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냐 결기냐…삭발을 보는 엇갈린 시선

입력 2019.09.17 (08:09) 수정 2019.09.1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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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야당 정치인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항의하며 삭발 릴레이에 나서고 있습니다.

먼저 추석 연휴 목전에 여성 국회의원 두 명이 잇따라 삭발을 단행했습니다.

지난 10일 이언주 무소속 의원이 국회 앞에서 조국 임명 철회를 외치며 삭발한 데 이어 다음날인 11일에는 박인숙 한국당 의원이 이 의원보다 더 짧게, 파르라니 머리를 깎았습니다.

여성 의원의 삭발은, 2013년 11월 당시 통합진보당 소속 김재연, 김미희 의원이 정당 해산 심판 청구에 반발해 집단 삭발을 단행한 지 6년 만이자, 헌정 사상 두 번째입니다.

[이언주/무소속 의원 : "대한민국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박인숙/자유한국당 의원 : "도덕성마저 무참히 무너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며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급기야 어제는 제1야당 대표가 청와대 앞에서 조 장관 파면을 촉구하며 삭발을 감행했습니다.

이슈가 가라앉을 것을 우려해 당 대표가 머리를 깎으며 소위 '전투 태세'에 돌입한 것입니다.

[황교안/자유한국당 대표 : "문재인 대통령과 이 정권에 항거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의 뜻과 의지를 삭발로 다짐하고자 왔습니다."]

전통적으로 노동계에서 투쟁 의지를 다지며 치러 왔던 삭발식은 정치권에서는 단식·장외투쟁과 함께 사용하는 최후의 수단에 가깝습니다.

여론을 환기하고 지지층을 결집함으로써 여당에 맞서는 효과를 노립니다.

삭발은 단식처럼 건강에 해롭진 않지만 시각적으로 강렬한 효과를 주는 이점이 있습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 머리카락까지 부모에게 받은 것이니 소중히 여기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유교적 가치관이 한국인 뇌리에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도 대한민국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삭발은, 자신의 결연함을 외부에 알리는 효과적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의원들의 삭발 투쟁이 각종 포털 실시간 검색어 상단에 오른 걸 보면 여론의 관심을 끈 건 분명해, '정치인은 자신의 부고(訃告)빼고는 다 좋아한다'는 첫 목표는 이룬 듯해 보입니다.

한국 정치권의 첫 삭발은 무려 32년 전으로 거슬러 갑니다.

1987년 박찬종 전 의원이 당시 김영삼·김대중 양김의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며 삭발에 나선 게 첫 사례입니다.

70, 80년대 정치인들은 삭발보다는 보다 많은 인원과 함께 할 수 있는 '장외 투쟁'을 선호했고, 장외 투쟁이 막힐 경우 목숨을 건 '단식'으로 투쟁 수위를 높였습니다.

198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23일간 단식이 대표적 예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도 단식 역사가 있습니다.

그에 반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제1 야당 대표로서 첫 삭발이란 선례를 남겼습니다.

이렇게 삭발은 저항을 표현하는 정치적 행동이지만 삭발을 둘러싼 정치권 분위기는 엇갈립니다.

자유한국당은 의원들의 삭발 투쟁이 결연한 저항의 표시라는 입장인데요.

특히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 이언주 의원을 향해 “아름다운 삭발” “야당 의원들은 이 의원의 결기 반만 닮으라"며 한껏 치켜세웠었죠.

황교안 대표에 대해서도 "수고했다 결기를 계속 보여 달라"고 독려했습니다.

반면, 민주당에서는 정치적 무능력을 면피하려는 정치쇼라는 비난이 나왔고요.

정의당은 "약자 코스프레가 가소롭다 머리 깎은 김에 군 입대 선언을 하라"는 논평을 내놨습니다.

[이재정/민주당 대변인 : "삭발로 분열과 혼란을 일으킬 게 아니라 민생과 경제를 챙겨야 할 시점입니다."]

특히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대안정치연대 박지원 의원은 “국회의원이 하지 말아야 할 3대 쇼" 중 하나로 단식, 의원직 사퇴와 함께 삭발을 꼽았는데요.

“머리는 자라고, 굶어죽은 의원 없고 의원직 내던진 사람 없다"고 일갈했습니다.

정치 전문가들은 삭발은 명분과 타이밍이 맞아 떨어져야 위력을 발휘한다고 말합니다.

