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항거·긴급조치 1호 위반’ 故 장준하 선생 유족에 7억8천 국가배상판결

입력 2020.05.13 (17:36) 수정 2020.05.13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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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 항거하다 옥고를 치른 고(故) 장준하 선생의 유족에게, 국가가 모두 7억 8천여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재판장 김형석)는 장호권 씨 등 장 선생의 자녀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장 선생의 유족에게 모두 7억 8천3백여 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습니다.

장 선생은 1973년부터 유신헌법 개정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 등 민주화 운동을 벌이다가 이듬해 1월 긴급조치 1호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영장 없이 체포·구금된 뒤 가혹 행위를 당하다 기소됐습니다. 긴급조치 1호는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안 또는 청원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면서, 이를 위반할 경우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장 선생은 1974년 8월 대법원에서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장 선생은 323일 동안의 수감 생활 뒤 심장협심증과 간경화 증세 악화로 같은 해 12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났고, 1975년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후 장 선생에 대한 처벌 근거로 이용됐던 긴급조치 1호는 2010년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습니다. 대법원은 긴급조치 1호가 그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해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유신헌법에 위배돼 위헌·무효라고 판단했습니다.

장 선생도 자신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 지 39년 만인 2013년, 긴급조치 위반 혐의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재심 무죄 판결 이후, 장 선생의 부인 故 김희숙 여사(2018년 7월 별세)와 자녀 5명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유족들은 긴급조치 1호를 발령한 대통령의 불법 행위와 중앙정보부의 위법한 수사로 장 선생과 가족들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국가가 모두 13억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재판부 역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일부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대통령의 긴급조치 1호 발령 행위는 대통령의 헌법수호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긴급조치 1호 발령은 그 발령만으로 "헌법상 보장되는 국민의 기본권이 직접적이고 중대하게 침해된다는 사정을 잘 알면서도 행해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대통령의 긴급조치 1호 발령 행위는 실제 피해를 입은 장 선생에 대한 "고의 또는 중대의 과실에 의한 위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긴급조치 1호 발령에 근거를 둔 수사와 재판, 징역형의 집행 역시 모두 위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재판부는 특히 "대통령은 긴급조치 1호의 발령이 유신헌법에서 규정하는 요건에 부합하지 않고, 이에 의해 국민들의 기본권이 직접적으로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탄압하기 위해 이를 발령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대통령 등 공무원들의 위법 행위로 장 선생과 그 가족들이 "정신적 고통을 당했을 것이 경험칙상 분명하다"며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이같은 재판부의 판단은 개인의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은 최근 대법원의 관련 판례와는 결론을 달리한 것입니다. 앞서 2015년 대법원은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라며 "대통령은 국가긴급권의 행사에 관해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해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이 피해자 개개인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지는 불법 행위라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서울중앙지법 민사 20부는 이같은 대법원 판례에 대해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 행위는 그 위반 행위에 대한 수사, 재판, 형의 집행을 당연히 예정하고 있다"며 "실제로 피해가 구체적으로 발생한 경우에는 그 수사, 재판, 형의 집행 행위와 분리해 (긴급조치) 발령 행위 자체만을 판단해 정치적 책임만을 진다고 할 수는 없다"고 다른 판단을 했습니다. 재판부는 긴급조치의 발령과 수사, 재판, 형의 집행행위를 각각 분리해 판단한다면 "대통령이 당초부터 위헌이자 무효인 긴급조치를 고의 또는 과실로 발령하고 이에 따라 실제로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는 정의관념에 반하지 않는다고 하거나 부당하지 않다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재판부는 장 선생에 대해서는 5억 원, 배우자인 故 김희숙 여사에 대해서는 1억 원, 두 사람의 자녀 5명에 대해서는 각 5천만 원을 정신적 손해액으로 인정했습니다. 다만 장 선생 몫으로 돌아간 형사보상금 6천6백여만 원은 관련 법에 따라 장 선생에 대한 위자료에서 공제했습니다. 장 선생과 김 여사에 대한 위자료는 자녀들에게 상속됐습니다.

재판부는 위자료 액수 산정 기준에 대해 ▲장 선생이 한국현대사에서 조국 광복과 반독재민주화투쟁 등에 일생을 헌신한 민족의 지도자로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고, 반민주적인 유신헌법을 개정하기 위한 운동을 벌였던 점 ▲이에 대통령은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탄압하기 위해 헌법 개정을 주장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는 긴급조치 1호를 발령한 점 ▲그럼에도 장 선생은 유신헌법 개정운동을 활발히 벌이다가 긴급조치 1호의 최초 위반자로서 영장없이 체포·구금돼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받았고, 형집행정지로 석방되기까지 323일 동안 구금돼 있었던 점 ▲장 선생의 가족은 별다른 직업이 없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국가의 감시와 억압을 받아 정상적 사회생활이 곤란했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경제적으로도 궁핍한 생활을 겪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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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13 17:36:36
    • 수정2020-05-13 19:22:26
    사회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 항거하다 옥고를 치른 고(故) 장준하 선생의 유족에게, 국가가 모두 7억 8천여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재판장 김형석)는 장호권 씨 등 장 선생의 자녀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장 선생의 유족에게 모두 7억 8천3백여 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습니다.

