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동백전(錢) 질 무렵’…지역화폐 운명은?

입력 2020.05.08 (16:05) 수정 2020.05.0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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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의 개화시기는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입니다. 1월부터 본격적으로 피어나 날이 따뜻해지면 지는 대표적인 겨울꽃입니다. 부산은 동백꽃이 만발한 동백섬도 유명 관광지로 손꼽히는데요. 동백꽃은 부산의 시화(市花) 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부산에는 동백꽃처럼 4개월 반짝 빛났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부산 지역화폐 '동백전(錢)'입니다.


4개월 만에 좌초 위기, 갑작스러운 혜택 축소에 사재기까지

지역화폐 붐이 불었던 지난해, 지방자치단체마다 소위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목표를 내세우며 너나 할 것 없이 지역화폐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지역 안에서 돈이 돌게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스마트폰 QR코드, IC카드 등 결제 방식도 형태도 다양합니다.

지역 소상공인들과 연계해 해당 지역화폐를 사용하면 할인혜택 등을 주는 식으로 운영됐는데, 부산시도 같은 이유로 지난해 말 동백전 발행을 시작했습니다. 동백전은 발행 4개월 만에 가입자 77만 명에 발행 금액만 5,200억 원을 돌파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부산 인구가 340만 명이니까 5명 중에 1명은 동백전을 사용한 겁니다. 특히 사용 금액의 10%를 돌려준다는 캐시백 이벤트가 가장 큰 이유로 꼽혔습니다.

그런데 발행 4개월여 만에 동백전은 좌초 위기에 처했습니다. '10% 캐시백' 예산이 고갈되면서 갑작스럽게 혜택 범위를 절반 가까이 줄인 겁니다. 징검다리 연휴를 목전에 둔 4월 마지막 주, 부산시는 5월부터 혜택을 줄인다고 공식 발표했는데, 일부에선 사재기 현상까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 19에 속수무책, 대책 마련 없어

예산 부족 문제는 처음 캐시백을 시작할 때부터 제기됐습니다. 전문가와 소상공인단체,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동백전 추진단은 처음 1개월 정도만 10% 캐시백 행사를 진행하고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캐시백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부산시는 캐시백을 10%로 계속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2월 말, 부산에 첫 코로나 19 확진자가 발생합니다.

코로나 19 확진자가 발생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소상공인들을 비롯해 경제 활동이 어려워진 시민들은 동백전 캐시백에 열광했습니다. 100만 원 한도에 10%를 되돌려주는 파격적인 혜택에 모두 가입을 서둘렀습니다. 기존 한 달로 예정한 캐시백 행사는 지역경제 침체를 막겠다는 명목 하에 7월까지 연장됐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결국 돈이었습니다.


문제 터지고서야 정책위원회 꾸려...그래도 6월이면 고갈

상반기 예산으로 가지고 있던 75억 원가량이 금새 고갈돼 긴급 추경에 들어갔고, 국비와 시비를 포함해 500억 원 가까이를 투입했지만, 그 금액을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우려한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의 문제 제기에도 부산시는 별다른 공지 없이 4월까지도 캐시백 정책을 이어갔습니다.

결국 4월 말, 캐시백 예산 대부분이 고갈돼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이 공개됐습니다. 500억 가까운 예산을 대부분 소진했고, 이대로라면 5월을 넘기지 못하고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캐시백 때문에 가입했던 사람들이 혜택이 사라진 이후에 카드를 사용할지 미지수인데도 부산시가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탓입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부산시가 긴급 추경 100억을 확보했지만,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대로라면 혜택을 절반 줄이고도 6월 중 동백전 캐시백 예산은 고갈됩니다. 부산시는 정부 추경을 신청하고, 필요하다면 하반기 예산을 미리 당겨 쓰도록 한다는 계획이지만 그렇게 해도 빨라야 7월에 겨우 예산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중단은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누구를 위한 동백전 정책?

부산시는 설령 캐시백이 멈춰도 일반 체크카드처럼 사용이 가능하다고 공지합니다. 또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와 제휴를 강화해 다른 행사들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지역경제와 골목상권을 활성화하겠다는 기존 취지와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미 학원이나 편의점에서 결제가 되면서 소상공인의 지탄을 받아왔던 동백전이 대형 프랜차이즈로 범위를 넓힌다면 지역화폐로서 가지는 의미가 사라진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중단 위기가 오고 나서야 부산시는 정책위원회를 구성해 6월부터 자문을 받겠다고 합니다. 이미 동백전 발행과 함께 제정된 조례에서 정책위원회를 설립할 것을 권고하고 있었지만, 문제가 악화된 지금까지 자문기구 하나 운영하지 못했던 겁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부산시는 하반기까지 5억 5천여만 원을 들여 동백전 모바일 앱에 모바일 마켓을 연결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지역제품을 온라인 쇼핑몰로 판매하고, 배달앱도 구축한다는 계획인데 이마저도 동백전과 얼마나 연계가 될지, 그전까지 동백전 사용자를 유지할 수는 있을지 의문으로 남습니다. 동백전이 4월이면 꺾이는 동백꽃이 되지 않도록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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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동백전(錢) 질 무렵’…지역화폐 운명은?
    • 입력 2020-05-08 16:05:28
    • 수정2020-05-08 16:05:33
    취재후·사건후
동백꽃의 개화시기는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입니다. 1월부터 본격적으로 피어나 날이 따뜻해지면 지는 대표적인 겨울꽃입니다. 부산은 동백꽃이 만발한 동백섬도 유명 관광지로 손꼽히는데요. 동백꽃은 부산의 시화(市花) 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부산에는 동백꽃처럼 4개월 반짝 빛났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부산 지역화폐 '동백전(錢)'입니다.


