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뺑뺑이’가 불러온 논란 ‘일요학원휴무제’

입력 2019.11.27 (08:11) 수정 2019.11.2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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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계단마다 줄줄이 놓인 가방들 대체 뭘까요?

서울 대치동의 한 유명 학원 수업을 듣기 위해 학생들이 가방으로 줄을 세운 겁니다.

가방을 누가 언제 놓고 갔는지 이름과 학교 순번이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이런 줄 서기엔 엄마들도 가세합니다.

유명 학원 등록을 위해 이렇게 몇 시간 씩 줄을 서는 학부모들 모습 더는 낯설지 않습니다.

급기야 줄 서기 알바가 등장했습니다.

한 네이버 까페에 올라 온 글입니다.

"대치동 학원가 줄서기 알바해드립니다. 가격: 15,000원"

"대치동 줄 서기 알바 구합니다. 가격: 50,000원"

극심한 사교육 열풍 속에 우리 아이들에게 일주일은 ‘월화수목금금금’이 된 지 오랩니다.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에 따르면 일요일에도 학원에 다니는 중·고교생이 35%, 3명 중 한 명 꼴로 나타났습니다.

일명 '학원뺑뺑이'라고 하죠.

고강도 학습 노동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 일주일에 단 하루만이라도 학원 없는 날을 만들어주자며 등장한 게 바로 '학원 일요 휴무제'입니다.

일요일만이라도 강제적으로 학원 문을 닫게 하자는 것으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내건 대표 공약 중 하납니다.

시행에 앞서 서울시교육청이 약 두 달 간에 걸친 공론화 작업 결과를 내놨습니다.

2~300명으로 구성된 시민 참여단을 대상으로 의견 수렴을 한 건데요.

일단 여론은 우호적입니다.

62.6%가 학원 일요 휴무제 도입에 찬성했고, 32.7%가 반대했습니다.

두 차례 숙의를 거친 결과 찬성 의견이 10%p 가까이 늘었습니다.

먼저 찬성 쪽 입장, 학생들의 휴식권, 건강권 보장해 주자는 겁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늘리고 궁극적으론 사교육 의존도를 낮출 수 있을 걸로 기대합니다.

[임승빈/공론화추진위원회 위원장 : "오차범위를 벗어난 범위 내에서 많은 분들이 '학원일요휴무제'는 타당하다고 말씀을 하셨고 그래서 저희들이 권고를 합니다."]

반대하는 입장은 학습권 침해라는 주장과 함께 제도의 효과에도 우려를 제기합니다.

학원가에 일요 휴무제를 도입하면 오히려 개인 과외가 늘고 평일이나 토요일에 학원을 더 가지 않겠냐는 겁니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 효과입니다.

[임성호/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 : "과외선생님을 찾아간다든지 또는 독서실 내에서 과외를 한다든지 이런 변형된 형태로 갈 수밖에 없는 거죠."]

학생들에게 쉼있는 주말을 돌려주자는 제도의 취지에 대해선 대부분이 공감하시겠지만 문제는 실효성일 겁니다.

비슷한 규제가 과거에도 시행된 적 있었죠.

1980년 단행된 730 조치 개인 과외교습을 전면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당시로선 파격적인 개혁안이었습니다.

하지만 비밀과외가 성행하고 개개인의 교육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을 받고 사라졌습니다.

이 장면 기억나시나요?

2009년 10월 20일.

서울 여의도 공원에는 검은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곳곳에 '학원 탄압 STOP'이라는 깃발이 휘날렸습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학원 탄압은 밤 10시 이후 야간 교습 금지를 가리킵니다.

당시 교육부가 전국 모든 학원의 야간 교습을 서울시처럼 밤 10시까지로 제한하겠다고 발표했고, 학원들은 반발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10년 뒤인 지금, '학원 일요 휴무제'란 새로운 형태의 규제론이 고개를 든 건데요.

이미 부풀어오를대로 커진 사교육 시장에서 약발을 낼 지, 효과에 대해선 아직은 물음표가 달립니다.

2018년 통계 기준 우리 국민의 사교육비 지출액은 무려 20조 원에 달할 만큼 사교육 시장은 불황을 모릅니다.

학원 1번지 대치동 일대는 평일 밤 10시면 어김없이 교통 체증이 발생합니다.

교통경찰관과 구청 불법주차 단속반이 출동해도 갓길에 주차한 학부모 차량은 꿈쩍도 않습니다.

주말, 휴일도 다르지 않습니다.

한 외국어고는 주말 학원수업을 받는 학생들을 위해 전세버스를 운영합니다.

아이들은 학원이 끝나면 여행 가방을 짊어지고 대기 중인 버스에 올라 학교 기숙사로 향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원 일요 휴무제가 과연 효과가 있을지 실효성 논란은 계속 될 것으로 보입니다.

[고교생 학부모 : "평일에는 학원 갈 시간이 없죠. 주말에 놀 친구가 없어요. 주말에 거의 학원을 가기 때문에."]

일과 삶의 균형, 요즘 직장인들에게 '워라밸 (Work and Life Balance)’ 이 있다면 학생들에게는 학습과 삶의 균형 이른바 ‘스라밸(Study and Life Balance)’이 있다고 합니다.

파김치가 되어 학원에서 돌아오는 학생들이 다 같이 하루를 멈추면, 뭘 잃고 뭘 얻게 될지 이번 제도를 포함해 다양한 대책을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온 듯 합니다.

