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인물들’ 안중근 의사·이성가 소장·김영환 준장

입력 2019.09.30 (09:54) 수정 2019.09.30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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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독립운동가에 안중근 의사, 6·25 전쟁영웅에 이성가 육군 소장, 호국인물에 김영환 공군 준장이 선정됐습니다.

10월의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안중근 의사를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습니다.

1879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안중근 의사는 을사조약 체결 후 중국으로 건너가 한인들과 함께 구국운동을 전개했습니다. 1906년 귀국한 안 의사는 평안남도에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설립해 교육계몽운동을 전개했고, 평양에서 삼합의라는 광산 회사를 설립해 산업 진흥운동에도 매진했습니다.

1907년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한 뒤에는 동의회라는 의병부대를 조직했고, 1909년에 동의단지회를 조직해 이토 히로부미 처단 계획을 세웠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한 안 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돼 일본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 송치됐고 1910년 2월 공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정부는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습니다.

‘10월의 6·25 전쟁영웅’ 이성가 육군소장 (사진제공: 국가보훈처)‘10월의 6·25 전쟁영웅’ 이성가 육군소장 (사진제공: 국가보훈처)

10월의 전쟁영웅 이성가 육군소장

국가보훈처는 10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이성가 육군 소장을 선정했습니다.

이성가 소장은 1922년 만주에서 태어나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중위로 임관했습니다. 6·25 전쟁 당시 제8사단장이었던 이 소장은 양양과 강릉을 잇는 해안도로를 두고 북한군 제5사단과 공방전을 벌여 북한군의 진격을 지연시켰습니다.

이성가 소장은 또, 영천 전투와 백선산 전투,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 등 여러 전선에서 작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특히 영천 전투에서는 북한군으로부터 영천을 탈환해 낙동강 방어선으로 이어지는 전략적 요충지를 지켜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정부는 이성가 소장의 공훈을 기려 1953년 태극 무공훈장을 수여했습니다.

‘10월의 호국영웅’ 김영환 공군준장 (사진제공: 전쟁기념관)‘10월의 호국영웅’ 김영환 공군준장 (사진제공: 전쟁기념관)

10월의 호국영웅 김영환 공군준장

전쟁기념관은 김영환 공군준장을 10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습니다.

김영환 준장은 1921년 서울에서 태어나 광복 후 군사영어학교에 입교해 1946년 1월 참위(현재의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한 후 미 극동공군으로부터 F-51 전투기를 인수해 전투기 조종사로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전쟁 동안 국군과 유엔군에 대한 근접항공지원과 후방지역 차단 작전에 투입됐고, 중동부 전선의 적 전력을 타격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1951년 10월 강릉전진기지 사령관으로 우리 공군 최초의 단독 출격작전을 지휘해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등을 받았습니다.

김 준장은 1951년 지리산 공비토벌작전 당시 해인사 폭격을 요청받았지만 끝내 폭격하지 않아 팔만대장경을 포함한 문화재를 지켜냈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정부는 이 공적을 기려 김 준장에게 2010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습니다.

한국 공군 조종사의 상징인 '빨간 마후라'를 최초로 착용해 제도화시킨 주인공으로도 알려진 김 준장은 휴전 이후에도 전투비행단 운영체계를 수립하고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하는 등 공군 전력을 향상하는 데 힘쓰다 1954년 3월 임무 수행 중 순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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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의 인물들’ 안중근 의사·이성가 소장·김영환 준장
    • 입력 2019-09-30 09:54:08
    • 수정2019-09-30 1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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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독립운동가에 안중근 의사, 6·25 전쟁영웅에 이성가 육군 소장, 호국인물에 김영환 공군 준장이 선정됐습니다. 10월의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안중근 의사를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습니다. 1879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안중근 의사는 을사조약 체결 후 중국으로 건너가 한인들과 함께 구국운동을 전개했습니다. 1906년 귀국한 안 의사는 평안남도에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설립해 교육계몽운동을 전개했고, 평양에서 삼합의라는 광산 회사를 설립해 산업 진흥운동에도 매진했습니다. 1907년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한 뒤에는 동의회라는 의병부대를 조직했고, 1909년에 동의단지회를 조직해 이토 히로부미 처단 계획을 세웠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한 안 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돼 일본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 송치됐고 1910년 2월 공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정부는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습니다. ‘10월의 6·25 전쟁영웅’ 이성가 육군소장 (사진제공: 국가보훈처) 10월의 전쟁영웅 이성가 육군소장 국가보훈처는 10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이성가 육군 소장을 선정했습니다. 이성가 소장은 1922년 만주에서 태어나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중위로 임관했습니다. 6·25 전쟁 당시 제8사단장이었던 이 소장은 양양과 강릉을 잇는 해안도로를 두고 북한군 제5사단과 공방전을 벌여 북한군의 진격을 지연시켰습니다. 이성가 소장은 또, 영천 전투와 백선산 전투,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 등 여러 전선에서 작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특히 영천 전투에서는 북한군으로부터 영천을 탈환해 낙동강 방어선으로 이어지는 전략적 요충지를 지켜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정부는 이성가 소장의 공훈을 기려 1953년 태극 무공훈장을 수여했습니다. ‘10월의 호국영웅’ 김영환 공군준장 (사진제공: 전쟁기념관) 10월의 호국영웅 김영환 공군준장 전쟁기념관은 김영환 공군준장을 10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습니다. 김영환 준장은 1921년 서울에서 태어나 광복 후 군사영어학교에 입교해 1946년 1월 참위(현재의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한 후 미 극동공군으로부터 F-51 전투기를 인수해 전투기 조종사로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전쟁 동안 국군과 유엔군에 대한 근접항공지원과 후방지역 차단 작전에 투입됐고, 중동부 전선의 적 전력을 타격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1951년 10월 강릉전진기지 사령관으로 우리 공군 최초의 단독 출격작전을 지휘해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등을 받았습니다. 김 준장은 1951년 지리산 공비토벌작전 당시 해인사 폭격을 요청받았지만 끝내 폭격하지 않아 팔만대장경을 포함한 문화재를 지켜냈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정부는 이 공적을 기려 김 준장에게 2010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습니다. 한국 공군 조종사의 상징인 '빨간 마후라'를 최초로 착용해 제도화시킨 주인공으로도 알려진 김 준장은 휴전 이후에도 전투비행단 운영체계를 수립하고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하는 등 공군 전력을 향상하는 데 힘쓰다 1954년 3월 임무 수행 중 순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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