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공동문화유산 ‘같이 함께’] 한 뿌리 두 갈래 ‘태권도’

입력 2020.10.10 (08:46) 수정 2020.10.1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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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남북의 창이 개편을 맞아 마련한 남북 공동 문화유산 프로젝트 같이 함께 시간입니다. 이번 주는 우리 민족의 대표 무예 태권도 편인데요.

태권도는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지 올해로 20년을 맞으면서 세계적인 스포츠로 자리매김 했는데요. 남북 간 태권도 교류 그리고 이해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입니다.

하나의 태권도를 두고 남한 태권도, 또 북한 태권도로 나누어 부르는 일도 종종 있는데요.

한 뿌리, 두 갈래로 갈라진 남과 북의 태권도. 그 이유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리포트]

1994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제 103회 IOC총회. 당시 세계의 관심은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 여부에 집중됐습니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1994년 인터뷰/당시 IOC 위원장 : "태권도와 철인3종은 총회에서 결정되며 총회는 내일 열리게 됩니다."]

총회 마지막 날. 태권도는 IOC의 만장일치로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는데요,

[김운용/1994년 인터뷰/당시 IOC 부위원장 : "IOC 위원들이 또, 사마란치 위원장이 특히 이 태권도를 많이 지지를 해주시고, 또 집행위원들도, IOC 위원들도 이해를 해주시고 그래서, 오늘 만장일치로 결정이 났습니다."]

그로부터 6년 후. 태권도는 시드니 올림픽이라는 세계무대에 정식경기로 서게 됩니다.

[KBS 뉴스9/2000년 9월 : "국기 태권도의 메달사냥이 시작됐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그동안의 닦아온 기량을 거침없이 발휘 했는데요.

그런데 우리와 마찬가지로 태권도를 국기로 삼고 있으면서도, 단 한명의 선수도 경기에 출전 하지 못한 나라가 있었습니다.

바로 북한이었습니다.

[양대승/가천대 체육학부 태권도전공 교수 :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WT 경기방식을 따라야 되는 거거든요. 세계 태권도 연맹이라든지 국기원에서 발행하는 국기원 단증이 없으면 출전할 수가 없거든요."]

전통무예에 뿌리를 둔 태권도는 1960년대 대한민국에서 체계화됐고, 1980년대 들어서야 북한에 보급됐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현대적 의미의 ‘태권도’를 정립하고 그 기반을 다지는 데는 육군 소장 출신 최홍희의 역할이 컸다고 전해지는데요,

최홍희는 1966년 창설된 국제태권도연맹, ITF의 초대 총재를 맡아 태권도의 국제적인 보급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당시 정권과의 갈등으로 1972년 캐나다로 망명했고, 이듬해인 1973년, 국내에서는 김운용의 주도로 새로운 국제 태권도 기구인 세계태권도연맹, WT가 출범합니다.

종주국 한국을 중심으로 WT가 세력을 확장해 나갈 무렵, 최홍희는15명의 ITF 사범단을 이끌고 북한으로 건너가 태권도를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가 WT 태권도를 주도하고 북한이 ITF 태권도를 주도하게 된 가장 큰 이유입니다.

이후 수십년간 다른 길을 걸어 온 만큼 차이점도 생겨났는데요, WT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과정에서 스포츠적 측면이 강해졌다면, ITF 태권도는 실전 중심의 무도로서의 측면이 강하다는 평가입니다.

기본동작 역시 비슷하면서도 차이를 보이는데요, 먼저 WT 품새 ‘태극1장’의 동작입니다.

그리고 ITF의 ‘천지틀’ 동작. ‘품새’는 직선적이라면 ‘틀’은 상대적으로 위아래로 곡선적인 움직임이 더해져 있습니다.

앞차기 기본동작에서도 차이점은 발견 됩니다.

주로 발등으로, 올려차는 WT에 비해 ITF는 발 앞 축으로 꽂아 차는 방식. 돌려차기 기술에서도 각도와 힘의 방향이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사용하는 보호대도 다른데요, WT 태권도는 머리와 몸통에 보호대를 착용하는 반면, ITF태권도는 가격을 하는 손과 발에 글러브를 착용하고 머리보호대 대신 마우스피스만 사용합니다.

WT가 발기술 위주로 공격을 펼치는 데 비해, ITF는 글러브를 낀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는 것도 주요 기술입니다.

