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의 비극…12년 전 그날과 ‘판박이’

입력 2020.05.01 (08:10) 수정 2020.05.01 (09:5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화면은 지난 2008년 1월 발생한 화재 영상입니다.

경기도 이천에 있는 냉동창고였는데, 이번에 사고가 난 물류 창고로부터 불과 7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 우레탄 주입 작업 중에 사고가 났는데 근로자 40명이 희생됐습니다.

[안상철/당시 이천소방서장/2008년 : "우레탄폼이 일시에 각종 유증기 및 유류하고 연결돼 가지고 가스도 누출되면서 연소가 급격히 진행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12년 뒤 같은 지역에 있는 물류 창고 공사장에서 비슷한 작업이 이뤄지던 중 사고가 일어나 당시와 비슷한 38명이 참변을 당했습니다.

[정세균/국무총리 : "이번 화재도 12년전 사고와 유사하게 우레탄 작업중 폭발이... 뼈저린 반성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겪은 위험 요인에 미리 대비했더라면 이런 '뼈저린 반성'까지 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화재 사망자들은 불이 난 지하 2층에서부터 맨 위층인 지상 4층까지 모든 층에서 발견됐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누구도 대피할 틈이 없었단 이야기입니다.

지하 2층에는 냉동 창고가 지어질 예정이었는데요.

당시 현장에서는 엘리베이터 부근 벽면에 우레탄을 바르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우레탄은 액체 상태의 두 화학 물질, 즉 폴리올과 이소시아네이트를 섞은 건데요.

주로 열을 차단하는 건축 단열재로 쓰입니다.

건물을 지을 때 벽체 등을 보면 하얀 거품처럼 생긴 물질이 주입돼 있는 걸 보신 적 있으실 텐데요.

이게 바로 우레탄 '폼'입니다.

'거품' 형태로 분사하는 방식을 쓰기에 이런 폼이란 용어가 붙은 거고요.

이 폼 주입 작업을 하다 보면, 휘발유와 비슷하게 유증기 그러니까 기름 방울로 이뤄진 증기를 뿜어내는데요.

이게 워낙에 가연성이 높습니다.

특히 지하같이 밀폐된 공간에서 환기 없이 작업을 하게 되면 용접 중 작은 불티나 무심코 버린 담뱃재에도 폭발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불쏘시개 역할만 하느냐, 불이 붙은 뒤엔 엄청난 유독가스를 뿜어내서 참사를 유발합니다.

[최현호/한국화재감식학회 기술위원장 : "(유독성 가스는) 한 번 만 흡입해도 눈을 뜰 수가 없는 독성을 갖고 있습니다. 의식을 바로 잃기 때문에요. 그 다음에 고열의 붕괴까지 일어나는 위험성을 가진게 스티로폼이나 우레탄폼, 샌드위치 패널 구조의 단점입니다."]

현재 당국은 우레탄폼의 유증기가 화재 발생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들여다보고 있는데, 자, 그럼 대형 화재 때마다 피해의 주범으로 꼽히는 우레탄폼이 건축 현장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유는 뭘까.

한마디로 뛰어난 가성비 때문입니다.

시중에는 우레탄폼보다 불에 강하고 유독가스도 훨씬 적게 내뿜는 대체 단열재들이 이미 나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소재는 우레탄에 비해 가격이 2-3배 비쌉니다.

가격 면에서는 단연 우레탄이 '갑'인 셈입니다.

공사비 한 푼이 아까운데 현실적으로 비싼 거 쓰기 어렵다, 이런 논리인거죠.

가격도 그렇지만, 접착력과 가공성도 좋아 공사 기간 단축에 도움이 되니 우레탄이 광범위하게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2008년 40명의 사망자를 낸 이천 냉동창고 화재는 건물 지하에서 우레탄폼에 섞여 있던 가스가 폭발하면서 일어났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불과 2년 전에도 9명이 사망한 인천 남동공단 화재가 있었습니다.

전기 배선 문제로 처음에 불이 났는데 규모를 키운 건 우레탄폼에서 나온 유독가스였습니다.

이번에 피해를 키운 것으로 추정되는 샌드위치 패널도 우레탄과 비슷한 이유로 현장에서 애용됩니다.

이 패널은 우레탄폼이나 스티로폼을 얇은 철판 사이에 넣은 건축용 자재인데 패널 1개(가로·세로 1m, 두께 50㎜ 기준)의 가격은 2만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일에 같은 면적을 철근콘크리트 공법으로 지으려면 비용과 공정이 3배 가까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하지만 화재 위험성이 높아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물류창고에 샌드위치 패널을 쓰는 것을 규제하고 있습니다.

우리 소방당국도 샌드위치 패널을 건축자재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을 꾸준히 제기해 왔습니다.

국토교통부도 2014년 12월 ‘스티로폼이나 우레탄폼 소재로 만든 샌드위치 패널을 금지하겠다’는 취지의 발표문을 낸 바 있습니다만 법적 규제로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현장에서는 촉박한 공기에 쫓기거나 단순히 ‘괜찮겠지’란 생각의 무사안일과 부주의가 돌이킬 수 없는 화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반복되는 참사를 막으려면 화재의 주범, 화약고라고 불리는 가연성 자재 사용에 대한 법적 규제가 필요해 보입니다.

[정세균/국무총리 : "사고 대응에는 문제가 없었는지도 꼼꼼하게 되짚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다시는 이번과 같은 대형화재가 반복되지 않도록 실질적인 처방이 절실합니다."]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소방점검 전수조사 등이 펼쳐졌지만 12년 만에 다시 비극은 반복됐습니다.

