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 진관사와 한글날

입력 2019.10.1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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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은 한글날이었다. 북한산 봉우리들에 둘러싸인 천년고찰, 삼각산 진관사(서울시 은평구 진관동)에는 휴일을 맞아 가족 단위의 많은 관람객이 몰렸다.

하지만 진관사와 한글 창제의 연관성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KBS 드라마 <대왕세종> 82회에는 '세종24년 서기 1442년 진관사'라는 자막이 나온다.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도 진관사가 등장한다. 대체 진관사와 한글, 그리고 세종대왕은 무슨 관계였을까?

<대왕세종>과 진관사에 따르면 세종대왕은 1442년 진관사에 우리말 창제를 위한 '비밀 연구실'을 만들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때때로 진관사에서 연구에 몰두하였다.

KBS 드라마 [대왕세종] 캡쳐 (자료 제공: 진관사)KBS 드라마 [대왕세종] 캡쳐 (자료 제공: 진관사)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진관사는 집현전 학사들의 사가독서(賜暇讀書)와 관련된 장소로 등장한다. 사가독서란 세종대왕이 유능한 문신을 뽑아 휴가를 주면서 독서당에서 일정 기간 공부를 하게 하던 제도인데 문헌에 따르면 세종대왕은 1426년(세종 8년) 12월 젊은 문신 가운데 재주가 뛰어난 이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사가독서제를 실시하였으나, 장소의 제약 또는 독서에만 전념할 수 없는 환경 때문에 1442년(세종 24년)부터는 사가독서제를 시행할 때 진관사에서 독서하게 하는 상사독서(上寺讀書)를 실시했다.

이에 따라 성삼문과 하위지, 이개, 신숙주 등 집현전의 젊은 학사들이 진관사 사가독서당에서 한글을 비밀리에 연구하며 한글창제의 초석을 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훈민정음이 창제되던 시기에는 한글창제를 반대하던 세력의 견제가 심했었고 명나라의 눈치도 봐야하는 상황이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집현전 학사가 살해당하면서 집현전 출입이 금지되자 학사들이 집현전 대신 진관사로 책을 읽으러 가는 장면도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연관이 있다.


진관사는 거란의 침입을 막아낸 고려 8대 현종이 1010~1011년 진관대사를 위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예로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동쪽의 불암사, 서쪽의 진관사, 남쪽의 삼막사, 북쪽의 승가사라고 하여 4대 명찰로 손꼽혀왔다.

진관사는 고려시대부터 여러 임금이 왕래하면서 왕실의 보호와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아온 국찰이었는데 조선시대에 수도를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특히 1397년 태조 이성계는 진관사에 행차해 수륙사를 짓고 국행수륙대재라는 의식을 지내도록 했다. 수륙재(水陸齋)란 말 그대로 물과 뭍, 이승과 저승을 떠도는 영혼들을 위한 불교의식인데 조선 개국 과정에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의미가 컸다.

현재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126호로 지정돼 매년 10월 진행되는데 올해에는 내일 모레 양일간 열릴 예정이다.


진관사 측은 "수륙재는 종교의식의 성격을 넘어 사회·정치·문화적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는 사회 통합의 의미도 크다."며 "올해처럼 사회의 양분화가 심한 상황에서 국민의 뜻을 화합시키고,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많은 생명이 살처분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불안함을 달래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미물중생까지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면서 서로 소통하고 마음을 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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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각산 진관사와 한글날
    • 입력 2019-10-11 07:02:52
    취재K
지난 9일은 한글날이었다. 북한산 봉우리들에 둘러싸인 천년고찰, 삼각산 진관사(서울시 은평구 진관동)에는 휴일을 맞아 가족 단위의 많은 관람객이 몰렸다.

하지만 진관사와 한글 창제의 연관성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KBS 드라마 <대왕세종> 82회에는 '세종24년 서기 1442년 진관사'라는 자막이 나온다.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도 진관사가 등장한다. 대체 진관사와 한글, 그리고 세종대왕은 무슨 관계였을까?

<대왕세종>과 진관사에 따르면 세종대왕은 1442년 진관사에 우리말 창제를 위한 '비밀 연구실'을 만들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때때로 진관사에서 연구에 몰두하였다.

KBS 드라마 [대왕세종] 캡쳐 (자료 제공: 진관사)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진관사는 집현전 학사들의 사가독서(賜暇讀書)와 관련된 장소로 등장한다. 사가독서란 세종대왕이 유능한 문신을 뽑아 휴가를 주면서 독서당에서 일정 기간 공부를 하게 하던 제도인데 문헌에 따르면 세종대왕은 1426년(세종 8년) 12월 젊은 문신 가운데 재주가 뛰어난 이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사가독서제를 실시하였으나, 장소의 제약 또는 독서에만 전념할 수 없는 환경 때문에 1442년(세종 24년)부터는 사가독서제를 시행할 때 진관사에서 독서하게 하는 상사독서(上寺讀書)를 실시했다.

이에 따라 성삼문과 하위지, 이개, 신숙주 등 집현전의 젊은 학사들이 진관사 사가독서당에서 한글을 비밀리에 연구하며 한글창제의 초석을 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훈민정음이 창제되던 시기에는 한글창제를 반대하던 세력의 견제가 심했었고 명나라의 눈치도 봐야하는 상황이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집현전 학사가 살해당하면서 집현전 출입이 금지되자 학사들이 집현전 대신 진관사로 책을 읽으러 가는 장면도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연관이 있다.


진관사는 거란의 침입을 막아낸 고려 8대 현종이 1010~1011년 진관대사를 위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예로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동쪽의 불암사, 서쪽의 진관사, 남쪽의 삼막사, 북쪽의 승가사라고 하여 4대 명찰로 손꼽혀왔다.

진관사는 고려시대부터 여러 임금이 왕래하면서 왕실의 보호와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아온 국찰이었는데 조선시대에 수도를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특히 1397년 태조 이성계는 진관사에 행차해 수륙사를 짓고 국행수륙대재라는 의식을 지내도록 했다. 수륙재(水陸齋)란 말 그대로 물과 뭍, 이승과 저승을 떠도는 영혼들을 위한 불교의식인데 조선 개국 과정에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의미가 컸다.

현재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126호로 지정돼 매년 10월 진행되는데 올해에는 내일 모레 양일간 열릴 예정이다.


진관사 측은 "수륙재는 종교의식의 성격을 넘어 사회·정치·문화적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는 사회 통합의 의미도 크다."며 "올해처럼 사회의 양분화가 심한 상황에서 국민의 뜻을 화합시키고,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많은 생명이 살처분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불안함을 달래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미물중생까지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면서 서로 소통하고 마음을 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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