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탄핵을 보는 ‘두개의 눈’…‘正義’인가 ‘政治’인가
입력 2019.11.17 (09:00)
수정 2019.11.1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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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미국의 이익을 희생시켰다”…“민주당은 탄핵 서커스단이다”
미국 하원이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명분으로 실시한 트럼프 대통령 탄핵 조사 첫 공개청문회 날, CNN과 폭스뉴스와 각각 내놓은 반응이다. 단 한 문장 속에 탄핵 사태와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바라보는 두 매체의 상반된 시각은 물론 정파성까지 고스란히 녹아 있다.
폭스뉴스와 반 트럼프 성향의 여타 주류 언론의 하원 청문회 논조를 비교해보면, 정치와 언론이 경계가 불분명해 보일 만큼 뒤섞여 거칠게 충돌하고 있는 미국 내 세력 싸움의 속살이 어렴풋이나마 엿보인다.
■ "새로운 증거" VS "간접 정보" ... 증인·증언에 엇갈린 시선
트럼프 대통령 탄핵 조사에 나선 미국 하원이 현지시각 13일 연 첫 공개 청문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보다 정치적 맞수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겨냥한 수사에 더 관심을 보였다는 증언이 나왔다.
윌리엄 테일러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 대행이 증인으로 나와 한 말이다. 트럼프 행정부에 몸담고 있는 현직 관리의 말이기 때문에 현지 언론들은 그의 증언을 비중 있게 다뤘다.
테일러는 자신의 보좌관이 지난 7월 26일 고든 선들랜드 유럽연합 주재 미국 대사를 수행해 우크라이나 키예프를 방문했을 때 관련 내용을 들었다고 밝혔다. 당시 키예프의 한 식당에서 선들랜드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해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수석 고문과의 만남을 포함한 일정에 대해 진전 사항을 보고했고 이때 테일러의 보좌관이 통화 내용을 들었다는 것이다.
CNN과 뉴욕타임스(이하 NYT), 워싱턴포스트(이하 WP) 등 주류 언론은 보좌관의 전언을 전달한 테일러의 증언을 "새로운 증거"라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 테일러의 보좌관이 통화 내용을 엿들었다는 날이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한 다음 날이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했다.
반면, 폭스뉴스는 테일러의 증언이 그가 직접 듣고 전한 말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간접 정보'로 규정했다. 테일러를 향해 '아무것도 목격하지 못한 증인'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간접 정보이기 때문에 테일러의 증언은 "검증이 안 됐다"고 깎아내렸다.
증언 내용 면에서도 폭스 뉴스는 "새로운 내용이 전혀 없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조 바이든 부자의 비리 의혹 조사를 종용하는 듯한 발언을 한 사실은 백악관이 공개한 녹취록에도 나와 있고 이미 논란이 돼온 내용이라는 이유에서다.
■ '대 우크라이나 군사지원'·'바이든 의혹 수사 종용' 엮으려는 주류언론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부자에 대한 수사 요청'을 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 원조'를 '고리'로 활용했는지 여부다.
이와 관련해 테일러 대행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측에 어떤 지원도 제공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말을 팀 모리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유럽·러시아 담당 고문과의 통화에서 들었다"고 증언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조사를 하도록 압박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보류하려 했다'는 민주당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내용이다. CNN과 WP, NYT 등은 이 부분을 집중 부각했다.
WP는 민주당 당원들을 인용해 "트럼프가 민주당에 대한 조사를 위해 우크라이나에 4억 달러에 가까운 군사적 지원을 중단했었다"며 '트럼프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 대통령 집무실을 이용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규범을 어긴 것은 취임 선서를 배반한 것인가, 아니면 군 최고통수권자의 권리에 대한 배신인가'라고 반문했다.
CNN의 분석가인 스티븐 콜린슨은 "첫 공개 청문회가 트럼프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본능적으로 기꺼이 미국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대통령이라는 것을 반증한 그림을 그렸다"고 비평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도 민주당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끌어내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지원을 보류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외교관으로서 미국의 대통령이 개인적 또는 정치적 이익 때문에 외국 원조를 이용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는 테일러 대행의 말을 전했다.
■ '대가'에서 '뇌물'로 ... "트럼프는 범죄자" 낙인 찍으려는 민주당
'트럼프 때리기'에 앞장서는 주류 언론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과 '바이든 비리 의혹 수사' 사이에 연결고리, 즉 둘 사이의 대가성을 부각하는 이유는 이 문제가 '탄핵 사유의 법적 완결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 이어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군사 원조와 조 바이든 부자에 대한 수사 요청을 연결시키지 않았다'"고 계속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스캔들이 불거진 초기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를 '압박'했다고 주장했던 민주당은 녹취록 공개 뒤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 지원을 '대가'로 바이든 수사를 종용했다'고 했다가 첫 청문회 직후에는 둘 사이 관계를 '뇌물'로 규정하고 나섰다.