이렇듯 같으면서도 달라 보이는 남북한의 태권도. 그러나 태권도가 한민족의 무도이며 뿌리를 함께 하고 있다는 데는 남과 북 모두 이견이 없습니다.

[장웅/IOC위원/前 ITF(국제태권도연맹) 총재 : "태권도 뿌리는 하나입니다. 뿌리는 하나고..."]

[양진방/WT(세계태권도연맹) 기술위원장 : "최홍희 총재의 태권도 출발점은 대한 태권도협회이고 한국에서 활동을 했었고 그렇기 때문에 기술적인 뿌리는 똑같습니다."]

태권도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 20년. 올림픽의 정신처럼 남북 태권도에도 화합과 평화의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앵커]

남북 공동 문화유산 프로젝트 같이 함께 태권도 편. 저희가 오늘은 특별한 무대를 마련했습니다.

국제태권도연맹 ITF 한국 선수단을 스튜디오에 모시고 시범 공연을 준비해봤는데요. 함께 보시죠.

멋진 무대 감사합니다.

좀 더자세한 이야기 전문가 모시고 나누어보겠습니다.

신한대학교 태권도 전공 서성원 교수님.

ITF 대한민국협회 유승희 사무총장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앞서 화면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우리나라는 WT, 북한은 ITF 중심으로 서로 발전이 되면서 좀 차이점이 생겼다고 하는데요.

[답변]

원래 태권도는 넓은 의미에서 하나의 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국제 정서와 개인적인 견해 차이로 인해서 2개의 태권도로 나뉘었는데요.

두 단체의 기술과 동작은 보면서 세부적으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출연자들이 세계태권도연맹 품새와 국제태권도연맹 틀을 하고 있는데요.

지면을 딛고 힘을 만들어서 전달하는 것은 똑같은데요.

서기, 딛기, 보법의 너비 등 이런 기본 동작이 약간 다르다 보니까 완급, 힘의 강약, 중심이동, 호흡, 그리고 관절의 수축과 이완이 외형적으로 좀 다르게 보이는 겁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세계태권도연맹 품새에는 없는 국제태권도연맹만의 기본 원리가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사인 웨이브입니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면서 다운, 업, 다운 하는 그런 원리가 바로 품새에 있겠습니다.

[앵커]

총장님. 앞차기는 WT와 ITF에 어떤 차이가 있나요?

[답변]

우선 지금 보여지는 부분에서는 발등으로 지금 올려 차고 있는데 실제로 찰 때는 앞 축 을 이용해서 상대방의 턱을 올려 찹니다, WT의 앞차기는.

ITF 앞차부수기 같은 경우에는 힘의 방향이 앞으로 나갈 수 있게허리를 밀어넣어서 차는 발차기가 이제 앞차부수기. ITF의 발차기입니다.

이렇게 힘이 앞으로. 힘의 방향이 위로가 아니라 앞으로 차는 형식으로. 허리를 밀어넣어서 차는 발차기가 이제 앞차부수기. ITF의 발차기입니다.

좀 더 실전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고요.

원래 태권도 자체가 실전성을 가지고서 처음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원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앵커]

총장님. 지금 이건 어떤 자세인가요?

[답변]

지금 이 자세는 이제 반대 돌려차기라고 해서 뒤꿈치를 이용해서 상대방의 관자놀이를 후려 차는 형식입니다.

WT의 뒤 후려차기랑 같은 동작인데요. 우선은 차는 부위가 ITF는 뒤꿈치를 향해서 상대방의 관자놀이를 차는 형식이고 WT의 뒤후려차기는 발바닥을 이용 해서 상대방의 얼굴을 후려 차는 형식입니다.

우선 차는 부위가 달라요. 지금 보시면 이제 발바닥으로 이제 후려 차죠.

조금 전에 ITF 반대 돌려차기 같으면 뒤꿈치를 통해서 이제 얼굴에 가격을 하고 뒤후려차기 같은 경우에는 발바닥으로 이제 얼굴을 가격을 합니다.

[앵커]

기본자세부터 공격 기술까지 상당한 차이점이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이렇게 다른 태권도를 계승하고 있는 남과 북이지만 통합과 화합의 노력은 아끼지 않아 왔습니다.

남과 북은 그동안 태권도 화합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왔을까요? 화면으로 살펴보겠습니다.

(VCR 2)

2018년 2월 9일.평화와 번영을 상징하는 평창동계올림픽의 막이 올랐습니다.

