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이 죽이고 시민군 탓?…카빈 총상의 진실

입력 2020.05.13 (19:54) 수정 2020.05.13 (19:5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총상 사망자에 대한 논란은 또 있습니다. 

계엄군이 사용했던 M16과 시민들이 들었던 카빈 총에 의한 총상 구분 때문인데요. 

카빈 총상 사망자는 계엄군이 아니라 총을 든 시민들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인데, 과연 그럴까요? 

카빈 총에 의해 숨졌다는 30여 명의 검시기록을 김정대 기자가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1980년 5월 21일 저녁.

광주에서 전남 담양 집으로 돌아가던 고규석 씨 일행은 광주교도소 옆을 지나다 계엄군의 무차별 총격을 받았습니다.  

탑승자 4명 중 고규석 씨 등 두 명이 현장에서 숨지고 계엄군에게 붙잡힌 두 명도 폭행당했습니다.  

숨진 두 사람의 검시 기록에는 계엄군이 사용한 'M16' 대신 '카빈' 총상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기록됐습니다.  

당시 교도소에 주둔했던 공수부대의 군기록에서도 고규석 씨 일행의 피격이 확인되는데도 정작 검시 기록에는 시민군에 의해 숨진 것으로 돼 있습니다. 

[정수만/전 5·18유족회장 : "광주에서 일어난 일들에 자기들의 정당성, 합리적인 거 이런 것들을 주장하기 위해서 (조작하지 않았나 봅니다)."]

KBS 취재팀이 카빈 총상 사망자 30여 명을 모두 분석해보니, 비슷한 사례가 더 나왔습니다.  

5월 20일 밤 계엄군에 의해 광주역 앞에서 희생된 김재화 씨와 김만두 씨. 

두 사람 모두 카빈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튿날 전남도청 앞에서 숨진 윤형근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카빈 총상으로 볼 수 없는 큰 상처가 몸에 남아있었지만 카빈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쓰여 있습니다. 

21일 계엄군의 집단발포 후에야 시민들이 무장한 사실에 비춰보면 모두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김성봉/5·18 당시 광주기독병원 외과 과장 : "(사입구가) 6~7㎝ 됐다는 건 그런 소총으로 당한 게 아닙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들어가는 입구가 그럴 수는없는 거죠."]

계엄군의 M16 총에 맞아 희생된 것이 분명한데도 시민군에 의해 숨진 것으로 호도되는 5.18 역사. 

진상 규명마저 더디면서 40년이 지난 지금도 '시민군들이 쏜 총에 시민들이 희생됐다’는 왜곡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정대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군이 죽이고 시민군 탓?…카빈 총상의 진실
    • 입력 2020-05-13 19:54:32
    • 수정2020-05-13 19:55:08
    뉴스7(광주)
[앵커] 총상 사망자에 대한 논란은 또 있습니다.  계엄군이 사용했던 M16과 시민들이 들었던 카빈 총에 의한 총상 구분 때문인데요.  카빈 총상 사망자는 계엄군이 아니라 총을 든 시민들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인데, 과연 그럴까요?  카빈 총에 의해 숨졌다는 30여 명의 검시기록을 김정대 기자가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1980년 5월 21일 저녁. 광주에서 전남 담양 집으로 돌아가던 고규석 씨 일행은 광주교도소 옆을 지나다 계엄군의 무차별 총격을 받았습니다.   탑승자 4명 중 고규석 씨 등 두 명이 현장에서 숨지고 계엄군에게 붙잡힌 두 명도 폭행당했습니다.   숨진 두 사람의 검시 기록에는 계엄군이 사용한 'M16' 대신 '카빈' 총상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기록됐습니다.   당시 교도소에 주둔했던 공수부대의 군기록에서도 고규석 씨 일행의 피격이 확인되는데도 정작 검시 기록에는 시민군에 의해 숨진 것으로 돼 있습니다.  [정수만/전 5·18유족회장 : "광주에서 일어난 일들에 자기들의 정당성, 합리적인 거 이런 것들을 주장하기 위해서 (조작하지 않았나 봅니다)."] KBS 취재팀이 카빈 총상 사망자 30여 명을 모두 분석해보니, 비슷한 사례가 더 나왔습니다.   5월 20일 밤 계엄군에 의해 광주역 앞에서 희생된 김재화 씨와 김만두 씨.  두 사람 모두 카빈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튿날 전남도청 앞에서 숨진 윤형근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카빈 총상으로 볼 수 없는 큰 상처가 몸에 남아있었지만 카빈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쓰여 있습니다.  21일 계엄군의 집단발포 후에야 시민들이 무장한 사실에 비춰보면 모두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김성봉/5·18 당시 광주기독병원 외과 과장 : "(사입구가) 6~7㎝ 됐다는 건 그런 소총으로 당한 게 아닙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들어가는 입구가 그럴 수는없는 거죠."] 계엄군의 M16 총에 맞아 희생된 것이 분명한데도 시민군에 의해 숨진 것으로 호도되는 5.18 역사.  진상 규명마저 더디면서 40년이 지난 지금도 '시민군들이 쏜 총에 시민들이 희생됐다’는 왜곡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정대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광주-주요뉴스

더보기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