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상태는 ‘전쟁 멈춤’…제자리 맴도는 ‘평화체제’
입력 2020.06.25 (09:00)
수정 2020.06.2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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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한 지 오늘(25일)로 꼭 70년입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종전선언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였습니다만, 지금의 한반도에는 또다시 싸늘한 긴장이 흐르고 있습니다. 남북은 전쟁을 끝낸 게 아닌, '일시 정지'한 상태로 오늘을 맞이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이 여전히 한반도의 질서를 규정하고 있는 겁니다.
■ 1953년 7월 27일, 전쟁 '일시 정지'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만난 유엔군 측 수석대표 해리슨 미 육군 중장과 공산군 측 수석대표 남일 북한군 대장은 5조 63개 항으로 구성된 정전협정문에 서명했습니다. 전쟁 발발 이후 3년여 만이었고, 양측이 정전협정과 관련해 최초 접촉한 1951년 7월로부터는 2년 만이었습니다.
정전협정의 '서언'을 보면 협정 목적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습니다.
"쌍방에 막대한 고통과 유혈을 초래한 한국충돌을 정지시키기 위하여 서로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일제 무력행위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목적으로..."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무력행위의 완전한 정지, 이를 위해 양측은 군사분계선(MDL)을 확정하고 이로부터 각각 2km씩 후퇴해 비무장지대(DMZ)를 설정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쌍방 모두 비무장지대 내에서, 비무장지대로부터, 비무장지대를 향해 어떠한 적대행위도 감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군사분계선 통과 시에 군사정전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비무장지대 출입 시엔 지역 사령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도록 규정했습니다. 비무장지대에 들어올 수 있는 인원은 각 1,000명을 넘지 못하게 했으며 휴대무기도 군사정전위가 규정하게 했습니다.
이 같은 정전협정 체결로 한반도에서는 '불안정한 평화'의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양측 사이 전면적인 전쟁은 일시 정지 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전쟁은 끝난 게 아니었고 이후에도 크고 작은 무력 충돌로 이어진 겁니다.
■ 정전협정, 절반은 위반 중
지난달 3일 중부전선 비무장지대 내 남북 감시초소(GP) 사이에 총격이 오갔습니다. 북측에서 먼저 우리 GP를 향해 14.5mm 고사총을 발사했고 우리는 K-6 기관총으로 대응 사격을 했습니다.
그리고 20여 일 뒤, 유엔군사령부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남북 모두 정전협정을 위반했다"라는 게 결론이었습니다. 북측이 먼저 총격을 해 정전협정을 위반했고, 남측이 이에 대응 사격한 것 역시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북측의 비협조로 북한 측이 총탄을 발사한 것이 고의적인지 우발적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사례는 정전협정이 현재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정전협정에 따라 정한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비무장지대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과 관련해 군사정전위원회 유엔사 조사팀이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참관하에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조사했다는 데에서, 우리는 정전협정이라는 큰 틀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북측은 정전협정 상 규정된 군정위에 더는 참여하지 않고 있으며, 이번 조사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남북 모두 비무장지대 내부에 군사시설인 감시초소를 지어놓고 중화기를 배치해 서로를 겨누고 있고, 이를 서로에게 발사하는 '적대행위'를 했습니다. 정전협정이 상당 부분 지켜지지 않고 있고 언제든 충돌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또 한 번의 사례입니다.
사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각 조항의 해석에 따라 다르지만, 정전협정 63개 조항 중 절반 정도는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정전협정 위에 새운 '정전체제'의 불안정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9·19 군사합의' 속 정전협정을 찾아라
최근 남북 간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유독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는 '9·19 군사합의'입니다. 북한이 행동에 나설 때마다 그것이 군사합의 위반인지, 나아가 군사합의가 파기하겠다는 것인지에 늘 이목이 쏠립니다.
9·19 군사합의에 담긴 의미와 지향점은 복잡합니다만 그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바로 '정전협정의 복원'입니다. 정전협정조차 잘 안 지키고 있는 현실에서 아주 새로운 것을 하기보다는 일단 원래의 합의사항부터 지켜보자는 게 군사 당국 간 신뢰 구축의 첫걸음이라는 것입니다.
