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마이너스 물가…D의 공포 엄습

입력 2019.10.02 (08:17) 수정 2019.10.0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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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장에 파격가를 앞세운 상품이 줄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 편의점에서 선보인 이 라면, 봉지당 가격이 3백90원입니다.

출시 3주 만에 백만 개가 팔렸습니다.

이 햄버거는 일반 프랜차이즈 버거보다 패티가 20%가량 두껍지만 가격은 절반 수준인 1900원, 판매 개시 두 달 도 안돼 누적판매량 10만 개를 달성했습니다.

경기 부진 속에서 소비자들이 갈수록 낮은 가격의 상품을 찾기에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이걸 보며 단순히 '가격 싸니 좋네' 라고 넘길 수 없는 건, 최근 우리 경제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이른바 'D의 공포' 때문입니다.

여기서 D, 물가가 일정기간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Deflation)의 앞자입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보면 조금은 실감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물가가 1년전보다 0.4% 떨어져 사상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앞서 8월에도 0.038% 하락했지만 소수점 한 자리까지만 따지는 공식 기록이 0%였을 뿐 사실상 두 달 연속 마이너스인 셈입니다.

본격적인 저물가, 디플레이션 국면에 들어선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민간에서는 이미 우리 경제가 ‘준(準)디플레이션’상황에 처했다는 경고도 제기했습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5월 보고서에서 이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아니, 냉면 한 그릇에 만 원이 넘는데 무슨 저물가냐 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음식점 메뉴판만 보면 물가가 뛰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종 물품과 주거비, 통신비 등을 반영한 전반적인 물가상승률이 0%를 밑도는 건 이상 신호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조영무/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제 주체들의 불안심리가 높아진다고 한다면 이런 현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물가 수준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경제를 종종 우리 몸에 비유합니다.

물가도 우리 경제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지표 중 하납니다.

보통, 물가가 치솟는 인플레이션은 고혈압에, 디플리에션은 저혈압에 비유됩니다.

흔히 '고혈압보다 저혈압이 더 무섭다'는 말을 하죠?

고물가와 달리 저물가도 당장 피부로 고통이 체감되지는 않지만 고착화될 경우엔 치명적입니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면 사람들은 계속 물건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돈 쓰는 것을 주저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재고가 쌓이니 생산과 투자를 연기하며 고용을 줄이게 됩니다.

'저물가→소비 감소-> 생산.투자 위축_>경기부진’이라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몇 해 전, 라가르드 IMF 총재는 “디플레이션은 단호히 맞서 싸워야 할 식인 괴물(ogre)”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에까지 디플레이션을 비유한데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물론 국제통화기금(IMF)은 물가상승률이 2년 이상 마이너스(―)를 보이는 경우를 디플레이션으로 정의합니다.

이 정의에 의하면 한국은 아직은 디플레이션 상태라고 볼 순 없습니다.

정부도 일시적, 정책적 이유를 내세워 저물가의 고착화, 즉 '디플레이션'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김용범/기획재정부 1차관 : "실물경제도 아직도 성장이 지속되고 있고 자산이나 금융시장에 큰 버블(거품)도 없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 상황이 아니라고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의 저물가 기조가 경기 하강 기조와 함께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D의 공포와 함께 요즘 심심찮게 등장하는 말이 경기후퇴(Recession)의 후폭풍을 걱정하는 'R의 공포'입니다.

그만큼 국내외 경제사정이 어렵다는 뜻입니다.

미·중 무역전쟁, 일본의 수출규제, 최근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원유 시설 피폭으로 국제유가 변동성까지 커졌습니다.

경기 파주에서 시작된 아프리카돼지열병(ASF)도 육류 가격 등락이라는 새로운 리스크를 안겼습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어제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0%에서 1.8%로내렸습니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지속된 디플레이션 기간을 ‘잃어버린 20년’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동안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인플레이션 무서운 줄만 알았던 우리에게도 장기 저성장이라는 ‘경험해보지 못한 경제’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공포와 두려움도 문제지만, 지나친 낙관론 역시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친절한뉴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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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마이너스 물가…D의 공포 엄습
    • 입력 2019-10-02 08:18:55
    • 수정2019-10-02 09:02:05
    아침뉴스타임
최근 시장에 파격가를 앞세운 상품이 줄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 편의점에서 선보인 이 라면, 봉지당 가격이 3백90원입니다.

