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감독’·‘겁없는 아이들’…이젠 우승만 남았다!

입력 2019.06.13 (08:13) 수정 2019.06.1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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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와의 4강 전이 열렸던 폴란드 루블린 경기장입니다.

결승 진출을 확정한 선수들이 응원석으로 달려가 인사를 하더니, 갑자기 생수병을 꺼내듭니다.

줄 한가운데 있던 정정용 감독을 향한 이른바 물벼락 세리모니, 선수들은 아버지뻘인 정 감독의 등을 친구처럼 두드려 댔습니다.

흠뻑 젖은 채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정 감독은 선수들의 '흥'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요,

[정정용/20세 이하 축구대표팀 감독 : "오늘은 선수들이 충분히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커에 가도 애들이 자기들끼리 충분히 흥을 표출합니다."]

경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선 합창이 울려퍼졌습니다.

조영욱이 “우리의 떼창을 보여주자”고 하자 이재익이 가수 노을의 발라드를 재생시킬 때였습니다.

["그리워, 그리워, 니가 너무나 그리워서 보고 싶어서…."]

어느 대회보다 극적인 승부가 많았지만 선수들은 승부가 주는 압박감에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목받는 사람, 어린 선수들을 다독이며 결승 무대로 이끈 정정용 감독입니다.

정 감독의 이력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선수 시절은 철저히 무명이었습니다.

프로 무대는 밟지 못했고 1992년 실업팀 이랜드 푸마에 입단했습니다.

하지만 연습 경기 도중 눈 주위가 골절되는 치명적 부상으로 29살에 선수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선수 시절의 아쉬움은 배움으로 풀었습니다.

그의 석사 논문은, '축구 경기의 득점 및 어시스트 위치, 방향 분석에 관한 연구', 국내 프로축구 68경기, 149골을 면밀히 분석해 골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패턴을 구조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처음 지도자로 입문한 건 1998년 중학교 감독입니다.

이후, 보시는 것처럼 20년 넘게 축구의 새싹들과 함께 했습니다.

빛나는 곳은 아니었지만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리를 묵묵히 지켜왔습니다.

수년간 차곡차곡 쌓은 노하우는 이번 20세이하 월드컵에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의 전술은 이른바 '팔색조 전술'로 불립니다.

상대의 허점을 미리 파악해 상황에 따른 맞춤형 전술을 다채롭게 구사하는 방식입니다.

이번 4강 전에서도 에콰도르의 오른쪽 수비가 약한 점을 간파하고 선수들에게 집중 공략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수비가 한쪽으로 몰렸을 때 빈 공간을 기습 공략한 이 결승 골이 바로 정 감독의 작전과 딱 맞아떨어진 장면이었습니다.

[정정용/U-20 축구대표팀 감독 : "함정을 판 다음에 그쪽으로 프레싱을 가하려고, 고재현 쪽으로 가하려고 준비했는데 그게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정 감독은 한국 스포츠의 달라진 지도자상을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당시 4강 신화를 일궈낸 박종환 감독의 별명은 호랑이 또는 독사였습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지론 하에 강력한 카리스마와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선수들을 4강 무대에 올려놨습니다.

산소가 부족한 멕시코 고지대 적응을 위해 방독면을 쓰고 훈련을 시킨 일화를 남겼습니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났습니다.

정정용 감독의 리더십은 조용한 리더십으로 표현됩니다.

어린 선수들과의 소통, 그로 인한 동기 유발을 바탕으로 팀을 조련합니다.

18살 ‘슛돌이’ 이강인이 형들 사이에서 주눅들지 않고 기량을 발휘한 것도 이런 자율적 팀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무엇보다 그가 강조하는 건 원맨이 아닌 원팀.

한 기자회견장에선 발언을 자청해 "이 나이 선수들은 예민하고 질투심도 많다 특정 선수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 각 위치의 선수들을 골고루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자신은 완성되지 않은 선수를 더 눈여겨 본다"고도 했습니다.

