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팀장은 왜?]② 경찰청·판례·유권해석 다 ‘무죄’라는데 군포서는 계속 수사

입력 2020.03.0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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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시청 건축과 광고물 팀장으로 일하던 박 모 씨는 발령 3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다른 부서 평직원으로 발령 났다. 각 정당이 아무 데나 걸어 놓은 '불법 현수막'을 단속해 철거한 직후였다. '인사 불이익'이라고 생각한 박 씨는 이 문제를 외부에 알리려다 공공기록물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신세가 됐다. 지난 5개월 동안 박 씨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두 차례에 걸쳐 들여다본다.

[박 팀장은 왜?]① 불법 단속 후 ‘팀장→평직원’…군포시청에 무슨 일이?


억울함 알리려 지인에게 상의
불법 현수막을 단속한 이후 팀장에서 평직원으로 '무보직 발령' 난 것이 인사 불이익이라고 생각한 박 씨는 지난해 11월 초부터 소청과 언론 제보 등 문제 제기를 준비했다.

박 씨는 정책감사실에 제출했던 현수막 단속 관련 경위서를 평소 알던 기자에게 줬다. 자신이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살펴봐 달라는 취지였다.

내용을 살펴본 이 기자는 박 씨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동료 기자들에게 경위서를 공유했다. 이 기자는 "내용을 읽어보니 억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를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경위서에는 시청에서 생산한 문서 일부가 포함돼 있었다. 모두 박 씨의 현수막 단속 과정을 뒷받침하는 문서들이었다. 정당 현수막의 불법성에 대해 국민신문고에 문의하고 받은 답변, 법무법인 3곳에서 받은 법률 자문, 군포시가 각 정당에 보냈던 공문 등이었는데, 모두 '복사본'이었다.

경위서가 여러 기자에게 공유된 사실을 뒤늦게 안 박 씨는 처음 경위서를 줬던 기자에게 자료를 돌려받았고, 경위서를 받아본 기자들에게 취재를 원치 않는다는 의사도 전했다.


군포경찰서, 첩보 입수했다며 수사
이 일은 군포시청이 알게 되면서 '사건화' 됐다. 군포시의회에서 한 시의원은 "시청에 있는 공문을 막 집어다가 그냥 언론사에 줘도 되느냐"며 비판했고, 군포시는 징계를 위한 조사에 들어갔다.

군포시가 징계 절차를 막 시작했을 무렵인 지난해 11~12월쯤 군포경찰서 수사과 지능팀이 관련 내용을 첩보로 입수하고 내사에 착수했다. 박 씨는 "경찰이 '첩보를 생산하는 부서에서 내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경찰에서 첩보를 생산하는 부서는 정보과이다. 군포경찰서 정보과 책임자들에게 지난달 중순 첩보 입수 경위를 묻자 "인사 발령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른다"고 말했다.

경찰은 내사 중이었던 지난달 초 박 씨를 한차례 불러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고, 이후 공공기록물법 유출 혐의 피의자로 입건됐다며 또 조사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누군가 고소·고발한 사건은 고소·고발 접수 이후 피고소(고발)인은 자동으로 피의자로 입건된다. 그러나 경찰이 내사를 거치는 사건에서 피의자 입건은 의미가 좀 다르다.

경찰이 내사 이후 입건하는 경우는 ①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 필요성이 있거나, ②혐의가 있다고 1차 판단을 내렸을 때, 2가지로 보면 된다. 내사 단계에서는 영장 발부가 필요한 강제 수사를 할 수 없고,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면 내사 종결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박 씨의 변호인은 "이 사건은 내사 단계에서 경위서를 입수했고 박 씨가 사실관계를 부인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압수수색으로 자료를 확보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경찰이 박 씨에게 혐의가 있다고 1차 판단을 내린 경우뿐이다.


경찰청·판례·유권해석 다 '무죄'
그러나 공공기록물 유출 혐의와 관련한 법원의 판례와 법무부 유권해석, 경찰청의 법률 자문을 보면 복사본을 유출한 박 씨 사건에 공공기록물법을 적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무죄라는 의미다.

경찰이 박 씨가 위반했다고 보고 있는 내용은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51조이다. 51조는 '기록물을 무단으로 은닉하거나 유출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법원 판례에서는 공공기록물법 처벌 조항에서 규정하는 '기록물'은 복사본이 아니라 '원본'이라고 보고 있다. 기록물 유출을 처벌하는 취지가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기록물의 보존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학부모의 교원 평가 내용 복사본을 유출한 사건과 지방자치단체의 지적원도 복사본을 유출한 사건은 법원에서 모두 무죄가 확정됐고, 건축 관련 원본 서류철을 유출한 사건만 벌금 300만 원이 선고됐다.

법무부도 법원 판례와 같은 취지의 유권해석을 했다. 공공기록물법 처벌 조항의 기록물은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원본이고 복사본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복사본을 유출했다고 해도 공공기록물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경찰청의 법률 자문도 법무부 유권해석을 따르고 있다. 일선서 수사에 법률 자문을 해주는 경찰청 '현장법률 365'의 답변을 보면, 복사본에는 공공기록물법 적용이 어렵다고 자문하고 있다.

