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날짜별로 본 ‘코로나 저금리 대출’, 사기의 재구성

입력 2020.09.23 (18:11) 수정 2020.09.23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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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8월 28일 금요일, "고객님! '코로나 19 특별 저금리 대출'받으세요."

지난달 28일 오후 3시, 경남에서 일하는 40대 직장인 A 씨는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한 시중 은행에서 '코로나19 특별 저금리 대출 상품'을 만들었고, A씨가 대출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대출상품은 코로나 19로 힘든 고객들을 위해 5백만 원에서 최대 1억 원까지, 1.68%의 저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고 소개됐습니다.

문자메시지를 보낸 은행도 A씨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신용카드 회사의 계열사였던 터라, A 씨는 대상자로 선정된 사실이 고맙기도 했습니다.

당시 A 씨는 생활비 등으로 쓰기 위해 인터넷은행에서 7천만 원을 빌려 3% 중반대 이자를 내고 있었습니다. 한 달에 내야 하는 이자만 20여만 원, 새로운 대출 상품으로 7천만 원을 빌려 기존 대출을 갚으면 이자 비용을 절반 넘게 줄일 수 있는 셈이었습니다.

상담이라도 받아보자는 생각에 문자 메시지를 보낸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량이 많아 연결이 어렵다. 전화번호를 남겨달라'는 통화 연결음에 휴대전화 번호를 남겼습니다.


전화를 끊은 지 1시간이 지난 오후 4시쯤, 자신을 스스로 해당 은행 여의도지점에서 일하고 있는 B 대리라고 소개한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B 대리는 대출 한도와 이율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직장명과 연봉 등 개인정보를 포함한 전자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설명이 끝나고 곧이어 받은 또 하나의 문자 메시지. 전자신청서를 받을 수 있는 링크가 적혀있었습니다. A 씨는 B 대리의 설명에 따라 해당 링크에 접속했고, 전자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는 앱을 내려받았습니다. 여기에 B 대리는 카카오톡 아이디를 알려주면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겠다며 기다려 달라고 말했습니다.

#2. 8월 31일 월요일, "고객님! 신용 점수가 '조금' 모자라세요."

주말이 지나고 8월 마지막 날인 월요일 아침, A 씨는 은행을 통해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현재 A 씨의 신용점수가 '조금' 모자라 저금리 대출 상품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겁니다. A 씨는 대출 대상자로 선정됐지만, 또다시 상품을 이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 의아했습니다. 하지만 은행은 신용점수를 올릴 방법이 있으니 B 대리와 상담해보라고 권유합니다.

B 대리는 '조금' 모자란 신용점수를 아쉬워하며 솔깃한 제안을 합니다. 바로 '채권반환대위변제'. 제2금융권에서 최대한도로 대출한 뒤, 돈을 고스란히 반납해 대출 기록은 남기지 않으면서 신용점수만 올라가는 일종의 '편법'이었습니다.

A 씨는 B 대리의 요청대로 저축은행에서 최대한도인 6천5백만 원 가운데 6천만 원을 13.4%의 이율로 빌렸습니다. 대출 완료 사실을 알리자 B 대리는 수요일쯤 다시 돈을 반납할 수 있게 일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저축은행에는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아야 한다며 보안을 유지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1.68% 저금리 대출 상품을 이용하기 위한 절차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A 씨는 갑자기 무언가 모를 불안감이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큰돈을 주고받는 게 괜찮은가?'라는 생각에 해당 은행 공식 전화상담실에 전화를 걸어 B 대리를 묻자 '저희 지점 직원이 맞다.'라는 답변에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3. 9월 1일 화요일, "고객님! 갑자기 본점에 전화를 왜... 무슨 일 있으신가요?"

오전 8시 반이 채 되지 않은 시각, B 대리는 A 씨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어젯밤에 저희 영업부랑 본점 쪽에 연락을 주셨던데 무슨 일 있으세요?'