출시 3주 만에 백만 개가 팔렸습니다.

이 햄버거는 일반 프랜차이즈 버거보다 패티가 20%가량 두껍지만 가격은 절반 수준인 1900원, 판매 개시 두 달 도 안돼 누적판매량 10만 개를 달성했습니다.

경기 부진 속에서 소비자들이 갈수록 낮은 가격의 상품을 찾기에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이걸 보며 단순히 '가격 싸니 좋네' 라고 넘길 수 없는 건, 최근 우리 경제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이른바 'D의 공포' 때문입니다.

여기서 D, 물가가 일정기간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Deflation)의 앞자입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보면 조금은 실감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물가가 1년전보다 0.4% 떨어져 사상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앞서 8월에도 0.038% 하락했지만 소수점 한 자리까지만 따지는 공식 기록이 0%였을 뿐 사실상 두 달 연속 마이너스인 셈입니다.

본격적인 저물가, 디플레이션 국면에 들어선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민간에서는 이미 우리 경제가 ‘준(準)디플레이션’상황에 처했다는 경고도 제기했습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5월 보고서에서 이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아니, 냉면 한 그릇에 만 원이 넘는데 무슨 저물가냐 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음식점 메뉴판만 보면 물가가 뛰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종 물품과 주거비, 통신비 등을 반영한 전반적인 물가상승률이 0%를 밑도는 건 이상 신호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조영무/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제 주체들의 불안심리가 높아진다고 한다면 이런 현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물가 수준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경제를 종종 우리 몸에 비유합니다.

물가도 우리 경제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지표 중 하납니다.

보통, 물가가 치솟는 인플레이션은 고혈압에, 디플리에션은 저혈압에 비유됩니다.

흔히 '고혈압보다 저혈압이 더 무섭다'는 말을 하죠?

고물가와 달리 저물가도 당장 피부로 고통이 체감되지는 않지만 고착화될 경우엔 치명적입니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면 사람들은 계속 물건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돈 쓰는 것을 주저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재고가 쌓이니 생산과 투자를 연기하며 고용을 줄이게 됩니다.

'저물가→소비 감소-> 생산.투자 위축_>경기부진’이라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몇 해 전, 라가르드 IMF 총재는 “디플레이션은 단호히 맞서 싸워야 할 식인 괴물(ogre)”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에까지 디플레이션을 비유한데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물론 국제통화기금(IMF)은 물가상승률이 2년 이상 마이너스(―)를 보이는 경우를 디플레이션으로 정의합니다.

이 정의에 의하면 한국은 아직은 디플레이션 상태라고 볼 순 없습니다.

정부도 일시적, 정책적 이유를 내세워 저물가의 고착화, 즉 '디플레이션'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김용범/기획재정부 1차관 : "실물경제도 아직도 성장이 지속되고 있고 자산이나 금융시장에 큰 버블(거품)도 없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 상황이 아니라고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의 저물가 기조가 경기 하강 기조와 함께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D의 공포와 함께 요즘 심심찮게 등장하는 말이 경기후퇴(Recession)의 후폭풍을 걱정하는 'R의 공포'입니다.

그만큼 국내외 경제사정이 어렵다는 뜻입니다.

미·중 무역전쟁, 일본의 수출규제, 최근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원유 시설 피폭으로 국제유가 변동성까지 커졌습니다.

경기 파주에서 시작된 아프리카돼지열병(ASF)도 육류 가격 등락이라는 새로운 리스크를 안겼습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어제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0%에서 1.8%로내렸습니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지속된 디플레이션 기간을 ‘잃어버린 20년’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동안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인플레이션 무서운 줄만 알았던 우리에게도 장기 저성장이라는 ‘경험해보지 못한 경제’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공포와 두려움도 문제지만, 지나친 낙관론 역시 독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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