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만두’ vs ‘어머니 무릎’…인보사 법정의 말말말

입력 2019.07.24 (16:13) 수정 2019.07.2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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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국민을 경악하게 했던 이른바 '쓰레기 만두' 파동, 기억하시나요? 폐기돼야 할 단무지를 더러운 물로 씻은 뒤 만두소로 만들어 대량 납품해온 업자들이 적발됐다는 보도로 시작된 사건입니다. 이 보도의 반향은 실로 엄청났습니다.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무말랭이와 단무지를 본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만두=쓰레기'라는 인식이 확산됐습니다. 전국의 만둣가게들이 줄도산했습니다. 단무지를 쓰지 않는 만두 업체까지도 문을 닫았습니다. 식약청이 '쓰레기 만두'를 만든 업체명을 공개하자 한 업체 대표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대부분의 만두 업체들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불량 만두소가 '식용'으로 부적합해 보이기는 하지만,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식약청도 졸속 조사를 한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이보다 훨씬 전 1989년 불거졌던 '우지라면' 사태도 비슷합니다. '삼양식품이 공업용 쇠고기 기름으로 면을 튀긴다'는 익명의 투서가 검찰청에 날아들었습니다. 검찰이 삼양식품을 기소하면서 내세운 주장은, '유무해 여부를 알 수는 없지만 유해 소지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8년 뒤인 1997년 8월 대법원에서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최종 무죄 판결을 받게 됩니다. 그 사이 삼양은 업계 1위를 굳힌 농심과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의 격차가 벌어졌습니다.

'포르말린 통조림' 사태도 있습니다. 1998년 7월, 검찰은 통조림 제조업체들이 수입 번데기 등을 포르말린으로 방부 처리해 134만 캔을 판매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역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재판부는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자연상태의 식품에도 원래 존재하고 인위적으로 첨가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 “쓰레기 만두, 포르말린 통조림 모두 무죄였는데…” 인보사 법정에서 나온 말·말·말

전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지만 결국 무죄로 판결 난 이 사건들이 최근 법정에 다시 소환됐습니다.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의 허가 취소 집행정지 신청 재판에서입니다. 인보사는 관절강 부위에 직접 주사해 통증을 완화하는 효과로 2017년 7월 판매가 허가된 의약품입니다. 그런데 지난 2월, 인보사 2액의 주성분이 당초 허가받은 연골세포가 아닌 '신장세포'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식약처는 인보사 허가를 취소했습니다. 신장세포는 종양을 유발할 수 있는 세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인보사 판매사인 코오롱생명과학은 허가 취소를 중단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코오롱생명과학 측이 '쓰레기 만두'와 '포르말린 통조림' 등을 언급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런 사건들은 전부 유해성을 입증할 수 없다며 결국에는 무죄가 선고됐지만, 언론이나 수사기관이 무분별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해당 기업들은 회복할 수 없는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는 겁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이런 사례들로 봤을 때 인보사 허가 취소는 잠정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본안 소송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허가 취소를 보류해야 한다는 겁니다. 코오롱 측은 "인보사에 대한 과학적 검증이 있기 전에 허가가 취소될 경우, 이미 낙인이 찍혀 시장에서 퇴출당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바이오산업과 회사 존립은 되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처한다. 이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신들은 이미 식약처 지시에 따라 4월부터 인보사 제조와 판매 중단을 성실히 이행했고, 향후 본안 소송에서 이뤄질 인보사에 대한 검증에도 최선을 다하겠지만, 지금 당장 식약처가 허가를 취소하는 건 너무하다는 논리입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인보사 허가 취소가 유지될 경우 경제적으로 1조 원 상당의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 “인보사, 본인 어머니 무릎에 투약한다고 생각해봐라”

식약처가 코오롱생명과학의 이 같은 주장을 반박하면서, 법원에서는 3시간이 넘는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식약처는 인보사가 그동안 신장세포가 아닌 연골세포가 주성분이라는 전제하에 모든 허가 절차를 진행해왔기 때문에, 허가 직권취소는 정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식약처 측 변호인은 코오롱생명과학을 향해 "인보사를 본인 어머니 무릎에 투약한다고 생각해보라"고 일갈했습니다. 만약 말기 암 환자에게 적용돼야 하는 신약이라면 위험성을 감수할 수도 있겠지만, 인보사는 단순히 관절염의 통증을 완화해주는 약에 불과한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람에게 투여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지난 5월 식약처는 인보사를 조사한 결과 안전성에 문제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어제 법정에서 식약처는 인보사에 사용된 신장세포(GP2-293)가 검증이 되지 않은 위험한 세포라고 주장했습니다. 신장세포는 연구용으로만 사용될 뿐, 인체에 사용된 적이 전혀 없기 때문에 지금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앞으로 언제 어떻게 종양으로 발현될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코오롱생명과학과 식약처 모두 나름의 일리는 있습니다. 식약처는 사람 몸에 직접 투여되는 의약품이니만큼 허가에 더욱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조금의 위험성이라도 있으면, 행여 그 위험이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일단은 허가를 취소하고 다시 임상시험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겁니다. 반대로 코오롱생명과학은 유해성이 구체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허가를 취소할 경우, 바이오산업의 특성상 신약 개발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고 제조사는 존립이 불가능할 정도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말 많고 탈 많은 인보사, 과연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리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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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24 16:13:48
    • 수정2019-07-24 16:16:53
    취재K
15년 전 국민을 경악하게 했던 이른바 '쓰레기 만두' 파동, 기억하시나요? 폐기돼야 할 단무지를 더러운 물로 씻은 뒤 만두소로 만들어 대량 납품해온 업자들이 적발됐다는 보도로 시작된 사건입니다. 이 보도의 반향은 실로 엄청났습니다.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무말랭이와 단무지를 본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만두=쓰레기'라는 인식이 확산됐습니다. 전국의 만둣가게들이 줄도산했습니다. 단무지를 쓰지 않는 만두 업체까지도 문을 닫았습니다. 식약청이 '쓰레기 만두'를 만든 업체명을 공개하자 한 업체 대표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대부분의 만두 업체들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불량 만두소가 '식용'으로 부적합해 보이기는 하지만,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식약청도 졸속 조사를 한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이보다 훨씬 전 1989년 불거졌던 '우지라면' 사태도 비슷합니다. '삼양식품이 공업용 쇠고기 기름으로 면을 튀긴다'는 익명의 투서가 검찰청에 날아들었습니다. 검찰이 삼양식품을 기소하면서 내세운 주장은, '유무해 여부를 알 수는 없지만 유해 소지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8년 뒤인 1997년 8월 대법원에서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최종 무죄 판결을 받게 됩니다. 그 사이 삼양은 업계 1위를 굳힌 농심과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의 격차가 벌어졌습니다.