장 선생은 1973년부터 유신헌법 개정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 등 민주화 운동을 벌이다가 이듬해 1월 긴급조치 1호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영장 없이 체포·구금된 뒤 가혹 행위를 당하다 기소됐습니다. 긴급조치 1호는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안 또는 청원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면서, 이를 위반할 경우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장 선생은 1974년 8월 대법원에서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장 선생은 323일 동안의 수감 생활 뒤 심장협심증과 간경화 증세 악화로 같은 해 12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났고, 1975년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후 장 선생에 대한 처벌 근거로 이용됐던 긴급조치 1호는 2010년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습니다. 대법원은 긴급조치 1호가 그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해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유신헌법에 위배돼 위헌·무효라고 판단했습니다.

장 선생도 자신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 지 39년 만인 2013년, 긴급조치 위반 혐의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재심 무죄 판결 이후, 장 선생의 부인 故 김희숙 여사(2018년 7월 별세)와 자녀 5명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유족들은 긴급조치 1호를 발령한 대통령의 불법 행위와 중앙정보부의 위법한 수사로 장 선생과 가족들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국가가 모두 13억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재판부 역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일부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대통령의 긴급조치 1호 발령 행위는 대통령의 헌법수호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긴급조치 1호 발령은 그 발령만으로 "헌법상 보장되는 국민의 기본권이 직접적이고 중대하게 침해된다는 사정을 잘 알면서도 행해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대통령의 긴급조치 1호 발령 행위는 실제 피해를 입은 장 선생에 대한 "고의 또는 중대의 과실에 의한 위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긴급조치 1호 발령에 근거를 둔 수사와 재판, 징역형의 집행 역시 모두 위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재판부는 특히 "대통령은 긴급조치 1호의 발령이 유신헌법에서 규정하는 요건에 부합하지 않고, 이에 의해 국민들의 기본권이 직접적으로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탄압하기 위해 이를 발령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대통령 등 공무원들의 위법 행위로 장 선생과 그 가족들이 "정신적 고통을 당했을 것이 경험칙상 분명하다"며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이같은 재판부의 판단은 개인의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은 최근 대법원의 관련 판례와는 결론을 달리한 것입니다. 앞서 2015년 대법원은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라며 "대통령은 국가긴급권의 행사에 관해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해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이 피해자 개개인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지는 불법 행위라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서울중앙지법 민사 20부는 이같은 대법원 판례에 대해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 행위는 그 위반 행위에 대한 수사, 재판, 형의 집행을 당연히 예정하고 있다"며 "실제로 피해가 구체적으로 발생한 경우에는 그 수사, 재판, 형의 집행 행위와 분리해 (긴급조치) 발령 행위 자체만을 판단해 정치적 책임만을 진다고 할 수는 없다"고 다른 판단을 했습니다. 재판부는 긴급조치의 발령과 수사, 재판, 형의 집행행위를 각각 분리해 판단한다면 "대통령이 당초부터 위헌이자 무효인 긴급조치를 고의 또는 과실로 발령하고 이에 따라 실제로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는 정의관념에 반하지 않는다고 하거나 부당하지 않다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재판부는 장 선생에 대해서는 5억 원, 배우자인 故 김희숙 여사에 대해서는 1억 원, 두 사람의 자녀 5명에 대해서는 각 5천만 원을 정신적 손해액으로 인정했습니다. 다만 장 선생 몫으로 돌아간 형사보상금 6천6백여만 원은 관련 법에 따라 장 선생에 대한 위자료에서 공제했습니다. 장 선생과 김 여사에 대한 위자료는 자녀들에게 상속됐습니다.

재판부는 위자료 액수 산정 기준에 대해 ▲장 선생이 한국현대사에서 조국 광복과 반독재민주화투쟁 등에 일생을 헌신한 민족의 지도자로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고, 반민주적인 유신헌법을 개정하기 위한 운동을 벌였던 점 ▲이에 대통령은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탄압하기 위해 헌법 개정을 주장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는 긴급조치 1호를 발령한 점 ▲그럼에도 장 선생은 유신헌법 개정운동을 활발히 벌이다가 긴급조치 1호의 최초 위반자로서 영장없이 체포·구금돼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받았고, 형집행정지로 석방되기까지 323일 동안 구금돼 있었던 점 ▲장 선생의 가족은 별다른 직업이 없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국가의 감시와 억압을 받아 정상적 사회생활이 곤란했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경제적으로도 궁핍한 생활을 겪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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