9·19 군사합의 주요 내용 중 하나는 비무장지대 내 GP 철수입니다. 남북은 우선 시범적으로 각 11개 GP를 철수하기로 하고, 2018년 말 10개씩을 폭파 또는 철거했습니다. 각각 1개씩은 역사적 의미를 고려해 보존 GP로 남겼습니다.
이는 정전협정이 규정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으로 '비무장화'하자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정전협정 합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비무장지대 내에 초소를 만들어 중화기로 무장한 군인들을 배치했고 우리도 이에 맞서 GP를 설치하고 중화기를 들인 상태입니다. 우리 군의 경우 중화기 반입 시에 절차상 유엔사 승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과적으로는 비무장지대를 무장 상태로 만들게 됐습니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비무장화, 자유왕래도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공동경비구역의 애초 취지를 살리자는 것입니다. 현재 남북은 9·19 군사합의에 따라 비무장화를 완료했지만, 이후 진척이 없어 자유왕래까지는 가지 못한 상황입니다.
한강하구 중립수역에서의 민간선박 자유항행도 정전협정에 명시된 조항을 이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정전협정에서 양측은 한강하구 수역에서 민용 선박의 항행을 허용하기로 했는데,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군사적 긴장 때문에 선박 항행은 지금까지도 통제되고 있습니다. 남북은 9·19 군사합의에 따라 정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공동 수로 조사까지 마쳤지만 그 후 더는 진척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지난해 초 하노이에서의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후 남북 간 교류협력을 위한 대화가 삐걱거리면서 9·19 군사합의도 '멈춤'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정전협정이 그렇듯이, 군사합의 역시 큰 틀은 파기되지 않고 유지 중인데 위반 사례들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 평화협정
"1953년 이래 한반도는 60년 넘게 정전 상태에 있습니다. 불안한 정전 체제 위에서는 공고한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종전과 함께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합니다." (2017. 7. 6., 문재인 대통령 '베를린 구상' 중)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7월 베를린에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을 제안했습니다. 이른바 '베를린 구상'인데, 문 대통령은 여기서 정전 체제의 불안함을 이야기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평화협정 체결을 제시했습니다.
정전체제를 어떻게 끝낼 수 있는지는 정전협정문에 적혀있습니다. 협정문에는 "정전협정의 각 조항은 … 쌍방의 정치적 수준에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적당한 협정 중의 규정에 의해 명확히 교체될 때까지는 계속 효력을 가진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쉽게 말해 평화협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노력의 역사는 깁니다. 정전협정은 양측 군 사령관 간에 체결한 군사적 합의이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양측의 신뢰에 기반을 둔 정치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전협정문에도 이 같은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정전협정의 효력이 발생한 후 3개월 이내에 쌍방의 한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해 문제를 협의할 것을 건의한 겁니다.
그 결과로 정전협정 체결 이듬해인 1954년 관련국 대표 간에 제네바 정치회의가 열렸습니다. 정전 상태인 6·25 전쟁을 정식으로 종료하기 위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논의 주제였지만 결국 성과 없이 끝났습니다.
그 후 남북 간 치열한 대결의 시대를 지나 1992년 남북은 고위급회담의 결과로 나온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남과 북은 현 정전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라는 데 합의했습니다.
이어 90년대 후반에는 남·북·미·중 4자회담에서, 2000년대 들어서는 남·북·미·중·일·러 6자회담에서 모두 한반도 문제의 궁극적 해결 방향으로 '평화체제'를 상정했지만 역시 실질적 성과로는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남과 북이 정전체제를 종식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는 점을 재확인했지만 역시 추가 진척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미 정상 간 연쇄적인 회담이 이어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기대가 커졌습니다. 그러나 남북관계 경색과 북미 협상 교착상태가 길어지면서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그랬듯, 평화체제로 다가가는 길은 어렵고 험난한데 멀어지는 건 참 빠른 듯합니다. 70년간 계속되고 있는 '일시 정지' 상태인 한반도의 전쟁, 언제쯤 끝낼 수 있는 걸까요?
