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일제가 뜯어낸 ‘동십자각 서수상’ 찾았다
입력 2019.08.07 (18:54)
수정 2019.08.07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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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광화문을 지나 동쪽 담장 끝 북촌으로 진입하는 들머리. 차로 한가운데 교통섬처럼 솟아 있는 기와지붕의 건물을 본 적 있으실 겁니다. 동십자각(東十字閣)이라는 이름의 이 건물은 본래 경복궁의 일부였다가 일제강점기에 경복궁 바깥 담장이 헐리면서 지금처럼 어색한 모습으로 남게 됐습니다.
1925년 광화문 뒤편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은 일제는 광화문을 뜯어내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근처로 옮긴 뒤 광화문 양쪽 담장까지 철거해 버립니다. 조선총독부를 가리고 있다는 이유였죠. 이어 1929년에 일제는 경복궁에서 조선 박람회라는 행사를 위해 도로를 확장한다며 서쪽 담장도 상당 부분 헐어냅니다. 경복궁의 남쪽과 동쪽 담장이 만나는 모서리에 있던 동십자각은 이렇게 두 차례에 걸쳐 담장이 끊기면서 섬이 돼버린 것이죠.
뜻밖의 장소에서 찾아낸 '동십자각 서수상'
지금 동십자각은 하단부가 3m가 넘는 벽으로 돼 있어 위로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위 사진을 보면 문루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계단이 시작되는 부분에 동물 모습을 한 조각상이 서 있습니다. 확대한 사진을 보면 얼핏 광화문 해태상과 닮아 보입니다. 민화 속 호랑이를 닮은 얼굴에, 몸에 덮인 비늘이 용을 떠올리게 하는 이 동물은 '상서로운 동물'이라는 뜻의 '서수(瑞獸)'라고 불립니다. 또, 이렇게 상상 속의 동물을 묘사한 조각상을 '서수상'이라 합니다.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서수상과 계단이 언제 철거됐는지 정확한 기록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궁궐 담장이 헐리는 과정에서 함께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화재청의 공식 기록에도 동십자각 서수상은 일제강점기에 분실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서수상이 최근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됐습니다. 문화재청은 조선 궁궐과 종묘의 관리·보수를 위해 창덕궁 안에 현장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긴급한 보수가 필요한 상황이 있을 때 빠른 대응을 하기 위해 관련 인력이 상주하는 공간인데요. 바로 여기서 동십자각 서수상이 발견된 겁니다. 사무실이 있는 공간 한쪽에 원래 자리를 잃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석상들을 모아 놓았는데, 그 안에 서수상도 함께 있었던 겁니다.
자경전 앞 서수상과 비교해보니…
이렇게 극적으로 찾아낸 서수상과 일제강점기 사진을 비교한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창덕궁에 있는 서수상이 동십자각의 것이 맞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사진 말고도 참고자료가 하나 더 있는데요. 동십자각의 반대편, 그러니까 경복궁의 남서쪽 모서리에 동십자각과 짝을 이루는 서십자각(西十字閣)이 있었습니다. 옛 모습으로 살아남은 동십자각과 달리 서십자각은 1923년 일제가 전차 노선을 건설하면서 통째로 뜯어내 없애버렸죠. 당시 서십자각에도 서수상이 있었는데, 이 서수상은 현재 경복궁 자경전 앞에 서 있습니다. 둘은 가로세로 50cm 남짓에 높이 70cm 정도로 크기가 비슷해 좌우 또는 암수 한 쌍을 이뤘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자경전 앞에 있는 서십자각 서수상은 일제강점기에 헤어졌던 짝을 9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셈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찾은 동십자각 서수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창덕궁까지 오게 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없습니다. 문화재청의 창덕궁 사무실은 1990년대에 설치됐다고 하니 현재 위치에 온 것은 그 무렵으로 볼 수 있겠는데, 그 이전까지 어디를 어떻게 떠돌았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가 없습니다.
