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기획 추가진상보고서]② 수형인 행방불명 실태
입력 2020.04.01 (22:38)
수정 2020.04.01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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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7년 만에 발간된 4·3 추가진상조사보고서를 통해 제주4·3의 모습을 다시 살펴보는 기획 순서입니다.
오늘은 두 번째 순서로 수형인 행방불명 실태를 민소영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4·3으로 할아버지가 총살당하고 아버지 등 가족 4명이 행방불명된 김정훈 씨.
당시 충남 공주우체국에서 근무했던 김씨의 아버지는 부친 환갑을 맞아 고향인 제주를 찾았다 4·3에 발이 묶였습니다.
[김정훈/4·3 유족 : "해안이 봉쇄됨으로 인해서 오도 가도 못하고 그래서 여기 살다가 서북청년단에 붙잡혀가게 된 거죠."]
1948년 군법 회의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는데 6·25전쟁 통에 행방불명됐습니다.
[김정훈/4·3 유족 : "곧 석방이 될 테니까 마을 책임자하고 문중회 회장의 도장을 찍어서 보내주면, 바로 석방이 된다. 이렇게 들었는데…."]
행불인 표석을 찾을 때마다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 없습니다.
[김정훈/4·3 유족 :"비석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만 같고, 그래서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은 참담하고."]
아버지의 마지막 행적이 적혀있는 건 6·25 전쟁 당시 탈옥수 명부와 재소자명부 등의 행형자료입니다.
1951년 법무부 검찰과에서 작성한 6·25 당시 탈옥수 명부입니다.
서대문과 마포, 목포형무소 등에서 출옥한 수형인들의 명단이 적혀있습니다.
이번 추가진상조사에서는 이 같은 행형자료를 토대로 일부 수형인들의 행적을 정리했습니다.
6·25전쟁 당시 형무소에 갇혀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4·3 관련 수형인은 2천 5백여 명.
2003년 진상조사보고서에는 형무소 재소자들의 기초적인 행방은 담겼지만 구체적인 실태는 실리지 않았습니다.
[오승국/제주4·3평화재단 총무팀장 : "총괄적인 통사적인 성격을 갖는다고 했죠. 그래서 정확한, 수많은 내용의 희생자 명단이라든가 이런 것은."]
추가진상조사에서 조사한 자료는 기존에 발굴된 행형자료를 포함해 모두 천 6백여 건.
조사 결과 서대문형무소의 수형 실태를 비롯해 일부 형무소 수형인들의 구체적인 신상을 확인할 수 있었고, 1949년 9월 목포형무소 탈옥사건에서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희생자의 신상도 새롭게 실을 수 있었습니다.
[양정심/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 :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있었나, 얼마나 많은 규모가 있었나, 이런 것들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거죠."]
나아가 미신고된 행방불명인과 함께 마을별 피해실태 조사 등을 토대로 기존에 사망자로 분류됐던 행방불명 사례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추가 조사에서 확인된 건 일부 형무소 수형인들의 행적뿐.
수많은 행방불명인들은 여전히 어둠 속에 가려져있습니다.
[박찬식/전 추가진상조사단장 : "좀더 세부적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영남지역이랄까 대전형무소 관련된 진상조사는 추후 과제로 남겨 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17년 만의 4·3 추가진상조사보고서는 수형인 행방불명을 통해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4·3의 진실을 다시 증언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민소영입니다.
17년 만에 발간된 4·3 추가진상조사보고서를 통해 제주4·3의 모습을 다시 살펴보는 기획 순서입니다.
오늘은 두 번째 순서로 수형인 행방불명 실태를 민소영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4·3으로 할아버지가 총살당하고 아버지 등 가족 4명이 행방불명된 김정훈 씨.
당시 충남 공주우체국에서 근무했던 김씨의 아버지는 부친 환갑을 맞아 고향인 제주를 찾았다 4·3에 발이 묶였습니다.
[김정훈/4·3 유족 : "해안이 봉쇄됨으로 인해서 오도 가도 못하고 그래서 여기 살다가 서북청년단에 붙잡혀가게 된 거죠."]
1948년 군법 회의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는데 6·25전쟁 통에 행방불명됐습니다.
[김정훈/4·3 유족 : "곧 석방이 될 테니까 마을 책임자하고 문중회 회장의 도장을 찍어서 보내주면, 바로 석방이 된다. 이렇게 들었는데…."]
행불인 표석을 찾을 때마다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 없습니다.
[김정훈/4·3 유족 :"비석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만 같고, 그래서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은 참담하고."]
아버지의 마지막 행적이 적혀있는 건 6·25 전쟁 당시 탈옥수 명부와 재소자명부 등의 행형자료입니다.
1951년 법무부 검찰과에서 작성한 6·25 당시 탈옥수 명부입니다.
서대문과 마포, 목포형무소 등에서 출옥한 수형인들의 명단이 적혀있습니다.