■ 1953년 7월 27일, 전쟁 '일시 정지'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만난 유엔군 측 수석대표 해리슨 미 육군 중장과 공산군 측 수석대표 남일 북한군 대장은 5조 63개 항으로 구성된 정전협정문에 서명했습니다. 전쟁 발발 이후 3년여 만이었고, 양측이 정전협정과 관련해 최초 접촉한 1951년 7월로부터는 2년 만이었습니다.
정전협정의 '서언'을 보면 협정 목적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습니다.
"쌍방에 막대한 고통과 유혈을 초래한 한국충돌을 정지시키기 위하여 서로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일제 무력행위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목적으로..."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무력행위의 완전한 정지, 이를 위해 양측은 군사분계선(MDL)을 확정하고 이로부터 각각 2km씩 후퇴해 비무장지대(DMZ)를 설정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쌍방 모두 비무장지대 내에서, 비무장지대로부터, 비무장지대를 향해 어떠한 적대행위도 감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군사분계선 통과 시에 군사정전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비무장지대 출입 시엔 지역 사령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도록 규정했습니다. 비무장지대에 들어올 수 있는 인원은 각 1,000명을 넘지 못하게 했으며 휴대무기도 군사정전위가 규정하게 했습니다.
이 같은 정전협정 체결로 한반도에서는 '불안정한 평화'의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양측 사이 전면적인 전쟁은 일시 정지 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전쟁은 끝난 게 아니었고 이후에도 크고 작은 무력 충돌로 이어진 겁니다.
군사분계선을 구획 중인 공산군 측 장춘산 북한군 대령과 유엔군 측 미군 제임스 머레이 미군 대령 (사진출처: 국사편찬위원회)
■ 정전협정, 절반은 위반 중
지난달 3일 중부전선 비무장지대 내 남북 감시초소(GP) 사이에 총격이 오갔습니다. 북측에서 먼저 우리 GP를 향해 14.5mm 고사총을 발사했고 우리는 K-6 기관총으로 대응 사격을 했습니다.
그리고 20여 일 뒤, 유엔군사령부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남북 모두 정전협정을 위반했다"라는 게 결론이었습니다. 북측이 먼저 총격을 해 정전협정을 위반했고, 남측이 이에 대응 사격한 것 역시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북측의 비협조로 북한 측이 총탄을 발사한 것이 고의적인지 우발적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사례는 정전협정이 현재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정전협정에 따라 정한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비무장지대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과 관련해 군사정전위원회 유엔사 조사팀이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참관하에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조사했다는 데에서, 우리는 정전협정이라는 큰 틀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북측은 정전협정 상 규정된 군정위에 더는 참여하지 않고 있으며, 이번 조사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남북 모두 비무장지대 내부에 군사시설인 감시초소를 지어놓고 중화기를 배치해 서로를 겨누고 있고, 이를 서로에게 발사하는 '적대행위'를 했습니다. 정전협정이 상당 부분 지켜지지 않고 있고 언제든 충돌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또 한 번의 사례입니다.
사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각 조항의 해석에 따라 다르지만, 정전협정 63개 조항 중 절반 정도는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정전협정 위에 새운 '정전체제'의 불안정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018년 9월 19일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 서명한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당시 북한 인민무력상
■ '9·19 군사합의' 속 정전협정을 찾아라
최근 남북 간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유독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는 '9·19 군사합의'입니다. 북한이 행동에 나설 때마다 그것이 군사합의 위반인지, 나아가 군사합의가 파기하겠다는 것인지에 늘 이목이 쏠립니다.
9·19 군사합의에 담긴 의미와 지향점은 복잡합니다만 그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바로 '정전협정의 복원'입니다. 정전협정조차 잘 안 지키고 있는 현실에서 아주 새로운 것을 하기보다는 일단 원래의 합의사항부터 지켜보자는 게 군사 당국 간 신뢰 구축의 첫걸음이라는 것입니다.