이렇게 법원 판례, 법무부 유권해석, 경찰청 법률 자문이 모두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군포경찰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19년간 기소 사례 단 10건
공공기록물법 위반 사건은 기소 사례도 많지 않다. '검찰연감'을 보면 공공기록물법이 제정된 2000년부터 2018년까지 검찰이 처리한 공공기록물법 위반 사건은 180건이다.

여기에는 기록물 유출뿐만 아니라, 은닉·손상·멸실 등이 모두 포함된다. 180건 가운데 재판에 넘긴 사건은 단 10건이고, 157건이 불기소 처리됐다. 검찰로 사건이 넘어가더라도 기소까지 가는 일은 상당히 드물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박 씨는 본인의 억울함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 본인이 쓴 경위서를 단 한 사람에게만 전달했고, 그 경위서에 시청 문서가 포함돼 있었다. 경위서가 여러 기자에게 퍼진 건 박 씨의 의도가 아니었다.

박 씨는 "경찰이 어떤 틀을 짜놓고 나를 피의자로, 기소 의견 송치로 가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 씨의 수사 요청은 거부
박 씨는 죄가 되지 않는데도 수사를 받는 상황도 억울해 하고 있지만, 경찰의 잣대가 불공정하다는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현수막 단속 과정에서 박 씨는 정당 불법 현수막을 단속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윗선에서 묵살하고 정당한 법 집행을 막았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박 씨는 내사 단계에서 낸 진술서와 참고인 조사에서 시청 윗선도 직권남용 등 혐의로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박 씨는 "경찰이 정식 고소장을 내라고 했다"며 "내 사건은 고소도 없었는데 첩보를 받았다며 수사하고, 시청 윗선은 고소장을 내라며 수사하지 않는 건 불공정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박 씨의 문제 제기와 박 씨 사건의 수사 착수 경위, 판례·유권해석·경찰청 자문 등에 관해 묻기 위해 군포경찰서 수사과 책임자와 모두 세 차례 통화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이 책임자는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며, 수사 중인 사안이라 답을 할 수도 없다고 했다. 마지막 통화에서는 만나자는 요청도 거절했고, 취재를 거부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했다. 군포경찰서의 입장도 기사에 반영하려고 노력했지만, 취재 거부로 아무런 입장도 담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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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 팀장은 왜?]② 경찰청·판례·유권해석 다 ‘무죄’라는데 군포서는 계속 수사
    • 입력 2020-03-05 10:02:15
    취재K
군포시청 건축과 광고물 팀장으로 일하던 박 모 씨는 발령 3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다른 부서 평직원으로 발령 났다. 각 정당이 아무 데나 걸어 놓은 '불법 현수막'을 단속해 철거한 직후였다. '인사 불이익'이라고 생각한 박 씨는 이 문제를 외부에 알리려다 공공기록물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신세가 됐다. 지난 5개월 동안 박 씨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두 차례에 걸쳐 들여다본다.

[박 팀장은 왜?]① 불법 단속 후 ‘팀장→평직원’…군포시청에 무슨 일이?


억울함 알리려 지인에게 상의
불법 현수막을 단속한 이후 팀장에서 평직원으로 '무보직 발령' 난 것이 인사 불이익이라고 생각한 박 씨는 지난해 11월 초부터 소청과 언론 제보 등 문제 제기를 준비했다.

박 씨는 정책감사실에 제출했던 현수막 단속 관련 경위서를 평소 알던 기자에게 줬다. 자신이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살펴봐 달라는 취지였다.

내용을 살펴본 이 기자는 박 씨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동료 기자들에게 경위서를 공유했다. 이 기자는 "내용을 읽어보니 억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를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경위서에는 시청에서 생산한 문서 일부가 포함돼 있었다. 모두 박 씨의 현수막 단속 과정을 뒷받침하는 문서들이었다. 정당 현수막의 불법성에 대해 국민신문고에 문의하고 받은 답변, 법무법인 3곳에서 받은 법률 자문, 군포시가 각 정당에 보냈던 공문 등이었는데, 모두 '복사본'이었다.

경위서가 여러 기자에게 공유된 사실을 뒤늦게 안 박 씨는 처음 경위서를 줬던 기자에게 자료를 돌려받았고, 경위서를 받아본 기자들에게 취재를 원치 않는다는 의사도 전했다.


군포경찰서, 첩보 입수했다며 수사
이 일은 군포시청이 알게 되면서 '사건화' 됐다. 군포시의회에서 한 시의원은 "시청에 있는 공문을 막 집어다가 그냥 언론사에 줘도 되느냐"며 비판했고, 군포시는 징계를 위한 조사에 들어갔다.

