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88올림픽 탁구 영웅…‘전설’의 꿈은 계속된다
입력 2019.09.27 (08:24)
수정 2019.09.2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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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올해로 88 서울올림픽이 열린 지 31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면, 31년 전 9월 30일에는 무슨 경기가 열린지 아시나요?
온 국민은 TV 앞에서 숨죽이고 한 탁구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여자 복식 결승전, 상대는 오랜 라이벌 중국이었습니다.
당시 드라마를 썼던 영광의 주인공은 과연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요?
지금부터 만나 보시죠.
[리포트]
서울의 한 프로 탁구단 연습실, 안정적인 자세와 날카로운 눈빛, 화려한 탁구 실력을 가진 선수의 연습이 한창인데요.
국가대표 이은혜 선수입니다.
한국 여자탁구 사상 처음으로 유니버시아드대회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은혜 선수.
[이은혜/탁구 국가대표 : "저가 스피드 더 많이 나가는 것 같고 좀 무게감 조금 더 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말이 조금 서툽니다.
[이은혜/탁구 국가대표 : "저 2010년에 귀화했어요. 탁구도 잘하고 싶고 더 큰 무대에서 꿈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마음의 결심했어요."]
8살에 탁구를 시작해 중국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이은혜 선수는 17살에 한국으로 귀화했는데요.
그런데, 그녀와 탁구를 하는 사람의 얼굴이 낯이 익습니다.
88올림픽, 탁구 영웅이자 금메달리스트인 양영자 선수입니다.
[88올림픽 탁구 여자 복식 결승전 중계 中 : "잘 막았습니다. 백핸드! 양영자 성공! 18대 7!"]
탁구 강호였던 중국을 압도하며 경기를 이끌어 간 양영자와 현정화.
마침내, 1점을 남기고 중국 선수가 쳐낸 공이 탁구대를 넘어갑니다.
[88올림픽 탁구 여자 복식 결승전 중계 中 : "그대로 넘어갑니다. 21대 10! 이겼습니다. 우리나라 양영자 현정화 선수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1988년 당시 : "우승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고 감격스러워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격려해 주고 응원해 주고 또 기대해 주신 덕분에 참 감사의 뜻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돌연 6개월도 지나지 않아 선수 은퇴 선언을 하고 사라진 양영자 선수.
30년 뒤, 여긴 무슨 일일까요?
[양영자/감독/전 탁구 국가대표 : "올림픽 이후에 지도자 생활 좀 하다가 결혼을 하고 몽골에 갔거든요. 가족이 같이. 몽골에 가서 몽골 사람들 또 선수들, 어린아이들 탁구 가르치고 이러면서 좀 지내다가요."]
선교사이던 남편을 따라 몽골에 갔던 양영자 선수.그곳에서 아이들에게 탁구를 가르쳤다는데요. 그러던 중, 두 아이가 유독 눈에 들어옵니다.
[양영자/감독/전 탁구 국가대표 : "네이멍구에서 여자 중에서는 은혜, 시은이가 제일 잘했었어요. 어떤 때는 재정이 넉넉하지 않아서 중국 안에서 하는 시합조차 가끔 참석하지 못하고, 실력은 있는데. 그런 모습들 보면서 좀 도와 주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발동됐던 것 같아요."]
아이들을 데리고 와 탁구를 가르치며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양영자 감독, 두 아이는 한국에서 탁구 선수로 자랐고, 귀화까지 하게 된 겁니다.
오늘도 응원과 격려를 위해 이은혜 선수를 찾았습니다.
[양영자/감독/전 탁구 국가대표 : "시합했을 때 허리 때문에 힘들었어?"]
[이은혜/탁구 국가대표 : "조금 아픈데요. 큰 영향 안 받았어요. 시합 갔다 와서도 치료하면 금방 좋아질 것 같아요."]
이은혜 선수에게 양영자 감독은 엄마 같은 존재라고 합니다.
[이은혜/탁구 국가대표 : "저 혼자 한국에 있다 보면 외로운 점도 힘든 일도 많이 있는데요. 그때마다 감독님 항상 저를 첫 번째 도와 주는 사람이고, 저한테 엄마 같기도 하고, 또 탁구를 도와준 선생님이고, 또 제가 인생 방향 잘 몰랐을 때도 방향 잡아 주는 선생님이었어요."]