친절한 뉴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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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원 뺑뺑이’가 불러온 논란 ‘일요학원휴무제’
    • 입력 2019-11-27 08:16:51
    • 수정2019-11-27 09: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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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계단마다 줄줄이 놓인 가방들 대체 뭘까요?

서울 대치동의 한 유명 학원 수업을 듣기 위해 학생들이 가방으로 줄을 세운 겁니다.

가방을 누가 언제 놓고 갔는지 이름과 학교 순번이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이런 줄 서기엔 엄마들도 가세합니다.

유명 학원 등록을 위해 이렇게 몇 시간 씩 줄을 서는 학부모들 모습 더는 낯설지 않습니다.

급기야 줄 서기 알바가 등장했습니다.

한 네이버 까페에 올라 온 글입니다.

"대치동 학원가 줄서기 알바해드립니다. 가격: 15,000원"

"대치동 줄 서기 알바 구합니다. 가격: 50,000원"

극심한 사교육 열풍 속에 우리 아이들에게 일주일은 ‘월화수목금금금’이 된 지 오랩니다.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에 따르면 일요일에도 학원에 다니는 중·고교생이 35%, 3명 중 한 명 꼴로 나타났습니다.

일명 '학원뺑뺑이'라고 하죠.

고강도 학습 노동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 일주일에 단 하루만이라도 학원 없는 날을 만들어주자며 등장한 게 바로 '학원 일요 휴무제'입니다.

일요일만이라도 강제적으로 학원 문을 닫게 하자는 것으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내건 대표 공약 중 하납니다.

시행에 앞서 서울시교육청이 약 두 달 간에 걸친 공론화 작업 결과를 내놨습니다.

2~300명으로 구성된 시민 참여단을 대상으로 의견 수렴을 한 건데요.

일단 여론은 우호적입니다.

62.6%가 학원 일요 휴무제 도입에 찬성했고, 32.7%가 반대했습니다.

두 차례 숙의를 거친 결과 찬성 의견이 10%p 가까이 늘었습니다.

먼저 찬성 쪽 입장, 학생들의 휴식권, 건강권 보장해 주자는 겁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늘리고 궁극적으론 사교육 의존도를 낮출 수 있을 걸로 기대합니다.

[임승빈/공론화추진위원회 위원장 : "오차범위를 벗어난 범위 내에서 많은 분들이 '학원일요휴무제'는 타당하다고 말씀을 하셨고 그래서 저희들이 권고를 합니다."]

반대하는 입장은 학습권 침해라는 주장과 함께 제도의 효과에도 우려를 제기합니다.

학원가에 일요 휴무제를 도입하면 오히려 개인 과외가 늘고 평일이나 토요일에 학원을 더 가지 않겠냐는 겁니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 효과입니다.

[임성호/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 : "과외선생님을 찾아간다든지 또는 독서실 내에서 과외를 한다든지 이런 변형된 형태로 갈 수밖에 없는 거죠."]

학생들에게 쉼있는 주말을 돌려주자는 제도의 취지에 대해선 대부분이 공감하시겠지만 문제는 실효성일 겁니다.

비슷한 규제가 과거에도 시행된 적 있었죠.

1980년 단행된 730 조치 개인 과외교습을 전면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당시로선 파격적인 개혁안이었습니다.

하지만 비밀과외가 성행하고 개개인의 교육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을 받고 사라졌습니다.

이 장면 기억나시나요?

2009년 10월 20일.

서울 여의도 공원에는 검은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곳곳에 '학원 탄압 STOP'이라는 깃발이 휘날렸습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학원 탄압은 밤 10시 이후 야간 교습 금지를 가리킵니다.

당시 교육부가 전국 모든 학원의 야간 교습을 서울시처럼 밤 10시까지로 제한하겠다고 발표했고, 학원들은 반발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10년 뒤인 지금, '학원 일요 휴무제'란 새로운 형태의 규제론이 고개를 든 건데요.

이미 부풀어오를대로 커진 사교육 시장에서 약발을 낼 지, 효과에 대해선 아직은 물음표가 달립니다.

2018년 통계 기준 우리 국민의 사교육비 지출액은 무려 20조 원에 달할 만큼 사교육 시장은 불황을 모릅니다.

학원 1번지 대치동 일대는 평일 밤 10시면 어김없이 교통 체증이 발생합니다.

교통경찰관과 구청 불법주차 단속반이 출동해도 갓길에 주차한 학부모 차량은 꿈쩍도 않습니다.

주말, 휴일도 다르지 않습니다.

한 외국어고는 주말 학원수업을 받는 학생들을 위해 전세버스를 운영합니다.

아이들은 학원이 끝나면 여행 가방을 짊어지고 대기 중인 버스에 올라 학교 기숙사로 향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원 일요 휴무제가 과연 효과가 있을지 실효성 논란은 계속 될 것으로 보입니다.

[고교생 학부모 : "평일에는 학원 갈 시간이 없죠. 주말에 놀 친구가 없어요. 주말에 거의 학원을 가기 때문에."]

일과 삶의 균형, 요즘 직장인들에게 '워라밸 (Work and Life Balance)’ 이 있다면 학생들에게는 학습과 삶의 균형 이른바 ‘스라밸(Study and Life Balance)’이 있다고 합니다.

파김치가 되어 학원에서 돌아오는 학생들이 다 같이 하루를 멈추면, 뭘 잃고 뭘 얻게 될지 이번 제도를 포함해 다양한 대책을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온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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