그리고 개막식 무대에 남북 태권도 시범단이 함께 올랐는데요, 절도 있는 발차기와 고난도 격파까지.. 태권도가 남북 공동의 문화임을 다시 한 번 세계에 알리게 되었습니다.

[칠리/미국인 관람객 : "육체적 재능, 힘, 민첩함을 필요로 해서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남북한의 태권도 교류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속도가 붙었는데요.

2002년 서해교전으로 긴장 상황이 극에 달했을 때도 남북 태권도 시범단은 평양과 서울을 오갔습니다.

[김성기/2002년 인터뷰/당시 북한 태권도 시범단 : "우리 조선사람들 앞에서 이런 우리의 기술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니까 더 힘이 나고, 보셨겠죠, 우리 미숙하지만 힘 있게 했습니다."]

2007년엔 북한 ITF 총재였던 장웅이 직접 북한 태권도 시범단을 이끌고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했는데요,

[장웅/2007년 인터뷰/당시 북한 ITF 총재 : "민족이 분열되어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가슴 아픈일인데 스포츠 종목 무술종목까지 분열돼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잦은 교류와 만남은 한국 WT와 북한 ITF간 의정서 체결로 이어졌습니다.

2014년 체결된 의정서에는 상호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후 남북한 태권도 시범단은 합동공연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됩니다.

첫 합동 무대는 2014년 러시아 사할린에서 진행된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행사였습니다.

이후 선수들은 2017년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그리고 2018년, 마침내 남북은 태권도 통합을 위한 유네스코 공동등재 협력에 합의했습니다.

2019년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남북 관계가 답보상태에 빠졌을 때도 유럽 합동공연을 하며 함께 세계 무대를 누빈 남북 태권도.

그러나 남북 관계 경색 국면이 장기화되고 코로나19사태까지 닥치면서 태권도 교류의 길도 다시 막혔는데요.

북한태권도 선수들의 도쿄올림픽 출전 논의도 무기한 연기됐습니다.

우리 민족의 국기라는 공통 분모로 남북 교류의 최선봉에 선 태권도.

앞으로 더 잦은 교류와 협력을 통해 하나 된 태권도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앵커]

방금 영상 보셨는데요. 남과 북이 하나 된 모습 하나도 어색하지가 않았습니다.

자주 만나고 소통하면서 이런 일이 가능했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동안 남한 WT와 북한 ITF. 그 통합 논의가 있었는데 어떻게 진행되어 왔습니까?

[답변]

남한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세계태권도연맹과 북한이 주도하고 있는 ITF가 1982년에 처음으로 만나서 교류를 시작했거든요.

지난해까지 교류가 잘 이루어져왔는데 국내외 정세와 한반도 문제 때문에 올해는 지금 큰 교류가 없습니다.

[앵커]

2018년도 당시에 태권도 통합을 위한 합의서를 체결했다고 저희가 알고 있는데요.

그 합의서 내용은 뭔지 지금 실제로 이루어진 성과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첫 번째는 남북 통합을 위해서 위원회를 구성하자.

두 번째는 두 단체가 국제태권도대회를 개최하자.

세 번째는 해외에서 합동 시범 공연을 하자.

그리고 네 번째는 남북이 힘을 합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태권도를 공동으로 등재시키자.

이런 4가지의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지금 딱 한 가지만 이루어졌는데요.

지난해 유럽에서 로잔과 제네바에서 남북 합동 공연이 이루어진 외에는 지금 뚜렷한 성과가 없는 실정입니다.

[답변]

그러면 이번에 유 총장님께 한 번 여쭤볼게요.

북한 ITF와 국내 ITF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답변]

북한의 ITF와 국내의 ITF 조직 자체가 현실적으로 서로 민간단체가 북한의 한 조직과 교류를 하는 게 사실상 어렵거든요.

그래서 현재는 그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하나가 됐을 때 저희가 만났을 때 가장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서로의 관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앵커]

사무총장님. 만약에 WT와 ITF 우리나라의 태권도와 북한의 태권도가 실제로 통합이 되면 어떤 점이 가장 좋을까요?

[답변]

서로 한쪽으로 쏠려서 항해하던 배가 수평을 이루고 그로 인해서 이제 균형성을 갖추면서 그걸 바탕으로 전 세계에 좀 더 우리나라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이 문화를 온전하고 완벽하게 더 세계에 정착시킬 수 있는 어떤 그런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요.

