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 표지석 제막
입력 2020.05.13 (19:54)
수정 2020.05.13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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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5.18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한 때 5.18 기념식에서조차 함께 부를 수 없었던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아시아 인권운동 현장에 함께 불리며, 광주의 5·18 정신을 세상에 알리고 있습니다.
엄혹한 시절, 함께 이 노래를 만들었던 그 장소에 표지석이 세워졌습니다. 김애린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5.18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와 그의 야학 동지이자 노동운동을 하다 숨진 고 박기순의 영혼결혼식.
그 가슴 아픈 인연을 기억하기 위해 황석영 작가와 김종률 작곡가 등이 당시 광주 운암동 황 작가의 집에 모여 두 사람에게 헌정할 노래를 만듭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 뒤 자연스럽게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곡이 됐습니다.
30여 년이 지난 오늘, 이 노래가 만들어진 장소에 표지석이 세워졌습니다.
["하나, 둘, 셋!"]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절, 첫 녹음은 은밀하게 진행됐습니다.
행여 노래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까 담요로 창문을 막아 놓고 긴장 속에 녹음하던 기억은 생생합니다.
[황석영/작가 : "밖에 새어 나갈까 봐 두꺼운 담요 창문마다 (해놓고) 그랬는데, 저 오종묵씨가 바리톤이 굉장히 커요. 지금도 그런가. 노래 바리톤이 굉장히 커서, '야 좀 낮춰라, 낮춰'"]
1982년 만들어진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화운동 현장과 5.18 기념식에서 줄곧 불려왔지만, 2009년 이명박 정권부터 9년 동안은 기념식에서조차 함께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 아시아인들이 함께 부르는 민주주의의 상징곡이 됐습니다.
[김종률/ '임을 위한 행진곡' 작곡가 : "그 노래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현장에서 계속 불려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그런 문화 예술 활동을 계속적으로 해나가겠습니다."]
죽은 이들을 기리는 노래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산 자들의 노래로 불려온 '임을 위한 행진곡'.
그 역사적 가치는 이제 표지석으로 남아, 광주정신을 전하는 또하나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애린입니다.
5.18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한 때 5.18 기념식에서조차 함께 부를 수 없었던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아시아 인권운동 현장에 함께 불리며, 광주의 5·18 정신을 세상에 알리고 있습니다.
엄혹한 시절, 함께 이 노래를 만들었던 그 장소에 표지석이 세워졌습니다. 김애린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5.18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와 그의 야학 동지이자 노동운동을 하다 숨진 고 박기순의 영혼결혼식.
그 가슴 아픈 인연을 기억하기 위해 황석영 작가와 김종률 작곡가 등이 당시 광주 운암동 황 작가의 집에 모여 두 사람에게 헌정할 노래를 만듭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 뒤 자연스럽게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곡이 됐습니다.
30여 년이 지난 오늘, 이 노래가 만들어진 장소에 표지석이 세워졌습니다.
["하나, 둘, 셋!"]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절, 첫 녹음은 은밀하게 진행됐습니다.
행여 노래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까 담요로 창문을 막아 놓고 긴장 속에 녹음하던 기억은 생생합니다.
[황석영/작가 : "밖에 새어 나갈까 봐 두꺼운 담요 창문마다 (해놓고) 그랬는데, 저 오종묵씨가 바리톤이 굉장히 커요. 지금도 그런가. 노래 바리톤이 굉장히 커서, '야 좀 낮춰라, 낮춰'"]
1982년 만들어진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화운동 현장과 5.18 기념식에서 줄곧 불려왔지만, 2009년 이명박 정권부터 9년 동안은 기념식에서조차 함께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 아시아인들이 함께 부르는 민주주의의 상징곡이 됐습니다.
[김종률/ '임을 위한 행진곡' 작곡가 : "그 노래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현장에서 계속 불려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그런 문화 예술 활동을 계속적으로 해나가겠습니다."]
죽은 이들을 기리는 노래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산 자들의 노래로 불려온 '임을 위한 행진곡'.
그 역사적 가치는 이제 표지석으로 남아, 광주정신을 전하는 또하나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애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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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을 위한 행진곡’ 표지석 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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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0-05-13 19:54:16
- 수정2020-05-13 19:54:19

[앵커]
5.18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한 때 5.18 기념식에서조차 함께 부를 수 없었던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아시아 인권운동 현장에 함께 불리며, 광주의 5·18 정신을 세상에 알리고 있습니다.
엄혹한 시절, 함께 이 노래를 만들었던 그 장소에 표지석이 세워졌습니다. 김애린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5.18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와 그의 야학 동지이자 노동운동을 하다 숨진 고 박기순의 영혼결혼식.
그 가슴 아픈 인연을 기억하기 위해 황석영 작가와 김종률 작곡가 등이 당시 광주 운암동 황 작가의 집에 모여 두 사람에게 헌정할 노래를 만듭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 뒤 자연스럽게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곡이 됐습니다.
30여 년이 지난 오늘, 이 노래가 만들어진 장소에 표지석이 세워졌습니다.
["하나, 둘, 셋!"]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절, 첫 녹음은 은밀하게 진행됐습니다.
행여 노래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까 담요로 창문을 막아 놓고 긴장 속에 녹음하던 기억은 생생합니다.
[황석영/작가 : "밖에 새어 나갈까 봐 두꺼운 담요 창문마다 (해놓고) 그랬는데, 저 오종묵씨가 바리톤이 굉장히 커요. 지금도 그런가. 노래 바리톤이 굉장히 커서, '야 좀 낮춰라, 낮춰'"]
1982년 만들어진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화운동 현장과 5.18 기념식에서 줄곧 불려왔지만, 2009년 이명박 정권부터 9년 동안은 기념식에서조차 함께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 아시아인들이 함께 부르는 민주주의의 상징곡이 됐습니다.
[김종률/ '임을 위한 행진곡' 작곡가 : "그 노래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현장에서 계속 불려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그런 문화 예술 활동을 계속적으로 해나가겠습니다."]
죽은 이들을 기리는 노래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산 자들의 노래로 불려온 '임을 위한 행진곡'.
그 역사적 가치는 이제 표지석으로 남아, 광주정신을 전하는 또하나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애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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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린 기자 thirst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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