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학상 수상 거부 파문…무슨 일이?

입력 2020.01.08 (08:16) 수정 2020.01.0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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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천재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입니다.

27살의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숨진 그는 '오감도' '건축무한육면각체' '날개' 등 전위적이고 난해한 작품 세계로 그의 소설에 나오는 말마따나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로 불립니다.

시대를 앞서간 그의 문학성을 기리기 위해 1977년 '이상문학상'이 제정됐습니다.

첫 해 김승옥을 대상 수상자로 뽑은 이래 박완서, 이문열, 은희경, 김훈, 한강 등 한국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들을 이 상의 얼굴로 선정했습니다.

회를 거듭하며 전통과 권위가 쌓인 덕분에 수상작품집이 발간되면 어김없이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빨간색 띠를 두른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국 문학 독자들에겐 그래도 믿고 사 볼 수 있는 작품집으로 다가선지 오랩니다.

올해는 이상이 탄생한지 110년 되는 해라 어느 때보다 수상작에 관심이 쏠리던 시기였는데 최근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토록 어려운 과정을 거쳐 수상작에 선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수상 예정자들이 '상 안 받겠다'며 잇달아 거부 의사를 표명한 것입니다.

수상자 발표는 전격 연기됐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 상의 주관사인 출판사가 수상작가에게 내민 계약서가 문제였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니 상을 주는 대신 '작품의 저작권을 출판사에 3년간 양도할 것' 이런 문구가 눈에 띕니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집을 낼 때 수상작을 표제작으로 쓰지 못한다' 즉, 책 제목이 되는 작품으로 쓰지 못한다'는 조건도 달려있습니다.

한마디로 명예를 줄 테니, 권리를 포기하라는 요구나 다름없습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수상작품집 판매를 독점해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는 찬스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창작물에 족쇄를 채우는 셈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수상 예정자들의 반기가 시작됐습니다.

먼저 우수상 수상자 중 한 명인 소설가 김금희 작가입니다.

지난 4일 자신의 SNS에 저작권을 3년간 양도하라는 주최 측 요구를 따를 수 없다며 작가 생활 11년 만에 처음 받게 된 이상문학상을 거부했습니다.

함께 수상 명단에 오른 동료 작가 최은영과 이기호 역시 비슷한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습니다.

해당 출판사는 그동안 대상작의 저작권을 3년간 행사해 왔고, 지난해부터는 우수상 작품까지 이 규정을 확대 적용해왔는데 급기야 올해, 수상 예정자들의 공개 반발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과거 우수상(2007년)과 대상(2008년)을 모두 석권했던 작가 권여선은 이 소식을 접하고 페이스북에 자신의 경험담을 올렸습니다.

"우수상 선정 당시 나는 워낙에 무명작가였던데다 당시 상금 3백만 원은 엄청난 액수였기에 기뻐 날뛰었을 뿐 계약조건이 어떤지는 알지 못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정식 계약을 하러 갔을 때 담당자는 고지한 계약 외에 내가 이 출판사에서 의무적으로 두 권의 책을 발간해야 하는 조건을 추가해 제시했다"고도 밝혔습니다.

이 조건을 수락하지 않고 수상을 거부했더니 당황한 주최측이 한 발 물러서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역시 주최 측은 관행이었다고 항변하지만, 젊은 작가들에게 이런 조건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습니다.

작가들의 당당한 수상 거부에 지지 글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문학평론가 김명인 교수는 "문학을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세상에 싸움을 거는 일이고 작가는 세상에 어깃장을 놓고 싸움을 거는 존재"라는 말로 지지 의사를 밝혔습니다.

앞서 자신의 경험담을 공개한 권여선 작가 역시 "이토록 든든한 작가들이 버티고 있으니" "기쁜 날이고, 참 좋다"고 후배 작가들을 격려했습니다.

‘돈으로 권위를 사지 않고 액수로 명예를 치장하지 않겠다’ 프랑스의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 공쿠르상의 제정 취지입니다.

공쿠르상의 경우, 상금은 10유로 우리 돈 만 3천 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매년 이 상에 전 세계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수상작으로 발표되면 프랑스 서점에만 30만 부 이상이 깔리고, 세계 각국어로 번역돼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이상문학상 제정 취지에 대해 해당 출판사는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본상의 공정성과 권위를 독자에게 널리 알리고, 수록된 작품과 작가들에 대한 표창과 영예의 뜻을 담고 있다' 수상을 거부한 작가 김금희는 말합니다.

“예술가들을 격려하기 위한 시상을 한다면 그들의 노고와 권리를 존중하세요.”

반세기 가까이 구축해 온 문학상의 권위가 무너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주최측이 대책 마련을 부심 중인 가운데 비주류나 신인 작가들의 창구는 개점 휴업을 맞게 됐습니다.