은퇴 후에도 탁구채를 놓지 않았던 양영자 감독, 다방면에서 탁구를 국민스포츠로 만들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는데요.
경기도 하남시에서 시민들을 위한 탁구 교실을 운영 중입니다.
탁구채를 잡고 있는 중장년 어르신들에게 양영자 감독은 어떤 존재일까요?
[조성희/경기도 하남시 : "굉장한 선수였죠. 경이로웠죠. 한 마디로."]
[김교환/경기도 하남시 : "정말 미녀 선수였죠. 그때 뭐 난리 났었죠. 전설이었죠. 우리의 우상이라고 해야 되나 그 정도였죠. 그때."]
이곳에서 함께 일하는 이시은 코치도 중국 네이멍구에서 양영자 감독을 따라 한국으로 왔습니다.
탁구 선수 생활을 하다, 현재는 지도자로 활동 중인데요.
이 코치에게도 양영자 감독은 은인입니다.
[이시은/탁구 코치 : "심리적으로 좀 많이 도와 주셨어요. 처음에 왔을 때 너무 문화 차이 있기 때문에 좀 힘들었어요. 그래서 저 보고 좀 힘내고 더 버티고 앞으로 더 좋은 성적 낼 수 있다고 해 주면서 그런 쪽에서 많이 도와 줬어요."]
양영자 감독은 전국의 초등학교를 돌며, 어린 탁구 꿈나무들도 지도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가대표 선수 대부분이 양영자 감독을 거쳐 갔다고 하는데요.
후배들을 키워 내는 일, 1988년, 국민들이 보내 주신 성원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양영자/감독/전 탁구 국가대표 : "지금은 이제 청소년 꿈나무 감독을 한국에서는 하고 있는데요. 88년 올림픽에서 잘할 수 있었던 것도 얼마나 많은 국민들의 응원이 있었어요. 탁구를 통해서 또 후배들이나 어린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건 그때에 대한 보답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는 시간들로 지내고 있어서 저로서는 감사해요."]
화려한 선수로 세계 무대를 누비고 탁구의 전설로 남은 양영자 선수, 지도자로서 그 전설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해로 88 서울올림픽이 열린 지 31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면, 31년 전 9월 30일에는 무슨 경기가 열린지 아시나요?
온 국민은 TV 앞에서 숨죽이고 한 탁구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여자 복식 결승전, 상대는 오랜 라이벌 중국이었습니다.
당시 드라마를 썼던 영광의 주인공은 과연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요?
지금부터 만나 보시죠.
[리포트]
서울의 한 프로 탁구단 연습실, 안정적인 자세와 날카로운 눈빛, 화려한 탁구 실력을 가진 선수의 연습이 한창인데요.
국가대표 이은혜 선수입니다.
한국 여자탁구 사상 처음으로 유니버시아드대회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은혜 선수.
[이은혜/탁구 국가대표 : "저가 스피드 더 많이 나가는 것 같고 좀 무게감 조금 더 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말이 조금 서툽니다.
[이은혜/탁구 국가대표 : "저 2010년에 귀화했어요. 탁구도 잘하고 싶고 더 큰 무대에서 꿈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마음의 결심했어요."]
8살에 탁구를 시작해 중국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이은혜 선수는 17살에 한국으로 귀화했는데요.
그런데, 그녀와 탁구를 하는 사람의 얼굴이 낯이 익습니다.
88올림픽, 탁구 영웅이자 금메달리스트인 양영자 선수입니다.
[88올림픽 탁구 여자 복식 결승전 중계 中 : "잘 막았습니다. 백핸드! 양영자 성공! 18대 7!"]
탁구 강호였던 중국을 압도하며 경기를 이끌어 간 양영자와 현정화.
마침내, 1점을 남기고 중국 선수가 쳐낸 공이 탁구대를 넘어갑니다.
[88올림픽 탁구 여자 복식 결승전 중계 中 : "그대로 넘어갑니다. 21대 10! 이겼습니다. 우리나라 양영자 현정화 선수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1988년 당시 : "우승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고 감격스러워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격려해 주고 응원해 주고 또 기대해 주신 덕분에 참 감사의 뜻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돌연 6개월도 지나지 않아 선수 은퇴 선언을 하고 사라진 양영자 선수.
