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선 전쟁…계속되는 아픔

입력 2020.03.28 (08:01) 수정 2020.03.2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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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쟁과 분단의 아픔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유일하게 남과 북으로 행정구역이 나뉜 곳, 한때 육로관광의 길목이기도 했던 강원도 고성은 그 흔적이 생생히 남아 있는데요,

대한민국 통일 1번지이면서 분단의 고통이 공존하는 강원도 고성을 채유나 리포터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어두웠던 하늘이 푸른빛으로 변하고, 동이 튼 거진항에도 새로운 하루가 시작됩니다.

["(선장님 안녕하세요.) 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40년 넘게 바다와 함께 해 온 권창순 선장도 서둘러 조업에 나섭니다.

["(오늘 고기 많이 잡을 수 있나요?) 글쎄요. (자연이) 주는 대로 먹어야지 내 욕심대로 어떻게 사나요. (주로 어떤 고기를 잡나요?) 임연수요."]

거진항에서 20여분을 달려 도착한 곳. 부표를 거두기가 무섭게 그물을 끌어 올리는데요,

이제 보지 않고도 그물을 감아 낼 만큼 익숙해진 일이지만,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권창순/거진자망협회장 : "저기가 북한이잖아. 저기가. (금강산은 어느 쪽이에요?)]

[권창순/거진자망협회장 : 저쪽 섬 하나 이렇게(둥글게) 나온 거 있지. 그게 구선봉이라고. 구선봉. 명칭은 구선봉이고 우리는 돌산이라고 하는데 거기서 쭉 올라가면 금강산이라고."]

그야말로 지척에 있는 북녘 땅. 고성 앞 바다는 동해의 최북단.

남과 북이 가장 가깝게 닿아 있는 곳인데요, 그래서 종종 북한 어선이 남한 수역으로 넘어 오는 일도 있다고 합니다.

[권창순/거진자망협회장 : "저 섬 밖에 보면 우리나라 경비정들이 쭉 있다고. 그 배들이 레이더를 돌려서 북한 어선이 나타나면 그 어선들을 귀환조치 시키고 그러잖아."]

근래엔 조업을 하다 퇴거 조치되는 어선이 급증하고 있어, 어민들 불안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봄을 맞아 이곳 거진항은 매일 제철 물고기를 실어 나르는 배와 이를 손질하는 일손들로 분주합니다.

그런데 이곳 어민들이 손을 꼽아 기다리는 날이 따로 있다고 하는데요,

바로 ‘황금어장’이라고도 불리는 저도어장의 개방일입니다.

매년 4월부터 한시적으로만 입어를 허가하는 저도어장은 북한 바다와 거의 맞닿은 동해 최북단 어장입니다.

저도어장 개방을 앞두고 거진항 어민들이 선박 정비에 한창입니다.

저도 어장은 북방한계선에서 남쪽으로 단 1마일, 저도 앞바다에 있는데요,

매년 저도 어장의 문이 열리는 날은 선박들의 경주가 벌어집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좋은 수역을 선점하기 위해섭니다.

[권창순/거진자망협회장 : "일단 군사분계선까지 올라가면 해경선이 전보를 받아야 돼요. 전보를 받고 (조업 선박들이)다 대기하고 있다가 올라가라고 승인 떨어지면 서로 좋은 자리 들어가려고 하지. (완전 경쟁이네요?) 그럼!"]

저도어장은 고성지역 어민에게만 개방되지만 아무래도 남북 관계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에 고성 금강산 육로 관광 했을 때는 분위기가 훨씬 좋았어요?"]

[곤태분/강원도 고성군 : "그럼요. 지금은 점점 사는 게 힘들어요. 북한에 (관광)차들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때는 손님 많았어. 여기."]

오랜 세월 고성을 지켜온 권창순 선장은 자신이 은퇴하기 전 꼭 한번 남과 북이 함께하는 날이 오길 기대했습니다.

[권창순/거진자망협회장 : "공동수역 정해놓고 고기를 같이 잡아먹는 그런 세월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는데 그런 세월이 오겠나. 그런 세월이 오면 좋지."]

고성군 토성면에 위치한 아야진리.

["(어르신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강신구 할아버지는 6.25 전쟁 당시 피난 온 실향민입니다.

["어르신 고향은 어디세요?"]

[강신구/실향민(76세) : "저는 함경남도 북청군 신창면 신창리."]

일곱 살 나이에 가족들과 목선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왔다는데요,

조금이나마 고향과 가까운 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부모님의 뜻을 따라 고성에 정착했습니다.

[강신구/실향민(76세) :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 당시에 ‘너희들 갔다가 한 일주일이나 열흘 있으면 오니까.’ ‘우리는 너희들 올 동안 집을 지킬 테니까 너희만 갔다 오라‘ 한 게 이제 이렇게 아주 영원히 못 만나는 거지."]

올해 106살인 이홍택 할아버지도 강 할아버지와 함께 목선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홀로 남겨둔 아내와 어머니, 여동생만 생각하면 70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져 옵니다.

고향을 떠나온 지 70년.

강신구 할아버지는 오늘도 아련해져가는 기억을 다시 붙들어 봅니다.

그것이 분단의 아픔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강신구/실향민(76세) : "뭐 통일이 안 되더라도 좀 왔다갔다. (교류라도.) 그렇지 금강산도 좀 왔다 갔다 하고 요정도만 되도 얼마나 좋겠어..."]

