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유일 ‘하동 독립선언서’ 재조명 요구
입력 2019.08.16 (07:34)
수정 2019.08.16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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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919년 3.1일 만세운동의 발단이 됐던 '기미 독립선언서'를 기억하실텐데요.
기미 독립선언서를 바탕으로 각지에서 독립선언서가 작성됐지만, 경남 하동의 '독립선언서'가 국내 지방에서 발표된 독립선언서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어 그 가치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세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폐허처럼 변한 허름한 옛집.
1919년, 영호남 주민 천500여 명이 참여한 경남 하동 독립 만세 운동의 주역 박치화 선생의 생가입니다.
당시 하동에서 면장을 하던 박치화 선생 등 12명이 서명한 하동 독립선언서가 발견된 곳입니다.
만주, 하와이, 길림성 등 60종의 독립선언서가 알려져 있지만, 서울을 제외하고 국내의 지방에선 유일하게 하동에서 발견됐다는 게 독립기념관측의 설명입니다.
하동 독립선언서는 이곳 박치화 선생의 생가를 고치는 와중에 벽장 속 천장에서 발견됐습니다.
기미독립선언서 낭독 직후 하동 독립선언서는 경남 지역 만세 운동의 중심이 됐습니다.
남해 지역 만세운동에선 이 선언서가 등사돼 뿌려졌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정재상/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 : " 하동에서 이 독립선언서로 인해서 총 17회의 만세 시위가 있었습니다. 이 영향을 받아서 인근 광양과 남해에서도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제목에 '대한독립선언서'라고 못 박고, '단군 개국'이라는 연호를 썼습니다.
[윤소영/독립기념관 학술연구부장 : " 기미독립선언서는 단순히 '선언서'라고 되어 있는데 아마도 박치화 씨는 조금 더 그 의미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대한독립선언서'라고 제목을 붙였던 거 같습니다."]
기미독립선언서는 지난 2016년 국가문화재로 등록됐지만, 하동 독립선언서는 아직 문화재로 등록되지 못했습니다.
하동군은 하동 독립선언서를 국가문화재로 등록해 줄 것을 요청하고,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12명 가운데 포상을 받지 못한 8명에 대해 서훈을 신청했습니다.
KBS 뉴스 최세진입니다.
1919년 3.1일 만세운동의 발단이 됐던 '기미 독립선언서'를 기억하실텐데요.
기미 독립선언서를 바탕으로 각지에서 독립선언서가 작성됐지만, 경남 하동의 '독립선언서'가 국내 지방에서 발표된 독립선언서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어 그 가치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세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폐허처럼 변한 허름한 옛집.
1919년, 영호남 주민 천500여 명이 참여한 경남 하동 독립 만세 운동의 주역 박치화 선생의 생가입니다.
당시 하동에서 면장을 하던 박치화 선생 등 12명이 서명한 하동 독립선언서가 발견된 곳입니다.
만주, 하와이, 길림성 등 60종의 독립선언서가 알려져 있지만, 서울을 제외하고 국내의 지방에선 유일하게 하동에서 발견됐다는 게 독립기념관측의 설명입니다.
하동 독립선언서는 이곳 박치화 선생의 생가를 고치는 와중에 벽장 속 천장에서 발견됐습니다.
기미독립선언서 낭독 직후 하동 독립선언서는 경남 지역 만세 운동의 중심이 됐습니다.
남해 지역 만세운동에선 이 선언서가 등사돼 뿌려졌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정재상/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 : " 하동에서 이 독립선언서로 인해서 총 17회의 만세 시위가 있었습니다. 이 영향을 받아서 인근 광양과 남해에서도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제목에 '대한독립선언서'라고 못 박고, '단군 개국'이라는 연호를 썼습니다.
[윤소영/독립기념관 학술연구부장 : " 기미독립선언서는 단순히 '선언서'라고 되어 있는데 아마도 박치화 씨는 조금 더 그 의미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대한독립선언서'라고 제목을 붙였던 거 같습니다."]
기미독립선언서는 지난 2016년 국가문화재로 등록됐지만, 하동 독립선언서는 아직 문화재로 등록되지 못했습니다.
하동군은 하동 독립선언서를 국가문화재로 등록해 줄 것을 요청하고,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12명 가운데 포상을 받지 못한 8명에 대해 서훈을 신청했습니다.
