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빠진 베트남…냉동 컨테이너의 ‘비극’

입력 2019.10.28 (08:15) 수정 2019.10.2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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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에섹스주 산업단지에 도착한 컨테이너입니다.

냉동 설비가 달려있습니다.

영하 25도까지 내려가는 이 컨테이너 안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습니다.

남성 31명 여성 8명, 영국으로 몰래 들어가려던 이들은, 모두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동사 혹은 질식사로 추정됩니다.

당초 전원 중국인일거란 경찰 발표와 달리 상당수가 베트남인일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마틴 패스모어/에섹스 경찰 형사과장 : "아직 개개인의 국적을 정확히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최대한 베트남 커뮤니티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베트남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영국에서 네일아트 전문가로 일하려고 컨테이너에 몸을 실은 19살 여성은 사건 이틀 전 페이스북에 '곧 봄이다'라는 글을 올린 뒤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시골에 일자리가 없어 영국으로 돈 벌러 간 아들이 사라졌다"는 아버지의 사연 등 가족들의 애끓는 기다림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응우옌 티 후아/'20대 아들 실종' 어머니 : "아직도 아들이 집에 전화하기만을 기다립니다. 아들이 죽었단 걸 믿을 수 없고, 그저 그날 이후 기다리기만 할 뿐이에요."]

26살 베트남 여성이 어머니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도 공개됐습니다.

“숨을 쉴 수가 없어 죽을 것 같아. 미안해 엄마."

이들의 '브리티시 드림'은 냉동 컨테이너 안에서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땀 반/'20대 딸 실종' 아버지 : "딸이 (자신이 영국에)가지 않으면 큰 빚 때문에 가족이 너무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될 거라고 말했어요. 위험을 감수하고도 가겠다고 결정했고 우리는 동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밀입국자들의 집단 사망이 컨테이너 온도를 급속 냉각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더 타임스는 "밀입국 조직원들은 영하 4도로 맞춰 밀입국자를 태운 뒤, 항구에서 세관의 의심을 피하려고 영하 20도로 낮춘다"면서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된다"고 보도했습니다.

3년 전, 이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영국에 들어오려 했던 아프가니스탄 출신 이민자 자와드 아미리는 BBC에 컨테이너가 “마치 ‘움직이는 무덤’ 같았다"고 전했습니다.

상자와 천장 사이 50센티미터 남짓한 공간에서 16시간을 버티다 간신히 빠져나왔다고 말했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몸을 실은 컨테이너가 누군가에게 움직이는 관이 된 현실도 안타깝지만, 이런 비극이 낯설지 않다는 게 더 큰 비극입니다.

2000년 영국 남서부에서는 트럭 운전사가 통풍구를 닫는 바람에 중국인 밀입국자 58명이 질식해 숨졌습니다.

2015년엔 중동 국가 출신 71명이 오스트리아 고속도로의 버려진 냉동 트럭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바다에선 이른바 '보트 피플'의 참상이 전해집니다.

4년 전 많은 이들을 울린 이 한 장의 사진,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살배기 난민 쿠르디입니다.

지난 6월에는 엘살바도르 이민자 부녀의 사진이 또 세계를 울렸습니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리오그란데 강에서 익사한 채 발견된 아빠와 23개월된 딸입니다.

아빠는 티셔츠로 아기를 감쌌고 딸은 아빠 목을 꼭 붙잡고 있습니다.

강 맞은 편에서 엄마는 이들이 물살에 휩쓸리던 광경을 속절없이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내 남편 어딨나요? 어디에 있어요? 보게 해 주세요."]

이들의 비극에서 기시감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에게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1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밀입국선에 오른 중국동포와 한족들이 여수행 태창호에서 변을 당했습니다.

선장이 해경의 단속을 피하려고 어구보관용 간이창고에 25명, 물탱크에 35명을 나눠 숨긴 탓이었습니다.

환기구도 유리창도 없는 간이창고 속 25명은 숨진 채 발견됐고, 선장은 시신을 모두 바다에 던졌습니다.

제7 태창호의 비극은 ‘해무’라는 제목의 연극과 영화로도 제작됐습니다.

밀입국자들의 목숨 건 탈주는 지금 어디선가 진행 중인 지도 모릅니다.

중국은 미국과 무역 전쟁을 치를 정도이고 베트남도 경제성장률이 7%를 넘지만 여전히 외국으로 밀입국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빈부 격차와 노동 착취가 심하기 때문입니다.

반 세계화의 흐름 속 미국과 유럽의 반이민 정책까지 강화되며 이제 밀입국 알선은 하나의 거대 산업이 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영국 더 타임스는 유로폴의 자료를 인용해 유럽 내 밀입국 알선업 규모를 연간 46억 파운드, 약 7조원으로 추산했습니다.