또 하나는 다양성에 대한 부분을 알려줄 수 있고. 그리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수 있는 어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이 태권도가 지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려는 노력을 남북이 같이 하고 있지 않습니까?

[교수]

태권도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충분히 등재될 만한 요건을 충족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현재 연행되고 있고 두 번째 세대 간에 거쳐서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리고 문화 사회적 그런 통합의 기능도 하고 있기때문에 남과 북이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공동 등재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앵커]

서 교수님 이렇게 태권도 통합에 대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답변]

태권도는 아리랑, 한글, 김치와 함께 남북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자 겨레의 브랜드입니다.

따라서 태권도는 단순히 무술, 무예, 스포츠의 영역을 뛰어넘어서 남북을 상징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우리가 풍요롭게 가꾸어 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될 때 남북 화해와 민족의 동질성, 한반도 평화 증진에 태권도가 큰 기여를 하기 때문에 남북 태권도 교류와 통합이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앵커]

오늘 이렇게 남북의 공동 문화유산 태권도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 가졌습니다.

함께 해주신 서성원 교수님, 유승희 사무총장님 감사드립니다.

남북의 태권도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북한 태권도 영상 마지막으로 준비했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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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공동문화유산 ‘같이 함께’] 한 뿌리 두 갈래 ‘태권도’
    • 입력 2020-10-10 08:46:41
    • 수정2020-10-10 09:01:18
    남북의 창
[앵커]

남북의 창이 개편을 맞아 마련한 남북 공동 문화유산 프로젝트 같이 함께 시간입니다. 이번 주는 우리 민족의 대표 무예 태권도 편인데요.

태권도는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지 올해로 20년을 맞으면서 세계적인 스포츠로 자리매김 했는데요. 남북 간 태권도 교류 그리고 이해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입니다.

하나의 태권도를 두고 남한 태권도, 또 북한 태권도로 나누어 부르는 일도 종종 있는데요.

한 뿌리, 두 갈래로 갈라진 남과 북의 태권도. 그 이유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리포트]

1994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제 103회 IOC총회. 당시 세계의 관심은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 여부에 집중됐습니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1994년 인터뷰/당시 IOC 위원장 : "태권도와 철인3종은 총회에서 결정되며 총회는 내일 열리게 됩니다."]

총회 마지막 날. 태권도는 IOC의 만장일치로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는데요,

[김운용/1994년 인터뷰/당시 IOC 부위원장 : "IOC 위원들이 또, 사마란치 위원장이 특히 이 태권도를 많이 지지를 해주시고, 또 집행위원들도, IOC 위원들도 이해를 해주시고 그래서, 오늘 만장일치로 결정이 났습니다."]

그로부터 6년 후. 태권도는 시드니 올림픽이라는 세계무대에 정식경기로 서게 됩니다.

[KBS 뉴스9/2000년 9월 : "국기 태권도의 메달사냥이 시작됐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그동안의 닦아온 기량을 거침없이 발휘 했는데요.

그런데 우리와 마찬가지로 태권도를 국기로 삼고 있으면서도, 단 한명의 선수도 경기에 출전 하지 못한 나라가 있었습니다.

바로 북한이었습니다.

[양대승/가천대 체육학부 태권도전공 교수 :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WT 경기방식을 따라야 되는 거거든요. 세계 태권도 연맹이라든지 국기원에서 발행하는 국기원 단증이 없으면 출전할 수가 없거든요."]

전통무예에 뿌리를 둔 태권도는 1960년대 대한민국에서 체계화됐고, 1980년대 들어서야 북한에 보급됐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현대적 의미의 ‘태권도’를 정립하고 그 기반을 다지는 데는 육군 소장 출신 최홍희의 역할이 컸다고 전해지는데요,

최홍희는 1966년 창설된 국제태권도연맹, ITF의 초대 총재를 맡아 태권도의 국제적인 보급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당시 정권과의 갈등으로 1972년 캐나다로 망명했고, 이듬해인 1973년, 국내에서는 김운용의 주도로 새로운 국제 태권도 기구인 세계태권도연맹, WT가 출범합니다.

종주국 한국을 중심으로 WT가 세력을 확장해 나갈 무렵, 최홍희는15명의 ITF 사범단을 이끌고 북한으로 건너가 태권도를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가 WT 태권도를 주도하고 북한이 ITF 태권도를 주도하게 된 가장 큰 이유입니다.

