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이춘재 8차’ 검경의 ‘같은 사실 다른 판단’, 법정서 판가름 난다

입력 2019.12.1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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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경찰 "오류 있지만 조작은 아냐"
검찰 "체모 바꿔 조작"
한 사안에 다른 의견 이례적
재심 가리는 법정서 판가름 날 듯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을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대립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범인으로 잡혀 20년 동안 옥살이를 한 윤 모 씨의 체모 감정 결과를 놓고 경찰은 오류가 있었지만, 조작은 아니라고 밝혔고, 검찰은 명백한 조작이라고 반박했다.

똑같은 감정 결과를 놓고 검찰과 경찰이 이렇게 다른 의견을 내는 건 통상의 수사 과정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지나 재판에 넘길 수는 없지만, 법원에서 재심 개시 여부를 판단한다. 이 판단 과정에서 검찰과 경찰 가운데 어느 쪽 주장이 타당한 것인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경찰 "감정에 중대한 오류…조작은 아냐"

검찰은 지난 11일 8차 사건 직접 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한 이튿날인 12일 국과수 감정 결과가 조작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시 무슨 근거로 조작이라 단정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던 경찰은 어제(17일) 브리핑에서 긴 시간을 할애해 국과수 감정 관련 의혹을 설명했다.

경찰은 8차 사건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는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모두 5번 분석했고, 국과수는 이 분석 결과를 근거로 감정서를 4번 작성했다고 밝혔다. 당시 국과수는 체모 분석 장비가 없어서 원자력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다.

경찰은 국과수가 원자력연구원에서 받은 현장 체모 분석 결과를 조합해서 감정서를 썼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으로 국과수의 두 번째 감정 결과는 원자력연구원의 1·2차 분석 결과를 조합한 것이었다.

경찰은 또 원자력연구원에서는 용의자들의 체모 분석 결과를 '평균값±표준오차'로 통보했는데, 국과수에서 다른 용의자들의 체모 감정서에는 원자력연구원에서 받은 평균값을 그대로 적으면서 윤 씨 체모 감정서에는 최대값 또는 최소값을 적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윤 씨 체모의 알루미늄 분석 결과가 '10±2'로 나왔다면 감정서에 '알루미늄 10'이라고 적은 게 아니라, '알루미늄 8' 또는 '알루미늄 12'라고 적었다는 것이다. 또 윤 씨 체모는 2번 분석해 1차 결과와 2차 결과가 있었는데, 2차는 무시하고 1차만 활용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국과수의 이러한 형태가 조작은 아니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조작'은 없는 것을 지어내서 만드는 것"이라며 "경찰은 판례에 따라 조합, 가공, 첨삭, 배제라는 표현을 썼다. 감정 과정에 중대한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범죄현장에서 나오지 않은 체모 사용"

검찰은 경찰의 브리핑에 대해 어제저녁 반박 자료를 냈다. 검찰은 "경찰의 발표내용은 그동안 검찰이 입수한 원자력연구원의 감정자료, 국과수의 감정서 등 제반 자료, 관련자들 및 전문가들에 대한 조사결과에 비춰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국과수에서) 범죄현장에서 수거하지 않은 전혀 다른 일반인들의 체모 감정 결과를 범죄현장에서 수거한 음모의 감정 결과인 것처럼 (감정서를) 허위로 작성했고, 감정 결과 수치도 가공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국과수가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로 둔갑시킨 체모는 분석 장비의 정확성을 측정하기 위한 시료, 전문용어로는 '스탠다드 시료'였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어 "검찰에 출석해 감정서 등 관련 자료를 모두 검토한 감정 전문가들의 의견을 보면 국과수가 윤 씨를 제외한 다른 모든 용의자의 체모 감정서에는 범죄현장에서 수거한 체모 감정 결과를 기재하면서도 유독 윤 씨 감정서에만 엉뚱한 일반인들의 체모를 범죄현장에서 수거한 체모인 것처럼 허위로 기재했다"고 밝혔다.

검찰의 이러한 반박에 경찰도 공식 재반박문을 냈다. 경찰은 현재도 원자력연구원에서 근무 중인 A 박사에게 확인한 결과 당시 국과수에서 스탠다드 시료로 명시해 분석 의뢰한 것은 8차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였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윤 씨 체모 감정에만 현장 체모로 둔갑된 체모가 사용됐다는 검찰 설명에 대해서도 재반박했다. 경찰 확인 결과 윤 씨 체모와 다른 용의자 체모 분석에 모두 8차 사건 현장 체모 분석 결과가 활용됐다는 것이다.