탄핵조사 추진의 주역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은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한 가짜 조사를 대가로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를 허용 또는 보류하는 것은 뇌물"이라며 "탄핵 조사는 뇌물죄에 관련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WP는 "민주당이 그동안 탄핵 사유로 제기해온 '중범죄', '비행 혐의' 등의 표현은 헌법학자가 아닌 대다수 미국인에게 모호한 용어였다"며 "펠로시 의장의 언급은 궤도 수정을 하겠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헌법에 명시된 탄핵 사유인 '뇌물수수' 카드로 트럼프 대통령이 명백한 탄핵 대상 범죄자라는 낙인 찍기 효과를 노린다는 것이다.
■ 폭스 "트럼프, 법 어기지 않았다" ... "바이든 수사 종용, 대통령으로서 의무"
트럼프 대통령은 '압박', '대가', '뇌물' 이라는 민주당을 반박해왔다. '군사 지원'과 '바이든 부자 비리 의혹 조사' 사이에 연결고리가 전혀 없었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펴왔고, '군사 지원이 이뤄졌다'는 점과 '우크라이나 정부가 바이든 부자에 대해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폭스뉴스도 같은 주장을 폈다. 청문회 날 내보낸 기사를 통해 "트럼프는 결국 우크라이나에 재블린 대전차용 미사일을 제공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트럼프 정부로부터 (바이든 부자) 조사에 관여해야 한다는 어떠한 압력도 느끼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연관 기사] 트럼프, 탄핵 공세에 ‘녹취록 공개’…파장 일파만파?
그러면서 바이든 전 부통령이 재임 시절 우크라이나 정부에 자신의 아들이 임원으로 있던 회사의 부패 혐의를 수사하려던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을 해임하지 않으면 10억 달러의 차관 상환 보증을 보류하겠다고 위협했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폭스뉴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한 조사를 종용한 것을 놓고 "부패 수사였다"는 트럼프 진영의 목소리도 대변했다. 이는 "부패 수사이며, 미국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폭스뉴스는 이런 이유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두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청문회 직후 한 유세에서도 "바이든 부자는 우크라이나와 중국 회사들로부터 받은 엄청난 돈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며 바이든 부자에 대한 수사의 필요성을 거듭 제기했다.
트럼프 진영과 반 트럼프 진영 간에는 '바이든 부자에 대한 수사 종용'이 대통령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인지, 권한 남용인지에 대해서도 접점 찾기가 불가능해 보이는 근본적인 인식 차를 드러내고 있다.
■ "탄핵 서커스단" VS "트럼프 방화벽 부숴야" ... '언론'인가 '플레이어'인가
CNN과 WP, CNN 등 반 트럼프 성향 주류 언론은 철저히 민주당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공화당과 폭스뉴스가 테일러 대행에 대해 "정치화된 관료", "트럼프 반대자"라는 공격을 가하자 "테일러가 비당파적 인사"라고 반박해줬다. "나는 어느 한쪽의 정치적 졸개가 아니다"라는 테일러의 언급도 다뤘다.
또한, 각론에서 쓴 '표현'에서도 탄핵 사태를 보는 시각을 드러냈다. WP는 하원의 탄핵 조사 청문회를 '역사적인 탄핵 심리'라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와 젤렌스키 간 통화를 언급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압박했다"는 표현을 썼고, CNN은 두 대통령 간 통화를 "악명 높은 대화"라고 했다.
이들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기 탄핵의 주동자'라고 비난하는 민주당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의 발언 소개도 빼놓지 않는다.
폭스뉴스 칼럼니스트들은 트럼프 진영의 '탄핵에 대한 피로도'를 반영하듯 민주당을 향해 원색적인 비판을 가했다. 그레그 커트펠드 앵커는 자신의 칼럼에서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고리로 한 민주당의 탄핵 추진을 "전화 한 통을 범죄로 만들려는 광경"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탄핵 서커스단", 탄핵 추진을 주도하는 의원들을 "광대"라고 힐난했다.
커트펠드는 "내년 11월 대선에서 그들을 심판해야 한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폭스뉴스 앵커의 정당인에 가까운 발언은, 공개 석상에서 스스로 "내가 우크라이나를 압박해 검찰총장을 해임시켰다"고 자랑하듯 떠든 바이든 의혹은 전혀 다루지 않으면서 "트럼프 방화벽을 붕괴시킬 증거는 아직 없다"고 지적한 CNN의 논평과 '대치(對置)'를 이룬다.
미국 주류 언론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친 트럼프 성향인 폭스뉴스와 반 트럼프 성향의 다른 주류 매체들은 트럼프 취임 이후 줄곧 그래 왔듯이 그를 탄핵하려는 쪽과 저지하려는 쪽 간 치열한 싸움에서 갈수록 더욱 주요한 '플레이어'가 돼가고 있다.