4개월 만에 좌초 위기, 갑작스러운 혜택 축소에 사재기까지

지역화폐 붐이 불었던 지난해, 지방자치단체마다 소위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목표를 내세우며 너나 할 것 없이 지역화폐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지역 안에서 돈이 돌게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스마트폰 QR코드, IC카드 등 결제 방식도 형태도 다양합니다.

지역 소상공인들과 연계해 해당 지역화폐를 사용하면 할인혜택 등을 주는 식으로 운영됐는데, 부산시도 같은 이유로 지난해 말 동백전 발행을 시작했습니다. 동백전은 발행 4개월 만에 가입자 77만 명에 발행 금액만 5,200억 원을 돌파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부산 인구가 340만 명이니까 5명 중에 1명은 동백전을 사용한 겁니다. 특히 사용 금액의 10%를 돌려준다는 캐시백 이벤트가 가장 큰 이유로 꼽혔습니다.

그런데 발행 4개월여 만에 동백전은 좌초 위기에 처했습니다. '10% 캐시백' 예산이 고갈되면서 갑작스럽게 혜택 범위를 절반 가까이 줄인 겁니다. 징검다리 연휴를 목전에 둔 4월 마지막 주, 부산시는 5월부터 혜택을 줄인다고 공식 발표했는데, 일부에선 사재기 현상까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 19에 속수무책, 대책 마련 없어

예산 부족 문제는 처음 캐시백을 시작할 때부터 제기됐습니다. 전문가와 소상공인단체,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동백전 추진단은 처음 1개월 정도만 10% 캐시백 행사를 진행하고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캐시백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부산시는 캐시백을 10%로 계속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2월 말, 부산에 첫 코로나 19 확진자가 발생합니다.

코로나 19 확진자가 발생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소상공인들을 비롯해 경제 활동이 어려워진 시민들은 동백전 캐시백에 열광했습니다. 100만 원 한도에 10%를 되돌려주는 파격적인 혜택에 모두 가입을 서둘렀습니다. 기존 한 달로 예정한 캐시백 행사는 지역경제 침체를 막겠다는 명목 하에 7월까지 연장됐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결국 돈이었습니다.


문제 터지고서야 정책위원회 꾸려...그래도 6월이면 고갈

상반기 예산으로 가지고 있던 75억 원가량이 금새 고갈돼 긴급 추경에 들어갔고, 국비와 시비를 포함해 500억 원 가까이를 투입했지만, 그 금액을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우려한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의 문제 제기에도 부산시는 별다른 공지 없이 4월까지도 캐시백 정책을 이어갔습니다.

결국 4월 말, 캐시백 예산 대부분이 고갈돼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이 공개됐습니다. 500억 가까운 예산을 대부분 소진했고, 이대로라면 5월을 넘기지 못하고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캐시백 때문에 가입했던 사람들이 혜택이 사라진 이후에 카드를 사용할지 미지수인데도 부산시가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탓입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부산시가 긴급 추경 100억을 확보했지만,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대로라면 혜택을 절반 줄이고도 6월 중 동백전 캐시백 예산은 고갈됩니다. 부산시는 정부 추경을 신청하고, 필요하다면 하반기 예산을 미리 당겨 쓰도록 한다는 계획이지만 그렇게 해도 빨라야 7월에 겨우 예산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중단은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누구를 위한 동백전 정책?

부산시는 설령 캐시백이 멈춰도 일반 체크카드처럼 사용이 가능하다고 공지합니다. 또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와 제휴를 강화해 다른 행사들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지역경제와 골목상권을 활성화하겠다는 기존 취지와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미 학원이나 편의점에서 결제가 되면서 소상공인의 지탄을 받아왔던 동백전이 대형 프랜차이즈로 범위를 넓힌다면 지역화폐로서 가지는 의미가 사라진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중단 위기가 오고 나서야 부산시는 정책위원회를 구성해 6월부터 자문을 받겠다고 합니다. 이미 동백전 발행과 함께 제정된 조례에서 정책위원회를 설립할 것을 권고하고 있었지만, 문제가 악화된 지금까지 자문기구 하나 운영하지 못했던 겁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부산시는 하반기까지 5억 5천여만 원을 들여 동백전 모바일 앱에 모바일 마켓을 연결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지역제품을 온라인 쇼핑몰로 판매하고, 배달앱도 구축한다는 계획인데 이마저도 동백전과 얼마나 연계가 될지, 그전까지 동백전 사용자를 유지할 수는 있을지 의문으로 남습니다. 동백전이 4월이면 꺾이는 동백꽃이 되지 않도록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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