친절한 뉴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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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 파문…무슨 일이?
    • 입력 2020-01-08 08:17:20
    • 수정2020-01-08 10: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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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천재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입니다.

27살의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숨진 그는 '오감도' '건축무한육면각체' '날개' 등 전위적이고 난해한 작품 세계로 그의 소설에 나오는 말마따나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로 불립니다.

시대를 앞서간 그의 문학성을 기리기 위해 1977년 '이상문학상'이 제정됐습니다.

첫 해 김승옥을 대상 수상자로 뽑은 이래 박완서, 이문열, 은희경, 김훈, 한강 등 한국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들을 이 상의 얼굴로 선정했습니다.

회를 거듭하며 전통과 권위가 쌓인 덕분에 수상작품집이 발간되면 어김없이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빨간색 띠를 두른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국 문학 독자들에겐 그래도 믿고 사 볼 수 있는 작품집으로 다가선지 오랩니다.

올해는 이상이 탄생한지 110년 되는 해라 어느 때보다 수상작에 관심이 쏠리던 시기였는데 최근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토록 어려운 과정을 거쳐 수상작에 선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수상 예정자들이 '상 안 받겠다'며 잇달아 거부 의사를 표명한 것입니다.

수상자 발표는 전격 연기됐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 상의 주관사인 출판사가 수상작가에게 내민 계약서가 문제였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니 상을 주는 대신 '작품의 저작권을 출판사에 3년간 양도할 것' 이런 문구가 눈에 띕니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집을 낼 때 수상작을 표제작으로 쓰지 못한다' 즉, 책 제목이 되는 작품으로 쓰지 못한다'는 조건도 달려있습니다.

한마디로 명예를 줄 테니, 권리를 포기하라는 요구나 다름없습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수상작품집 판매를 독점해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는 찬스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창작물에 족쇄를 채우는 셈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수상 예정자들의 반기가 시작됐습니다.

먼저 우수상 수상자 중 한 명인 소설가 김금희 작가입니다.

지난 4일 자신의 SNS에 저작권을 3년간 양도하라는 주최 측 요구를 따를 수 없다며 작가 생활 11년 만에 처음 받게 된 이상문학상을 거부했습니다.

함께 수상 명단에 오른 동료 작가 최은영과 이기호 역시 비슷한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습니다.

해당 출판사는 그동안 대상작의 저작권을 3년간 행사해 왔고, 지난해부터는 우수상 작품까지 이 규정을 확대 적용해왔는데 급기야 올해, 수상 예정자들의 공개 반발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과거 우수상(2007년)과 대상(2008년)을 모두 석권했던 작가 권여선은 이 소식을 접하고 페이스북에 자신의 경험담을 올렸습니다.

"우수상 선정 당시 나는 워낙에 무명작가였던데다 당시 상금 3백만 원은 엄청난 액수였기에 기뻐 날뛰었을 뿐 계약조건이 어떤지는 알지 못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정식 계약을 하러 갔을 때 담당자는 고지한 계약 외에 내가 이 출판사에서 의무적으로 두 권의 책을 발간해야 하는 조건을 추가해 제시했다"고도 밝혔습니다.

이 조건을 수락하지 않고 수상을 거부했더니 당황한 주최측이 한 발 물러서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역시 주최 측은 관행이었다고 항변하지만, 젊은 작가들에게 이런 조건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습니다.

작가들의 당당한 수상 거부에 지지 글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문학평론가 김명인 교수는 "문학을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세상에 싸움을 거는 일이고 작가는 세상에 어깃장을 놓고 싸움을 거는 존재"라는 말로 지지 의사를 밝혔습니다.

앞서 자신의 경험담을 공개한 권여선 작가 역시 "이토록 든든한 작가들이 버티고 있으니" "기쁜 날이고, 참 좋다"고 후배 작가들을 격려했습니다.

‘돈으로 권위를 사지 않고 액수로 명예를 치장하지 않겠다’ 프랑스의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 공쿠르상의 제정 취지입니다.

공쿠르상의 경우, 상금은 10유로 우리 돈 만 3천 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매년 이 상에 전 세계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수상작으로 발표되면 프랑스 서점에만 30만 부 이상이 깔리고, 세계 각국어로 번역돼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이상문학상 제정 취지에 대해 해당 출판사는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본상의 공정성과 권위를 독자에게 널리 알리고, 수록된 작품과 작가들에 대한 표창과 영예의 뜻을 담고 있다' 수상을 거부한 작가 김금희는 말합니다.

“예술가들을 격려하기 위한 시상을 한다면 그들의 노고와 권리를 존중하세요.”

반세기 가까이 구축해 온 문학상의 권위가 무너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주최측이 대책 마련을 부심 중인 가운데 비주류나 신인 작가들의 창구는 개점 휴업을 맞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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