9·19 군사합의 주요 내용 중 하나는 비무장지대 내 GP 철수입니다. 남북은 우선 시범적으로 각 11개 GP를 철수하기로 하고, 2018년 말 10개씩을 폭파 또는 철거했습니다. 각각 1개씩은 역사적 의미를 고려해 보존 GP로 남겼습니다.
9·19 군사합의에 따라 시범 철수한 북측 GP 폭파 장면
이는 정전협정이 규정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으로 '비무장화'하자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정전협정 합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비무장지대 내에 초소를 만들어 중화기로 무장한 군인들을 배치했고 우리도 이에 맞서 GP를 설치하고 중화기를 들인 상태입니다. 우리 군의 경우 중화기 반입 시에 절차상 유엔사 승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과적으로는 비무장지대를 무장 상태로 만들게 됐습니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비무장화, 자유왕래도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공동경비구역의 애초 취지를 살리자는 것입니다. 현재 남북은 9·19 군사합의에 따라 비무장화를 완료했지만, 이후 진척이 없어 자유왕래까지는 가지 못한 상황입니다.
한강하구 중립수역에서의 민간선박 자유항행도 정전협정에 명시된 조항을 이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정전협정에서 양측은 한강하구 수역에서 민용 선박의 항행을 허용하기로 했는데,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군사적 긴장 때문에 선박 항행은 지금까지도 통제되고 있습니다. 남북은 9·19 군사합의에 따라 정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공동 수로 조사까지 마쳤지만 그 후 더는 진척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지난해 초 하노이에서의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후 남북 간 교류협력을 위한 대화가 삐걱거리면서 9·19 군사합의도 '멈춤'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정전협정이 그렇듯이, 군사합의 역시 큰 틀은 파기되지 않고 유지 중인데 위반 사례들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2017년 7월 6일 베를린 옛 시청인 알테스 슈타트하우스에서 ‘베를린 구상’을 발표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 평화협정
"1953년 이래 한반도는 60년 넘게 정전 상태에 있습니다. 불안한 정전 체제 위에서는 공고한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종전과 함께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합니다." (2017. 7. 6., 문재인 대통령 '베를린 구상' 중)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7월 베를린에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을 제안했습니다. 이른바 '베를린 구상'인데, 문 대통령은 여기서 정전 체제의 불안함을 이야기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평화협정 체결을 제시했습니다.
정전체제를 어떻게 끝낼 수 있는지는 정전협정문에 적혀있습니다. 협정문에는 "정전협정의 각 조항은 … 쌍방의 정치적 수준에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적당한 협정 중의 규정에 의해 명확히 교체될 때까지는 계속 효력을 가진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쉽게 말해 평화협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노력의 역사는 깁니다. 정전협정은 양측 군 사령관 간에 체결한 군사적 합의이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양측의 신뢰에 기반을 둔 정치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전협정문에도 이 같은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정전협정의 효력이 발생한 후 3개월 이내에 쌍방의 한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해 문제를 협의할 것을 건의한 겁니다.
그 결과로 정전협정 체결 이듬해인 1954년 관련국 대표 간에 제네바 정치회의가 열렸습니다. 정전 상태인 6·25 전쟁을 정식으로 종료하기 위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논의 주제였지만 결국 성과 없이 끝났습니다.
그 후 남북 간 치열한 대결의 시대를 지나 1992년 남북은 고위급회담의 결과로 나온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남과 북은 현 정전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라는 데 합의했습니다.