A 씨는 자신을 도와주려는 사람을 괜한 의심했느냐는 미안함에 '번호를 잘못 눌렀다'며 의심을 지웠습니다. 역시나 B 대리는 대출을 위한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며 내일 다시 통화하자고 친절하게 답했습니다.


#4. 9월 2일 수요일, "고객님! 제 말에 따라 5,800만 원 입금해주세요."

신용점수를 올리기 위한 마지막 절차가 남은 날이었습니다. 부지런하고 친절한 B 대리는 오전 8시 반부터 A 씨에게 연락해왔습니다. 가장 중요한 단계, 저축은행 상환 절차 설명을 위해서는 10여 분이 넘는 통화가 이어졌습니다.

B 대리가 권유한 '채권반환대위변제'는 저축은행이 '불편'해하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돈을 빌린 단 며칠 동안의 이자도 받을 수 있는 중도상환과 달리 이 방법은 대출이 취소되면서 원금만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금융기관의 의심을 피하고자 6천만 원 가운데 5천8백만 원만 입금하고, 몇 가지 당부 사항을 반드시 메모하라고 지시합니다.

메모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중은행에 다니는 조카(B 대리)에게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고 말했더니, 금리도 높고 신용에도 안 좋다며 채권반환대위변제 요청하게 됐다.'】

공식적으로 중도상환할 경우 대출 기록이 남아 있어 오히려 신용도가 떨어진다며 '반드시' 채권 담당자의 계좌로 돈을 상환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당부합니다. A 씨에게 자신이 설명했던 내용을 계속 되묻기도 했습니다.

A 씨는 당부 사항이 적힌 메모장을 쥐고 저축은행에 전화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채권반환대위변제'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저축은행 채권 담당자가 깊은 한숨을 내쉽니다. B 대리 예상대로 왜 중도상환 처리 하지 않는지 물었습니다. '조카가 있다.'라는 답을 하자 이 방법은 금융사 쪽에서 일하는 사람만 아는 방법이라며 이해한다는 식으로 말을 이어갑니다. 그리고는 코로나 영향 탓에 최근 이런 사례가 더 잦은 거 같다며 이자를 낮춰주겠으니 대출을 계속 사용하지 않겠냐며 여러 차례 붙잡기도 합니다.

A 씨는 메모대로 답변을 이어갔고, 대출금을 갚을 채권 담당자의 계좌를 간신히 알아냈습니다. 입금도 30분 만에 해야 했습니다. 이 방법은 '금융권 종사자'만 아는 비밀 방법이기 때문에 빨리 처리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6천만 원에 가까운 큰돈, A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지막으로 저축은행에서 받은 보이스피싱 주의 안내 문자를 보여주며 B 대리에게 은행 직원이 맞는지 확인을 부탁합니다. B 대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여의도 지점에서 일하고 있고, 해당 은행 여의도 지점 전화번호와 본인의 명함까지 보여줍니다.

오전 10시 반, 30분을 조금 넘겼지만, 채권 담당자의 넓은 마음 덕분에 무사히 송금을 마쳤습니다. B 대리는 고생하셨다고 푹 쉬라면서 의심이 생기면 은행 본점이 아닌 '본인'에게 연락 달라고 합니다. '편법'이 들통나면 곤란해진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5. 9월 3일, 목요일 "고객님! 다 끝나셨어요."

A 씨는 며칠째 부지런한 B 대리가 건네는 '좋은 아침입니다~'라는 메시지로 잠에서 깼습니다. B 씨는 절차에 살짝 문제가 생겼지만 은행 마감 시간 전까지는 다 끝날 수 있다면서 은행에서 전화가 온 건 없었냐며 끝까지 보안 유지에 힘썼습니다.

오후 3시, 4시... 시간이 흘렀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자 A 씨는 두어 차례 더 메시지를 남겼고 B 대리는 확인해 본다는 말을 오후 4시 30분쯤 남긴 뒤 더는 답변이 없었습니다.

