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도시’ 베네치아…‘오버투어리즘’ 몸살

입력 2020.02.22 (22:07) 수정 2020.02.22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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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버(Over)'와 '투어리즘(Tourism)'이 합쳐진 말로, 과도하게 몰려든 관광객들이 관광지 주민들의 삶을 침범하는 현상.

바로 이 '오버투어리즘'으로, 세계 관광지들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유엔 세계관광기구가 심각 지역으로 분류한 베네치아의 경우 관광객 규제 강화로 '벌금의 도시'라는 오명이 붙은데다 원주민들도 하나둘 떠나면서 도심 공동화 현상도 심각한데요.

송영석 순회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물의 도시, 베네치아.

전 세계 관광객들이 종일 밀려듭니다.

118개의 섬을 잇는 수상버스 이용객만 하루 수만 명.

저는 지금 명소인 리알토 다리로 향하고 있는데요.

아침 8시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배안이 발디딜 틈 없을 정도로 붐비고 있습니다.

셀카 장소로 유명한 리알토 다리.

촬영지점까지 가려면, 좁은 골목 요리조리 ... 인파를 피해가며... 한발한발 계단도 올라야 합니다.

비잔틴 건축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산마르코 대성당 주변도 내부를 구경하려는 관광객들로 장사진입니다.

[메리 제인/미국인 관광객 : "그들은 시설을 보호해야 하지만 더 좋은 시스템을 갖춰야 해요. 베네치아를 쭉 둘러보고 싶은데 이렇게 하루 종일 줄을 서야 해요."]

베네치아 관광의 필수 코스인 산마르코 광장.

쓰레기통이나 벽 곳곳에 경고문이 붙었습니다.

음식을 먹지도 앉지도 말라! 수영도, 새에게 모이주기도 금지한다.

이를 어길경우, 25에서 최대 500유로까지 벌금을 내야 한다고 써있습니다.

지난해 9월, 산마르코 광장 앞 바다에 나체로 뛰어든 체코인 관광객 2명은 벌금 3천 유로를 내야 했고 ...

리알토 다리 아래서 커피를 끓여 마신 30대 독일 커플은 벌금 950 유로를 내고 추방됐습니다.

원주민 5만 명에 불과한 베네치아를 찾는 관광객은 연간 약 3천만 명 ...

명소마다 연중 외국인들로 북새통입니다.

그렇다보니, 집집마다 내걸린 '접근 금지' 표지판이 보여주듯 관광객에 대한 거부감도 상당합니다.

'사유지니 건너지 말라'는 다리 위에도 관광객이 몰려들고, 사유지로 넘어가는 경우도 다반삽니다.

[독일인 관광객 : "(표지판을 못 보셨나요?) 네. (그래서 넘어가신 건 가요?) 네 ..."]

주거지역으로 통하는 2곳에 원주민만 드나들 수 있는 검문소까지 등장한 이윱니다.

검문소에 있던 자리에 나와봤습니다.

지금은 보시다시피 아무 것도 없죠. 요즘같은 비성수기에는 저도 그렇고 모든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수기가 되면 다시 검문소를 설치해서 통행을 엄격하게 통제할 거라고 합니다.

베네치아 중심을 관통하는 주데카 운하.

건물 한켠에 '크루즈선 입항 반대'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이 운하에선 지난해 여름, 6만 5천톤 급 크루즈선의 부두 돌진 사고가 도화선이 돼 대형 크루즈선 입항 반대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크루즈선 이용객의 경우 대부분 당일치기 관광에 그쳐 상권에 도움은 안되고 도시만 어지럽힌다는 주민들의 반감을 키운 겁니다.

베네치아시는 관광 수요 억제 조치로 도시를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호텔 비용에 관광세를 포함해 부과합니다.

[베네치아 호텔 직원 : "1인당 하루에 4.5 유로입니다. (이틀 묵으면요?) 9유로입니다. (1인당 9유로요?) 네 그렇습니다."]

주데카 운하 시위 이후부턴 당일치기 관광객에게도 1인당 최고 10유로씩 관광세를 받습니다.

또,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호텔 신축을 금지했고, 관광객 규제도 강화했습니다.

다만, 관광객들의 반감을 우려해 아직은 계도 위주로 단속 중입니다.

[파올라 마르/베네치아시 관광국장 : "베네치아는 다른 도시와는 다른 규칙들을 갖고 있는 유일한 도시입니다. '즐겨라·존중하라' 캠페인을 통해 그 규칙들을 알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베네치아 도심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보면 분위기는 확 달라집니다.