KBS 뉴스 최세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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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 유일 ‘하동 독립선언서’ 재조명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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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8-16 07:48:21
- 수정2019-08-16 07:51:51
[앵커]
1919년 3.1일 만세운동의 발단이 됐던 '기미 독립선언서'를 기억하실텐데요.
기미 독립선언서를 바탕으로 각지에서 독립선언서가 작성됐지만, 경남 하동의 '독립선언서'가 국내 지방에서 발표된 독립선언서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어 그 가치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세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폐허처럼 변한 허름한 옛집.
1919년, 영호남 주민 천500여 명이 참여한 경남 하동 독립 만세 운동의 주역 박치화 선생의 생가입니다.
당시 하동에서 면장을 하던 박치화 선생 등 12명이 서명한 하동 독립선언서가 발견된 곳입니다.
만주, 하와이, 길림성 등 60종의 독립선언서가 알려져 있지만, 서울을 제외하고 국내의 지방에선 유일하게 하동에서 발견됐다는 게 독립기념관측의 설명입니다.
하동 독립선언서는 이곳 박치화 선생의 생가를 고치는 와중에 벽장 속 천장에서 발견됐습니다.
기미독립선언서 낭독 직후 하동 독립선언서는 경남 지역 만세 운동의 중심이 됐습니다.
남해 지역 만세운동에선 이 선언서가 등사돼 뿌려졌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정재상/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 : " 하동에서 이 독립선언서로 인해서 총 17회의 만세 시위가 있었습니다. 이 영향을 받아서 인근 광양과 남해에서도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제목에 '대한독립선언서'라고 못 박고, '단군 개국'이라는 연호를 썼습니다.
[윤소영/독립기념관 학술연구부장 : " 기미독립선언서는 단순히 '선언서'라고 되어 있는데 아마도 박치화 씨는 조금 더 그 의미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대한독립선언서'라고 제목을 붙였던 거 같습니다."]
기미독립선언서는 지난 2016년 국가문화재로 등록됐지만, 하동 독립선언서는 아직 문화재로 등록되지 못했습니다.
하동군은 하동 독립선언서를 국가문화재로 등록해 줄 것을 요청하고,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12명 가운데 포상을 받지 못한 8명에 대해 서훈을 신청했습니다.
KBS 뉴스 최세진입니다.
1919년 3.1일 만세운동의 발단이 됐던 '기미 독립선언서'를 기억하실텐데요.
기미 독립선언서를 바탕으로 각지에서 독립선언서가 작성됐지만, 경남 하동의 '독립선언서'가 국내 지방에서 발표된 독립선언서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어 그 가치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세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폐허처럼 변한 허름한 옛집.
1919년, 영호남 주민 천500여 명이 참여한 경남 하동 독립 만세 운동의 주역 박치화 선생의 생가입니다.
당시 하동에서 면장을 하던 박치화 선생 등 12명이 서명한 하동 독립선언서가 발견된 곳입니다.
만주, 하와이, 길림성 등 60종의 독립선언서가 알려져 있지만, 서울을 제외하고 국내의 지방에선 유일하게 하동에서 발견됐다는 게 독립기념관측의 설명입니다.
하동 독립선언서는 이곳 박치화 선생의 생가를 고치는 와중에 벽장 속 천장에서 발견됐습니다.
기미독립선언서 낭독 직후 하동 독립선언서는 경남 지역 만세 운동의 중심이 됐습니다.
남해 지역 만세운동에선 이 선언서가 등사돼 뿌려졌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정재상/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 : " 하동에서 이 독립선언서로 인해서 총 17회의 만세 시위가 있었습니다. 이 영향을 받아서 인근 광양과 남해에서도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제목에 '대한독립선언서'라고 못 박고, '단군 개국'이라는 연호를 썼습니다.
[윤소영/독립기념관 학술연구부장 : " 기미독립선언서는 단순히 '선언서'라고 되어 있는데 아마도 박치화 씨는 조금 더 그 의미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대한독립선언서'라고 제목을 붙였던 거 같습니다."]
기미독립선언서는 지난 2016년 국가문화재로 등록됐지만, 하동 독립선언서는 아직 문화재로 등록되지 못했습니다.
하동군은 하동 독립선언서를 국가문화재로 등록해 줄 것을 요청하고,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12명 가운데 포상을 받지 못한 8명에 대해 서훈을 신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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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진 기자 cejin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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