미국 하원이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명분으로 실시한 트럼프 대통령 탄핵 조사 첫 공개청문회 날, CNN과 폭스뉴스와 각각 내놓은 반응이다. 단 한 문장 속에 탄핵 사태와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바라보는 두 매체의 상반된 시각은 물론 정파성까지 고스란히 녹아 있다.
폭스뉴스와 반 트럼프 성향의 여타 주류 언론의 하원 청문회 논조를 비교해보면, 정치와 언론이 경계가 불분명해 보일 만큼 뒤섞여 거칠게 충돌하고 있는 미국 내 세력 싸움의 속살이 어렴풋이나마 엿보인다.
■ "새로운 증거" VS "간접 정보" ... 증인·증언에 엇갈린 시선
트럼프 대통령 탄핵 조사에 나선 미국 하원이 현지시각 13일 연 첫 공개 청문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보다 정치적 맞수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겨냥한 수사에 더 관심을 보였다는 증언이 나왔다.
윌리엄 테일러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 대행이 증인으로 나와 한 말이다. 트럼프 행정부에 몸담고 있는 현직 관리의 말이기 때문에 현지 언론들은 그의 증언을 비중 있게 다뤘다.
윌리엄 테일러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 대행이 미국 하원 대통령 탄핵 조사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테일러는 자신의 보좌관이 지난 7월 26일 고든 선들랜드 유럽연합 주재 미국 대사를 수행해 우크라이나 키예프를 방문했을 때 관련 내용을 들었다고 밝혔다. 당시 키예프의 한 식당에서 선들랜드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해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수석 고문과의 만남을 포함한 일정에 대해 진전 사항을 보고했고 이때 테일러의 보좌관이 통화 내용을 들었다는 것이다.
CNN과 뉴욕타임스(이하 NYT), 워싱턴포스트(이하 WP) 등 주류 언론은 보좌관의 전언을 전달한 테일러의 증언을 "새로운 증거"라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 테일러의 보좌관이 통화 내용을 엿들었다는 날이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한 다음 날이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했다.
반면, 폭스뉴스는 테일러의 증언이 그가 직접 듣고 전한 말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간접 정보'로 규정했다. 테일러를 향해 '아무것도 목격하지 못한 증인'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간접 정보이기 때문에 테일러의 증언은 "검증이 안 됐다"고 깎아내렸다.
증언 내용 면에서도 폭스 뉴스는 "새로운 내용이 전혀 없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조 바이든 부자의 비리 의혹 조사를 종용하는 듯한 발언을 한 사실은 백악관이 공개한 녹취록에도 나와 있고 이미 논란이 돼온 내용이라는 이유에서다.
■ '대 우크라이나 군사지원'·'바이든 의혹 수사 종용' 엮으려는 주류언론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부자에 대한 수사 요청'을 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 원조'를 '고리'로 활용했는지 여부다.
이와 관련해 테일러 대행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측에 어떤 지원도 제공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말을 팀 모리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유럽·러시아 담당 고문과의 통화에서 들었다"고 증언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조사를 하도록 압박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보류하려 했다'는 민주당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내용이다. CNN과 WP, NYT 등은 이 부분을 집중 부각했다.
WP는 민주당 당원들을 인용해 "트럼프가 민주당에 대한 조사를 위해 우크라이나에 4억 달러에 가까운 군사적 지원을 중단했었다"며 '트럼프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 대통령 집무실을 이용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규범을 어긴 것은 취임 선서를 배반한 것인가, 아니면 군 최고통수권자의 권리에 대한 배신인가'라고 반문했다.
스티븐 콜린슨 CNN 분석가의 칼럼
CNN의 분석가인 스티븐 콜린슨은 "첫 공개 청문회가 트럼프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본능적으로 기꺼이 미국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대통령이라는 것을 반증한 그림을 그렸다"고 비평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도 민주당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끌어내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지원을 보류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외교관으로서 미국의 대통령이 개인적 또는 정치적 이익 때문에 외국 원조를 이용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는 테일러 대행의 말을 전했다.
■ '대가'에서 '뇌물'로 ... "트럼프는 범죄자" 낙인 찍으려는 민주당
'트럼프 때리기'에 앞장서는 주류 언론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과 '바이든 비리 의혹 수사' 사이에 연결고리, 즉 둘 사이의 대가성을 부각하는 이유는 이 문제가 '탄핵 사유의 법적 완결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 이어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군사 원조와 조 바이든 부자에 대한 수사 요청을 연결시키지 않았다'"고 계속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스캔들이 불거진 초기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를 '압박'했다고 주장했던 민주당은 녹취록 공개 뒤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 지원을 '대가'로 바이든 수사를 종용했다'고 했다가 첫 청문회 직후에는 둘 사이 관계를 '뇌물'로 규정하고 나섰다.