30년 뒤, 여긴 무슨 일일까요?
[양영자/감독/전 탁구 국가대표 : "올림픽 이후에 지도자 생활 좀 하다가 결혼을 하고 몽골에 갔거든요. 가족이 같이. 몽골에 가서 몽골 사람들 또 선수들, 어린아이들 탁구 가르치고 이러면서 좀 지내다가요."]
선교사이던 남편을 따라 몽골에 갔던 양영자 선수.그곳에서 아이들에게 탁구를 가르쳤다는데요. 그러던 중, 두 아이가 유독 눈에 들어옵니다.
[양영자/감독/전 탁구 국가대표 : "네이멍구에서 여자 중에서는 은혜, 시은이가 제일 잘했었어요. 어떤 때는 재정이 넉넉하지 않아서 중국 안에서 하는 시합조차 가끔 참석하지 못하고, 실력은 있는데. 그런 모습들 보면서 좀 도와 주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발동됐던 것 같아요."]
아이들을 데리고 와 탁구를 가르치며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양영자 감독, 두 아이는 한국에서 탁구 선수로 자랐고, 귀화까지 하게 된 겁니다.
오늘도 응원과 격려를 위해 이은혜 선수를 찾았습니다.
[양영자/감독/전 탁구 국가대표 : "시합했을 때 허리 때문에 힘들었어?"]
[이은혜/탁구 국가대표 : "조금 아픈데요. 큰 영향 안 받았어요. 시합 갔다 와서도 치료하면 금방 좋아질 것 같아요."]
이은혜 선수에게 양영자 감독은 엄마 같은 존재라고 합니다.
[이은혜/탁구 국가대표 : "저 혼자 한국에 있다 보면 외로운 점도 힘든 일도 많이 있는데요. 그때마다 감독님 항상 저를 첫 번째 도와 주는 사람이고, 저한테 엄마 같기도 하고, 또 탁구를 도와준 선생님이고, 또 제가 인생 방향 잘 몰랐을 때도 방향 잡아 주는 선생님이었어요."]
은퇴 후에도 탁구채를 놓지 않았던 양영자 감독, 다방면에서 탁구를 국민스포츠로 만들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는데요.
경기도 하남시에서 시민들을 위한 탁구 교실을 운영 중입니다.
탁구채를 잡고 있는 중장년 어르신들에게 양영자 감독은 어떤 존재일까요?
[조성희/경기도 하남시 : "굉장한 선수였죠. 경이로웠죠. 한 마디로."]
[김교환/경기도 하남시 : "정말 미녀 선수였죠. 그때 뭐 난리 났었죠. 전설이었죠. 우리의 우상이라고 해야 되나 그 정도였죠. 그때."]
이곳에서 함께 일하는 이시은 코치도 중국 네이멍구에서 양영자 감독을 따라 한국으로 왔습니다.
탁구 선수 생활을 하다, 현재는 지도자로 활동 중인데요.
이 코치에게도 양영자 감독은 은인입니다.
[이시은/탁구 코치 : "심리적으로 좀 많이 도와 주셨어요. 처음에 왔을 때 너무 문화 차이 있기 때문에 좀 힘들었어요. 그래서 저 보고 좀 힘내고 더 버티고 앞으로 더 좋은 성적 낼 수 있다고 해 주면서 그런 쪽에서 많이 도와 줬어요."]
양영자 감독은 전국의 초등학교를 돌며, 어린 탁구 꿈나무들도 지도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가대표 선수 대부분이 양영자 감독을 거쳐 갔다고 하는데요.
후배들을 키워 내는 일, 1988년, 국민들이 보내 주신 성원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양영자/감독/전 탁구 국가대표 : "지금은 이제 청소년 꿈나무 감독을 한국에서는 하고 있는데요. 88년 올림픽에서 잘할 수 있었던 것도 얼마나 많은 국민들의 응원이 있었어요. 탁구를 통해서 또 후배들이나 어린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건 그때에 대한 보답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는 시간들로 지내고 있어서 저로서는 감사해요."]