금방이라도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리움만 쌓으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

7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분단으로 인한 고통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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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멈춰선 전쟁…계속되는 아픔
    • 입력 2020-03-28 08:04:54
    • 수정2020-03-28 10:12:40
    남북의 창
[앵커]

전쟁과 분단의 아픔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유일하게 남과 북으로 행정구역이 나뉜 곳, 한때 육로관광의 길목이기도 했던 강원도 고성은 그 흔적이 생생히 남아 있는데요,

대한민국 통일 1번지이면서 분단의 고통이 공존하는 강원도 고성을 채유나 리포터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어두웠던 하늘이 푸른빛으로 변하고, 동이 튼 거진항에도 새로운 하루가 시작됩니다.

["(선장님 안녕하세요.) 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40년 넘게 바다와 함께 해 온 권창순 선장도 서둘러 조업에 나섭니다.

["(오늘 고기 많이 잡을 수 있나요?) 글쎄요. (자연이) 주는 대로 먹어야지 내 욕심대로 어떻게 사나요. (주로 어떤 고기를 잡나요?) 임연수요."]

거진항에서 20여분을 달려 도착한 곳. 부표를 거두기가 무섭게 그물을 끌어 올리는데요,

이제 보지 않고도 그물을 감아 낼 만큼 익숙해진 일이지만,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권창순/거진자망협회장 : "저기가 북한이잖아. 저기가. (금강산은 어느 쪽이에요?)]

[권창순/거진자망협회장 : 저쪽 섬 하나 이렇게(둥글게) 나온 거 있지. 그게 구선봉이라고. 구선봉. 명칭은 구선봉이고 우리는 돌산이라고 하는데 거기서 쭉 올라가면 금강산이라고."]

그야말로 지척에 있는 북녘 땅. 고성 앞 바다는 동해의 최북단.

남과 북이 가장 가깝게 닿아 있는 곳인데요, 그래서 종종 북한 어선이 남한 수역으로 넘어 오는 일도 있다고 합니다.

[권창순/거진자망협회장 : "저 섬 밖에 보면 우리나라 경비정들이 쭉 있다고. 그 배들이 레이더를 돌려서 북한 어선이 나타나면 그 어선들을 귀환조치 시키고 그러잖아."]

근래엔 조업을 하다 퇴거 조치되는 어선이 급증하고 있어, 어민들 불안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봄을 맞아 이곳 거진항은 매일 제철 물고기를 실어 나르는 배와 이를 손질하는 일손들로 분주합니다.

그런데 이곳 어민들이 손을 꼽아 기다리는 날이 따로 있다고 하는데요,

바로 ‘황금어장’이라고도 불리는 저도어장의 개방일입니다.

매년 4월부터 한시적으로만 입어를 허가하는 저도어장은 북한 바다와 거의 맞닿은 동해 최북단 어장입니다.

저도어장 개방을 앞두고 거진항 어민들이 선박 정비에 한창입니다.

저도 어장은 북방한계선에서 남쪽으로 단 1마일, 저도 앞바다에 있는데요,

매년 저도 어장의 문이 열리는 날은 선박들의 경주가 벌어집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좋은 수역을 선점하기 위해섭니다.

[권창순/거진자망협회장 : "일단 군사분계선까지 올라가면 해경선이 전보를 받아야 돼요. 전보를 받고 (조업 선박들이)다 대기하고 있다가 올라가라고 승인 떨어지면 서로 좋은 자리 들어가려고 하지. (완전 경쟁이네요?) 그럼!"]

저도어장은 고성지역 어민에게만 개방되지만 아무래도 남북 관계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에 고성 금강산 육로 관광 했을 때는 분위기가 훨씬 좋았어요?"]

[곤태분/강원도 고성군 : "그럼요. 지금은 점점 사는 게 힘들어요. 북한에 (관광)차들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때는 손님 많았어. 여기."]

오랜 세월 고성을 지켜온 권창순 선장은 자신이 은퇴하기 전 꼭 한번 남과 북이 함께하는 날이 오길 기대했습니다.

[권창순/거진자망협회장 : "공동수역 정해놓고 고기를 같이 잡아먹는 그런 세월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는데 그런 세월이 오겠나. 그런 세월이 오면 좋지."]

고성군 토성면에 위치한 아야진리.

["(어르신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강신구 할아버지는 6.25 전쟁 당시 피난 온 실향민입니다.

["어르신 고향은 어디세요?"]

[강신구/실향민(76세) : "저는 함경남도 북청군 신창면 신창리."]

일곱 살 나이에 가족들과 목선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왔다는데요,

조금이나마 고향과 가까운 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부모님의 뜻을 따라 고성에 정착했습니다.

[강신구/실향민(76세) :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 당시에 ‘너희들 갔다가 한 일주일이나 열흘 있으면 오니까.’ ‘우리는 너희들 올 동안 집을 지킬 테니까 너희만 갔다 오라‘ 한 게 이제 이렇게 아주 영원히 못 만나는 거지."]

올해 106살인 이홍택 할아버지도 강 할아버지와 함께 목선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홀로 남겨둔 아내와 어머니, 여동생만 생각하면 70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져 옵니다.

고향을 떠나온 지 70년.

강신구 할아버지는 오늘도 아련해져가는 기억을 다시 붙들어 봅니다.

그것이 분단의 아픔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강신구/실향민(76세) : "뭐 통일이 안 되더라도 좀 왔다갔다. (교류라도.) 그렇지 금강산도 좀 왔다 갔다 하고 요정도만 되도 얼마나 좋겠어..."]

금방이라도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리움만 쌓으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

7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분단으로 인한 고통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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