‘군사지원’과 ‘조 바이든 의혹 수사’ 연관성에 대한 미국 민주당의 논리 변화
탄핵조사 추진의 주역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은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한 가짜 조사를 대가로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를 허용 또는 보류하는 것은 뇌물"이라며 "탄핵 조사는 뇌물죄에 관련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WP는 "민주당이 그동안 탄핵 사유로 제기해온 '중범죄', '비행 혐의' 등의 표현은 헌법학자가 아닌 대다수 미국인에게 모호한 용어였다"며 "펠로시 의장의 언급은 궤도 수정을 하겠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헌법에 명시된 탄핵 사유인 '뇌물수수' 카드로 트럼프 대통령이 명백한 탄핵 대상 범죄자라는 낙인 찍기 효과를 노린다는 것이다.
■ 폭스 "트럼프, 법 어기지 않았다" ... "바이든 수사 종용, 대통령으로서 의무"
트럼프 대통령은 '압박', '대가', '뇌물' 이라는 민주당을 반박해왔다. '군사 지원'과 '바이든 부자 비리 의혹 조사' 사이에 연결고리가 전혀 없었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펴왔고, '군사 지원이 이뤄졌다'는 점과 '우크라이나 정부가 바이든 부자에 대해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폭스뉴스도 같은 주장을 폈다. 청문회 날 내보낸 기사를 통해 "트럼프는 결국 우크라이나에 재블린 대전차용 미사일을 제공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트럼프 정부로부터 (바이든 부자) 조사에 관여해야 한다는 어떠한 압력도 느끼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연관 기사] 트럼프, 탄핵 공세에 ‘녹취록 공개’…파장 일파만파?
그러면서 바이든 전 부통령이 재임 시절 우크라이나 정부에 자신의 아들이 임원으로 있던 회사의 부패 혐의를 수사하려던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을 해임하지 않으면 10억 달러의 차관 상환 보증을 보류하겠다고 위협했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이 현지시각 14일 루이지애나 주지사 선거 지원 유세를 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폭스뉴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한 조사를 종용한 것을 놓고 "부패 수사였다"는 트럼프 진영의 목소리도 대변했다. 이는 "부패 수사이며, 미국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폭스뉴스는 이런 이유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두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청문회 직후 한 유세에서도 "바이든 부자는 우크라이나와 중국 회사들로부터 받은 엄청난 돈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며 바이든 부자에 대한 수사의 필요성을 거듭 제기했다.
트럼프 진영과 반 트럼프 진영 간에는 '바이든 부자에 대한 수사 종용'이 대통령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인지, 권한 남용인지에 대해서도 접점 찾기가 불가능해 보이는 근본적인 인식 차를 드러내고 있다.
■ "탄핵 서커스단" VS "트럼프 방화벽 부숴야" ... '언론'인가 '플레이어'인가
CNN과 WP, CNN 등 반 트럼프 성향 주류 언론은 철저히 민주당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공화당과 폭스뉴스가 테일러 대행에 대해 "정치화된 관료", "트럼프 반대자"라는 공격을 가하자 "테일러가 비당파적 인사"라고 반박해줬다. "나는 어느 한쪽의 정치적 졸개가 아니다"라는 테일러의 언급도 다뤘다.
또한, 각론에서 쓴 '표현'에서도 탄핵 사태를 보는 시각을 드러냈다. WP는 하원의 탄핵 조사 청문회를 '역사적인 탄핵 심리'라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와 젤렌스키 간 통화를 언급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압박했다"는 표현을 썼고, CNN은 두 대통령 간 통화를 "악명 높은 대화"라고 했다.
이들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기 탄핵의 주동자'라고 비난하는 민주당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의 발언 소개도 빼놓지 않는다.
그레그 커트펠드 폭스뉴스 앵커 칼럼
폭스뉴스 칼럼니스트들은 트럼프 진영의 '탄핵에 대한 피로도'를 반영하듯 민주당을 향해 원색적인 비판을 가했다. 그레그 커트펠드 앵커는 자신의 칼럼에서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고리로 한 민주당의 탄핵 추진을 "전화 한 통을 범죄로 만들려는 광경"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탄핵 서커스단", 탄핵 추진을 주도하는 의원들을 "광대"라고 힐난했다.
커트펠드는 "내년 11월 대선에서 그들을 심판해야 한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폭스뉴스 앵커의 정당인에 가까운 발언은, 공개 석상에서 스스로 "내가 우크라이나를 압박해 검찰총장을 해임시켰다"고 자랑하듯 떠든 바이든 의혹은 전혀 다루지 않으면서 "트럼프 방화벽을 붕괴시킬 증거는 아직 없다"고 지적한 CNN의 논평과 '대치(對置)'를 이룬다.