이어 90년대 후반에는 남·북·미·중 4자회담에서, 2000년대 들어서는 남·북·미·중·일·러 6자회담에서 모두 한반도 문제의 궁극적 해결 방향으로 '평화체제'를 상정했지만 역시 실질적 성과로는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남과 북이 정전체제를 종식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는 점을 재확인했지만 역시 추가 진척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미 정상 간 연쇄적인 회담이 이어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기대가 커졌습니다. 그러나 남북관계 경색과 북미 협상 교착상태가 길어지면서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그랬듯, 평화체제로 다가가는 길은 어렵고 험난한데 멀어지는 건 참 빠른 듯합니다. 70년간 계속되고 있는 '일시 정지' 상태인 한반도의 전쟁, 언제쯤 끝낼 수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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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상태는 ‘전쟁 멈춤’…제자리 맴도는 ‘평화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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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0-06-25 09:00:16
- 수정2020-06-25 09:03:46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한 지 오늘(25일)로 꼭 70년입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종전선언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였습니다만, 지금의 한반도에는 또다시 싸늘한 긴장이 흐르고 있습니다. 남북은 전쟁을 끝낸 게 아닌, '일시 정지'한 상태로 오늘을 맞이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이 여전히 한반도의 질서를 규정하고 있는 겁니다.
■ 1953년 7월 27일, 전쟁 '일시 정지'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만난 유엔군 측 수석대표 해리슨 미 육군 중장과 공산군 측 수석대표 남일 북한군 대장은 5조 63개 항으로 구성된 정전협정문에 서명했습니다. 전쟁 발발 이후 3년여 만이었고, 양측이 정전협정과 관련해 최초 접촉한 1951년 7월로부터는 2년 만이었습니다.
정전협정의 '서언'을 보면 협정 목적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습니다.
"쌍방에 막대한 고통과 유혈을 초래한 한국충돌을 정지시키기 위하여 서로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일제 무력행위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목적으로..."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무력행위의 완전한 정지, 이를 위해 양측은 군사분계선(MDL)을 확정하고 이로부터 각각 2km씩 후퇴해 비무장지대(DMZ)를 설정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쌍방 모두 비무장지대 내에서, 비무장지대로부터, 비무장지대를 향해 어떠한 적대행위도 감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군사분계선 통과 시에 군사정전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비무장지대 출입 시엔 지역 사령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도록 규정했습니다. 비무장지대에 들어올 수 있는 인원은 각 1,000명을 넘지 못하게 했으며 휴대무기도 군사정전위가 규정하게 했습니다.
이 같은 정전협정 체결로 한반도에서는 '불안정한 평화'의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양측 사이 전면적인 전쟁은 일시 정지 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전쟁은 끝난 게 아니었고 이후에도 크고 작은 무력 충돌로 이어진 겁니다.
■ 정전협정, 절반은 위반 중
지난달 3일 중부전선 비무장지대 내 남북 감시초소(GP) 사이에 총격이 오갔습니다. 북측에서 먼저 우리 GP를 향해 14.5mm 고사총을 발사했고 우리는 K-6 기관총으로 대응 사격을 했습니다.
그리고 20여 일 뒤, 유엔군사령부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남북 모두 정전협정을 위반했다"라는 게 결론이었습니다. 북측이 먼저 총격을 해 정전협정을 위반했고, 남측이 이에 대응 사격한 것 역시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북측의 비협조로 북한 측이 총탄을 발사한 것이 고의적인지 우발적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사례는 정전협정이 현재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정전협정에 따라 정한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비무장지대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과 관련해 군사정전위원회 유엔사 조사팀이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참관하에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조사했다는 데에서, 우리는 정전협정이라는 큰 틀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북측은 정전협정 상 규정된 군정위에 더는 참여하지 않고 있으며, 이번 조사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남북 모두 비무장지대 내부에 군사시설인 감시초소를 지어놓고 중화기를 배치해 서로를 겨누고 있고, 이를 서로에게 발사하는 '적대행위'를 했습니다. 정전협정이 상당 부분 지켜지지 않고 있고 언제든 충돌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또 한 번의 사례입니다.
사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각 조항의 해석에 따라 다르지만, 정전협정 63개 조항 중 절반 정도는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정전협정 위에 새운 '정전체제'의 불안정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9·19 군사합의' 속 정전협정을 찾아라
최근 남북 간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유독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는 '9·19 군사합의'입니다. 북한이 행동에 나설 때마다 그것이 군사합의 위반인지, 나아가 군사합의가 파기하겠다는 것인지에 늘 이목이 쏠립니다.