개성 넘치는 선수들을 '원팀'으로 묶어 낸 리더십, 유소년 축구 발전에 흘린 오랜 땀이 한국 축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친절한 뉴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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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명 감독’·‘겁없는 아이들’…이젠 우승만 남았다!
    • 입력 2019-06-13 08:15:22
    • 수정2019-06-13 08:5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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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와의 4강 전이 열렸던 폴란드 루블린 경기장입니다.

결승 진출을 확정한 선수들이 응원석으로 달려가 인사를 하더니, 갑자기 생수병을 꺼내듭니다.

줄 한가운데 있던 정정용 감독을 향한 이른바 물벼락 세리모니, 선수들은 아버지뻘인 정 감독의 등을 친구처럼 두드려 댔습니다.

흠뻑 젖은 채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정 감독은 선수들의 '흥'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요,

[정정용/20세 이하 축구대표팀 감독 : "오늘은 선수들이 충분히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커에 가도 애들이 자기들끼리 충분히 흥을 표출합니다."]

경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선 합창이 울려퍼졌습니다.

조영욱이 “우리의 떼창을 보여주자”고 하자 이재익이 가수 노을의 발라드를 재생시킬 때였습니다.

["그리워, 그리워, 니가 너무나 그리워서 보고 싶어서…."]

어느 대회보다 극적인 승부가 많았지만 선수들은 승부가 주는 압박감에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목받는 사람, 어린 선수들을 다독이며 결승 무대로 이끈 정정용 감독입니다.

정 감독의 이력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선수 시절은 철저히 무명이었습니다.

프로 무대는 밟지 못했고 1992년 실업팀 이랜드 푸마에 입단했습니다.

하지만 연습 경기 도중 눈 주위가 골절되는 치명적 부상으로 29살에 선수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선수 시절의 아쉬움은 배움으로 풀었습니다.

그의 석사 논문은, '축구 경기의 득점 및 어시스트 위치, 방향 분석에 관한 연구', 국내 프로축구 68경기, 149골을 면밀히 분석해 골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패턴을 구조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처음 지도자로 입문한 건 1998년 중학교 감독입니다.

이후, 보시는 것처럼 20년 넘게 축구의 새싹들과 함께 했습니다.

빛나는 곳은 아니었지만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리를 묵묵히 지켜왔습니다.

수년간 차곡차곡 쌓은 노하우는 이번 20세이하 월드컵에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의 전술은 이른바 '팔색조 전술'로 불립니다.

상대의 허점을 미리 파악해 상황에 따른 맞춤형 전술을 다채롭게 구사하는 방식입니다.

이번 4강 전에서도 에콰도르의 오른쪽 수비가 약한 점을 간파하고 선수들에게 집중 공략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수비가 한쪽으로 몰렸을 때 빈 공간을 기습 공략한 이 결승 골이 바로 정 감독의 작전과 딱 맞아떨어진 장면이었습니다.

[정정용/U-20 축구대표팀 감독 : "함정을 판 다음에 그쪽으로 프레싱을 가하려고, 고재현 쪽으로 가하려고 준비했는데 그게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정 감독은 한국 스포츠의 달라진 지도자상을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당시 4강 신화를 일궈낸 박종환 감독의 별명은 호랑이 또는 독사였습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지론 하에 강력한 카리스마와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선수들을 4강 무대에 올려놨습니다.

산소가 부족한 멕시코 고지대 적응을 위해 방독면을 쓰고 훈련을 시킨 일화를 남겼습니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났습니다.

정정용 감독의 리더십은 조용한 리더십으로 표현됩니다.

어린 선수들과의 소통, 그로 인한 동기 유발을 바탕으로 팀을 조련합니다.

18살 ‘슛돌이’ 이강인이 형들 사이에서 주눅들지 않고 기량을 발휘한 것도 이런 자율적 팀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무엇보다 그가 강조하는 건 원맨이 아닌 원팀.

한 기자회견장에선 발언을 자청해 "이 나이 선수들은 예민하고 질투심도 많다 특정 선수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 각 위치의 선수들을 골고루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자신은 완성되지 않은 선수를 더 눈여겨 본다"고도 했습니다.

개성 넘치는 선수들을 '원팀'으로 묶어 낸 리더십, 유소년 축구 발전에 흘린 오랜 땀이 한국 축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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