모국에서 더는 희망을 보지 못한 밀입국자들의 목숨 건 탈주 속에 난민과 국민 사이 각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친절한 뉴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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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격 빠진 베트남…냉동 컨테이너의 ‘비극’
    • 입력 2019-10-28 08:16:52
    • 수정2019-10-28 09: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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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에섹스주 산업단지에 도착한 컨테이너입니다.

냉동 설비가 달려있습니다.

영하 25도까지 내려가는 이 컨테이너 안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습니다.

남성 31명 여성 8명, 영국으로 몰래 들어가려던 이들은, 모두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동사 혹은 질식사로 추정됩니다.

당초 전원 중국인일거란 경찰 발표와 달리 상당수가 베트남인일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마틴 패스모어/에섹스 경찰 형사과장 : "아직 개개인의 국적을 정확히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최대한 베트남 커뮤니티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베트남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영국에서 네일아트 전문가로 일하려고 컨테이너에 몸을 실은 19살 여성은 사건 이틀 전 페이스북에 '곧 봄이다'라는 글을 올린 뒤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시골에 일자리가 없어 영국으로 돈 벌러 간 아들이 사라졌다"는 아버지의 사연 등 가족들의 애끓는 기다림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응우옌 티 후아/'20대 아들 실종' 어머니 : "아직도 아들이 집에 전화하기만을 기다립니다. 아들이 죽었단 걸 믿을 수 없고, 그저 그날 이후 기다리기만 할 뿐이에요."]

26살 베트남 여성이 어머니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도 공개됐습니다.

“숨을 쉴 수가 없어 죽을 것 같아. 미안해 엄마."

이들의 '브리티시 드림'은 냉동 컨테이너 안에서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땀 반/'20대 딸 실종' 아버지 : "딸이 (자신이 영국에)가지 않으면 큰 빚 때문에 가족이 너무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될 거라고 말했어요. 위험을 감수하고도 가겠다고 결정했고 우리는 동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밀입국자들의 집단 사망이 컨테이너 온도를 급속 냉각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더 타임스는 "밀입국 조직원들은 영하 4도로 맞춰 밀입국자를 태운 뒤, 항구에서 세관의 의심을 피하려고 영하 20도로 낮춘다"면서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된다"고 보도했습니다.

3년 전, 이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영국에 들어오려 했던 아프가니스탄 출신 이민자 자와드 아미리는 BBC에 컨테이너가 “마치 ‘움직이는 무덤’ 같았다"고 전했습니다.

상자와 천장 사이 50센티미터 남짓한 공간에서 16시간을 버티다 간신히 빠져나왔다고 말했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몸을 실은 컨테이너가 누군가에게 움직이는 관이 된 현실도 안타깝지만, 이런 비극이 낯설지 않다는 게 더 큰 비극입니다.

2000년 영국 남서부에서는 트럭 운전사가 통풍구를 닫는 바람에 중국인 밀입국자 58명이 질식해 숨졌습니다.

2015년엔 중동 국가 출신 71명이 오스트리아 고속도로의 버려진 냉동 트럭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바다에선 이른바 '보트 피플'의 참상이 전해집니다.

4년 전 많은 이들을 울린 이 한 장의 사진,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살배기 난민 쿠르디입니다.

지난 6월에는 엘살바도르 이민자 부녀의 사진이 또 세계를 울렸습니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리오그란데 강에서 익사한 채 발견된 아빠와 23개월된 딸입니다.

아빠는 티셔츠로 아기를 감쌌고 딸은 아빠 목을 꼭 붙잡고 있습니다.

강 맞은 편에서 엄마는 이들이 물살에 휩쓸리던 광경을 속절없이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내 남편 어딨나요? 어디에 있어요? 보게 해 주세요."]

이들의 비극에서 기시감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에게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1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밀입국선에 오른 중국동포와 한족들이 여수행 태창호에서 변을 당했습니다.

선장이 해경의 단속을 피하려고 어구보관용 간이창고에 25명, 물탱크에 35명을 나눠 숨긴 탓이었습니다.

환기구도 유리창도 없는 간이창고 속 25명은 숨진 채 발견됐고, 선장은 시신을 모두 바다에 던졌습니다.

제7 태창호의 비극은 ‘해무’라는 제목의 연극과 영화로도 제작됐습니다.

밀입국자들의 목숨 건 탈주는 지금 어디선가 진행 중인 지도 모릅니다.

중국은 미국과 무역 전쟁을 치를 정도이고 베트남도 경제성장률이 7%를 넘지만 여전히 외국으로 밀입국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빈부 격차와 노동 착취가 심하기 때문입니다.

반 세계화의 흐름 속 미국과 유럽의 반이민 정책까지 강화되며 이제 밀입국 알선은 하나의 거대 산업이 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영국 더 타임스는 유로폴의 자료를 인용해 유럽 내 밀입국 알선업 규모를 연간 46억 파운드, 약 7조원으로 추산했습니다.

모국에서 더는 희망을 보지 못한 밀입국자들의 목숨 건 탈주 속에 난민과 국민 사이 각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친절한 뉴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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