9·19 군사합의에 담긴 의미와 지향점은 복잡합니다만 그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바로 '정전협정의 복원'입니다. 정전협정조차 잘 안 지키고 있는 현실에서 아주 새로운 것을 하기보다는 일단 원래의 합의사항부터 지켜보자는 게 군사 당국 간 신뢰 구축의 첫걸음이라는 것입니다.
9·19 군사합의 주요 내용 중 하나는 비무장지대 내 GP 철수입니다. 남북은 우선 시범적으로 각 11개 GP를 철수하기로 하고, 2018년 말 10개씩을 폭파 또는 철거했습니다. 각각 1개씩은 역사적 의미를 고려해 보존 GP로 남겼습니다.
이는 정전협정이 규정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으로 '비무장화'하자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정전협정 합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비무장지대 내에 초소를 만들어 중화기로 무장한 군인들을 배치했고 우리도 이에 맞서 GP를 설치하고 중화기를 들인 상태입니다. 우리 군의 경우 중화기 반입 시에 절차상 유엔사 승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과적으로는 비무장지대를 무장 상태로 만들게 됐습니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비무장화, 자유왕래도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공동경비구역의 애초 취지를 살리자는 것입니다. 현재 남북은 9·19 군사합의에 따라 비무장화를 완료했지만, 이후 진척이 없어 자유왕래까지는 가지 못한 상황입니다.
한강하구 중립수역에서의 민간선박 자유항행도 정전협정에 명시된 조항을 이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정전협정에서 양측은 한강하구 수역에서 민용 선박의 항행을 허용하기로 했는데,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군사적 긴장 때문에 선박 항행은 지금까지도 통제되고 있습니다. 남북은 9·19 군사합의에 따라 정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공동 수로 조사까지 마쳤지만 그 후 더는 진척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지난해 초 하노이에서의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후 남북 간 교류협력을 위한 대화가 삐걱거리면서 9·19 군사합의도 '멈춤'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정전협정이 그렇듯이, 군사합의 역시 큰 틀은 파기되지 않고 유지 중인데 위반 사례들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 평화협정
"1953년 이래 한반도는 60년 넘게 정전 상태에 있습니다. 불안한 정전 체제 위에서는 공고한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종전과 함께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합니다." (2017. 7. 6., 문재인 대통령 '베를린 구상' 중)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7월 베를린에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을 제안했습니다. 이른바 '베를린 구상'인데, 문 대통령은 여기서 정전 체제의 불안함을 이야기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평화협정 체결을 제시했습니다.
정전체제를 어떻게 끝낼 수 있는지는 정전협정문에 적혀있습니다. 협정문에는 "정전협정의 각 조항은 … 쌍방의 정치적 수준에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적당한 협정 중의 규정에 의해 명확히 교체될 때까지는 계속 효력을 가진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쉽게 말해 평화협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노력의 역사는 깁니다. 정전협정은 양측 군 사령관 간에 체결한 군사적 합의이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양측의 신뢰에 기반을 둔 정치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전협정문에도 이 같은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정전협정의 효력이 발생한 후 3개월 이내에 쌍방의 한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해 문제를 협의할 것을 건의한 겁니다.
그 결과로 정전협정 체결 이듬해인 1954년 관련국 대표 간에 제네바 정치회의가 열렸습니다. 정전 상태인 6·25 전쟁을 정식으로 종료하기 위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논의 주제였지만 결국 성과 없이 끝났습니다.
그 후 남북 간 치열한 대결의 시대를 지나 1992년 남북은 고위급회담의 결과로 나온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남과 북은 현 정전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라는 데 합의했습니다.
이어 90년대 후반에는 남·북·미·중 4자회담에서, 2000년대 들어서는 남·북·미·중·일·러 6자회담에서 모두 한반도 문제의 궁극적 해결 방향으로 '평화체제'를 상정했지만 역시 실질적 성과로는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남과 북이 정전체제를 종식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는 점을 재확인했지만 역시 추가 진척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미 정상 간 연쇄적인 회담이 이어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기대가 커졌습니다. 그러나 남북관계 경색과 북미 협상 교착상태가 길어지면서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그랬듯, 평화체제로 다가가는 길은 어렵고 험난한데 멀어지는 건 참 빠른 듯합니다. 70년간 계속되고 있는 '일시 정지' 상태인 한반도의 전쟁, 언제쯤 끝낼 수 있는 걸까요?