불안해진 A 씨는 오후 5시쯤 은행 전화상담실로 전화를 걸었고, 이내 하늘이 무너져내렸습니다. '해당 직원이 없다'는 황당한 답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6. 9월 22일 화요일, "너무 막막해요. 범인이라도 잡혔으면 좋겠어요."

친절했던 대리도 대리를 믿게 해준 전화상담실 직원도 한숨을 쉬던 저축은행 채권 담당자도 모두 전화금융사기, 보이스피싱 조직원이었고, 신용조회를 위해 내려받은 앱이 '전화 가로채기' 기능을 하면서 모든 전화를 보이스피싱 조직이 받은 겁니다.

알고 보니 A씨가 5천8백만 원을 입금한 계좌의 주인도 신용등급을 올리려면 통장 거래내용이 필요하다는 말에 통장을 빌려준 또 다른 피해자였습니다.

A 씨는 지난 3일 곧바로 피해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지만 사건 담당자 지정에만 2주일이 걸렸고, 여전히 수사 중이라는 이야기에 하염없이 기다릴 뿐입니다. 은행에 지급정지도 요청했지만, 돈은 이미 빠져나간 뒤였습니다.

한 달에 십여만 원, 금리를 낮춰 한 푼이나마 아껴보고자 대출 상품을 알아봤던 A 씨는 원래 있던 대출금 7천만 원에 추가로 6천만 원과 13%가 넘는 이자까지 떠안게 됐습니다.

A 씨는 "한 푼이라도 아껴 아내와 딸들에게 맛있는 거, 좋은 거 하나 더 해주려던 마음이 이렇게 무너져내렸다"며 자책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대출 과정에서 건넸던 주민등록등본 등으로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않겠느냔 불안까지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가족 볼 면목이 없지만, 가족들을 위해 이겨내겠다는 A 씨, 바람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저 같은 피해자가 더 없게 범인이라도 꼭 잡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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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날짜별로 본 ‘코로나 저금리 대출’, 사기의 재구성
    • 입력 2020-09-23 18:11:37
    • 수정2020-09-23 18:29:23
    취재후·사건후
#1. 8월 28일 금요일, "고객님! '코로나 19 특별 저금리 대출'받으세요."

지난달 28일 오후 3시, 경남에서 일하는 40대 직장인 A 씨는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한 시중 은행에서 '코로나19 특별 저금리 대출 상품'을 만들었고, A씨가 대출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대출상품은 코로나 19로 힘든 고객들을 위해 5백만 원에서 최대 1억 원까지, 1.68%의 저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고 소개됐습니다.

문자메시지를 보낸 은행도 A씨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신용카드 회사의 계열사였던 터라, A 씨는 대상자로 선정된 사실이 고맙기도 했습니다.

당시 A 씨는 생활비 등으로 쓰기 위해 인터넷은행에서 7천만 원을 빌려 3% 중반대 이자를 내고 있었습니다. 한 달에 내야 하는 이자만 20여만 원, 새로운 대출 상품으로 7천만 원을 빌려 기존 대출을 갚으면 이자 비용을 절반 넘게 줄일 수 있는 셈이었습니다.

상담이라도 받아보자는 생각에 문자 메시지를 보낸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량이 많아 연결이 어렵다. 전화번호를 남겨달라'는 통화 연결음에 휴대전화 번호를 남겼습니다.


전화를 끊은 지 1시간이 지난 오후 4시쯤, 자신을 스스로 해당 은행 여의도지점에서 일하고 있는 B 대리라고 소개한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B 대리는 대출 한도와 이율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직장명과 연봉 등 개인정보를 포함한 전자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설명이 끝나고 곧이어 받은 또 하나의 문자 메시지. 전자신청서를 받을 수 있는 링크가 적혀있었습니다. A 씨는 B 대리의 설명에 따라 해당 링크에 접속했고, 전자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는 앱을 내려받았습니다. 여기에 B 대리는 카카오톡 아이디를 알려주면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겠다며 기다려 달라고 말했습니다.

