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해외 도피’ 정한근 “충동적으로 도피…자수하려 했다”

해외 도피 21년 만에 붙잡힌 고(故)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 씨가 수백억 횡령 혐의 재판에서, 자신은 충동적으로 도피한 것이고 체포되지 않았어도 자수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는 오늘(18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재산국외도피) 혐의 등을 받는 정 씨에 대한 심문기일을 열었습니다. 정 씨의 구속기간 만료를 앞두고, 추가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절차였습니다.

검찰은 "오래 도피생활을 했고 혐의가 가볍지 않다"며 구속영장을 추가 발부해 정 씨를 구금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대해 정 씨의 변호인은 "피고인에게는 도망이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고, 대체로 범죄사실을 인정한다"면서도 "피고인은 법원의 선고까지 감내하고 수감돼있겠다는 입장이라 영장이 발부되고 수감 상태에서 재판이 이어지는 것에 특별한 이의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정 씨는 "지난 6월에 체포되지 않았다면 해외 도피를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었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아니다. 아버지의 유지도 본인이 돌아가시면 저는 한국에 돌아가 자수하라는 것이었다"며 귀국 전 마지막 주변 정리를 위해 미국으로 가던 중 체포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파나마에서 그런 식으로 잡혀서 들어오기 싫었고, 조금 떳떳하지는 않지만 자수해서 정리된 상태로 들어오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정 씨는 또 "지금은 결과적으로 죄가 됐지만, 도피 당시에는 아버지와 형이 구속되고 저 혼자 감당하기 너무 벅찼던 상황이었다. 충동적으로 그 상황 자체에서 도피하고 싶었던 것"이라며 재산을 의도적으로 해외로 빼돌리기 위해 도피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정 씨는 이날 "아버님이 언젠가 나오시면 제 문제도 해결해주고, 저도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었지, 이렇게까지 (도피 생활이) 오래 길어지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정 씨는 1997년 11월 한보그룹 자회사인 동아시아가스(EAGC)의 자금 2천6백80만 달러(당시 환율기준 260억여 원)을 횡령해 스위스의 차명 계좌로 빼돌리고 재산을 국외에 은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국세 253억 원을 체납한 혐의 등도 받습니다.

앞서 정 씨는 1998년 6월 횡령 혐의와 관련해 검찰에서 한 차례 조사를 받은 뒤 해외로 도주했습니다. 정 씨는 해외 도피 중이던 아버지 정태수 전 회장의 건강이 나빠지자 에콰도르에 함께 살며 병간호를 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정 전 회장은 지난해 12월 1일 에콰도르에서 숨졌고, 정 씨는 지난 6월 파나마 이민청에 의해 체포돼 국내로 송환됐습니다.

한편 검찰은 심문 전 열린 재판에서, 정 씨의 또 다른 횡령 혐의에 대해 올해 안에 추가 기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