■ 1953년 7월 27일, 전쟁 '일시 정지'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만난 유엔군 측 수석대표 해리슨 미 육군 중장과 공산군 측 수석대표 남일 북한군 대장은 5조 63개 항으로 구성된 정전협정문에 서명했습니다. 전쟁 발발 이후 3년여 만이었고, 양측이 정전협정과 관련해 최초 접촉한 1951년 7월로부터는 2년 만이었습니다.
정전협정의 '서언'을 보면 협정 목적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습니다.
"쌍방에 막대한 고통과 유혈을 초래한 한국충돌을 정지시키기 위하여 서로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일제 무력행위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목적으로..."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무력행위의 완전한 정지, 이를 위해 양측은 군사분계선(MDL)을 확정하고 이로부터 각각 2km씩 후퇴해 비무장지대(DMZ)를 설정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쌍방 모두 비무장지대 내에서, 비무장지대로부터, 비무장지대를 향해 어떠한 적대행위도 감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군사분계선 통과 시에 군사정전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비무장지대 출입 시엔 지역 사령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도록 규정했습니다. 비무장지대에 들어올 수 있는 인원은 각 1,000명을 넘지 못하게 했으며 휴대무기도 군사정전위가 규정하게 했습니다.
이 같은 정전협정 체결로 한반도에서는 '불안정한 평화'의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양측 사이 전면적인 전쟁은 일시 정지 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전쟁은 끝난 게 아니었고 이후에도 크고 작은 무력 충돌로 이어진 겁니다.
■ 정전협정, 절반은 위반 중
지난달 3일 중부전선 비무장지대 내 남북 감시초소(GP) 사이에 총격이 오갔습니다. 북측에서 먼저 우리 GP를 향해 14.5mm 고사총을 발사했고 우리는 K-6 기관총으로 대응 사격을 했습니다.
그리고 20여 일 뒤, 유엔군사령부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남북 모두 정전협정을 위반했다"라는 게 결론이었습니다. 북측이 먼저 총격을 해 정전협정을 위반했고, 남측이 이에 대응 사격한 것 역시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북측의 비협조로 북한 측이 총탄을 발사한 것이 고의적인지 우발적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사례는 정전협정이 현재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정전협정에 따라 정한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비무장지대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과 관련해 군사정전위원회 유엔사 조사팀이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참관하에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조사했다는 데에서, 우리는 정전협정이라는 큰 틀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북측은 정전협정 상 규정된 군정위에 더는 참여하지 않고 있으며, 이번 조사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남북 모두 비무장지대 내부에 군사시설인 감시초소를 지어놓고 중화기를 배치해 서로를 겨누고 있고, 이를 서로에게 발사하는 '적대행위'를 했습니다. 정전협정이 상당 부분 지켜지지 않고 있고 언제든 충돌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또 한 번의 사례입니다.
사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각 조항의 해석에 따라 다르지만, 정전협정 63개 조항 중 절반 정도는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정전협정 위에 새운 '정전체제'의 불안정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9·19 군사합의' 속 정전협정을 찾아라
최근 남북 간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유독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는 '9·19 군사합의'입니다. 북한이 행동에 나설 때마다 그것이 군사합의 위반인지, 나아가 군사합의가 파기하겠다는 것인지에 늘 이목이 쏠립니다.
9·19 군사합의에 담긴 의미와 지향점은 복잡합니다만 그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바로 '정전협정의 복원'입니다. 정전협정조차 잘 안 지키고 있는 현실에서 아주 새로운 것을 하기보다는 일단 원래의 합의사항부터 지켜보자는 게 군사 당국 간 신뢰 구축의 첫걸음이라는 것입니다.