#2. 8월 31일 월요일, "고객님! 신용 점수가 '조금' 모자라세요."

주말이 지나고 8월 마지막 날인 월요일 아침, A 씨는 은행을 통해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현재 A 씨의 신용점수가 '조금' 모자라 저금리 대출 상품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겁니다. A 씨는 대출 대상자로 선정됐지만, 또다시 상품을 이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 의아했습니다. 하지만 은행은 신용점수를 올릴 방법이 있으니 B 대리와 상담해보라고 권유합니다.

B 대리는 '조금' 모자란 신용점수를 아쉬워하며 솔깃한 제안을 합니다. 바로 '채권반환대위변제'. 제2금융권에서 최대한도로 대출한 뒤, 돈을 고스란히 반납해 대출 기록은 남기지 않으면서 신용점수만 올라가는 일종의 '편법'이었습니다.

A 씨는 B 대리의 요청대로 저축은행에서 최대한도인 6천5백만 원 가운데 6천만 원을 13.4%의 이율로 빌렸습니다. 대출 완료 사실을 알리자 B 대리는 수요일쯤 다시 돈을 반납할 수 있게 일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저축은행에는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아야 한다며 보안을 유지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1.68% 저금리 대출 상품을 이용하기 위한 절차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A 씨는 갑자기 무언가 모를 불안감이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큰돈을 주고받는 게 괜찮은가?'라는 생각에 해당 은행 공식 전화상담실에 전화를 걸어 B 대리를 묻자 '저희 지점 직원이 맞다.'라는 답변에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3. 9월 1일 화요일, "고객님! 갑자기 본점에 전화를 왜... 무슨 일 있으신가요?"

오전 8시 반이 채 되지 않은 시각, B 대리는 A 씨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어젯밤에 저희 영업부랑 본점 쪽에 연락을 주셨던데 무슨 일 있으세요?'

A 씨는 자신을 도와주려는 사람을 괜한 의심했느냐는 미안함에 '번호를 잘못 눌렀다'며 의심을 지웠습니다. 역시나 B 대리는 대출을 위한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며 내일 다시 통화하자고 친절하게 답했습니다.


#4. 9월 2일 수요일, "고객님! 제 말에 따라 5,800만 원 입금해주세요."

신용점수를 올리기 위한 마지막 절차가 남은 날이었습니다. 부지런하고 친절한 B 대리는 오전 8시 반부터 A 씨에게 연락해왔습니다. 가장 중요한 단계, 저축은행 상환 절차 설명을 위해서는 10여 분이 넘는 통화가 이어졌습니다.

B 대리가 권유한 '채권반환대위변제'는 저축은행이 '불편'해하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돈을 빌린 단 며칠 동안의 이자도 받을 수 있는 중도상환과 달리 이 방법은 대출이 취소되면서 원금만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금융기관의 의심을 피하고자 6천만 원 가운데 5천8백만 원만 입금하고, 몇 가지 당부 사항을 반드시 메모하라고 지시합니다.

메모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중은행에 다니는 조카(B 대리)에게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고 말했더니, 금리도 높고 신용에도 안 좋다며 채권반환대위변제 요청하게 됐다.'】

공식적으로 중도상환할 경우 대출 기록이 남아 있어 오히려 신용도가 떨어진다며 '반드시' 채권 담당자의 계좌로 돈을 상환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당부합니다. A 씨에게 자신이 설명했던 내용을 계속 되묻기도 했습니다.

A 씨는 당부 사항이 적힌 메모장을 쥐고 저축은행에 전화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채권반환대위변제'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저축은행 채권 담당자가 깊은 한숨을 내쉽니다. B 대리 예상대로 왜 중도상환 처리 하지 않는지 물었습니다. '조카가 있다.'라는 답을 하자 이 방법은 금융사 쪽에서 일하는 사람만 아는 방법이라며 이해한다는 식으로 말을 이어갑니다. 그리고는 코로나 영향 탓에 최근 이런 사례가 더 잦은 거 같다며 이자를 낮춰주겠으니 대출을 계속 사용하지 않겠냐며 여러 차례 붙잡기도 합니다.

