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잔혹사도 교훈으로”…독일 최대 강제수용소
입력 2020.03.03 (10:44)
수정 2020.03.0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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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2차 세계대전 당시 각종 고문과 생체실험 등이 자행된 나치 독일의 강제수용소가 지금은 생생한 역사교육 현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잔혹한 역사도 교훈으로 삼을 줄 아는 용기가 진정한 과거사 반성이란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독일 최대 강제수용소를 유광석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나치 독일이 2차대전 전인 1937년에 세운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40헥타르에 이르는 수용소 외곽을 전기 철조망으로 둘러쌌습니다.
[크리스티안 옌쉬/부헨발트 수용소 홍보팀 : "강한 전류가 흐르던 철조망이 있었는데, 짙은 선 쪽으로 가는 수감자가 있으면 경고 없이 즉시 발사했습니다."]
이 방에서는 인체실험과 생체해부가 자행됐습니다.
나치는 새로운 독극물과 해독제를 만들면 먼저 부헨발트에서 실험을 거쳤습니다.
[구바/폴란드인 관람객 : "충격적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조건에서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생체실험이 끝난 시신들은 10번이라고 쓰인 이 나무문을 통해 처리실로 옮겨졌습니다.
시체 처리실은 다름 아닌 소각장이었습니다.
대형 소각로에선 하루에 4백 구의 시신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크리스티안 옌쉬/부헨발트 수용소 홍보팀 : "나치는 수용소의 수많은 시신들을 최대한 빨리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에르푸르트에 있는 회사에 소각로 설계를 의뢰했습니다."]
사람 피부로 만든 전등 갓, 벗겨낸 피부에 그린 외설적인 그림, 축소시킨 사람의 머리.
1945년 수용소에 도착한 연합군이 촬영한 영상에는 나치 잔혹사가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유대인과 정치범 등 수감자 28만여 명 가운데 5만 6천여 명이 굶주림과 강제노역, 고문, 질병 등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테레자 마이스너/독일인 관람객 : "이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절대 잊어서는 안되고, 다른 사람을 경멸하고 파괴하는 행동이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강제수용소 해방 75주년, 잔혹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KBS 뉴스 유광석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각종 고문과 생체실험 등이 자행된 나치 독일의 강제수용소가 지금은 생생한 역사교육 현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잔혹한 역사도 교훈으로 삼을 줄 아는 용기가 진정한 과거사 반성이란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독일 최대 강제수용소를 유광석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나치 독일이 2차대전 전인 1937년에 세운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40헥타르에 이르는 수용소 외곽을 전기 철조망으로 둘러쌌습니다.
[크리스티안 옌쉬/부헨발트 수용소 홍보팀 : "강한 전류가 흐르던 철조망이 있었는데, 짙은 선 쪽으로 가는 수감자가 있으면 경고 없이 즉시 발사했습니다."]
이 방에서는 인체실험과 생체해부가 자행됐습니다.
나치는 새로운 독극물과 해독제를 만들면 먼저 부헨발트에서 실험을 거쳤습니다.
[구바/폴란드인 관람객 : "충격적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조건에서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생체실험이 끝난 시신들은 10번이라고 쓰인 이 나무문을 통해 처리실로 옮겨졌습니다.
시체 처리실은 다름 아닌 소각장이었습니다.
대형 소각로에선 하루에 4백 구의 시신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크리스티안 옌쉬/부헨발트 수용소 홍보팀 : "나치는 수용소의 수많은 시신들을 최대한 빨리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에르푸르트에 있는 회사에 소각로 설계를 의뢰했습니다."]
사람 피부로 만든 전등 갓, 벗겨낸 피부에 그린 외설적인 그림, 축소시킨 사람의 머리.