미국 주류 언론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친 트럼프 성향인 폭스뉴스와 반 트럼프 성향의 다른 주류 매체들은 트럼프 취임 이후 줄곧 그래 왔듯이 그를 탄핵하려는 쪽과 저지하려는 쪽 간 치열한 싸움에서 갈수록 더욱 주요한 '플레이어'가 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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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돋보기] 탄핵을 보는 ‘두개의 눈’…‘正義’인가 ‘政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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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11-17 09:00:25
- 수정2019-11-17 09:07:56
“트럼프가 미국의 이익을 희생시켰다”…“민주당은 탄핵 서커스단이다”
미국 하원이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명분으로 실시한 트럼프 대통령 탄핵 조사 첫 공개청문회 날, CNN과 폭스뉴스와 각각 내놓은 반응이다. 단 한 문장 속에 탄핵 사태와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바라보는 두 매체의 상반된 시각은 물론 정파성까지 고스란히 녹아 있다.
폭스뉴스와 반 트럼프 성향의 여타 주류 언론의 하원 청문회 논조를 비교해보면, 정치와 언론이 경계가 불분명해 보일 만큼 뒤섞여 거칠게 충돌하고 있는 미국 내 세력 싸움의 속살이 어렴풋이나마 엿보인다.
■ "새로운 증거" VS "간접 정보" ... 증인·증언에 엇갈린 시선
트럼프 대통령 탄핵 조사에 나선 미국 하원이 현지시각 13일 연 첫 공개 청문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보다 정치적 맞수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겨냥한 수사에 더 관심을 보였다는 증언이 나왔다.
윌리엄 테일러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 대행이 증인으로 나와 한 말이다. 트럼프 행정부에 몸담고 있는 현직 관리의 말이기 때문에 현지 언론들은 그의 증언을 비중 있게 다뤘다.
테일러는 자신의 보좌관이 지난 7월 26일 고든 선들랜드 유럽연합 주재 미국 대사를 수행해 우크라이나 키예프를 방문했을 때 관련 내용을 들었다고 밝혔다. 당시 키예프의 한 식당에서 선들랜드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해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수석 고문과의 만남을 포함한 일정에 대해 진전 사항을 보고했고 이때 테일러의 보좌관이 통화 내용을 들었다는 것이다.
CNN과 뉴욕타임스(이하 NYT), 워싱턴포스트(이하 WP) 등 주류 언론은 보좌관의 전언을 전달한 테일러의 증언을 "새로운 증거"라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 테일러의 보좌관이 통화 내용을 엿들었다는 날이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한 다음 날이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했다.
반면, 폭스뉴스는 테일러의 증언이 그가 직접 듣고 전한 말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간접 정보'로 규정했다. 테일러를 향해 '아무것도 목격하지 못한 증인'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간접 정보이기 때문에 테일러의 증언은 "검증이 안 됐다"고 깎아내렸다.
증언 내용 면에서도 폭스 뉴스는 "새로운 내용이 전혀 없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조 바이든 부자의 비리 의혹 조사를 종용하는 듯한 발언을 한 사실은 백악관이 공개한 녹취록에도 나와 있고 이미 논란이 돼온 내용이라는 이유에서다.
■ '대 우크라이나 군사지원'·'바이든 의혹 수사 종용' 엮으려는 주류언론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부자에 대한 수사 요청'을 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 원조'를 '고리'로 활용했는지 여부다.
이와 관련해 테일러 대행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측에 어떤 지원도 제공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말을 팀 모리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유럽·러시아 담당 고문과의 통화에서 들었다"고 증언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조사를 하도록 압박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보류하려 했다'는 민주당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내용이다. CNN과 WP, NYT 등은 이 부분을 집중 부각했다.
WP는 민주당 당원들을 인용해 "트럼프가 민주당에 대한 조사를 위해 우크라이나에 4억 달러에 가까운 군사적 지원을 중단했었다"며 '트럼프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 대통령 집무실을 이용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규범을 어긴 것은 취임 선서를 배반한 것인가, 아니면 군 최고통수권자의 권리에 대한 배신인가'라고 반문했다.
CNN의 분석가인 스티븐 콜린슨은 "첫 공개 청문회가 트럼프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본능적으로 기꺼이 미국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대통령이라는 것을 반증한 그림을 그렸다"고 비평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도 민주당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끌어내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지원을 보류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외교관으로서 미국의 대통령이 개인적 또는 정치적 이익 때문에 외국 원조를 이용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는 테일러 대행의 말을 전했다.
■ '대가'에서 '뇌물'로 ... "트럼프는 범죄자" 낙인 찍으려는 민주당
'트럼프 때리기'에 앞장서는 주류 언론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과 '바이든 비리 의혹 수사' 사이에 연결고리, 즉 둘 사이의 대가성을 부각하는 이유는 이 문제가 '탄핵 사유의 법적 완결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 이어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군사 원조와 조 바이든 부자에 대한 수사 요청을 연결시키지 않았다'"고 계속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스캔들이 불거진 초기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를 '압박'했다고 주장했던 민주당은 녹취록 공개 뒤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 지원을 '대가'로 바이든 수사를 종용했다'고 했다가 첫 청문회 직후에는 둘 사이 관계를 '뇌물'로 규정하고 나섰다.