A 씨는 메모대로 답변을 이어갔고, 대출금을 갚을 채권 담당자의 계좌를 간신히 알아냈습니다. 입금도 30분 만에 해야 했습니다. 이 방법은 '금융권 종사자'만 아는 비밀 방법이기 때문에 빨리 처리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6천만 원에 가까운 큰돈, A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지막으로 저축은행에서 받은 보이스피싱 주의 안내 문자를 보여주며 B 대리에게 은행 직원이 맞는지 확인을 부탁합니다. B 대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여의도 지점에서 일하고 있고, 해당 은행 여의도 지점 전화번호와 본인의 명함까지 보여줍니다.

오전 10시 반, 30분을 조금 넘겼지만, 채권 담당자의 넓은 마음 덕분에 무사히 송금을 마쳤습니다. B 대리는 고생하셨다고 푹 쉬라면서 의심이 생기면 은행 본점이 아닌 '본인'에게 연락 달라고 합니다. '편법'이 들통나면 곤란해진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5. 9월 3일, 목요일 "고객님! 다 끝나셨어요."

A 씨는 며칠째 부지런한 B 대리가 건네는 '좋은 아침입니다~'라는 메시지로 잠에서 깼습니다. B 씨는 절차에 살짝 문제가 생겼지만 은행 마감 시간 전까지는 다 끝날 수 있다면서 은행에서 전화가 온 건 없었냐며 끝까지 보안 유지에 힘썼습니다.

오후 3시, 4시... 시간이 흘렀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자 A 씨는 두어 차례 더 메시지를 남겼고 B 대리는 확인해 본다는 말을 오후 4시 30분쯤 남긴 뒤 더는 답변이 없었습니다.

불안해진 A 씨는 오후 5시쯤 은행 전화상담실로 전화를 걸었고, 이내 하늘이 무너져내렸습니다. '해당 직원이 없다'는 황당한 답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6. 9월 22일 화요일, "너무 막막해요. 범인이라도 잡혔으면 좋겠어요."

친절했던 대리도 대리를 믿게 해준 전화상담실 직원도 한숨을 쉬던 저축은행 채권 담당자도 모두 전화금융사기, 보이스피싱 조직원이었고, 신용조회를 위해 내려받은 앱이 '전화 가로채기' 기능을 하면서 모든 전화를 보이스피싱 조직이 받은 겁니다.

알고 보니 A씨가 5천8백만 원을 입금한 계좌의 주인도 신용등급을 올리려면 통장 거래내용이 필요하다는 말에 통장을 빌려준 또 다른 피해자였습니다.

A 씨는 지난 3일 곧바로 피해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지만 사건 담당자 지정에만 2주일이 걸렸고, 여전히 수사 중이라는 이야기에 하염없이 기다릴 뿐입니다. 은행에 지급정지도 요청했지만, 돈은 이미 빠져나간 뒤였습니다.

한 달에 십여만 원, 금리를 낮춰 한 푼이나마 아껴보고자 대출 상품을 알아봤던 A 씨는 원래 있던 대출금 7천만 원에 추가로 6천만 원과 13%가 넘는 이자까지 떠안게 됐습니다.

A 씨는 "한 푼이라도 아껴 아내와 딸들에게 맛있는 거, 좋은 거 하나 더 해주려던 마음이 이렇게 무너져내렸다"며 자책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대출 과정에서 건넸던 주민등록등본 등으로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않겠느냔 불안까지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가족 볼 면목이 없지만, 가족들을 위해 이겨내겠다는 A 씨, 바람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저 같은 피해자가 더 없게 범인이라도 꼭 잡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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