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아주세요”…노병들의 70년 전 ‘그 날’
입력 2020.06.25 (22:43)
수정 2020.06.25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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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은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을 맞는 날입니다.
부산에서는 10대 학생이 중심이 된 천 6백여 명의 학도병이 펜 대신 총을 움켜쥐고 전선으로 향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90대가 된 이들, 헌7학병의 이야기를 정민규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6.25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
동래고와 옛 경남상고, 부산대 등 부산, 경남 지역 14개 학교 학생들이 펜대신 총을 잡았습니다.
육군 헌병학교 제7기 학도병입니다.
줄여서 '헌7학병'으로 불리는 이들은 모두 천6백 61명.
단일 병과, 동일 기수로는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수많은 피난민이 남으로 몰려올 때, 부산의 젊은 학생들이 전쟁터로 나간 건 어쩌면 당연한 운명이었습니다.
교실을 떠난 이들을 기다리는 건 그동안 살아왔던 것과는 정반대의 삶이었습니다.
다급했던 전선의 상황 탓에 어린 학생들은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한 채 전쟁터로 내몰렸습니다.
[허 원/헌7학병 참전 유공자 : "힘들었죠. 아주 힘들었죠. 한 1개월여 동안 유례없는 군사 훈련을 받았고 군사 훈련 결과로 더러는 포성이, 포화가 난무하는 일선으로 배치되고…."]
전국 각지로 분산 배치된 헌7학병은 3년간 참혹한 전쟁을 치렀고, 이 가운데 수백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된 거로 파악됩니다.
[김정진/헌7학병 참전 유공자 : "그분들이 순수하게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죽은 거거든요. 다른 건 없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10대 학생이 어느덧 9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습니다.
6.25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는 올해도 어김없이 먼저 간 전우를 기립니다.
헌7학병을 기억하는 건 이 기념비가 유일합니다.
이마저도 지난 2001년 전우들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겨우 공원 한쪽에 마련됐습니다.
하지만 가장 빛나야 할 생의 순간, 전선에서 누빈 삶 만큼은 지금도 자부심으로 남았습니다.
[문 백/헌7학병 참전 유공자 : "정말 거리낌 없이 있는 힘을 다해서 복무했습니다. 그것이 나는 자랑스럽습니다. 지금도."]
이제 생존한 헌 7 학병은 100여 명 정도.
하나둘 떠나는 전우를 바라보는 노병들은 세상이 자신들을 잊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KBS 뉴스 정민규입니다.
오늘은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을 맞는 날입니다.
부산에서는 10대 학생이 중심이 된 천 6백여 명의 학도병이 펜 대신 총을 움켜쥐고 전선으로 향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90대가 된 이들, 헌7학병의 이야기를 정민규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6.25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
동래고와 옛 경남상고, 부산대 등 부산, 경남 지역 14개 학교 학생들이 펜대신 총을 잡았습니다.
육군 헌병학교 제7기 학도병입니다.
줄여서 '헌7학병'으로 불리는 이들은 모두 천6백 61명.
단일 병과, 동일 기수로는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수많은 피난민이 남으로 몰려올 때, 부산의 젊은 학생들이 전쟁터로 나간 건 어쩌면 당연한 운명이었습니다.
교실을 떠난 이들을 기다리는 건 그동안 살아왔던 것과는 정반대의 삶이었습니다.
다급했던 전선의 상황 탓에 어린 학생들은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한 채 전쟁터로 내몰렸습니다.
[허 원/헌7학병 참전 유공자 : "힘들었죠. 아주 힘들었죠. 한 1개월여 동안 유례없는 군사 훈련을 받았고 군사 훈련 결과로 더러는 포성이, 포화가 난무하는 일선으로 배치되고…."]
전국 각지로 분산 배치된 헌7학병은 3년간 참혹한 전쟁을 치렀고, 이 가운데 수백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된 거로 파악됩니다.
[김정진/헌7학병 참전 유공자 : "그분들이 순수하게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죽은 거거든요. 다른 건 없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10대 학생이 어느덧 9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습니다.
6.25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는 올해도 어김없이 먼저 간 전우를 기립니다.
헌7학병을 기억하는 건 이 기념비가 유일합니다.
이마저도 지난 2001년 전우들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겨우 공원 한쪽에 마련됐습니다.
하지만 가장 빛나야 할 생의 순간, 전선에서 누빈 삶 만큼은 지금도 자부심으로 남았습니다.
[문 백/헌7학병 참전 유공자 : "정말 거리낌 없이 있는 힘을 다해서 복무했습니다. 그것이 나는 자랑스럽습니다. 지금도."]
이제 생존한 헌 7 학병은 100여 명 정도.
하나둘 떠나는 전우를 바라보는 노병들은 세상이 자신들을 잊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KBS 뉴스 정민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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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을 맞는 날입니다.
부산에서는 10대 학생이 중심이 된 천 6백여 명의 학도병이 펜 대신 총을 움켜쥐고 전선으로 향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90대가 된 이들, 헌7학병의 이야기를 정민규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6.25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
동래고와 옛 경남상고, 부산대 등 부산, 경남 지역 14개 학교 학생들이 펜대신 총을 잡았습니다.
육군 헌병학교 제7기 학도병입니다.
줄여서 '헌7학병'으로 불리는 이들은 모두 천6백 61명.
단일 병과, 동일 기수로는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수많은 피난민이 남으로 몰려올 때, 부산의 젊은 학생들이 전쟁터로 나간 건 어쩌면 당연한 운명이었습니다.
교실을 떠난 이들을 기다리는 건 그동안 살아왔던 것과는 정반대의 삶이었습니다.
다급했던 전선의 상황 탓에 어린 학생들은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한 채 전쟁터로 내몰렸습니다.
[허 원/헌7학병 참전 유공자 : "힘들었죠. 아주 힘들었죠. 한 1개월여 동안 유례없는 군사 훈련을 받았고 군사 훈련 결과로 더러는 포성이, 포화가 난무하는 일선으로 배치되고…."]
전국 각지로 분산 배치된 헌7학병은 3년간 참혹한 전쟁을 치렀고, 이 가운데 수백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된 거로 파악됩니다.
[김정진/헌7학병 참전 유공자 : "그분들이 순수하게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죽은 거거든요. 다른 건 없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10대 학생이 어느덧 9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습니다.
6.25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는 올해도 어김없이 먼저 간 전우를 기립니다.
헌7학병을 기억하는 건 이 기념비가 유일합니다.
이마저도 지난 2001년 전우들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겨우 공원 한쪽에 마련됐습니다.
하지만 가장 빛나야 할 생의 순간, 전선에서 누빈 삶 만큼은 지금도 자부심으로 남았습니다.
[문 백/헌7학병 참전 유공자 : "정말 거리낌 없이 있는 힘을 다해서 복무했습니다. 그것이 나는 자랑스럽습니다. 지금도."]
이제 생존한 헌 7 학병은 100여 명 정도.
하나둘 떠나는 전우를 바라보는 노병들은 세상이 자신들을 잊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KBS 뉴스 정민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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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규 기자 h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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