아무도 살지 않은 채 방치돼온 집이 한집 건너 한집일 정돕니다.

[마르첼라/베네치아 80년 거주 : "여기에 빵집. 여기에는 우유집이 있었고 여기에는 담배 가게가 있었어요. 지금 (기념품) 그림과 유리 가게 밖에 없어요. 모두가 떠났어요."]

1950년대 17만 명이 넘었던 베네치아 인구는 현재 5만 명선으로 크게 줄었습니다.

높은 물가와 임대료 등 세계적인 관광도시라는 명성 이면의 그림자가 주민들을 떠나게 한 겁니다.

[엘레나 리우/이탈리아 4·25 연대 : "주민 없는 베네치아는 빈도시, 가짜도시, 놀이공원과 같습니다. 관광과 도시가 충돌하지 않고 상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탈리아 수도 로마도 매년 2천 8백만 명이 찾는 관광 도십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여 주인공이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스페인 계단.

하지만 이제 영화 속 장면처럼 할 수 없습니다.

이곳에 걸터 앉는 건 물론이고 계단에 앉아도 안되고요.

누워서도 안됩니다.

음식을 먹는 것도 엄격히 금지됐습니다.

매의 눈으로 감시하는 경찰관과 눈치보는 관광객들.

편안한 휴식처로 인식됐던 과거와 사뭇 달라진 풍경입니다.

지난해부터 법이 바뀌었기 때문인데 위반할 경우 최대 400유로의 벌금을 내야 합니다.

후기 바로크 양식의 걸작 트레비 분수 ...

입을 대고 물을 마시거나 물 속에 뛰어드는 행위 등이 금지되면서 이곳에도 단속 요원들이 배치됐습니다.

[알렉산더 리마/핀란드 관광객 : "괜찮다고 생각해요. 유서 깊은 장소라 보호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카트리나 칸다이아시/에콰도르 관광객 : "미친 생각 같다고 생각했어요. 매우 불편해지더군요."]

2018년, 전체 국제 여행객 14억 명의 36%인 5억 명이 전 세계 인기 도시 3백 곳 중 1곳에 몰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갈수록 느는 해외여행자들이 특정 도시로 쏠리는 현상이 지속되는한 오버투어리즘 논쟁도 뜨거워질 전망입니다.

베네치아, 로마에서 송영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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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의도시’ 베네치아…‘오버투어리즘’ 몸살
    • 입력 2020-02-22 22:33:30
    • 수정2020-02-22 22:58:15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앵커]

'오버(Over)'와 '투어리즘(Tourism)'이 합쳐진 말로, 과도하게 몰려든 관광객들이 관광지 주민들의 삶을 침범하는 현상.

바로 이 '오버투어리즘'으로, 세계 관광지들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유엔 세계관광기구가 심각 지역으로 분류한 베네치아의 경우 관광객 규제 강화로 '벌금의 도시'라는 오명이 붙은데다 원주민들도 하나둘 떠나면서 도심 공동화 현상도 심각한데요.

송영석 순회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물의 도시, 베네치아.

전 세계 관광객들이 종일 밀려듭니다.

118개의 섬을 잇는 수상버스 이용객만 하루 수만 명.

저는 지금 명소인 리알토 다리로 향하고 있는데요.

아침 8시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배안이 발디딜 틈 없을 정도로 붐비고 있습니다.

셀카 장소로 유명한 리알토 다리.

촬영지점까지 가려면, 좁은 골목 요리조리 ... 인파를 피해가며... 한발한발 계단도 올라야 합니다.

비잔틴 건축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산마르코 대성당 주변도 내부를 구경하려는 관광객들로 장사진입니다.

[메리 제인/미국인 관광객 : "그들은 시설을 보호해야 하지만 더 좋은 시스템을 갖춰야 해요. 베네치아를 쭉 둘러보고 싶은데 이렇게 하루 종일 줄을 서야 해요."]

베네치아 관광의 필수 코스인 산마르코 광장.

쓰레기통이나 벽 곳곳에 경고문이 붙었습니다.

음식을 먹지도 앉지도 말라! 수영도, 새에게 모이주기도 금지한다.

이를 어길경우, 25에서 최대 500유로까지 벌금을 내야 한다고 써있습니다.

지난해 9월, 산마르코 광장 앞 바다에 나체로 뛰어든 체코인 관광객 2명은 벌금 3천 유로를 내야 했고 ...

리알토 다리 아래서 커피를 끓여 마신 30대 독일 커플은 벌금 950 유로를 내고 추방됐습니다.

원주민 5만 명에 불과한 베네치아를 찾는 관광객은 연간 약 3천만 명 ...