이후 수십년간 다른 길을 걸어 온 만큼 차이점도 생겨났는데요, WT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과정에서 스포츠적 측면이 강해졌다면, ITF 태권도는 실전 중심의 무도로서의 측면이 강하다는 평가입니다.

기본동작 역시 비슷하면서도 차이를 보이는데요, 먼저 WT 품새 ‘태극1장’의 동작입니다.

그리고 ITF의 ‘천지틀’ 동작. ‘품새’는 직선적이라면 ‘틀’은 상대적으로 위아래로 곡선적인 움직임이 더해져 있습니다.

앞차기 기본동작에서도 차이점은 발견 됩니다.

주로 발등으로, 올려차는 WT에 비해 ITF는 발 앞 축으로 꽂아 차는 방식. 돌려차기 기술에서도 각도와 힘의 방향이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사용하는 보호대도 다른데요, WT 태권도는 머리와 몸통에 보호대를 착용하는 반면, ITF태권도는 가격을 하는 손과 발에 글러브를 착용하고 머리보호대 대신 마우스피스만 사용합니다.

WT가 발기술 위주로 공격을 펼치는 데 비해, ITF는 글러브를 낀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는 것도 주요 기술입니다.

이렇듯 같으면서도 달라 보이는 남북한의 태권도. 그러나 태권도가 한민족의 무도이며 뿌리를 함께 하고 있다는 데는 남과 북 모두 이견이 없습니다.

[장웅/IOC위원/前 ITF(국제태권도연맹) 총재 : "태권도 뿌리는 하나입니다. 뿌리는 하나고..."]

[양진방/WT(세계태권도연맹) 기술위원장 : "최홍희 총재의 태권도 출발점은 대한 태권도협회이고 한국에서 활동을 했었고 그렇기 때문에 기술적인 뿌리는 똑같습니다."]

태권도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 20년. 올림픽의 정신처럼 남북 태권도에도 화합과 평화의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앵커]

남북 공동 문화유산 프로젝트 같이 함께 태권도 편. 저희가 오늘은 특별한 무대를 마련했습니다.

국제태권도연맹 ITF 한국 선수단을 스튜디오에 모시고 시범 공연을 준비해봤는데요. 함께 보시죠.

멋진 무대 감사합니다.

좀 더자세한 이야기 전문가 모시고 나누어보겠습니다.

신한대학교 태권도 전공 서성원 교수님.

ITF 대한민국협회 유승희 사무총장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앞서 화면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우리나라는 WT, 북한은 ITF 중심으로 서로 발전이 되면서 좀 차이점이 생겼다고 하는데요.

[답변]

원래 태권도는 넓은 의미에서 하나의 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국제 정서와 개인적인 견해 차이로 인해서 2개의 태권도로 나뉘었는데요.

두 단체의 기술과 동작은 보면서 세부적으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출연자들이 세계태권도연맹 품새와 국제태권도연맹 틀을 하고 있는데요.

지면을 딛고 힘을 만들어서 전달하는 것은 똑같은데요.

서기, 딛기, 보법의 너비 등 이런 기본 동작이 약간 다르다 보니까 완급, 힘의 강약, 중심이동, 호흡, 그리고 관절의 수축과 이완이 외형적으로 좀 다르게 보이는 겁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세계태권도연맹 품새에는 없는 국제태권도연맹만의 기본 원리가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사인 웨이브입니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면서 다운, 업, 다운 하는 그런 원리가 바로 품새에 있겠습니다.

[앵커]

총장님. 앞차기는 WT와 ITF에 어떤 차이가 있나요?

[답변]

우선 지금 보여지는 부분에서는 발등으로 지금 올려 차고 있는데 실제로 찰 때는 앞 축 을 이용해서 상대방의 턱을 올려 찹니다, WT의 앞차기는.

ITF 앞차부수기 같은 경우에는 힘의 방향이 앞으로 나갈 수 있게허리를 밀어넣어서 차는 발차기가 이제 앞차부수기. ITF의 발차기입니다.

이렇게 힘이 앞으로. 힘의 방향이 위로가 아니라 앞으로 차는 형식으로. 허리를 밀어넣어서 차는 발차기가 이제 앞차부수기. ITF의 발차기입니다.

좀 더 실전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고요.

원래 태권도 자체가 실전성을 가지고서 처음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원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앵커]

총장님. 지금 이건 어떤 자세인가요?

[답변]

지금 이 자세는 이제 반대 돌려차기라고 해서 뒤꿈치를 이용해서 상대방의 관자놀이를 후려 차는 형식입니다.