내력을 확인할 수 없는 사정은 짝꿍인 자경전 앞 서수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십자각이 철거된 이후 누가, 언제, 자경전 앞으로 옮겨 놓았는지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수상 한 쌍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비슷한 곡절을 겪었으니 우리에겐 서글픈 역사의 한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찾은 서수상은 창덕궁 안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관람구역에 있지 않아서 관람객들이 직접 만나보기는 어렵습니다. 문화재청은 동십자각 서수상의 내력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또, 2023년까지 일제가 훼손한 경복궁 담장을 복원하고 서십자각을 다시 세우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는데, 이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되면 동십자각 서수상도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9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서수상이 제자리를 찾기까지는 그래서 아직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1925년 광화문 뒤편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은 일제는 광화문을 뜯어내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근처로 옮긴 뒤 광화문 양쪽 담장까지 철거해 버립니다. 조선총독부를 가리고 있다는 이유였죠. 이어 1929년에 일제는 경복궁에서 조선 박람회라는 행사를 위해 도로를 확장한다며 서쪽 담장도 상당 부분 헐어냅니다. 경복궁의 남쪽과 동쪽 담장이 만나는 모서리에 있던 동십자각은 이렇게 두 차례에 걸쳐 담장이 끊기면서 섬이 돼버린 것이죠.
1930년대에 촬영된 동십자각의 모습과 계단 앞 서수상을 확대한 모습
뜻밖의 장소에서 찾아낸 '동십자각 서수상'
지금 동십자각은 하단부가 3m가 넘는 벽으로 돼 있어 위로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위 사진을 보면 문루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계단이 시작되는 부분에 동물 모습을 한 조각상이 서 있습니다. 확대한 사진을 보면 얼핏 광화문 해태상과 닮아 보입니다. 민화 속 호랑이를 닮은 얼굴에, 몸에 덮인 비늘이 용을 떠올리게 하는 이 동물은 '상서로운 동물'이라는 뜻의 '서수(瑞獸)'라고 불립니다. 또, 이렇게 상상 속의 동물을 묘사한 조각상을 '서수상'이라 합니다.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서수상과 계단이 언제 철거됐는지 정확한 기록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궁궐 담장이 헐리는 과정에서 함께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화재청의 공식 기록에도 동십자각 서수상은 일제강점기에 분실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서수상이 최근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됐습니다. 문화재청은 조선 궁궐과 종묘의 관리·보수를 위해 창덕궁 안에 현장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긴급한 보수가 필요한 상황이 있을 때 빠른 대응을 하기 위해 관련 인력이 상주하는 공간인데요. 바로 여기서 동십자각 서수상이 발견된 겁니다. 사무실이 있는 공간 한쪽에 원래 자리를 잃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석상들을 모아 놓았는데, 그 안에 서수상도 함께 있었던 겁니다.
창덕궁 미공개지역에 보관된 채 잊혔던 동십자각 서수상. 아랫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자경전 앞 서수상과 비교해보니…
이렇게 극적으로 찾아낸 서수상과 일제강점기 사진을 비교한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창덕궁에 있는 서수상이 동십자각의 것이 맞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사진 말고도 참고자료가 하나 더 있는데요. 동십자각의 반대편, 그러니까 경복궁의 남서쪽 모서리에 동십자각과 짝을 이루는 서십자각(西十字閣)이 있었습니다. 옛 모습으로 살아남은 동십자각과 달리 서십자각은 1923년 일제가 전차 노선을 건설하면서 통째로 뜯어내 없애버렸죠. 당시 서십자각에도 서수상이 있었는데, 이 서수상은 현재 경복궁 자경전 앞에 서 있습니다. 둘은 가로세로 50cm 남짓에 높이 70cm 정도로 크기가 비슷해 좌우 또는 암수 한 쌍을 이뤘던 것으로 보입니다.
경복궁 자경전 앞에 있는 서십자각 서수상
결국, 자경전 앞에 있는 서십자각 서수상은 일제강점기에 헤어졌던 짝을 9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셈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찾은 동십자각 서수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창덕궁까지 오게 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없습니다. 문화재청의 창덕궁 사무실은 1990년대에 설치됐다고 하니 현재 위치에 온 것은 그 무렵으로 볼 수 있겠는데, 그 이전까지 어디를 어떻게 떠돌았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가 없습니다.