'포르말린 통조림' 사태도 있습니다. 1998년 7월, 검찰은 통조림 제조업체들이 수입 번데기 등을 포르말린으로 방부 처리해 134만 캔을 판매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역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재판부는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자연상태의 식품에도 원래 존재하고 인위적으로 첨가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 “쓰레기 만두, 포르말린 통조림 모두 무죄였는데…” 인보사 법정에서 나온 말·말·말

전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지만 결국 무죄로 판결 난 이 사건들이 최근 법정에 다시 소환됐습니다.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의 허가 취소 집행정지 신청 재판에서입니다. 인보사는 관절강 부위에 직접 주사해 통증을 완화하는 효과로 2017년 7월 판매가 허가된 의약품입니다. 그런데 지난 2월, 인보사 2액의 주성분이 당초 허가받은 연골세포가 아닌 '신장세포'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식약처는 인보사 허가를 취소했습니다. 신장세포는 종양을 유발할 수 있는 세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인보사 판매사인 코오롱생명과학은 허가 취소를 중단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코오롱생명과학 측이 '쓰레기 만두'와 '포르말린 통조림' 등을 언급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런 사건들은 전부 유해성을 입증할 수 없다며 결국에는 무죄가 선고됐지만, 언론이나 수사기관이 무분별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해당 기업들은 회복할 수 없는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는 겁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이런 사례들로 봤을 때 인보사 허가 취소는 잠정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본안 소송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허가 취소를 보류해야 한다는 겁니다. 코오롱 측은 "인보사에 대한 과학적 검증이 있기 전에 허가가 취소될 경우, 이미 낙인이 찍혀 시장에서 퇴출당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바이오산업과 회사 존립은 되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처한다. 이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신들은 이미 식약처 지시에 따라 4월부터 인보사 제조와 판매 중단을 성실히 이행했고, 향후 본안 소송에서 이뤄질 인보사에 대한 검증에도 최선을 다하겠지만, 지금 당장 식약처가 허가를 취소하는 건 너무하다는 논리입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인보사 허가 취소가 유지될 경우 경제적으로 1조 원 상당의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 “인보사, 본인 어머니 무릎에 투약한다고 생각해봐라”

식약처가 코오롱생명과학의 이 같은 주장을 반박하면서, 법원에서는 3시간이 넘는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식약처는 인보사가 그동안 신장세포가 아닌 연골세포가 주성분이라는 전제하에 모든 허가 절차를 진행해왔기 때문에, 허가 직권취소는 정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식약처 측 변호인은 코오롱생명과학을 향해 "인보사를 본인 어머니 무릎에 투약한다고 생각해보라"고 일갈했습니다. 만약 말기 암 환자에게 적용돼야 하는 신약이라면 위험성을 감수할 수도 있겠지만, 인보사는 단순히 관절염의 통증을 완화해주는 약에 불과한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람에게 투여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지난 5월 식약처는 인보사를 조사한 결과 안전성에 문제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어제 법정에서 식약처는 인보사에 사용된 신장세포(GP2-293)가 검증이 되지 않은 위험한 세포라고 주장했습니다. 신장세포는 연구용으로만 사용될 뿐, 인체에 사용된 적이 전혀 없기 때문에 지금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앞으로 언제 어떻게 종양으로 발현될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코오롱생명과학과 식약처 모두 나름의 일리는 있습니다. 식약처는 사람 몸에 직접 투여되는 의약품이니만큼 허가에 더욱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조금의 위험성이라도 있으면, 행여 그 위험이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일단은 허가를 취소하고 다시 임상시험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겁니다. 반대로 코오롱생명과학은 유해성이 구체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허가를 취소할 경우, 바이오산업의 특성상 신약 개발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고 제조사는 존립이 불가능할 정도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말 많고 탈 많은 인보사, 과연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리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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