화려한 선수로 세계 무대를 누비고 탁구의 전설로 남은 양영자 선수, 지도자로서 그 전설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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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9-27 08:26:21
- 수정2019-09-27 11:27:21
[기자]
올해로 88 서울올림픽이 열린 지 31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면, 31년 전 9월 30일에는 무슨 경기가 열린지 아시나요?
온 국민은 TV 앞에서 숨죽이고 한 탁구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여자 복식 결승전, 상대는 오랜 라이벌 중국이었습니다.
당시 드라마를 썼던 영광의 주인공은 과연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요?
지금부터 만나 보시죠.
[리포트]
서울의 한 프로 탁구단 연습실, 안정적인 자세와 날카로운 눈빛, 화려한 탁구 실력을 가진 선수의 연습이 한창인데요.
국가대표 이은혜 선수입니다.
한국 여자탁구 사상 처음으로 유니버시아드대회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은혜 선수.
[이은혜/탁구 국가대표 : "저가 스피드 더 많이 나가는 것 같고 좀 무게감 조금 더 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말이 조금 서툽니다.
[이은혜/탁구 국가대표 : "저 2010년에 귀화했어요. 탁구도 잘하고 싶고 더 큰 무대에서 꿈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마음의 결심했어요."]
8살에 탁구를 시작해 중국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이은혜 선수는 17살에 한국으로 귀화했는데요.
그런데, 그녀와 탁구를 하는 사람의 얼굴이 낯이 익습니다.
88올림픽, 탁구 영웅이자 금메달리스트인 양영자 선수입니다.
[88올림픽 탁구 여자 복식 결승전 중계 中 : "잘 막았습니다. 백핸드! 양영자 성공! 18대 7!"]
탁구 강호였던 중국을 압도하며 경기를 이끌어 간 양영자와 현정화.
마침내, 1점을 남기고 중국 선수가 쳐낸 공이 탁구대를 넘어갑니다.
[88올림픽 탁구 여자 복식 결승전 중계 中 : "그대로 넘어갑니다. 21대 10! 이겼습니다. 우리나라 양영자 현정화 선수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1988년 당시 : "우승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고 감격스러워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격려해 주고 응원해 주고 또 기대해 주신 덕분에 참 감사의 뜻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돌연 6개월도 지나지 않아 선수 은퇴 선언을 하고 사라진 양영자 선수.
30년 뒤, 여긴 무슨 일일까요?
[양영자/감독/전 탁구 국가대표 : "올림픽 이후에 지도자 생활 좀 하다가 결혼을 하고 몽골에 갔거든요. 가족이 같이. 몽골에 가서 몽골 사람들 또 선수들, 어린아이들 탁구 가르치고 이러면서 좀 지내다가요."]
선교사이던 남편을 따라 몽골에 갔던 양영자 선수.그곳에서 아이들에게 탁구를 가르쳤다는데요. 그러던 중, 두 아이가 유독 눈에 들어옵니다.
[양영자/감독/전 탁구 국가대표 : "네이멍구에서 여자 중에서는 은혜, 시은이가 제일 잘했었어요. 어떤 때는 재정이 넉넉하지 않아서 중국 안에서 하는 시합조차 가끔 참석하지 못하고, 실력은 있는데. 그런 모습들 보면서 좀 도와 주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발동됐던 것 같아요."]
아이들을 데리고 와 탁구를 가르치며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양영자 감독, 두 아이는 한국에서 탁구 선수로 자랐고, 귀화까지 하게 된 겁니다.
오늘도 응원과 격려를 위해 이은혜 선수를 찾았습니다.
[양영자/감독/전 탁구 국가대표 : "시합했을 때 허리 때문에 힘들었어?"]
[이은혜/탁구 국가대표 : "조금 아픈데요. 큰 영향 안 받았어요. 시합 갔다 와서도 치료하면 금방 좋아질 것 같아요."]
이은혜 선수에게 양영자 감독은 엄마 같은 존재라고 합니다.
[이은혜/탁구 국가대표 : "저 혼자 한국에 있다 보면 외로운 점도 힘든 일도 많이 있는데요. 그때마다 감독님 항상 저를 첫 번째 도와 주는 사람이고, 저한테 엄마 같기도 하고, 또 탁구를 도와준 선생님이고, 또 제가 인생 방향 잘 몰랐을 때도 방향 잡아 주는 선생님이었어요."]