내력을 확인할 수 없는 사정은 짝꿍인 자경전 앞 서수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십자각이 철거된 이후 누가, 언제, 자경전 앞으로 옮겨 놓았는지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수상 한 쌍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비슷한 곡절을 겪었으니 우리에겐 서글픈 역사의 한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찾은 서수상은 창덕궁 안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관람구역에 있지 않아서 관람객들이 직접 만나보기는 어렵습니다. 문화재청은 동십자각 서수상의 내력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또, 2023년까지 일제가 훼손한 경복궁 담장을 복원하고 서십자각을 다시 세우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는데, 이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되면 동십자각 서수상도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9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서수상이 제자리를 찾기까지는 그래서 아직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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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독] 일제가 뜯어낸 ‘동십자각 서수상’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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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8-07 18:54:50
- 수정2019-08-07 19:14:28
경복궁 광화문을 지나 동쪽 담장 끝 북촌으로 진입하는 들머리. 차로 한가운데 교통섬처럼 솟아 있는 기와지붕의 건물을 본 적 있으실 겁니다. 동십자각(東十字閣)이라는 이름의 이 건물은 본래 경복궁의 일부였다가 일제강점기에 경복궁 바깥 담장이 헐리면서 지금처럼 어색한 모습으로 남게 됐습니다.
1925년 광화문 뒤편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은 일제는 광화문을 뜯어내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근처로 옮긴 뒤 광화문 양쪽 담장까지 철거해 버립니다. 조선총독부를 가리고 있다는 이유였죠. 이어 1929년에 일제는 경복궁에서 조선 박람회라는 행사를 위해 도로를 확장한다며 서쪽 담장도 상당 부분 헐어냅니다. 경복궁의 남쪽과 동쪽 담장이 만나는 모서리에 있던 동십자각은 이렇게 두 차례에 걸쳐 담장이 끊기면서 섬이 돼버린 것이죠.
뜻밖의 장소에서 찾아낸 '동십자각 서수상'
지금 동십자각은 하단부가 3m가 넘는 벽으로 돼 있어 위로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위 사진을 보면 문루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계단이 시작되는 부분에 동물 모습을 한 조각상이 서 있습니다. 확대한 사진을 보면 얼핏 광화문 해태상과 닮아 보입니다. 민화 속 호랑이를 닮은 얼굴에, 몸에 덮인 비늘이 용을 떠올리게 하는 이 동물은 '상서로운 동물'이라는 뜻의 '서수(瑞獸)'라고 불립니다. 또, 이렇게 상상 속의 동물을 묘사한 조각상을 '서수상'이라 합니다.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서수상과 계단이 언제 철거됐는지 정확한 기록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궁궐 담장이 헐리는 과정에서 함께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화재청의 공식 기록에도 동십자각 서수상은 일제강점기에 분실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서수상이 최근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됐습니다. 문화재청은 조선 궁궐과 종묘의 관리·보수를 위해 창덕궁 안에 현장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긴급한 보수가 필요한 상황이 있을 때 빠른 대응을 하기 위해 관련 인력이 상주하는 공간인데요. 바로 여기서 동십자각 서수상이 발견된 겁니다. 사무실이 있는 공간 한쪽에 원래 자리를 잃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석상들을 모아 놓았는데, 그 안에 서수상도 함께 있었던 겁니다.
자경전 앞 서수상과 비교해보니…
이렇게 극적으로 찾아낸 서수상과 일제강점기 사진을 비교한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창덕궁에 있는 서수상이 동십자각의 것이 맞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사진 말고도 참고자료가 하나 더 있는데요. 동십자각의 반대편, 그러니까 경복궁의 남서쪽 모서리에 동십자각과 짝을 이루는 서십자각(西十字閣)이 있었습니다. 옛 모습으로 살아남은 동십자각과 달리 서십자각은 1923년 일제가 전차 노선을 건설하면서 통째로 뜯어내 없애버렸죠. 당시 서십자각에도 서수상이 있었는데, 이 서수상은 현재 경복궁 자경전 앞에 서 있습니다. 둘은 가로세로 50cm 남짓에 높이 70cm 정도로 크기가 비슷해 좌우 또는 암수 한 쌍을 이뤘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자경전 앞에 있는 서십자각 서수상은 일제강점기에 헤어졌던 짝을 9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셈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찾은 동십자각 서수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창덕궁까지 오게 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없습니다. 문화재청의 창덕궁 사무실은 1990년대에 설치됐다고 하니 현재 위치에 온 것은 그 무렵으로 볼 수 있겠는데, 그 이전까지 어디를 어떻게 떠돌았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가 없습니다.
