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K] 완주군 소향리 운문골…요즘 세상에 전기도 안 들어오나?

입력 2020.09.21 (20:30) 수정 2020.09.21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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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강 최상류에 위치한 완주군 고산면 소향리 운용마을.

운문골은 이 마을에서도 4륜 구동 차로도 벅찬 길을 2km 정도 더 올라가야 하는 산간벽지 오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 빨치산 토벌 작전 이후 비워져야 했던 작은 골짜기 마을입니다.

[남권희/고산면 주민자치회장 : “《고산 면지》에 의하면 현재 마을회관에서 7km쯤 떨어진 곳에 약 20가구가 살았는데, 박정희 정권 때 빨치산들이 마을에 모인다고 해서 취합지로 철거 대상지가 되면서 집들이 철거되었다….”]

지금은 전체 일곱 가구가 3.5km 운문천을 따라 드문드문 놓여 있습니다.

근근이 마을을 지켜온 주민들은 전기조차 공급되지 않아, 지금도 큰 고충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차마 고향을 등질 수 없어 80 넘은 노모를 모시고 닭과 염소를 키우며 4대째 살고 있는 임석웅 씨.

[임석웅/운문골 주민 : “가장 불편한 것이 보일러를 못 놓고, 나무를 때야 하니까요. 그리고 밥 같은 것도 다 가스로 하셔야 하고. 냉장고도 꺼지면 또 음식도 다 상하고….”]

아궁이에 불을 때야 하는 재래식 난방 시설에 수돗물은 고사하고 냉장고와 전기밥솥도 쓸 수 없습니다.

유난히 폭우가 심했던 올 여름,

내내 서랍 속에 쟁여둔 양초 몇 자루에 의지해온 늙은 노모의 눈가가 끝내 촛농처럼 녹아듭니다.

[박금숙/운문골 주민 : “밤만 되면 방에만 들어 앉아 있는 거야. 바깥에 나오면 절벽이야, 캄캄해서. 우리 아들 때문에 여기 와서 내가 이렇게 있는 거야. 징역을 사는 거야.”]

휴대전화 통화도 가능할리 만무합니다.

그나마 유선 전화는 30년 전, 임석웅 씨 부친이 사비를 털어 손수 전신주를 세운 덕에 마을 전체가 혜택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날이 궂어 천둥 번개라도 치면 수시로 끊겨버리고 맙니다.

[기순필/운문골 주민 : “올 여름 같은 경우도 그렇잖아요. 비가 많이 오고 천둥 번개가 많이 치잖아요. 그럴 때는 전화기가 나가거든요.”]

급기야 전기 공급을 요구하고 나선 주민들에게 완주군에서는 일상생활을 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작은 태양광 패널을 보내왔을 뿐입니다.

[오세권/운문골 주민 : “한전도 들어가고 군에도 들어가고 했는데, 한전에서 그러더라고. 군에서 틀어서 넣어줄 수가 없다고. 그러면 또 군에 들어가면 군은 또 한전에서 안 된다고. 여기 가도 안 되고, 저기 가도 안 되고.”]

현행 농어촌 전기공급사업 촉진법에 따르면 벽지의 경우, 3가구 이상의 농어민이 실제 농어업에 종사하며 주택에 실거주하면 국가에서 무상으로 전기를 공급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운문골 주민들은 수십 년 동안 거주하고도 농·어업에 종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외됐습니다.

골이 깊어 본래 농사지을 여건이 안 되는데다, 요양 차 들어온 사람들로 전기 공급 사업 대상 조건과는 맞지 않다는 겁니다.

[한전 전북본부 관계자 : “일단은 전기 사용하실 고객이 세 가구 이상인 벽지 지역이에요. 그런데 세 가구 이상이 농어민이 농업, 어업을 영위하기 위한 실제 거주하는 순수 주거용 주택 3가구가 있어야 되는 거고요.” ]

결국 운문골의 경우 거리를 감안하면 2억여 원이나 되는 전기 시설 부담금을 개개인이 오롯이 떠안아야 합니다.

[황귀현/운문골 주민 : “우리 집 아저씨가 안 가본 게 아니라 노력을 했어요. 어떻게 여기 전기 끌어와 보려고. 그런데 자부담을 2억 얘기 했다 그러더라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집집마다 통사정이 이어집니다.