은퇴 후에도 탁구채를 놓지 않았던 양영자 감독, 다방면에서 탁구를 국민스포츠로 만들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는데요.
경기도 하남시에서 시민들을 위한 탁구 교실을 운영 중입니다.
탁구채를 잡고 있는 중장년 어르신들에게 양영자 감독은 어떤 존재일까요?
[조성희/경기도 하남시 : "굉장한 선수였죠. 경이로웠죠. 한 마디로."]
[김교환/경기도 하남시 : "정말 미녀 선수였죠. 그때 뭐 난리 났었죠. 전설이었죠. 우리의 우상이라고 해야 되나 그 정도였죠. 그때."]
이곳에서 함께 일하는 이시은 코치도 중국 네이멍구에서 양영자 감독을 따라 한국으로 왔습니다.
탁구 선수 생활을 하다, 현재는 지도자로 활동 중인데요.
이 코치에게도 양영자 감독은 은인입니다.
[이시은/탁구 코치 : "심리적으로 좀 많이 도와 주셨어요. 처음에 왔을 때 너무 문화 차이 있기 때문에 좀 힘들었어요. 그래서 저 보고 좀 힘내고 더 버티고 앞으로 더 좋은 성적 낼 수 있다고 해 주면서 그런 쪽에서 많이 도와 줬어요."]
양영자 감독은 전국의 초등학교를 돌며, 어린 탁구 꿈나무들도 지도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가대표 선수 대부분이 양영자 감독을 거쳐 갔다고 하는데요.
후배들을 키워 내는 일, 1988년, 국민들이 보내 주신 성원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양영자/감독/전 탁구 국가대표 : "지금은 이제 청소년 꿈나무 감독을 한국에서는 하고 있는데요. 88년 올림픽에서 잘할 수 있었던 것도 얼마나 많은 국민들의 응원이 있었어요. 탁구를 통해서 또 후배들이나 어린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건 그때에 대한 보답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는 시간들로 지내고 있어서 저로서는 감사해요."]
화려한 선수로 세계 무대를 누비고 탁구의 전설로 남은 양영자 선수, 지도자로서 그 전설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해로 88 서울올림픽이 열린 지 31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면, 31년 전 9월 30일에는 무슨 경기가 열린지 아시나요?
온 국민은 TV 앞에서 숨죽이고 한 탁구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여자 복식 결승전, 상대는 오랜 라이벌 중국이었습니다.
당시 드라마를 썼던 영광의 주인공은 과연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요?
지금부터 만나 보시죠.
[리포트]
서울의 한 프로 탁구단 연습실, 안정적인 자세와 날카로운 눈빛, 화려한 탁구 실력을 가진 선수의 연습이 한창인데요.
국가대표 이은혜 선수입니다.
한국 여자탁구 사상 처음으로 유니버시아드대회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은혜 선수.
[이은혜/탁구 국가대표 : "저가 스피드 더 많이 나가는 것 같고 좀 무게감 조금 더 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말이 조금 서툽니다.
[이은혜/탁구 국가대표 : "저 2010년에 귀화했어요. 탁구도 잘하고 싶고 더 큰 무대에서 꿈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마음의 결심했어요."]
8살에 탁구를 시작해 중국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이은혜 선수는 17살에 한국으로 귀화했는데요.
그런데, 그녀와 탁구를 하는 사람의 얼굴이 낯이 익습니다.
88올림픽, 탁구 영웅이자 금메달리스트인 양영자 선수입니다.
[88올림픽 탁구 여자 복식 결승전 중계 中 : "잘 막았습니다. 백핸드! 양영자 성공! 18대 7!"]
탁구 강호였던 중국을 압도하며 경기를 이끌어 간 양영자와 현정화.
마침내, 1점을 남기고 중국 선수가 쳐낸 공이 탁구대를 넘어갑니다.
[88올림픽 탁구 여자 복식 결승전 중계 中 : "그대로 넘어갑니다. 21대 10! 이겼습니다. 우리나라 양영자 현정화 선수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1988년 당시 : "우승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고 감격스러워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격려해 주고 응원해 주고 또 기대해 주신 덕분에 참 감사의 뜻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돌연 6개월도 지나지 않아 선수 은퇴 선언을 하고 사라진 양영자 선수.
