과 과장 : "독립운동 관련 기록들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국립 중앙도서관에서 안 의사 관련된 기록들을 발견해서 수집하게 되었습니다." ]
공개된 기사는 하얼빈 의거 다음 날인 1909년 10월 27일부터 1910년 4월 21일까지, 모두 24건입니다.
특히 한 지역신문은 일본 아사히 신문을 근거로 안중근 의사의 유해 매장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했습니다.
사형이 집행된 뒤 안 의사가 교도소 근처 기독교 묘지에 묻혔다고 보도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안 의사의 유해가 감옥 묘지에 매장된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박환/수원대 사학과 교수 : "안중근 의사의 유해 찾기에 새로운 어떤 장소를 한 번 지정해 볼 수 있는 그런 내용이 하나 실려있는 거예요."]
안중근 의사와 관련해 블라디보스토크 등 러시아 극동지역 신문 기사가 대거 공개된 것은 처음으로 역사적 사료 가치도 충분할 것으로 평가됩니다.
KBS 뉴스 이수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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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19-05-28 20: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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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의거 당시 안중근 의사의 행적과 발언을 상세히 소개한 러시아 신문기사가 최초로 공개됐습니다.
기사에 나타난 안 의사의 모습은 당당했고, 순국한 뒤 현지 기독교 묘지에 묻혔다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이수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나는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을 위해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첫 심문 과정에서 나온 안중근 의사의 발언입니다.
석 달 뒤, 사형 선고를 받던 날, 안 의사의 어머니는 "가치 있게 죽음을 맞이하라"고 전했습니다.
아들에게 건넨 마지막 인사말이었습니다.
하얼빈 의거 당시 안 의사의 말과 행적을 담은 러시아 지역신문 보도 내용입니다.
[김형국/국가기록원 연구협력과 과장 : "독립운동 관련 기록들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국립 중앙도서관에서 안 의사 관련된 기록들을 발견해서 수집하게 되었습니다." ]
공개된 기사는 하얼빈 의거 다음 날인 1909년 10월 27일부터 1910년 4월 21일까지, 모두 24건입니다.
특히 한 지역신문은 일본 아사히 신문을 근거로 안중근 의사의 유해 매장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했습니다.
사형이 집행된 뒤 안 의사가 교도소 근처 기독교 묘지에 묻혔다고 보도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안 의사의 유해가 감옥 묘지에 매장된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박환/수원대 사학과 교수 : "안중근 의사의 유해 찾기에 새로운 어떤 장소를 한 번 지정해 볼 수 있는 그런 내용이 하나 실려있는 거예요."]
안중근 의사와 관련해 블라디보스토크 등 러시아 극동지역 신문 기사가 대거 공개된 것은 처음으로 역사적 사료 가치도 충분할 것으로 평가됩니다.
KBS 뉴스 이수민입니다.
하얼빈 의거 당시 안중근 의사의 행적과 발언을 상세히 소개한 러시아 신문기사가 최초로 공개됐습니다.
기사에 나타난 안 의사의 모습은 당당했고, 순국한 뒤 현지 기독교 묘지에 묻혔다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이수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나는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을 위해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첫 심문 과정에서 나온 안중근 의사의 발언입니다.
석 달 뒤, 사형 선고를 받던 날, 안 의사의 어머니는 "가치 있게 죽음을 맞이하라"고 전했습니다.
아들에게 건넨 마지막 인사말이었습니다.
하얼빈 의거 당시 안 의사의 말과 행적을 담은 러시아 지역신문 보도 내용입니다.
[김형국/국가기록원 연구협력과 과장 : "독립운동 관련 기록들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국립 중앙도서관에서 안 의사 관련된 기록들을 발견해서 수집하게 되었습니다." ]
공개된 기사는 하얼빈 의거 다음 날인 1909년 10월 27일부터 1910년 4월 21일까지, 모두 24건입니다.
특히 한 지역신문은 일본 아사히 신문을 근거로 안중근 의사의 유해 매장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했습니다.
사형이 집행된 뒤 안 의사가 교도소 근처 기독교 묘지에 묻혔다고 보도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안 의사의 유해가 감옥 묘지에 매장된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박환/수원대 사학과 교수 : "안중근 의사의 유해 찾기에 새로운 어떤 장소를 한 번 지정해 볼 수 있는 그런 내용이 하나 실려있는 거예요."]
안중근 의사와 관련해 블라디보스토크 등 러시아 극동지역 신문 기사가 대거 공개된 것은 처음으로 역사적 사료 가치도 충분할 것으로 평가됩니다.
KBS 뉴스 이수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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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민 기자 watermi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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