내력을 확인할 수 없는 사정은 짝꿍인 자경전 앞 서수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십자각이 철거된 이후 누가, 언제, 자경전 앞으로 옮겨 놓았는지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수상 한 쌍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비슷한 곡절을 겪었으니 우리에겐 서글픈 역사의 한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찾은 서수상은 창덕궁 안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관람구역에 있지 않아서 관람객들이 직접 만나보기는 어렵습니다. 문화재청은 동십자각 서수상의 내력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또, 2023년까지 일제가 훼손한 경복궁 담장을 복원하고 서십자각을 다시 세우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는데, 이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되면 동십자각 서수상도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9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서수상이 제자리를 찾기까지는 그래서 아직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1925년 광화문 뒤편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은 일제는 광화문을 뜯어내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근처로 옮긴 뒤 광화문 양쪽 담장까지 철거해 버립니다. 조선총독부를 가리고 있다는 이유였죠. 이어 1929년에 일제는 경복궁에서 조선 박람회라는 행사를 위해 도로를 확장한다며 서쪽 담장도 상당 부분 헐어냅니다. 경복궁의 남쪽과 동쪽 담장이 만나는 모서리에 있던 동십자각은 이렇게 두 차례에 걸쳐 담장이 끊기면서 섬이 돼버린 것이죠.
뜻밖의 장소에서 찾아낸 '동십자각 서수상'
지금 동십자각은 하단부가 3m가 넘는 벽으로 돼 있어 위로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위 사진을 보면 문루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계단이 시작되는 부분에 동물 모습을 한 조각상이 서 있습니다. 확대한 사진을 보면 얼핏 광화문 해태상과 닮아 보입니다. 민화 속 호랑이를 닮은 얼굴에, 몸에 덮인 비늘이 용을 떠올리게 하는 이 동물은 '상서로운 동물'이라는 뜻의 '서수(瑞獸)'라고 불립니다. 또, 이렇게 상상 속의 동물을 묘사한 조각상을 '서수상'이라 합니다.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서수상과 계단이 언제 철거됐는지 정확한 기록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궁궐 담장이 헐리는 과정에서 함께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화재청의 공식 기록에도 동십자각 서수상은 일제강점기에 분실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서수상이 최근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됐습니다. 문화재청은 조선 궁궐과 종묘의 관리·보수를 위해 창덕궁 안에 현장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긴급한 보수가 필요한 상황이 있을 때 빠른 대응을 하기 위해 관련 인력이 상주하는 공간인데요. 바로 여기서 동십자각 서수상이 발견된 겁니다. 사무실이 있는 공간 한쪽에 원래 자리를 잃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석상들을 모아 놓았는데, 그 안에 서수상도 함께 있었던 겁니다.
자경전 앞 서수상과 비교해보니…
이렇게 극적으로 찾아낸 서수상과 일제강점기 사진을 비교한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창덕궁에 있는 서수상이 동십자각의 것이 맞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사진 말고도 참고자료가 하나 더 있는데요. 동십자각의 반대편, 그러니까 경복궁의 남서쪽 모서리에 동십자각과 짝을 이루는 서십자각(西十字閣)이 있었습니다. 옛 모습으로 살아남은 동십자각과 달리 서십자각은 1923년 일제가 전차 노선을 건설하면서 통째로 뜯어내 없애버렸죠. 당시 서십자각에도 서수상이 있었는데, 이 서수상은 현재 경복궁 자경전 앞에 서 있습니다. 둘은 가로세로 50cm 남짓에 높이 70cm 정도로 크기가 비슷해 좌우 또는 암수 한 쌍을 이뤘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자경전 앞에 있는 서십자각 서수상은 일제강점기에 헤어졌던 짝을 9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셈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찾은 동십자각 서수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창덕궁까지 오게 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없습니다. 문화재청의 창덕궁 사무실은 1990년대에 설치됐다고 하니 현재 위치에 온 것은 그 무렵으로 볼 수 있겠는데, 그 이전까지 어디를 어떻게 떠돌았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가 없습니다.
내력을 확인할 수 없는 사정은 짝꿍인 자경전 앞 서수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십자각이 철거된 이후 누가, 언제, 자경전 앞으로 옮겨 놓았는지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수상 한 쌍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비슷한 곡절을 겪었으니 우리에겐 서글픈 역사의 한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찾은 서수상은 창덕궁 안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관람구역에 있지 않아서 관람객들이 직접 만나보기는 어렵습니다. 문화재청은 동십자각 서수상의 내력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또, 2023년까지 일제가 훼손한 경복궁 담장을 복원하고 서십자각을 다시 세우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는데, 이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되면 동십자각 서수상도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9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서수상이 제자리를 찾기까지는 그래서 아직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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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엽 기자 imher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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