이번 추가진상조사에서는 이 같은 행형자료를 토대로 일부 수형인들의 행적을 정리했습니다.
6·25전쟁 당시 형무소에 갇혀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4·3 관련 수형인은 2천 5백여 명.
2003년 진상조사보고서에는 형무소 재소자들의 기초적인 행방은 담겼지만 구체적인 실태는 실리지 않았습니다.
[오승국/제주4·3평화재단 총무팀장 : "총괄적인 통사적인 성격을 갖는다고 했죠. 그래서 정확한, 수많은 내용의 희생자 명단이라든가 이런 것은."]
추가진상조사에서 조사한 자료는 기존에 발굴된 행형자료를 포함해 모두 천 6백여 건.
조사 결과 서대문형무소의 수형 실태를 비롯해 일부 형무소 수형인들의 구체적인 신상을 확인할 수 있었고, 1949년 9월 목포형무소 탈옥사건에서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희생자의 신상도 새롭게 실을 수 있었습니다.
[양정심/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 :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있었나, 얼마나 많은 규모가 있었나, 이런 것들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거죠."]
나아가 미신고된 행방불명인과 함께 마을별 피해실태 조사 등을 토대로 기존에 사망자로 분류됐던 행방불명 사례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추가 조사에서 확인된 건 일부 형무소 수형인들의 행적뿐.
수많은 행방불명인들은 여전히 어둠 속에 가려져있습니다.
[박찬식/전 추가진상조사단장 : "좀더 세부적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영남지역이랄까 대전형무소 관련된 진상조사는 추후 과제로 남겨 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17년 만의 4·3 추가진상조사보고서는 수형인 행방불명을 통해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4·3의 진실을 다시 증언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민소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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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만에 발간된 4·3 추가진상조사보고서를 통해 제주4·3의 모습을 다시 살펴보는 기획 순서입니다.
오늘은 두 번째 순서로 수형인 행방불명 실태를 민소영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4·3으로 할아버지가 총살당하고 아버지 등 가족 4명이 행방불명된 김정훈 씨.
당시 충남 공주우체국에서 근무했던 김씨의 아버지는 부친 환갑을 맞아 고향인 제주를 찾았다 4·3에 발이 묶였습니다.
[김정훈/4·3 유족 : "해안이 봉쇄됨으로 인해서 오도 가도 못하고 그래서 여기 살다가 서북청년단에 붙잡혀가게 된 거죠."]
1948년 군법 회의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는데 6·25전쟁 통에 행방불명됐습니다.
[김정훈/4·3 유족 : "곧 석방이 될 테니까 마을 책임자하고 문중회 회장의 도장을 찍어서 보내주면, 바로 석방이 된다. 이렇게 들었는데…."]
행불인 표석을 찾을 때마다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 없습니다.
[김정훈/4·3 유족 :"비석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만 같고, 그래서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은 참담하고."]
아버지의 마지막 행적이 적혀있는 건 6·25 전쟁 당시 탈옥수 명부와 재소자명부 등의 행형자료입니다.
1951년 법무부 검찰과에서 작성한 6·25 당시 탈옥수 명부입니다.
서대문과 마포, 목포형무소 등에서 출옥한 수형인들의 명단이 적혀있습니다.
이번 추가진상조사에서는 이 같은 행형자료를 토대로 일부 수형인들의 행적을 정리했습니다.
6·25전쟁 당시 형무소에 갇혀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4·3 관련 수형인은 2천 5백여 명.
2003년 진상조사보고서에는 형무소 재소자들의 기초적인 행방은 담겼지만 구체적인 실태는 실리지 않았습니다.
[오승국/제주4·3평화재단 총무팀장 : "총괄적인 통사적인 성격을 갖는다고 했죠. 그래서 정확한, 수많은 내용의 희생자 명단이라든가 이런 것은."]
추가진상조사에서 조사한 자료는 기존에 발굴된 행형자료를 포함해 모두 천 6백여 건.
조사 결과 서대문형무소의 수형 실태를 비롯해 일부 형무소 수형인들의 구체적인 신상을 확인할 수 있었고, 1949년 9월 목포형무소 탈옥사건에서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희생자의 신상도 새롭게 실을 수 있었습니다.
[양정심/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 :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있었나, 얼마나 많은 규모가 있었나, 이런 것들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거죠."]
나아가 미신고된 행방불명인과 함께 마을별 피해실태 조사 등을 토대로 기존에 사망자로 분류됐던 행방불명 사례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추가 조사에서 확인된 건 일부 형무소 수형인들의 행적뿐.
수많은 행방불명인들은 여전히 어둠 속에 가려져있습니다.
[박찬식/전 추가진상조사단장 : "좀더 세부적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영남지역이랄까 대전형무소 관련된 진상조사는 추후 과제로 남겨 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17년 만의 4·3 추가진상조사보고서는 수형인 행방불명을 통해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4·3의 진실을 다시 증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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