명소마다 연중 외국인들로 북새통입니다.

그렇다보니, 집집마다 내걸린 '접근 금지' 표지판이 보여주듯 관광객에 대한 거부감도 상당합니다.

'사유지니 건너지 말라'는 다리 위에도 관광객이 몰려들고, 사유지로 넘어가는 경우도 다반삽니다.

[독일인 관광객 : "(표지판을 못 보셨나요?) 네. (그래서 넘어가신 건 가요?) 네 ..."]

주거지역으로 통하는 2곳에 원주민만 드나들 수 있는 검문소까지 등장한 이윱니다.

검문소에 있던 자리에 나와봤습니다.

지금은 보시다시피 아무 것도 없죠. 요즘같은 비성수기에는 저도 그렇고 모든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수기가 되면 다시 검문소를 설치해서 통행을 엄격하게 통제할 거라고 합니다.

베네치아 중심을 관통하는 주데카 운하.

건물 한켠에 '크루즈선 입항 반대'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이 운하에선 지난해 여름, 6만 5천톤 급 크루즈선의 부두 돌진 사고가 도화선이 돼 대형 크루즈선 입항 반대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크루즈선 이용객의 경우 대부분 당일치기 관광에 그쳐 상권에 도움은 안되고 도시만 어지럽힌다는 주민들의 반감을 키운 겁니다.

베네치아시는 관광 수요 억제 조치로 도시를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호텔 비용에 관광세를 포함해 부과합니다.

[베네치아 호텔 직원 : "1인당 하루에 4.5 유로입니다. (이틀 묵으면요?) 9유로입니다. (1인당 9유로요?) 네 그렇습니다."]

주데카 운하 시위 이후부턴 당일치기 관광객에게도 1인당 최고 10유로씩 관광세를 받습니다.

또,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호텔 신축을 금지했고, 관광객 규제도 강화했습니다.

다만, 관광객들의 반감을 우려해 아직은 계도 위주로 단속 중입니다.

[파올라 마르/베네치아시 관광국장 : "베네치아는 다른 도시와는 다른 규칙들을 갖고 있는 유일한 도시입니다. '즐겨라·존중하라' 캠페인을 통해 그 규칙들을 알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베네치아 도심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보면 분위기는 확 달라집니다.

아무도 살지 않은 채 방치돼온 집이 한집 건너 한집일 정돕니다.

[마르첼라/베네치아 80년 거주 : "여기에 빵집. 여기에는 우유집이 있었고 여기에는 담배 가게가 있었어요. 지금 (기념품) 그림과 유리 가게 밖에 없어요. 모두가 떠났어요."]

1950년대 17만 명이 넘었던 베네치아 인구는 현재 5만 명선으로 크게 줄었습니다.

높은 물가와 임대료 등 세계적인 관광도시라는 명성 이면의 그림자가 주민들을 떠나게 한 겁니다.

[엘레나 리우/이탈리아 4·25 연대 : "주민 없는 베네치아는 빈도시, 가짜도시, 놀이공원과 같습니다. 관광과 도시가 충돌하지 않고 상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탈리아 수도 로마도 매년 2천 8백만 명이 찾는 관광 도십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여 주인공이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스페인 계단.

하지만 이제 영화 속 장면처럼 할 수 없습니다.

이곳에 걸터 앉는 건 물론이고 계단에 앉아도 안되고요.

누워서도 안됩니다.

음식을 먹는 것도 엄격히 금지됐습니다.

매의 눈으로 감시하는 경찰관과 눈치보는 관광객들.

편안한 휴식처로 인식됐던 과거와 사뭇 달라진 풍경입니다.

지난해부터 법이 바뀌었기 때문인데 위반할 경우 최대 400유로의 벌금을 내야 합니다.

후기 바로크 양식의 걸작 트레비 분수 ...

입을 대고 물을 마시거나 물 속에 뛰어드는 행위 등이 금지되면서 이곳에도 단속 요원들이 배치됐습니다.

[알렉산더 리마/핀란드 관광객 : "괜찮다고 생각해요. 유서 깊은 장소라 보호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카트리나 칸다이아시/에콰도르 관광객 : "미친 생각 같다고 생각했어요. 매우 불편해지더군요."]

2018년, 전체 국제 여행객 14억 명의 36%인 5억 명이 전 세계 인기 도시 3백 곳 중 1곳에 몰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갈수록 느는 해외여행자들이 특정 도시로 쏠리는 현상이 지속되는한 오버투어리즘 논쟁도 뜨거워질 전망입니다.

베네치아, 로마에서 송영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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