1945년 수용소에 도착한 연합군이 촬영한 영상에는 나치 잔혹사가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유대인과 정치범 등 수감자 28만여 명 가운데 5만 6천여 명이 굶주림과 강제노역, 고문, 질병 등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테레자 마이스너/독일인 관람객 : "이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절대 잊어서는 안되고, 다른 사람을 경멸하고 파괴하는 행동이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강제수용소 해방 75주년, 잔혹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KBS 뉴스 유광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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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치 잔혹사도 교훈으로”…독일 최대 강제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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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0-03-03 10:44:36
- 수정2020-03-03 11:02:58

[앵커]
2차 세계대전 당시 각종 고문과 생체실험 등이 자행된 나치 독일의 강제수용소가 지금은 생생한 역사교육 현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잔혹한 역사도 교훈으로 삼을 줄 아는 용기가 진정한 과거사 반성이란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독일 최대 강제수용소를 유광석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나치 독일이 2차대전 전인 1937년에 세운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40헥타르에 이르는 수용소 외곽을 전기 철조망으로 둘러쌌습니다.
[크리스티안 옌쉬/부헨발트 수용소 홍보팀 : "강한 전류가 흐르던 철조망이 있었는데, 짙은 선 쪽으로 가는 수감자가 있으면 경고 없이 즉시 발사했습니다."]
이 방에서는 인체실험과 생체해부가 자행됐습니다.
나치는 새로운 독극물과 해독제를 만들면 먼저 부헨발트에서 실험을 거쳤습니다.
[구바/폴란드인 관람객 : "충격적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조건에서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생체실험이 끝난 시신들은 10번이라고 쓰인 이 나무문을 통해 처리실로 옮겨졌습니다.
시체 처리실은 다름 아닌 소각장이었습니다.
대형 소각로에선 하루에 4백 구의 시신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크리스티안 옌쉬/부헨발트 수용소 홍보팀 : "나치는 수용소의 수많은 시신들을 최대한 빨리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에르푸르트에 있는 회사에 소각로 설계를 의뢰했습니다."]
사람 피부로 만든 전등 갓, 벗겨낸 피부에 그린 외설적인 그림, 축소시킨 사람의 머리.
1945년 수용소에 도착한 연합군이 촬영한 영상에는 나치 잔혹사가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유대인과 정치범 등 수감자 28만여 명 가운데 5만 6천여 명이 굶주림과 강제노역, 고문, 질병 등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테레자 마이스너/독일인 관람객 : "이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절대 잊어서는 안되고, 다른 사람을 경멸하고 파괴하는 행동이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강제수용소 해방 75주년, 잔혹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KBS 뉴스 유광석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각종 고문과 생체실험 등이 자행된 나치 독일의 강제수용소가 지금은 생생한 역사교육 현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잔혹한 역사도 교훈으로 삼을 줄 아는 용기가 진정한 과거사 반성이란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독일 최대 강제수용소를 유광석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나치 독일이 2차대전 전인 1937년에 세운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40헥타르에 이르는 수용소 외곽을 전기 철조망으로 둘러쌌습니다.
[크리스티안 옌쉬/부헨발트 수용소 홍보팀 : "강한 전류가 흐르던 철조망이 있었는데, 짙은 선 쪽으로 가는 수감자가 있으면 경고 없이 즉시 발사했습니다."]
이 방에서는 인체실험과 생체해부가 자행됐습니다.
나치는 새로운 독극물과 해독제를 만들면 먼저 부헨발트에서 실험을 거쳤습니다.
[구바/폴란드인 관람객 : "충격적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조건에서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생체실험이 끝난 시신들은 10번이라고 쓰인 이 나무문을 통해 처리실로 옮겨졌습니다.
시체 처리실은 다름 아닌 소각장이었습니다.
대형 소각로에선 하루에 4백 구의 시신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크리스티안 옌쉬/부헨발트 수용소 홍보팀 : "나치는 수용소의 수많은 시신들을 최대한 빨리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에르푸르트에 있는 회사에 소각로 설계를 의뢰했습니다."]
사람 피부로 만든 전등 갓, 벗겨낸 피부에 그린 외설적인 그림, 축소시킨 사람의 머리.
1945년 수용소에 도착한 연합군이 촬영한 영상에는 나치 잔혹사가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유대인과 정치범 등 수감자 28만여 명 가운데 5만 6천여 명이 굶주림과 강제노역, 고문, 질병 등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테레자 마이스너/독일인 관람객 : "이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절대 잊어서는 안되고, 다른 사람을 경멸하고 파괴하는 행동이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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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석 기자 ksyo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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