탄핵조사 추진의 주역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은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한 가짜 조사를 대가로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를 허용 또는 보류하는 것은 뇌물"이라며 "탄핵 조사는 뇌물죄에 관련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WP는 "민주당이 그동안 탄핵 사유로 제기해온 '중범죄', '비행 혐의' 등의 표현은 헌법학자가 아닌 대다수 미국인에게 모호한 용어였다"며 "펠로시 의장의 언급은 궤도 수정을 하겠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헌법에 명시된 탄핵 사유인 '뇌물수수' 카드로 트럼프 대통령이 명백한 탄핵 대상 범죄자라는 낙인 찍기 효과를 노린다는 것이다.
■ 폭스 "트럼프, 법 어기지 않았다" ... "바이든 수사 종용, 대통령으로서 의무"
트럼프 대통령은 '압박', '대가', '뇌물' 이라는 민주당을 반박해왔다. '군사 지원'과 '바이든 부자 비리 의혹 조사' 사이에 연결고리가 전혀 없었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펴왔고, '군사 지원이 이뤄졌다'는 점과 '우크라이나 정부가 바이든 부자에 대해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폭스뉴스도 같은 주장을 폈다. 청문회 날 내보낸 기사를 통해 "트럼프는 결국 우크라이나에 재블린 대전차용 미사일을 제공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트럼프 정부로부터 (바이든 부자) 조사에 관여해야 한다는 어떠한 압력도 느끼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연관 기사] 트럼프, 탄핵 공세에 ‘녹취록 공개’…파장 일파만파?
그러면서 바이든 전 부통령이 재임 시절 우크라이나 정부에 자신의 아들이 임원으로 있던 회사의 부패 혐의를 수사하려던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을 해임하지 않으면 10억 달러의 차관 상환 보증을 보류하겠다고 위협했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폭스뉴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한 조사를 종용한 것을 놓고 "부패 수사였다"는 트럼프 진영의 목소리도 대변했다. 이는 "부패 수사이며, 미국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폭스뉴스는 이런 이유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두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청문회 직후 한 유세에서도 "바이든 부자는 우크라이나와 중국 회사들로부터 받은 엄청난 돈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며 바이든 부자에 대한 수사의 필요성을 거듭 제기했다.
트럼프 진영과 반 트럼프 진영 간에는 '바이든 부자에 대한 수사 종용'이 대통령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인지, 권한 남용인지에 대해서도 접점 찾기가 불가능해 보이는 근본적인 인식 차를 드러내고 있다.
■ "탄핵 서커스단" VS "트럼프 방화벽 부숴야" ... '언론'인가 '플레이어'인가
CNN과 WP, CNN 등 반 트럼프 성향 주류 언론은 철저히 민주당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공화당과 폭스뉴스가 테일러 대행에 대해 "정치화된 관료", "트럼프 반대자"라는 공격을 가하자 "테일러가 비당파적 인사"라고 반박해줬다. "나는 어느 한쪽의 정치적 졸개가 아니다"라는 테일러의 언급도 다뤘다.
또한, 각론에서 쓴 '표현'에서도 탄핵 사태를 보는 시각을 드러냈다. WP는 하원의 탄핵 조사 청문회를 '역사적인 탄핵 심리'라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와 젤렌스키 간 통화를 언급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압박했다"는 표현을 썼고, CNN은 두 대통령 간 통화를 "악명 높은 대화"라고 했다.
이들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기 탄핵의 주동자'라고 비난하는 민주당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의 발언 소개도 빼놓지 않는다.
폭스뉴스 칼럼니스트들은 트럼프 진영의 '탄핵에 대한 피로도'를 반영하듯 민주당을 향해 원색적인 비판을 가했다. 그레그 커트펠드 앵커는 자신의 칼럼에서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고리로 한 민주당의 탄핵 추진을 "전화 한 통을 범죄로 만들려는 광경"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탄핵 서커스단", 탄핵 추진을 주도하는 의원들을 "광대"라고 힐난했다.
커트펠드는 "내년 11월 대선에서 그들을 심판해야 한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폭스뉴스 앵커의 정당인에 가까운 발언은, 공개 석상에서 스스로 "내가 우크라이나를 압박해 검찰총장을 해임시켰다"고 자랑하듯 떠든 바이든 의혹은 전혀 다루지 않으면서 "트럼프 방화벽을 붕괴시킬 증거는 아직 없다"고 지적한 CNN의 논평과 '대치(對置)'를 이룬다.
