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퀵서비스에 손수레 광고까지…아이디어로 ‘노인 빈곤’ 해결

입력 2020.08.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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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이에 어디 일자리라는 게 쉽지 않잖아요. 일한다는 건 결국 내가 어디 갈 곳이 있다는 것이고…그 자체가 그냥 좋은 겁니다."

지하철 퀵서비스 배달원인 이경철 어르신은 '힘들진 않으시냐'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70대 나이에도 무더운 날씨에 서울 서초구에서 경기 광명시까지 꽃바구니 배달을 끝낸 직후였습니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1위입니다. 100세 시대라는데, 직장에서 나오게 되면 소득이 끊기기 십상입니다. 마땅한 일자리가 드문 노인들에게 생계는 절박한 문제입니다.

대학생 벤처기업들이 이런 '노인 빈곤' 문제 해결에 보탬이 되고자 나섰습니다. IT 기술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활용해 새로운 일자리 모델을 만든 겁니다.

■ "가장 가까운 곳 주문 자동 배정"…노인 지하철 퀵서비스 플랫폼 '두드림퀵'

대표적 노인 일자리인 지하철 퀵서비스의 고질적인 문제는 '비효율성'이었습니다. 노인 지하철 퀵서비스는 각 지역의 시니어클럽에서 산발적으로 운영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일이 전화 등으로 주문을 받는 등 운영 방식 역시 주먹구구식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객이 시니어클럽에서 굉장히 먼 곳에 있는 물품을 픽업해 배달해달란 요청이 잦았습니다. 이 경우엔 노인 배달원도 먼 거리를 긴 시간 동안 이동해야 해, 정해진 운임에 비해 긴 시간을 힘들게 일해야 했습니다. 고객 입장에서도 배송 시간이 오래 걸리니 배송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기 어려웠습니다.


서울대학교 사회공헌 동아리 학생들이 만든 벤처기업 '두드림퀵'은 이 문제 지점을 공략했습니다. 물품 픽업 장소와 배달지로부터 가장 가까운 배달원을 자동으로 배정하는 플랫폼을 만든 겁니다.

전용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각 시니어센터와 배달원 어르신이 쉽게 주문을 확인하고, 픽업·배달 장소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배달원 어르신이 '덜 힘들고 빠르게' 주문을 할 수 있는 데 집중한 겁니다.

두드림퀵 팀원들은 여러 시니어클럽과 연계해 현재는 100여 명이 넘는 노인 배달원분과 일하고 있습니다. 팀원들은 꾸준히 배달원 어르신들이 애플리케이션을 쉽고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디지털 교육'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기존 지하철 퀵서비스 주문 알선 업체가 받던 높은 알선 수수료도 크게 낮췄습니다. 약 30%에 달하던 기존 수수료를 8%로 낮춰, 배달원 어르신께 보다 많은 소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지하철 퀵서비스 주문 건당 배송비가 6천 원에서 1만 원대 수준이지만, 두드림퀵 서비스가 입소문을 타면서 주문량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두드림퀵 배달원인 이경철 어르신은 "아무래도 양이 많아지니까 단가는 거의 비슷해도, 소득이 월평균 1.5배 이상은 늘어났다"고 말했습니다. 또 "예전에는 물건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일일이 메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한 화면에 보내는 사람·받는 사람 연락처와 길 찾기까지 나와서 굉장히 편리해졌다"고 덧붙였습니다.

■ 손수레에 '광고판'을?…폐지 수거·광고주 모두 상부상조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폐지 수거 어르신에게 힘이 되는 모델도 있습니다. 바로 폐지 수거 손수레 양쪽 측면에 '광고판'을 붙이는 아이디어로 시작한 벤처기업 '끌림'입니다. 역시 서울대 사회공헌 동아리 학생들이 고안한 모델인데 2016년부터 본격 운영되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노동에 대한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 달을 일 하셔도 최대로 많이 버시는 금액이 한 10만 원 정도인데…저희가 그것보다는 더 많은 수익을 드리고 싶어서 추가 수익을 드릴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고안했습니다."

끌림 팀원 송형우 씨는 '어떻게 이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매월 수레 하나당 받는 광고비 12만 원 중 7만 원이 폐지 수지 어르신께 갑니다. 나머지 금액은 손수레 수리·복지관 지원·법인 유지 등에 사용합니다.

