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흐른 5·18…10대 시민군의 다짐

입력 2020.05.18 (12:28) 수정 2020.05.18 (12:3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1980년 5월 민주화운동 당시 고등학생 신분으로 역사의 현장을 지켜봤거나, 직접 시민군에 참여했던 이들이 있습니다.

어느덧 40년이 흘러 환갑을 바라보고 있지만 아픈 상처를 보듬고, 역사 왜곡 바로잡기 등 남은 과제를 위해 다시 모였습니다.

보도에 최송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입작전, 이른바 '상무충정작전'을 하루 앞둔 1980년 5월 26일.

군의 최후 통첩에도 시민군은 민주주의 사수를 위해 결연히 최후항쟁을 준비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최치수 씨도 있었습니다.

[최치수/10대 시민군 : "여기 있으면 분명히 죽는다는 생각이 드는데... 차분해지더라고요. 오히려 더 담담해지고 그리고 어머니 생각이 나고요."]

27일 새벽 계엄군의 쏟아지는 총탄을 피해 도청 2층으로 몸을 피했던 경창수 씨.

살아남아 그 역사를 증언해달라던 먼저 간 이들의 애절한 당부를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경창수/10대 시민군 : "너는 어리니까 나가서 역사의 현장을 증언해라. 꼭 살아서 나가라 그런 이야기를 하고 제 철모도 벗겨줬어요."]

계엄군의 대표적 민간인 학살 사건이었던 주남마을 버스에 몸을 실었다 유일한 생존자가 된 홍금숙 씨.

버스 안에서 나란히 앉았다가 다시는 만날 수 없었던 친구 고 박현숙 씨의 묘비를 찾았습니다.

[홍금숙/주남마을 사건 생존자 : "이유야 어쨌든 내 의지로 살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죽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내가 어쨌든 혼자 살았으니까 죄책감도 있고 미안함도 있고."]

80년 5월, 함께 싸우고 시신을 옮기고 부상자를 위해 피를 나눴던 이른바 10대 시민군들은 확인된 숫자만 2백여 명.

지금은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다르지만,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살아남은 자의 몫을 다하기 위해 다시 모였습니다.

이들의 첫 사업은 5.18 고등학생 동지회 설립입니다.

이들은 동지회를 통해 40년 전 자신들이 목격한 사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역사왜곡을 바로 잡고 다시는 이땅에 5.18과 같은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게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최송현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40년 흐른 5·18…10대 시민군의 다짐
    • 입력 2020-05-18 12:30:23
    • 수정2020-05-18 12:37:18
    뉴스 12
[앵커]

1980년 5월 민주화운동 당시 고등학생 신분으로 역사의 현장을 지켜봤거나, 직접 시민군에 참여했던 이들이 있습니다.

어느덧 40년이 흘러 환갑을 바라보고 있지만 아픈 상처를 보듬고, 역사 왜곡 바로잡기 등 남은 과제를 위해 다시 모였습니다.

보도에 최송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입작전, 이른바 '상무충정작전'을 하루 앞둔 1980년 5월 26일.

군의 최후 통첩에도 시민군은 민주주의 사수를 위해 결연히 최후항쟁을 준비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최치수 씨도 있었습니다.

[최치수/10대 시민군 : "여기 있으면 분명히 죽는다는 생각이 드는데... 차분해지더라고요. 오히려 더 담담해지고 그리고 어머니 생각이 나고요."]

27일 새벽 계엄군의 쏟아지는 총탄을 피해 도청 2층으로 몸을 피했던 경창수 씨.

살아남아 그 역사를 증언해달라던 먼저 간 이들의 애절한 당부를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경창수/10대 시민군 : "너는 어리니까 나가서 역사의 현장을 증언해라. 꼭 살아서 나가라 그런 이야기를 하고 제 철모도 벗겨줬어요."]

계엄군의 대표적 민간인 학살 사건이었던 주남마을 버스에 몸을 실었다 유일한 생존자가 된 홍금숙 씨.

버스 안에서 나란히 앉았다가 다시는 만날 수 없었던 친구 고 박현숙 씨의 묘비를 찾았습니다.

[홍금숙/주남마을 사건 생존자 : "이유야 어쨌든 내 의지로 살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죽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내가 어쨌든 혼자 살았으니까 죄책감도 있고 미안함도 있고."]

80년 5월, 함께 싸우고 시신을 옮기고 부상자를 위해 피를 나눴던 이른바 10대 시민군들은 확인된 숫자만 2백여 명.

지금은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다르지만,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살아남은 자의 몫을 다하기 위해 다시 모였습니다.

이들의 첫 사업은 5.18 고등학생 동지회 설립입니다.

이들은 동지회를 통해 40년 전 자신들이 목격한 사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역사왜곡을 바로 잡고 다시는 이땅에 5.18과 같은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게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최송현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2024 파리 올림픽 배너 이미지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