30년 뒤, 여긴 무슨 일일까요?
[양영자/감독/전 탁구 국가대표 : "올림픽 이후에 지도자 생활 좀 하다가 결혼을 하고 몽골에 갔거든요. 가족이 같이. 몽골에 가서 몽골 사람들 또 선수들, 어린아이들 탁구 가르치고 이러면서 좀 지내다가요."]
선교사이던 남편을 따라 몽골에 갔던 양영자 선수.그곳에서 아이들에게 탁구를 가르쳤다는데요. 그러던 중, 두 아이가 유독 눈에 들어옵니다.
[양영자/감독/전 탁구 국가대표 : "네이멍구에서 여자 중에서는 은혜, 시은이가 제일 잘했었어요. 어떤 때는 재정이 넉넉하지 않아서 중국 안에서 하는 시합조차 가끔 참석하지 못하고, 실력은 있는데. 그런 모습들 보면서 좀 도와 주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발동됐던 것 같아요."]
아이들을 데리고 와 탁구를 가르치며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양영자 감독, 두 아이는 한국에서 탁구 선수로 자랐고, 귀화까지 하게 된 겁니다.
오늘도 응원과 격려를 위해 이은혜 선수를 찾았습니다.
[양영자/감독/전 탁구 국가대표 : "시합했을 때 허리 때문에 힘들었어?"]
[이은혜/탁구 국가대표 : "조금 아픈데요. 큰 영향 안 받았어요. 시합 갔다 와서도 치료하면 금방 좋아질 것 같아요."]
이은혜 선수에게 양영자 감독은 엄마 같은 존재라고 합니다.
[이은혜/탁구 국가대표 : "저 혼자 한국에 있다 보면 외로운 점도 힘든 일도 많이 있는데요. 그때마다 감독님 항상 저를 첫 번째 도와 주는 사람이고, 저한테 엄마 같기도 하고, 또 탁구를 도와준 선생님이고, 또 제가 인생 방향 잘 몰랐을 때도 방향 잡아 주는 선생님이었어요."]
은퇴 후에도 탁구채를 놓지 않았던 양영자 감독, 다방면에서 탁구를 국민스포츠로 만들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는데요.
경기도 하남시에서 시민들을 위한 탁구 교실을 운영 중입니다.
탁구채를 잡고 있는 중장년 어르신들에게 양영자 감독은 어떤 존재일까요?
[조성희/경기도 하남시 : "굉장한 선수였죠. 경이로웠죠. 한 마디로."]
[김교환/경기도 하남시 : "정말 미녀 선수였죠. 그때 뭐 난리 났었죠. 전설이었죠. 우리의 우상이라고 해야 되나 그 정도였죠. 그때."]
이곳에서 함께 일하는 이시은 코치도 중국 네이멍구에서 양영자 감독을 따라 한국으로 왔습니다.
탁구 선수 생활을 하다, 현재는 지도자로 활동 중인데요.
이 코치에게도 양영자 감독은 은인입니다.
[이시은/탁구 코치 : "심리적으로 좀 많이 도와 주셨어요. 처음에 왔을 때 너무 문화 차이 있기 때문에 좀 힘들었어요. 그래서 저 보고 좀 힘내고 더 버티고 앞으로 더 좋은 성적 낼 수 있다고 해 주면서 그런 쪽에서 많이 도와 줬어요."]
양영자 감독은 전국의 초등학교를 돌며, 어린 탁구 꿈나무들도 지도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가대표 선수 대부분이 양영자 감독을 거쳐 갔다고 하는데요.
후배들을 키워 내는 일, 1988년, 국민들이 보내 주신 성원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양영자/감독/전 탁구 국가대표 : "지금은 이제 청소년 꿈나무 감독을 한국에서는 하고 있는데요. 88년 올림픽에서 잘할 수 있었던 것도 얼마나 많은 국민들의 응원이 있었어요. 탁구를 통해서 또 후배들이나 어린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건 그때에 대한 보답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는 시간들로 지내고 있어서 저로서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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