[최영대/운문골 주민 : “여기는 이게 참 사람이 듬성듬성 떨어져 산다고 그러지만 그래도 뭐예요, 여섯 가구? 이렇게 사는데도 전기도 안 들어오고, 이런 오지가 어디 있겠어요. 전라북도에서 더군다나….”]

[오세권/운문골 주민 : “아니 대한민국에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전기를 안 넣어주는 곳이 있냐고. 군민으로 생각을 안 하니까 본인들이 여기 신경을 안 쓰는 것이고….”]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운문골에 들어온 뒤 기적처럼 병은 완쾌된 김태연 씨 또한 맺힌 울화가 많습니다.

[김태연/운문골 주민 : “여기 운문골 사람들은 나라에서 버리고, 도에서 버리고, 군에서 버리고, 면에서 다 버린 사람들만 사는 곳인가 보다. 공무원들이라는 사람들,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인지 저는 지금도 화가 나요.”]

2017년도 하반기 운문골의 전기 공급 사업 부적합 판정을 받은 완주군에서는 융통성 없는 한전만 질책합니다.

[송용환/완주군 일자리경제과 신재생에너지팀장 : “한전의 판단이 원칙적이더라고요. 법에 있는 대로. 한전에서 융통성을 좀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도 같은데….”]

취재진이 찾아가기 전까지 해당 면 내에 전기가 안 들어가는 마을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던 고산면에서는 뒤늦게 도움을 주겠다는 확답을 했습니다.

[이희수/고산면 행정복지센터 면장 : “법을 좀 바꿔서라도 할 수 있게 시장군수협의회에다 한 번 건의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단 한 번도 진정성 있는 정부의 관심을 받아보지 못한 채 어둠 속에 방치되어 한평생을 살아온 완주군 소향리 운문골.

[두세훈/전라북도의원 : "운문골에 아직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우리 완주군의 행정을 총 동원해서 전기를 개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모두의 바람대로 하루 속히 밝은 전등이 켜지기를 기대하는 마음들이 운문골 산 속에서 또 저물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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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K] 완주군 소향리 운문골…요즘 세상에 전기도 안 들어오나?
    • 입력 2020-09-21 20:30:14
    • 수정2020-09-21 20:46:44
    뉴스7(전주)
만경강 최상류에 위치한 완주군 고산면 소향리 운용마을.

운문골은 이 마을에서도 4륜 구동 차로도 벅찬 길을 2km 정도 더 올라가야 하는 산간벽지 오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 빨치산 토벌 작전 이후 비워져야 했던 작은 골짜기 마을입니다.

[남권희/고산면 주민자치회장 : “《고산 면지》에 의하면 현재 마을회관에서 7km쯤 떨어진 곳에 약 20가구가 살았는데, 박정희 정권 때 빨치산들이 마을에 모인다고 해서 취합지로 철거 대상지가 되면서 집들이 철거되었다….”]

지금은 전체 일곱 가구가 3.5km 운문천을 따라 드문드문 놓여 있습니다.

근근이 마을을 지켜온 주민들은 전기조차 공급되지 않아, 지금도 큰 고충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차마 고향을 등질 수 없어 80 넘은 노모를 모시고 닭과 염소를 키우며 4대째 살고 있는 임석웅 씨.

[임석웅/운문골 주민 : “가장 불편한 것이 보일러를 못 놓고, 나무를 때야 하니까요. 그리고 밥 같은 것도 다 가스로 하셔야 하고. 냉장고도 꺼지면 또 음식도 다 상하고….”]

아궁이에 불을 때야 하는 재래식 난방 시설에 수돗물은 고사하고 냉장고와 전기밥솥도 쓸 수 없습니다.

유난히 폭우가 심했던 올 여름,

내내 서랍 속에 쟁여둔 양초 몇 자루에 의지해온 늙은 노모의 눈가가 끝내 촛농처럼 녹아듭니다.

[박금숙/운문골 주민 : “밤만 되면 방에만 들어 앉아 있는 거야. 바깥에 나오면 절벽이야, 캄캄해서. 우리 아들 때문에 여기 와서 내가 이렇게 있는 거야. 징역을 사는 거야.”]

휴대전화 통화도 가능할리 만무합니다.