잊을 만 하면 되풀이되는 참사를 언제쯤 끊어낼 수 있을 지 친절한 뉴스였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이천의 비극…12년 전 그날과 ‘판박이’
    • 입력 2020-05-01 08:10:45
    • 수정2020-05-01 09:55:23
    아침뉴스타임
지금 보시는 화면은 지난 2008년 1월 발생한 화재 영상입니다.

경기도 이천에 있는 냉동창고였는데, 이번에 사고가 난 물류 창고로부터 불과 7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 우레탄 주입 작업 중에 사고가 났는데 근로자 40명이 희생됐습니다.

[안상철/당시 이천소방서장/2008년 : "우레탄폼이 일시에 각종 유증기 및 유류하고 연결돼 가지고 가스도 누출되면서 연소가 급격히 진행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12년 뒤 같은 지역에 있는 물류 창고 공사장에서 비슷한 작업이 이뤄지던 중 사고가 일어나 당시와 비슷한 38명이 참변을 당했습니다.

[정세균/국무총리 : "이번 화재도 12년전 사고와 유사하게 우레탄 작업중 폭발이... 뼈저린 반성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겪은 위험 요인에 미리 대비했더라면 이런 '뼈저린 반성'까지 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화재 사망자들은 불이 난 지하 2층에서부터 맨 위층인 지상 4층까지 모든 층에서 발견됐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누구도 대피할 틈이 없었단 이야기입니다.

지하 2층에는 냉동 창고가 지어질 예정이었는데요.

당시 현장에서는 엘리베이터 부근 벽면에 우레탄을 바르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우레탄은 액체 상태의 두 화학 물질, 즉 폴리올과 이소시아네이트를 섞은 건데요.

주로 열을 차단하는 건축 단열재로 쓰입니다.

건물을 지을 때 벽체 등을 보면 하얀 거품처럼 생긴 물질이 주입돼 있는 걸 보신 적 있으실 텐데요.

이게 바로 우레탄 '폼'입니다.

'거품' 형태로 분사하는 방식을 쓰기에 이런 폼이란 용어가 붙은 거고요.

이 폼 주입 작업을 하다 보면, 휘발유와 비슷하게 유증기 그러니까 기름 방울로 이뤄진 증기를 뿜어내는데요.

이게 워낙에 가연성이 높습니다.

특히 지하같이 밀폐된 공간에서 환기 없이 작업을 하게 되면 용접 중 작은 불티나 무심코 버린 담뱃재에도 폭발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불쏘시개 역할만 하느냐, 불이 붙은 뒤엔 엄청난 유독가스를 뿜어내서 참사를 유발합니다.

[최현호/한국화재감식학회 기술위원장 : "(유독성 가스는) 한 번 만 흡입해도 눈을 뜰 수가 없는 독성을 갖고 있습니다. 의식을 바로 잃기 때문에요. 그 다음에 고열의 붕괴까지 일어나는 위험성을 가진게 스티로폼이나 우레탄폼, 샌드위치 패널 구조의 단점입니다."]

현재 당국은 우레탄폼의 유증기가 화재 발생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들여다보고 있는데, 자, 그럼 대형 화재 때마다 피해의 주범으로 꼽히는 우레탄폼이 건축 현장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유는 뭘까.

한마디로 뛰어난 가성비 때문입니다.

시중에는 우레탄폼보다 불에 강하고 유독가스도 훨씬 적게 내뿜는 대체 단열재들이 이미 나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소재는 우레탄에 비해 가격이 2-3배 비쌉니다.

가격 면에서는 단연 우레탄이 '갑'인 셈입니다.

공사비 한 푼이 아까운데 현실적으로 비싼 거 쓰기 어렵다, 이런 논리인거죠.

가격도 그렇지만, 접착력과 가공성도 좋아 공사 기간 단축에 도움이 되니 우레탄이 광범위하게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2008년 40명의 사망자를 낸 이천 냉동창고 화재는 건물 지하에서 우레탄폼에 섞여 있던 가스가 폭발하면서 일어났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불과 2년 전에도 9명이 사망한 인천 남동공단 화재가 있었습니다.

전기 배선 문제로 처음에 불이 났는데 규모를 키운 건 우레탄폼에서 나온 유독가스였습니다.

이번에 피해를 키운 것으로 추정되는 샌드위치 패널도 우레탄과 비슷한 이유로 현장에서 애용됩니다.

이 패널은 우레탄폼이나 스티로폼을 얇은 철판 사이에 넣은 건축용 자재인데 패널 1개(가로·세로 1m, 두께 50㎜ 기준)의 가격은 2만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일에 같은 면적을 철근콘크리트 공법으로 지으려면 비용과 공정이 3배 가까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하지만 화재 위험성이 높아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물류창고에 샌드위치 패널을 쓰는 것을 규제하고 있습니다.

우리 소방당국도 샌드위치 패널을 건축자재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을 꾸준히 제기해 왔습니다.

국토교통부도 2014년 12월 ‘스티로폼이나 우레탄폼 소재로 만든 샌드위치 패널을 금지하겠다’는 취지의 발표문을 낸 바 있습니다만 법적 규제로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현장에서는 촉박한 공기에 쫓기거나 단순히 ‘괜찮겠지’란 생각의 무사안일과 부주의가 돌이킬 수 없는 화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반복되는 참사를 막으려면 화재의 주범, 화약고라고 불리는 가연성 자재 사용에 대한 법적 규제가 필요해 보입니다.

[정세균/국무총리 : "사고 대응에는 문제가 없었는지도 꼼꼼하게 되짚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다시는 이번과 같은 대형화재가 반복되지 않도록 실질적인 처방이 절실합니다."]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소방점검 전수조사 등이 펼쳐졌지만 12년 만에 다시 비극은 반복됐습니다.

잊을 만 하면 되풀이되는 참사를 언제쯤 끊어낼 수 있을 지 친절한 뉴스였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