한 사안에 이례적 다른 의견

검찰과 경찰이 같은 사안을 두고 이렇게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는 건 이례적이다. 통상적으로 경찰이 먼저 한 수사는 경찰이 수사를 마치고 기소 혹은 불기소 의견 등을 달아 검찰에 보내고, 검찰은 경찰의 의견을 참고해 재판에 넘길지 말지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불기소 의견을 냈어도 검찰이 기소하는 등 경찰과 검찰이 판단이 다를 수 있지만, 이때에는 경찰이 판단을 내놓은 후 검찰 판단이 나온다. 경찰과 검찰의 판단이 차례로 나온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춘재 8차 사건에서는 경찰과 검찰이 동시에 의견을 내놓았고, 그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이런 보기 드문 광경은 공소시효가 지나 기소할 수 없는 사건이라는 특수성에서 나왔다. 경찰이 진실규명을 위해 수사를 벌이고 있는데 검찰이 재심 의견서를 내기 위해 조사에 착수하면서 의견 대립이 생겼다. 기소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면 경찰과 검찰이 사건에 동시에 뛰어들지 않고 경찰 수사를 검찰이 기다리거나, 경찰 사건을 아예 가져와서 수사했을 것이다.


재심 법정서 판가름 날 듯

8차 사건은 지난달 13일 윤 씨가 재심을 청구했다. 옥살이를 한 사람이 재심을 청구하면 법원은 먼저 재심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고, 재심을 받아들이기로 하면 재심이 열린다.

법원은 8차 사건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우선 검찰에 의견서를 내달라고 했다. 윤 씨를 범인이라고 기소했던 검찰이 윤 씨 재판을 다시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밝혀달라는 요구다.

검찰은 이 의견서에 국과수 감정 결과가 조작됐다는 내용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재심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면서 그 결정 이유를 밝히는데, 결정 이유에 국과수 감정에 관한 판단도 담길 가능성이 크다.

결국, 법원이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면서 내놓는 결정 이유에서 검찰과 경찰 중 누구의 말이 타당성이 있는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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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18 09:51:26
    취재K
경찰 "오류 있지만 조작은 아냐" <br />검찰 "체모 바꿔 조작" <br />한 사안에 다른 의견 이례적 <br />재심 가리는 법정서 판가름 날 듯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을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대립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범인으로 잡혀 20년 동안 옥살이를 한 윤 모 씨의 체모 감정 결과를 놓고 경찰은 오류가 있었지만, 조작은 아니라고 밝혔고, 검찰은 명백한 조작이라고 반박했다.

똑같은 감정 결과를 놓고 검찰과 경찰이 이렇게 다른 의견을 내는 건 통상의 수사 과정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지나 재판에 넘길 수는 없지만, 법원에서 재심 개시 여부를 판단한다. 이 판단 과정에서 검찰과 경찰 가운데 어느 쪽 주장이 타당한 것인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경찰 "감정에 중대한 오류…조작은 아냐"

검찰은 지난 11일 8차 사건 직접 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한 이튿날인 12일 국과수 감정 결과가 조작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시 무슨 근거로 조작이라 단정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던 경찰은 어제(17일) 브리핑에서 긴 시간을 할애해 국과수 감정 관련 의혹을 설명했다.

경찰은 8차 사건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는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모두 5번 분석했고, 국과수는 이 분석 결과를 근거로 감정서를 4번 작성했다고 밝혔다. 당시 국과수는 체모 분석 장비가 없어서 원자력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다.

경찰은 국과수가 원자력연구원에서 받은 현장 체모 분석 결과를 조합해서 감정서를 썼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으로 국과수의 두 번째 감정 결과는 원자력연구원의 1·2차 분석 결과를 조합한 것이었다.

