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폭 숨긴 업체, 방치한 정부”…힘겨운 싸움 시작

입력 2019.09.24 (08:49) 수정 2019.09.24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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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피폭 피해를 입은 베트남 기능실습생들은 후쿠시마 사고 원전 인근 마을에서 길게는 2년 동안 일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들을 고용한 건설업체는 사과와 보상을 거부했고, 정부 역시 문제를 알면서도 방관해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최유경 기자가 일본으로 가 이 베트남 기능실습생들이 일한 곳을 찾아가봤습니다.

[리포트]

제가 서 있는 이곳은 후쿠시마 사고 원전으로부터 10km 떨어진 나미에 마을입니다.

앞서 보신 베트남 기능실습생들이 피폭될 당시 일했던 곳인데요.

지금 제 뒤로는 보시는 것처럼 제염작업을 마친 흙이 쌓여 있습니다.

마을 곳곳에서는 지금도 방사능 수치가 기준치의 6배 넘게 치솟습니다.

이 곳에서 외국인 실습생들은 지난해까지 길게는 2년 동안 별다른 안전 조치나 장구도 없이 일했습니다.

방사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겁니다.

이들을 고용한 건설사를 찾아갔습니다.

곳곳에 철근이 쌓여있고 산업 기계를 제작한다는 설명이 적혀 있는데, 제염 작업에 대해 묻자 대답을 피합니다.

[OOO 건설회사 관계자 : "(원래 제염작업을 하는 회사인가요? (간판에) 건설기계 설계라고 적혀 있는데 회사 내용이 좀 다르네요.) 죄송해요. 일이 있어서 들어갈게요."]

회사 측은 실습생들의 피폭량을 조사하고도 당사자들에게 이를 숨겼습니다.

실습생들 스스로 뒤늦게 피폭 사실을 밝혀낸 겁니다.

하지만 회사는 사과도, 보상도 끝내 하지 않았습니다.

피폭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가액은 1,230만 엔, 우리 돈 1억 3천여만 원.

[나카무라 유스케/외국인노동자변호단 : "제염작업이 기능실습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명백하고요. 작업 과정에서 그들의 안전을 철저하게 지킬 수 없고 그런 노동 환경도 전혀 아니죠."]

기능실습생 제도를 안이하게 운영해 온 일본 정부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외국인 실습생들이 방사능 제염과 같은 고위험 작업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염 작업자를 구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외면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사사키 시로/전통일노조 서기장 : "이 제도는 기능실습이라는 허울 아래 실제로는 저임금 노동을 매매하는 제도입니다. 일본 사회가 그런 상황을 고의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똑똑히 직시해야 합니다."]

개발도상국에 기술을 이전해 국제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일본의 기능실습생 제도.

하지만 자국인이 꺼려하는 위험한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에 아시아 노동자를 투입해 위험을 외주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KBS 뉴스 최유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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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폭 숨긴 업체, 방치한 정부”…힘겨운 싸움 시작
    • 입력 2019-09-24 08:52:52
    • 수정2019-09-24 08:5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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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피폭 피해를 입은 베트남 기능실습생들은 후쿠시마 사고 원전 인근 마을에서 길게는 2년 동안 일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들을 고용한 건설업체는 사과와 보상을 거부했고, 정부 역시 문제를 알면서도 방관해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최유경 기자가 일본으로 가 이 베트남 기능실습생들이 일한 곳을 찾아가봤습니다.

[리포트]

제가 서 있는 이곳은 후쿠시마 사고 원전으로부터 10km 떨어진 나미에 마을입니다.

앞서 보신 베트남 기능실습생들이 피폭될 당시 일했던 곳인데요.

지금 제 뒤로는 보시는 것처럼 제염작업을 마친 흙이 쌓여 있습니다.

마을 곳곳에서는 지금도 방사능 수치가 기준치의 6배 넘게 치솟습니다.

이 곳에서 외국인 실습생들은 지난해까지 길게는 2년 동안 별다른 안전 조치나 장구도 없이 일했습니다.

방사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겁니다.

이들을 고용한 건설사를 찾아갔습니다.

곳곳에 철근이 쌓여있고 산업 기계를 제작한다는 설명이 적혀 있는데, 제염 작업에 대해 묻자 대답을 피합니다.

[OOO 건설회사 관계자 : "(원래 제염작업을 하는 회사인가요? (간판에) 건설기계 설계라고 적혀 있는데 회사 내용이 좀 다르네요.) 죄송해요. 일이 있어서 들어갈게요."]

회사 측은 실습생들의 피폭량을 조사하고도 당사자들에게 이를 숨겼습니다.

실습생들 스스로 뒤늦게 피폭 사실을 밝혀낸 겁니다.

하지만 회사는 사과도, 보상도 끝내 하지 않았습니다.

피폭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가액은 1,230만 엔, 우리 돈 1억 3천여만 원.

[나카무라 유스케/외국인노동자변호단 : "제염작업이 기능실습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명백하고요. 작업 과정에서 그들의 안전을 철저하게 지킬 수 없고 그런 노동 환경도 전혀 아니죠."]

기능실습생 제도를 안이하게 운영해 온 일본 정부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외국인 실습생들이 방사능 제염과 같은 고위험 작업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염 작업자를 구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외면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사사키 시로/전통일노조 서기장 : "이 제도는 기능실습이라는 허울 아래 실제로는 저임금 노동을 매매하는 제도입니다. 일본 사회가 그런 상황을 고의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똑똑히 직시해야 합니다."]

개발도상국에 기술을 이전해 국제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일본의 기능실습생 제도.

하지만 자국인이 꺼려하는 위험한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에 아시아 노동자를 투입해 위험을 외주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KBS 뉴스 최유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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