9·19 군사합의 주요 내용 중 하나는 비무장지대 내 GP 철수입니다. 남북은 우선 시범적으로 각 11개 GP를 철수하기로 하고, 2018년 말 10개씩을 폭파 또는 철거했습니다. 각각 1개씩은 역사적 의미를 고려해 보존 GP로 남겼습니다.
이는 정전협정이 규정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으로 '비무장화'하자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정전협정 합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비무장지대 내에 초소를 만들어 중화기로 무장한 군인들을 배치했고 우리도 이에 맞서 GP를 설치하고 중화기를 들인 상태입니다. 우리 군의 경우 중화기 반입 시에 절차상 유엔사 승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과적으로는 비무장지대를 무장 상태로 만들게 됐습니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비무장화, 자유왕래도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공동경비구역의 애초 취지를 살리자는 것입니다. 현재 남북은 9·19 군사합의에 따라 비무장화를 완료했지만, 이후 진척이 없어 자유왕래까지는 가지 못한 상황입니다.
한강하구 중립수역에서의 민간선박 자유항행도 정전협정에 명시된 조항을 이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정전협정에서 양측은 한강하구 수역에서 민용 선박의 항행을 허용하기로 했는데,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군사적 긴장 때문에 선박 항행은 지금까지도 통제되고 있습니다. 남북은 9·19 군사합의에 따라 정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공동 수로 조사까지 마쳤지만 그 후 더는 진척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지난해 초 하노이에서의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후 남북 간 교류협력을 위한 대화가 삐걱거리면서 9·19 군사합의도 '멈춤'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정전협정이 그렇듯이, 군사합의 역시 큰 틀은 파기되지 않고 유지 중인데 위반 사례들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 평화협정
"1953년 이래 한반도는 60년 넘게 정전 상태에 있습니다. 불안한 정전 체제 위에서는 공고한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종전과 함께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합니다." (2017. 7. 6., 문재인 대통령 '베를린 구상' 중)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7월 베를린에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을 제안했습니다. 이른바 '베를린 구상'인데, 문 대통령은 여기서 정전 체제의 불안함을 이야기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평화협정 체결을 제시했습니다.
정전체제를 어떻게 끝낼 수 있는지는 정전협정문에 적혀있습니다. 협정문에는 "정전협정의 각 조항은 … 쌍방의 정치적 수준에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적당한 협정 중의 규정에 의해 명확히 교체될 때까지는 계속 효력을 가진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쉽게 말해 평화협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노력의 역사는 깁니다. 정전협정은 양측 군 사령관 간에 체결한 군사적 합의이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양측의 신뢰에 기반을 둔 정치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전협정문에도 이 같은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정전협정의 효력이 발생한 후 3개월 이내에 쌍방의 한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해 문제를 협의할 것을 건의한 겁니다.
그 결과로 정전협정 체결 이듬해인 1954년 관련국 대표 간에 제네바 정치회의가 열렸습니다. 정전 상태인 6·25 전쟁을 정식으로 종료하기 위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논의 주제였지만 결국 성과 없이 끝났습니다.
그 후 남북 간 치열한 대결의 시대를 지나 1992년 남북은 고위급회담의 결과로 나온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남과 북은 현 정전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라는 데 합의했습니다.
이어 90년대 후반에는 남·북·미·중 4자회담에서, 2000년대 들어서는 남·북·미·중·일·러 6자회담에서 모두 한반도 문제의 궁극적 해결 방향으로 '평화체제'를 상정했지만 역시 실질적 성과로는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남과 북이 정전체제를 종식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는 점을 재확인했지만 역시 추가 진척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미 정상 간 연쇄적인 회담이 이어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기대가 커졌습니다. 그러나 남북관계 경색과 북미 협상 교착상태가 길어지면서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그랬듯, 평화체제로 다가가는 길은 어렵고 험난한데 멀어지는 건 참 빠른 듯합니다. 70년간 계속되고 있는 '일시 정지' 상태인 한반도의 전쟁, 언제쯤 끝낼 수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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