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는 왜 총상 사망을 숨겼나?
입력 2020.05.13 (09:38)
수정 2020.05.1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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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앞서 보신 것처럼 고 김안부 씨는 40년 동안 타박상으로 숨진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렇다면, 사체검안서처럼 김 씨가 총에 맞아 숨졌다면, 신군부는 왜 죽음의 원인을 숨겼을까요?
김안부씨의 총상 사망이 갖는 의미를 하선아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계엄군의 발포로 인한 첫 공식 사망 기록은 1980년 5월 20일 밤입니다.
검시 기록을 보면 20일 밤 광주역 앞 등에서 총상으로 4명이 숨졌습니다.
군은 한동안 이같은 사실을 숨겨오다 자위권 차원에서 실탄 지급과 발포가 이뤄진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하루 앞서는 19일 김안부 씨의 총상 사망이 확인되면 자위권 주장이 흔들리게 됩니다.
김 씨가 사망한 날인 19일 광주지역에서는 일부 소요는 있었지만 군이 발포할 정도의 격렬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군의 검시참여 보고서에도 김 씨는 '데모를 구경하던 중'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김씨의 죽음은 전두환 신군부의 자위권 사격이 허구임을, 또 5.18의 성격이 잔혹한 국가폭력에 의한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김희송/교수/전남대 5·18연구소 : “19일날 광주에서의 시위가 막 시작됐던 이 시기에 총을 쐈다 이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계엄군이 첨부터 총사격까지 포함한 잔혹한 작전을 시행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김안부 씨와 같은 날 총에 맞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김영찬 씨도 목격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상자로 인정받기까지 고통을 받았습니다.
[김영찬/5월 19일 총상 부상자 : "제가 19일날 맞았다고 그래서. 그것이 어떤 국회나 아니면 정부에서 직접 당사자가 맞은 사람이 있는데, 그걸 인정을 안해주는게 참 답답하죠.과거 88년도 국회 청문회 할 때도 군부에서는 21일날 최초 발포했다. 그렇게 하고..."]
80년 5월, 시민들에게 총을 겨눈 계엄군은 한결같이 자위권 차원의 발포라고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총상 상처가 기록된 김안부 씨의 검시 내용은 자위권 논리를 뒤엎는 또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KBS 뉴스 하선아입니다.
앞서 보신 것처럼 고 김안부 씨는 40년 동안 타박상으로 숨진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렇다면, 사체검안서처럼 김 씨가 총에 맞아 숨졌다면, 신군부는 왜 죽음의 원인을 숨겼을까요?
김안부씨의 총상 사망이 갖는 의미를 하선아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계엄군의 발포로 인한 첫 공식 사망 기록은 1980년 5월 20일 밤입니다.
검시 기록을 보면 20일 밤 광주역 앞 등에서 총상으로 4명이 숨졌습니다.
군은 한동안 이같은 사실을 숨겨오다 자위권 차원에서 실탄 지급과 발포가 이뤄진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하루 앞서는 19일 김안부 씨의 총상 사망이 확인되면 자위권 주장이 흔들리게 됩니다.
김 씨가 사망한 날인 19일 광주지역에서는 일부 소요는 있었지만 군이 발포할 정도의 격렬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군의 검시참여 보고서에도 김 씨는 '데모를 구경하던 중'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김씨의 죽음은 전두환 신군부의 자위권 사격이 허구임을, 또 5.18의 성격이 잔혹한 국가폭력에 의한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김희송/교수/전남대 5·18연구소 : “19일날 광주에서의 시위가 막 시작됐던 이 시기에 총을 쐈다 이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계엄군이 첨부터 총사격까지 포함한 잔혹한 작전을 시행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김안부 씨와 같은 날 총에 맞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김영찬 씨도 목격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상자로 인정받기까지 고통을 받았습니다.
[김영찬/5월 19일 총상 부상자 : "제가 19일날 맞았다고 그래서. 그것이 어떤 국회나 아니면 정부에서 직접 당사자가 맞은 사람이 있는데, 그걸 인정을 안해주는게 참 답답하죠.과거 88년도 국회 청문회 할 때도 군부에서는 21일날 최초 발포했다. 그렇게 하고..."]
80년 5월, 시민들에게 총을 겨눈 계엄군은 한결같이 자위권 차원의 발포라고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총상 상처가 기록된 김안부 씨의 검시 내용은 자위권 논리를 뒤엎는 또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KBS 뉴스 하선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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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군부는 왜 총상 사망을 숨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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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0-05-13 09:38:34
- 수정2020-05-13 11:27:24

[앵커]
앞서 보신 것처럼 고 김안부 씨는 40년 동안 타박상으로 숨진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렇다면, 사체검안서처럼 김 씨가 총에 맞아 숨졌다면, 신군부는 왜 죽음의 원인을 숨겼을까요?
김안부씨의 총상 사망이 갖는 의미를 하선아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계엄군의 발포로 인한 첫 공식 사망 기록은 1980년 5월 20일 밤입니다.
검시 기록을 보면 20일 밤 광주역 앞 등에서 총상으로 4명이 숨졌습니다.
군은 한동안 이같은 사실을 숨겨오다 자위권 차원에서 실탄 지급과 발포가 이뤄진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하루 앞서는 19일 김안부 씨의 총상 사망이 확인되면 자위권 주장이 흔들리게 됩니다.
김 씨가 사망한 날인 19일 광주지역에서는 일부 소요는 있었지만 군이 발포할 정도의 격렬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군의 검시참여 보고서에도 김 씨는 '데모를 구경하던 중'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김씨의 죽음은 전두환 신군부의 자위권 사격이 허구임을, 또 5.18의 성격이 잔혹한 국가폭력에 의한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김희송/교수/전남대 5·18연구소 : “19일날 광주에서의 시위가 막 시작됐던 이 시기에 총을 쐈다 이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계엄군이 첨부터 총사격까지 포함한 잔혹한 작전을 시행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김안부 씨와 같은 날 총에 맞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김영찬 씨도 목격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상자로 인정받기까지 고통을 받았습니다.
[김영찬/5월 19일 총상 부상자 : "제가 19일날 맞았다고 그래서. 그것이 어떤 국회나 아니면 정부에서 직접 당사자가 맞은 사람이 있는데, 그걸 인정을 안해주는게 참 답답하죠.과거 88년도 국회 청문회 할 때도 군부에서는 21일날 최초 발포했다. 그렇게 하고..."]
80년 5월, 시민들에게 총을 겨눈 계엄군은 한결같이 자위권 차원의 발포라고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총상 상처가 기록된 김안부 씨의 검시 내용은 자위권 논리를 뒤엎는 또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KBS 뉴스 하선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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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선아 기자 sah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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