경찰은 또 원자력연구원에서는 용의자들의 체모 분석 결과를 '평균값±표준오차'로 통보했는데, 국과수에서 다른 용의자들의 체모 감정서에는 원자력연구원에서 받은 평균값을 그대로 적으면서 윤 씨 체모 감정서에는 최대값 또는 최소값을 적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윤 씨 체모의 알루미늄 분석 결과가 '10±2'로 나왔다면 감정서에 '알루미늄 10'이라고 적은 게 아니라, '알루미늄 8' 또는 '알루미늄 12'라고 적었다는 것이다. 또 윤 씨 체모는 2번 분석해 1차 결과와 2차 결과가 있었는데, 2차는 무시하고 1차만 활용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국과수의 이러한 형태가 조작은 아니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조작'은 없는 것을 지어내서 만드는 것"이라며 "경찰은 판례에 따라 조합, 가공, 첨삭, 배제라는 표현을 썼다. 감정 과정에 중대한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범죄현장에서 나오지 않은 체모 사용"

검찰은 경찰의 브리핑에 대해 어제저녁 반박 자료를 냈다. 검찰은 "경찰의 발표내용은 그동안 검찰이 입수한 원자력연구원의 감정자료, 국과수의 감정서 등 제반 자료, 관련자들 및 전문가들에 대한 조사결과에 비춰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국과수에서) 범죄현장에서 수거하지 않은 전혀 다른 일반인들의 체모 감정 결과를 범죄현장에서 수거한 음모의 감정 결과인 것처럼 (감정서를) 허위로 작성했고, 감정 결과 수치도 가공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국과수가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로 둔갑시킨 체모는 분석 장비의 정확성을 측정하기 위한 시료, 전문용어로는 '스탠다드 시료'였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어 "검찰에 출석해 감정서 등 관련 자료를 모두 검토한 감정 전문가들의 의견을 보면 국과수가 윤 씨를 제외한 다른 모든 용의자의 체모 감정서에는 범죄현장에서 수거한 체모 감정 결과를 기재하면서도 유독 윤 씨 감정서에만 엉뚱한 일반인들의 체모를 범죄현장에서 수거한 체모인 것처럼 허위로 기재했다"고 밝혔다.

검찰의 이러한 반박에 경찰도 공식 재반박문을 냈다. 경찰은 현재도 원자력연구원에서 근무 중인 A 박사에게 확인한 결과 당시 국과수에서 스탠다드 시료로 명시해 분석 의뢰한 것은 8차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였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윤 씨 체모 감정에만 현장 체모로 둔갑된 체모가 사용됐다는 검찰 설명에 대해서도 재반박했다. 경찰 확인 결과 윤 씨 체모와 다른 용의자 체모 분석에 모두 8차 사건 현장 체모 분석 결과가 활용됐다는 것이다.


한 사안에 이례적 다른 의견

검찰과 경찰이 같은 사안을 두고 이렇게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는 건 이례적이다. 통상적으로 경찰이 먼저 한 수사는 경찰이 수사를 마치고 기소 혹은 불기소 의견 등을 달아 검찰에 보내고, 검찰은 경찰의 의견을 참고해 재판에 넘길지 말지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불기소 의견을 냈어도 검찰이 기소하는 등 경찰과 검찰이 판단이 다를 수 있지만, 이때에는 경찰이 판단을 내놓은 후 검찰 판단이 나온다. 경찰과 검찰의 판단이 차례로 나온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춘재 8차 사건에서는 경찰과 검찰이 동시에 의견을 내놓았고, 그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이런 보기 드문 광경은 공소시효가 지나 기소할 수 없는 사건이라는 특수성에서 나왔다. 경찰이 진실규명을 위해 수사를 벌이고 있는데 검찰이 재심 의견서를 내기 위해 조사에 착수하면서 의견 대립이 생겼다. 기소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면 경찰과 검찰이 사건에 동시에 뛰어들지 않고 경찰 수사를 검찰이 기다리거나, 경찰 사건을 아예 가져와서 수사했을 것이다.


재심 법정서 판가름 날 듯

8차 사건은 지난달 13일 윤 씨가 재심을 청구했다. 옥살이를 한 사람이 재심을 청구하면 법원은 먼저 재심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고, 재심을 받아들이기로 하면 재심이 열린다.

법원은 8차 사건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우선 검찰에 의견서를 내달라고 했다. 윤 씨를 범인이라고 기소했던 검찰이 윤 씨 재판을 다시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밝혀달라는 요구다.

검찰은 이 의견서에 국과수 감정 결과가 조작됐다는 내용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재심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면서 그 결정 이유를 밝히는데, 결정 이유에 국과수 감정에 관한 판단도 담길 가능성이 크다.

결국, 법원이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면서 내놓는 결정 이유에서 검찰과 경찰 중 누구의 말이 타당성이 있는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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