그나마 유선 전화는 30년 전, 임석웅 씨 부친이 사비를 털어 손수 전신주를 세운 덕에 마을 전체가 혜택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날이 궂어 천둥 번개라도 치면 수시로 끊겨버리고 맙니다.

[기순필/운문골 주민 : “올 여름 같은 경우도 그렇잖아요. 비가 많이 오고 천둥 번개가 많이 치잖아요. 그럴 때는 전화기가 나가거든요.”]

급기야 전기 공급을 요구하고 나선 주민들에게 완주군에서는 일상생활을 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작은 태양광 패널을 보내왔을 뿐입니다.

[오세권/운문골 주민 : “한전도 들어가고 군에도 들어가고 했는데, 한전에서 그러더라고. 군에서 틀어서 넣어줄 수가 없다고. 그러면 또 군에 들어가면 군은 또 한전에서 안 된다고. 여기 가도 안 되고, 저기 가도 안 되고.”]

현행 농어촌 전기공급사업 촉진법에 따르면 벽지의 경우, 3가구 이상의 농어민이 실제 농어업에 종사하며 주택에 실거주하면 국가에서 무상으로 전기를 공급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운문골 주민들은 수십 년 동안 거주하고도 농·어업에 종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외됐습니다.

골이 깊어 본래 농사지을 여건이 안 되는데다, 요양 차 들어온 사람들로 전기 공급 사업 대상 조건과는 맞지 않다는 겁니다.

[한전 전북본부 관계자 : “일단은 전기 사용하실 고객이 세 가구 이상인 벽지 지역이에요. 그런데 세 가구 이상이 농어민이 농업, 어업을 영위하기 위한 실제 거주하는 순수 주거용 주택 3가구가 있어야 되는 거고요.” ]

결국 운문골의 경우 거리를 감안하면 2억여 원이나 되는 전기 시설 부담금을 개개인이 오롯이 떠안아야 합니다.

[황귀현/운문골 주민 : “우리 집 아저씨가 안 가본 게 아니라 노력을 했어요. 어떻게 여기 전기 끌어와 보려고. 그런데 자부담을 2억 얘기 했다 그러더라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집집마다 통사정이 이어집니다.

[최영대/운문골 주민 : “여기는 이게 참 사람이 듬성듬성 떨어져 산다고 그러지만 그래도 뭐예요, 여섯 가구? 이렇게 사는데도 전기도 안 들어오고, 이런 오지가 어디 있겠어요. 전라북도에서 더군다나….”]

[오세권/운문골 주민 : “아니 대한민국에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전기를 안 넣어주는 곳이 있냐고. 군민으로 생각을 안 하니까 본인들이 여기 신경을 안 쓰는 것이고….”]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운문골에 들어온 뒤 기적처럼 병은 완쾌된 김태연 씨 또한 맺힌 울화가 많습니다.

[김태연/운문골 주민 : “여기 운문골 사람들은 나라에서 버리고, 도에서 버리고, 군에서 버리고, 면에서 다 버린 사람들만 사는 곳인가 보다. 공무원들이라는 사람들,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인지 저는 지금도 화가 나요.”]

2017년도 하반기 운문골의 전기 공급 사업 부적합 판정을 받은 완주군에서는 융통성 없는 한전만 질책합니다.

[송용환/완주군 일자리경제과 신재생에너지팀장 : “한전의 판단이 원칙적이더라고요. 법에 있는 대로. 한전에서 융통성을 좀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도 같은데….”]

취재진이 찾아가기 전까지 해당 면 내에 전기가 안 들어가는 마을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던 고산면에서는 뒤늦게 도움을 주겠다는 확답을 했습니다.

[이희수/고산면 행정복지센터 면장 : “법을 좀 바꿔서라도 할 수 있게 시장군수협의회에다 한 번 건의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단 한 번도 진정성 있는 정부의 관심을 받아보지 못한 채 어둠 속에 방치되어 한평생을 살아온 완주군 소향리 운문골.

[두세훈/전라북도의원 : "운문골에 아직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우리 완주군의 행정을 총 동원해서 전기를 개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모두의 바람대로 하루 속히 밝은 전등이 켜지기를 기대하는 마음들이 운문골 산 속에서 또 저물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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