또 어르신들의 신체적 피로도를 낮추기 위해 '경량화된 손수레'도 직접 개발해 무상 제공하고 있습니다. 기존 손수레의 무게는 7~80kg 정도여서 폐지 수거 어르신의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를 고려해 가벼운 소재를 사용해 3~40kg 정도의 가벼운 손수레를 만들었습니다. 밤에도 안전하게 어르신들이 손수레를 끌 수 있도록 밝은 색상을 칠하기도 했습니다.


폐지 수거 어르신이 끄는 손수레는 동네 곳곳을 돌아다닙니다. 그러다 보니 해당 동네 상권 광고주들의 호응이 높습니다. 끌림 팀원 송형우 씨는 "광고주들의 재계약률이 굉장히 높은 편"이라며 "매출이 15% 넘게 올랐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끌림 손수레는 전국에 총 330여 개까지 늘어났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르신들은 추가 수익뿐 아니라 사회에 공헌한다는 '자긍심'을 큰 소득으로 꼽았습니다. 폐지 수거 일을 하는 정광순 어르신은 "손수레에 붙은 광고를 본 주민들이 종종 광고에 관해서 물어올 때가 있다"라며 "그럴 때 마음이 좀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라고 말했습니다.

■ 점점 커지는 노인 일자리 중요성…새로운 아이디어와 시도 필요

"노인 빈곤 문제나 일자리 문제가 점차 심화하여 가고 있는데,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저희가 가진 지식과 정보를 IT기술에 접목해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드림퀵 팀장인 김병성 씨의 말처럼 노인 빈곤과 일자리 문제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과제입니다. 열악한 일자리로 몰려갈 수밖에 없는 노인들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기초연금 및 사회복지 강화 등 제도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려는 노력도 당연히 병행돼야 하지만, 노인들이 좀 더 나은 환경과 조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가 필요해 보입니다. 폐지 수거 일을 하는 정광순 어르신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제가 이제 6학년(60대)이거든요. 좀 더 오래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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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하철 퀵서비스에 손수레 광고까지…아이디어로 ‘노인 빈곤’ 해결
    • 입력 2020-08-23 08:00:45
    취재K
"우리 나이에 어디 일자리라는 게 쉽지 않잖아요. 일한다는 건 결국 내가 어디 갈 곳이 있다는 것이고…그 자체가 그냥 좋은 겁니다."

지하철 퀵서비스 배달원인 이경철 어르신은 '힘들진 않으시냐'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70대 나이에도 무더운 날씨에 서울 서초구에서 경기 광명시까지 꽃바구니 배달을 끝낸 직후였습니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1위입니다. 100세 시대라는데, 직장에서 나오게 되면 소득이 끊기기 십상입니다. 마땅한 일자리가 드문 노인들에게 생계는 절박한 문제입니다.

대학생 벤처기업들이 이런 '노인 빈곤' 문제 해결에 보탬이 되고자 나섰습니다. IT 기술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활용해 새로운 일자리 모델을 만든 겁니다.

■ "가장 가까운 곳 주문 자동 배정"…노인 지하철 퀵서비스 플랫폼 '두드림퀵'

대표적 노인 일자리인 지하철 퀵서비스의 고질적인 문제는 '비효율성'이었습니다. 노인 지하철 퀵서비스는 각 지역의 시니어클럽에서 산발적으로 운영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일이 전화 등으로 주문을 받는 등 운영 방식 역시 주먹구구식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객이 시니어클럽에서 굉장히 먼 곳에 있는 물품을 픽업해 배달해달란 요청이 잦았습니다. 이 경우엔 노인 배달원도 먼 거리를 긴 시간 동안 이동해야 해, 정해진 운임에 비해 긴 시간을 힘들게 일해야 했습니다. 고객 입장에서도 배송 시간이 오래 걸리니 배송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기 어려웠습니다.


서울대학교 사회공헌 동아리 학생들이 만든 벤처기업 '두드림퀵'은 이 문제 지점을 공략했습니다. 물품 픽업 장소와 배달지로부터 가장 가까운 배달원을 자동으로 배정하는 플랫폼을 만든 겁니다.