군포시가 징계 절차를 막 시작했을 무렵인 지난해 11~12월쯤 군포경찰서 수사과 지능팀이 관련 내용을 첩보로 입수하고 내사에 착수했다. 박 씨는 "경찰이 '첩보를 생산하는 부서에서 내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경찰에서 첩보를 생산하는 부서는 정보과이다. 군포경찰서 정보과 책임자들에게 지난달 중순 첩보 입수 경위를 묻자 "인사 발령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른다"고 말했다.

경찰은 내사 중이었던 지난달 초 박 씨를 한차례 불러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고, 이후 공공기록물법 유출 혐의 피의자로 입건됐다며 또 조사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누군가 고소·고발한 사건은 고소·고발 접수 이후 피고소(고발)인은 자동으로 피의자로 입건된다. 그러나 경찰이 내사를 거치는 사건에서 피의자 입건은 의미가 좀 다르다.

경찰이 내사 이후 입건하는 경우는 ①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 필요성이 있거나, ②혐의가 있다고 1차 판단을 내렸을 때, 2가지로 보면 된다. 내사 단계에서는 영장 발부가 필요한 강제 수사를 할 수 없고,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면 내사 종결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박 씨의 변호인은 "이 사건은 내사 단계에서 경위서를 입수했고 박 씨가 사실관계를 부인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압수수색으로 자료를 확보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경찰이 박 씨에게 혐의가 있다고 1차 판단을 내린 경우뿐이다.


경찰청·판례·유권해석 다 '무죄'
그러나 공공기록물 유출 혐의와 관련한 법원의 판례와 법무부 유권해석, 경찰청의 법률 자문을 보면 복사본을 유출한 박 씨 사건에 공공기록물법을 적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무죄라는 의미다.

경찰이 박 씨가 위반했다고 보고 있는 내용은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51조이다. 51조는 '기록물을 무단으로 은닉하거나 유출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법원 판례에서는 공공기록물법 처벌 조항에서 규정하는 '기록물'은 복사본이 아니라 '원본'이라고 보고 있다. 기록물 유출을 처벌하는 취지가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기록물의 보존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학부모의 교원 평가 내용 복사본을 유출한 사건과 지방자치단체의 지적원도 복사본을 유출한 사건은 법원에서 모두 무죄가 확정됐고, 건축 관련 원본 서류철을 유출한 사건만 벌금 300만 원이 선고됐다.

법무부도 법원 판례와 같은 취지의 유권해석을 했다. 공공기록물법 처벌 조항의 기록물은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원본이고 복사본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복사본을 유출했다고 해도 공공기록물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경찰청의 법률 자문도 법무부 유권해석을 따르고 있다. 일선서 수사에 법률 자문을 해주는 경찰청 '현장법률 365'의 답변을 보면, 복사본에는 공공기록물법 적용이 어렵다고 자문하고 있다.

이렇게 법원 판례, 법무부 유권해석, 경찰청 법률 자문이 모두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군포경찰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19년간 기소 사례 단 10건
공공기록물법 위반 사건은 기소 사례도 많지 않다. '검찰연감'을 보면 공공기록물법이 제정된 2000년부터 2018년까지 검찰이 처리한 공공기록물법 위반 사건은 180건이다.

여기에는 기록물 유출뿐만 아니라, 은닉·손상·멸실 등이 모두 포함된다. 180건 가운데 재판에 넘긴 사건은 단 10건이고, 157건이 불기소 처리됐다. 검찰로 사건이 넘어가더라도 기소까지 가는 일은 상당히 드물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박 씨는 본인의 억울함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 본인이 쓴 경위서를 단 한 사람에게만 전달했고, 그 경위서에 시청 문서가 포함돼 있었다. 경위서가 여러 기자에게 퍼진 건 박 씨의 의도가 아니었다.

박 씨는 "경찰이 어떤 틀을 짜놓고 나를 피의자로, 기소 의견 송치로 가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 씨의 수사 요청은 거부
박 씨는 죄가 되지 않는데도 수사를 받는 상황도 억울해 하고 있지만, 경찰의 잣대가 불공정하다는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현수막 단속 과정에서 박 씨는 정당 불법 현수막을 단속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윗선에서 묵살하고 정당한 법 집행을 막았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박 씨는 내사 단계에서 낸 진술서와 참고인 조사에서 시청 윗선도 직권남용 등 혐의로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박 씨는 "경찰이 정식 고소장을 내라고 했다"며 "내 사건은 고소도 없었는데 첩보를 받았다며 수사하고, 시청 윗선은 고소장을 내라며 수사하지 않는 건 불공정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박 씨의 문제 제기와 박 씨 사건의 수사 착수 경위, 판례·유권해석·경찰청 자문 등에 관해 묻기 위해 군포경찰서 수사과 책임자와 모두 세 차례 통화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이 책임자는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며, 수사 중인 사안이라 답을 할 수도 없다고 했다. 마지막 통화에서는 만나자는 요청도 거절했고, 취재를 거부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했다. 군포경찰서의 입장도 기사에 반영하려고 노력했지만, 취재 거부로 아무런 입장도 담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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