의원들의 삭발 타이밍이 적절한지, 얻는 것이 더 많을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지만 정부와 여당이 답을 주지 않는 한 의원들의 투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친절한 뉴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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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냐 결기냐…삭발을 보는 엇갈린 시선
    • 입력 2019-09-17 08:14:25
    • 수정2019-09-17 14:4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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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야당 정치인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항의하며 삭발 릴레이에 나서고 있습니다.

먼저 추석 연휴 목전에 여성 국회의원 두 명이 잇따라 삭발을 단행했습니다.

지난 10일 이언주 무소속 의원이 국회 앞에서 조국 임명 철회를 외치며 삭발한 데 이어 다음날인 11일에는 박인숙 한국당 의원이 이 의원보다 더 짧게, 파르라니 머리를 깎았습니다.

여성 의원의 삭발은, 2013년 11월 당시 통합진보당 소속 김재연, 김미희 의원이 정당 해산 심판 청구에 반발해 집단 삭발을 단행한 지 6년 만이자, 헌정 사상 두 번째입니다.

[이언주/무소속 의원 : "대한민국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박인숙/자유한국당 의원 : "도덕성마저 무참히 무너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며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급기야 어제는 제1야당 대표가 청와대 앞에서 조 장관 파면을 촉구하며 삭발을 감행했습니다.

이슈가 가라앉을 것을 우려해 당 대표가 머리를 깎으며 소위 '전투 태세'에 돌입한 것입니다.

[황교안/자유한국당 대표 : "문재인 대통령과 이 정권에 항거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의 뜻과 의지를 삭발로 다짐하고자 왔습니다."]

전통적으로 노동계에서 투쟁 의지를 다지며 치러 왔던 삭발식은 정치권에서는 단식·장외투쟁과 함께 사용하는 최후의 수단에 가깝습니다.

여론을 환기하고 지지층을 결집함으로써 여당에 맞서는 효과를 노립니다.

삭발은 단식처럼 건강에 해롭진 않지만 시각적으로 강렬한 효과를 주는 이점이 있습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 머리카락까지 부모에게 받은 것이니 소중히 여기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유교적 가치관이 한국인 뇌리에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도 대한민국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삭발은, 자신의 결연함을 외부에 알리는 효과적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의원들의 삭발 투쟁이 각종 포털 실시간 검색어 상단에 오른 걸 보면 여론의 관심을 끈 건 분명해, '정치인은 자신의 부고(訃告)빼고는 다 좋아한다'는 첫 목표는 이룬 듯해 보입니다.

한국 정치권의 첫 삭발은 무려 32년 전으로 거슬러 갑니다.

1987년 박찬종 전 의원이 당시 김영삼·김대중 양김의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며 삭발에 나선 게 첫 사례입니다.

70, 80년대 정치인들은 삭발보다는 보다 많은 인원과 함께 할 수 있는 '장외 투쟁'을 선호했고, 장외 투쟁이 막힐 경우 목숨을 건 '단식'으로 투쟁 수위를 높였습니다.

198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23일간 단식이 대표적 예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도 단식 역사가 있습니다.

그에 반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제1 야당 대표로서 첫 삭발이란 선례를 남겼습니다.

이렇게 삭발은 저항을 표현하는 정치적 행동이지만 삭발을 둘러싼 정치권 분위기는 엇갈립니다.

자유한국당은 의원들의 삭발 투쟁이 결연한 저항의 표시라는 입장인데요.

특히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 이언주 의원을 향해 “아름다운 삭발” “야당 의원들은 이 의원의 결기 반만 닮으라"며 한껏 치켜세웠었죠.

황교안 대표에 대해서도 "수고했다 결기를 계속 보여 달라"고 독려했습니다.

반면, 민주당에서는 정치적 무능력을 면피하려는 정치쇼라는 비난이 나왔고요.

정의당은 "약자 코스프레가 가소롭다 머리 깎은 김에 군 입대 선언을 하라"는 논평을 내놨습니다.

[이재정/민주당 대변인 : "삭발로 분열과 혼란을 일으킬 게 아니라 민생과 경제를 챙겨야 할 시점입니다."]

특히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대안정치연대 박지원 의원은 “국회의원이 하지 말아야 할 3대 쇼" 중 하나로 단식, 의원직 사퇴와 함께 삭발을 꼽았는데요.

“머리는 자라고, 굶어죽은 의원 없고 의원직 내던진 사람 없다"고 일갈했습니다.

정치 전문가들은 삭발은 명분과 타이밍이 맞아 떨어져야 위력을 발휘한다고 말합니다.

의원들의 삭발 타이밍이 적절한지, 얻는 것이 더 많을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지만 정부와 여당이 답을 주지 않는 한 의원들의 투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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