전용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각 시니어센터와 배달원 어르신이 쉽게 주문을 확인하고, 픽업·배달 장소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배달원 어르신이 '덜 힘들고 빠르게' 주문을 할 수 있는 데 집중한 겁니다.

두드림퀵 팀원들은 여러 시니어클럽과 연계해 현재는 100여 명이 넘는 노인 배달원분과 일하고 있습니다. 팀원들은 꾸준히 배달원 어르신들이 애플리케이션을 쉽고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디지털 교육'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기존 지하철 퀵서비스 주문 알선 업체가 받던 높은 알선 수수료도 크게 낮췄습니다. 약 30%에 달하던 기존 수수료를 8%로 낮춰, 배달원 어르신께 보다 많은 소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지하철 퀵서비스 주문 건당 배송비가 6천 원에서 1만 원대 수준이지만, 두드림퀵 서비스가 입소문을 타면서 주문량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두드림퀵 배달원인 이경철 어르신은 "아무래도 양이 많아지니까 단가는 거의 비슷해도, 소득이 월평균 1.5배 이상은 늘어났다"고 말했습니다. 또 "예전에는 물건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일일이 메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한 화면에 보내는 사람·받는 사람 연락처와 길 찾기까지 나와서 굉장히 편리해졌다"고 덧붙였습니다.

■ 손수레에 '광고판'을?…폐지 수거·광고주 모두 상부상조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폐지 수거 어르신에게 힘이 되는 모델도 있습니다. 바로 폐지 수거 손수레 양쪽 측면에 '광고판'을 붙이는 아이디어로 시작한 벤처기업 '끌림'입니다. 역시 서울대 사회공헌 동아리 학생들이 고안한 모델인데 2016년부터 본격 운영되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노동에 대한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 달을 일 하셔도 최대로 많이 버시는 금액이 한 10만 원 정도인데…저희가 그것보다는 더 많은 수익을 드리고 싶어서 추가 수익을 드릴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고안했습니다."

끌림 팀원 송형우 씨는 '어떻게 이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매월 수레 하나당 받는 광고비 12만 원 중 7만 원이 폐지 수지 어르신께 갑니다. 나머지 금액은 손수레 수리·복지관 지원·법인 유지 등에 사용합니다.

또 어르신들의 신체적 피로도를 낮추기 위해 '경량화된 손수레'도 직접 개발해 무상 제공하고 있습니다. 기존 손수레의 무게는 7~80kg 정도여서 폐지 수거 어르신의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를 고려해 가벼운 소재를 사용해 3~40kg 정도의 가벼운 손수레를 만들었습니다. 밤에도 안전하게 어르신들이 손수레를 끌 수 있도록 밝은 색상을 칠하기도 했습니다.


폐지 수거 어르신이 끄는 손수레는 동네 곳곳을 돌아다닙니다. 그러다 보니 해당 동네 상권 광고주들의 호응이 높습니다. 끌림 팀원 송형우 씨는 "광고주들의 재계약률이 굉장히 높은 편"이라며 "매출이 15% 넘게 올랐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끌림 손수레는 전국에 총 330여 개까지 늘어났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르신들은 추가 수익뿐 아니라 사회에 공헌한다는 '자긍심'을 큰 소득으로 꼽았습니다. 폐지 수거 일을 하는 정광순 어르신은 "손수레에 붙은 광고를 본 주민들이 종종 광고에 관해서 물어올 때가 있다"라며 "그럴 때 마음이 좀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라고 말했습니다.

■ 점점 커지는 노인 일자리 중요성…새로운 아이디어와 시도 필요

"노인 빈곤 문제나 일자리 문제가 점차 심화하여 가고 있는데,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저희가 가진 지식과 정보를 IT기술에 접목해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드림퀵 팀장인 김병성 씨의 말처럼 노인 빈곤과 일자리 문제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과제입니다. 열악한 일자리로 몰려갈 수밖에 없는 노인들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기초연금 및 사회복지 강화 등 제도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려는 노력도 당연히 병행돼야 하지만, 노인들이 좀 더 나은 환경과 조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가 필요해 보입니다. 폐지 수거 일을 하는 정광순 어르신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제가 이제 6학년(60대)이거든요. 좀 더 오래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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