미국 주류 언론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친 트럼프 성향인 폭스뉴스와 반 트럼프 성향의 다른 주류 매체들은 트럼프 취임 이후 줄곧 그래 왔듯이 그를 탄핵하려는 쪽과 저지하려는 쪽 간 치열한 싸움에서 갈수록 더욱 주요한 '플레이어'가 돼가고 있다.
미국 하원이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명분으로 실시한 트럼프 대통령 탄핵 조사 첫 공개청문회 날, CNN과 폭스뉴스와 각각 내놓은 반응이다. 단 한 문장 속에 탄핵 사태와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바라보는 두 매체의 상반된 시각은 물론 정파성까지 고스란히 녹아 있다.
폭스뉴스와 반 트럼프 성향의 여타 주류 언론의 하원 청문회 논조를 비교해보면, 정치와 언론이 경계가 불분명해 보일 만큼 뒤섞여 거칠게 충돌하고 있는 미국 내 세력 싸움의 속살이 어렴풋이나마 엿보인다.
■ "새로운 증거" VS "간접 정보" ... 증인·증언에 엇갈린 시선
트럼프 대통령 탄핵 조사에 나선 미국 하원이 현지시각 13일 연 첫 공개 청문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보다 정치적 맞수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겨냥한 수사에 더 관심을 보였다는 증언이 나왔다.
윌리엄 테일러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 대행이 증인으로 나와 한 말이다. 트럼프 행정부에 몸담고 있는 현직 관리의 말이기 때문에 현지 언론들은 그의 증언을 비중 있게 다뤘다.
테일러는 자신의 보좌관이 지난 7월 26일 고든 선들랜드 유럽연합 주재 미국 대사를 수행해 우크라이나 키예프를 방문했을 때 관련 내용을 들었다고 밝혔다. 당시 키예프의 한 식당에서 선들랜드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해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수석 고문과의 만남을 포함한 일정에 대해 진전 사항을 보고했고 이때 테일러의 보좌관이 통화 내용을 들었다는 것이다.
CNN과 뉴욕타임스(이하 NYT), 워싱턴포스트(이하 WP) 등 주류 언론은 보좌관의 전언을 전달한 테일러의 증언을 "새로운 증거"라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 테일러의 보좌관이 통화 내용을 엿들었다는 날이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한 다음 날이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했다.
반면, 폭스뉴스는 테일러의 증언이 그가 직접 듣고 전한 말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간접 정보'로 규정했다. 테일러를 향해 '아무것도 목격하지 못한 증인'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간접 정보이기 때문에 테일러의 증언은 "검증이 안 됐다"고 깎아내렸다.
증언 내용 면에서도 폭스 뉴스는 "새로운 내용이 전혀 없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조 바이든 부자의 비리 의혹 조사를 종용하는 듯한 발언을 한 사실은 백악관이 공개한 녹취록에도 나와 있고 이미 논란이 돼온 내용이라는 이유에서다.
■ '대 우크라이나 군사지원'·'바이든 의혹 수사 종용' 엮으려는 주류언론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부자에 대한 수사 요청'을 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 원조'를 '고리'로 활용했는지 여부다.
이와 관련해 테일러 대행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측에 어떤 지원도 제공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말을 팀 모리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유럽·러시아 담당 고문과의 통화에서 들었다"고 증언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조사를 하도록 압박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보류하려 했다'는 민주당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내용이다. CNN과 WP, NYT 등은 이 부분을 집중 부각했다.
WP는 민주당 당원들을 인용해 "트럼프가 민주당에 대한 조사를 위해 우크라이나에 4억 달러에 가까운 군사적 지원을 중단했었다"며 '트럼프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 대통령 집무실을 이용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규범을 어긴 것은 취임 선서를 배반한 것인가, 아니면 군 최고통수권자의 권리에 대한 배신인가'라고 반문했다.
CNN의 분석가인 스티븐 콜린슨은 "첫 공개 청문회가 트럼프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본능적으로 기꺼이 미국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대통령이라는 것을 반증한 그림을 그렸다"고 비평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도 민주당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끌어내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지원을 보류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외교관으로서 미국의 대통령이 개인적 또는 정치적 이익 때문에 외국 원조를 이용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는 테일러 대행의 말을 전했다.
■ '대가'에서 '뇌물'로 ... "트럼프는 범죄자" 낙인 찍으려는 민주당
'트럼프 때리기'에 앞장서는 주류 언론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과 '바이든 비리 의혹 수사' 사이에 연결고리, 즉 둘 사이의 대가성을 부각하는 이유는 이 문제가 '탄핵 사유의 법적 완결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 이어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군사 원조와 조 바이든 부자에 대한 수사 요청을 연결시키지 않았다'"고 계속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스캔들이 불거진 초기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를 '압박'했다고 주장했던 민주당은 녹취록 공개 뒤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 지원을 '대가'로 바이든 수사를 종용했다'고 했다가 첫 청문회 직후에는 둘 사이 관계를 '뇌물'로 규정하고 나섰다.
탄핵조사 추진의 주역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은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한 가짜 조사를 대가로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를 허용 또는 보류하는 것은 뇌물"이라며 "탄핵 조사는 뇌물죄에 관련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WP는 "민주당이 그동안 탄핵 사유로 제기해온 '중범죄', '비행 혐의' 등의 표현은 헌법학자가 아닌 대다수 미국인에게 모호한 용어였다"며 "펠로시 의장의 언급은 궤도 수정을 하겠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헌법에 명시된 탄핵 사유인 '뇌물수수' 카드로 트럼프 대통령이 명백한 탄핵 대상 범죄자라는 낙인 찍기 효과를 노린다는 것이다.
■ 폭스 "트럼프, 법 어기지 않았다" ... "바이든 수사 종용, 대통령으로서 의무"
트럼프 대통령은 '압박', '대가', '뇌물' 이라는 민주당을 반박해왔다. '군사 지원'과 '바이든 부자 비리 의혹 조사' 사이에 연결고리가 전혀 없었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펴왔고, '군사 지원이 이뤄졌다'는 점과 '우크라이나 정부가 바이든 부자에 대해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폭스뉴스도 같은 주장을 폈다. 청문회 날 내보낸 기사를 통해 "트럼프는 결국 우크라이나에 재블린 대전차용 미사일을 제공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트럼프 정부로부터 (바이든 부자) 조사에 관여해야 한다는 어떠한 압력도 느끼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연관 기사] 트럼프, 탄핵 공세에 ‘녹취록 공개’…파장 일파만파?
그러면서 바이든 전 부통령이 재임 시절 우크라이나 정부에 자신의 아들이 임원으로 있던 회사의 부패 혐의를 수사하려던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을 해임하지 않으면 10억 달러의 차관 상환 보증을 보류하겠다고 위협했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폭스뉴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한 조사를 종용한 것을 놓고 "부패 수사였다"는 트럼프 진영의 목소리도 대변했다. 이는 "부패 수사이며, 미국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폭스뉴스는 이런 이유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두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청문회 직후 한 유세에서도 "바이든 부자는 우크라이나와 중국 회사들로부터 받은 엄청난 돈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며 바이든 부자에 대한 수사의 필요성을 거듭 제기했다.
트럼프 진영과 반 트럼프 진영 간에는 '바이든 부자에 대한 수사 종용'이 대통령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인지, 권한 남용인지에 대해서도 접점 찾기가 불가능해 보이는 근본적인 인식 차를 드러내고 있다.
■ "탄핵 서커스단" VS "트럼프 방화벽 부숴야" ... '언론'인가 '플레이어'인가
CNN과 WP, CNN 등 반 트럼프 성향 주류 언론은 철저히 민주당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공화당과 폭스뉴스가 테일러 대행에 대해 "정치화된 관료", "트럼프 반대자"라는 공격을 가하자 "테일러가 비당파적 인사"라고 반박해줬다. "나는 어느 한쪽의 정치적 졸개가 아니다"라는 테일러의 언급도 다뤘다.
또한, 각론에서 쓴 '표현'에서도 탄핵 사태를 보는 시각을 드러냈다. WP는 하원의 탄핵 조사 청문회를 '역사적인 탄핵 심리'라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와 젤렌스키 간 통화를 언급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압박했다"는 표현을 썼고, CNN은 두 대통령 간 통화를 "악명 높은 대화"라고 했다.
이들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기 탄핵의 주동자'라고 비난하는 민주당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의 발언 소개도 빼놓지 않는다.
폭스뉴스 칼럼니스트들은 트럼프 진영의 '탄핵에 대한 피로도'를 반영하듯 민주당을 향해 원색적인 비판을 가했다. 그레그 커트펠드 앵커는 자신의 칼럼에서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고리로 한 민주당의 탄핵 추진을 "전화 한 통을 범죄로 만들려는 광경"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탄핵 서커스단", 탄핵 추진을 주도하는 의원들을 "광대"라고 힐난했다.
커트펠드는 "내년 11월 대선에서 그들을 심판해야 한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폭스뉴스 앵커의 정당인에 가까운 발언은, 공개 석상에서 스스로 "내가 우크라이나를 압박해 검찰총장을 해임시켰다"고 자랑하듯 떠든 바이든 의혹은 전혀 다루지 않으면서 "트럼프 방화벽을 붕괴시킬 증거는 아직 없다"고 지적한 CNN의 논평과 '대치(對置)'를 이룬다.
미국 주류 언론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친 트럼프 성향인 폭스뉴스와 반 트럼프 성향의 다른 주류 매체들은 트럼프 취임 이후 줄곧 그래 왔듯이 그를 탄핵하려는 쪽과 저지하려는 쪽 간 치열한 싸움에서 갈수록 더욱 주요한 '플레이어'가 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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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석 기자 sy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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