WT의 뒤 후려차기랑 같은 동작인데요. 우선은 차는 부위가 ITF는 뒤꿈치를 향해서 상대방의 관자놀이를 차는 형식이고 WT의 뒤후려차기는 발바닥을 이용 해서 상대방의 얼굴을 후려 차는 형식입니다.

우선 차는 부위가 달라요. 지금 보시면 이제 발바닥으로 이제 후려 차죠.

조금 전에 ITF 반대 돌려차기 같으면 뒤꿈치를 통해서 이제 얼굴에 가격을 하고 뒤후려차기 같은 경우에는 발바닥으로 이제 얼굴을 가격을 합니다.

[앵커]

기본자세부터 공격 기술까지 상당한 차이점이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이렇게 다른 태권도를 계승하고 있는 남과 북이지만 통합과 화합의 노력은 아끼지 않아 왔습니다.

남과 북은 그동안 태권도 화합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왔을까요? 화면으로 살펴보겠습니다.

(VCR 2)

2018년 2월 9일.평화와 번영을 상징하는 평창동계올림픽의 막이 올랐습니다.

그리고 개막식 무대에 남북 태권도 시범단이 함께 올랐는데요, 절도 있는 발차기와 고난도 격파까지.. 태권도가 남북 공동의 문화임을 다시 한 번 세계에 알리게 되었습니다.

[칠리/미국인 관람객 : "육체적 재능, 힘, 민첩함을 필요로 해서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남북한의 태권도 교류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속도가 붙었는데요.

2002년 서해교전으로 긴장 상황이 극에 달했을 때도 남북 태권도 시범단은 평양과 서울을 오갔습니다.

[김성기/2002년 인터뷰/당시 북한 태권도 시범단 : "우리 조선사람들 앞에서 이런 우리의 기술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니까 더 힘이 나고, 보셨겠죠, 우리 미숙하지만 힘 있게 했습니다."]

2007년엔 북한 ITF 총재였던 장웅이 직접 북한 태권도 시범단을 이끌고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했는데요,

[장웅/2007년 인터뷰/당시 북한 ITF 총재 : "민족이 분열되어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가슴 아픈일인데 스포츠 종목 무술종목까지 분열돼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잦은 교류와 만남은 한국 WT와 북한 ITF간 의정서 체결로 이어졌습니다.

2014년 체결된 의정서에는 상호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후 남북한 태권도 시범단은 합동공연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됩니다.

첫 합동 무대는 2014년 러시아 사할린에서 진행된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행사였습니다.

이후 선수들은 2017년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그리고 2018년, 마침내 남북은 태권도 통합을 위한 유네스코 공동등재 협력에 합의했습니다.

2019년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남북 관계가 답보상태에 빠졌을 때도 유럽 합동공연을 하며 함께 세계 무대를 누빈 남북 태권도.

그러나 남북 관계 경색 국면이 장기화되고 코로나19사태까지 닥치면서 태권도 교류의 길도 다시 막혔는데요.

북한태권도 선수들의 도쿄올림픽 출전 논의도 무기한 연기됐습니다.

우리 민족의 국기라는 공통 분모로 남북 교류의 최선봉에 선 태권도.

앞으로 더 잦은 교류와 협력을 통해 하나 된 태권도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앵커]

방금 영상 보셨는데요. 남과 북이 하나 된 모습 하나도 어색하지가 않았습니다.

자주 만나고 소통하면서 이런 일이 가능했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동안 남한 WT와 북한 ITF. 그 통합 논의가 있었는데 어떻게 진행되어 왔습니까?

[답변]

남한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세계태권도연맹과 북한이 주도하고 있는 ITF가 1982년에 처음으로 만나서 교류를 시작했거든요.

지난해까지 교류가 잘 이루어져왔는데 국내외 정세와 한반도 문제 때문에 올해는 지금 큰 교류가 없습니다.

[앵커]

2018년도 당시에 태권도 통합을 위한 합의서를 체결했다고 저희가 알고 있는데요.

그 합의서 내용은 뭔지 지금 실제로 이루어진 성과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첫 번째는 남북 통합을 위해서 위원회를 구성하자.

두 번째는 두 단체가 국제태권도대회를 개최하자.

세 번째는 해외에서 합동 시범 공연을 하자.

그리고 네 번째는 남북이 힘을 합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태권도를 공동으로 등재시키자.

이런 4가지의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지금 딱 한 가지만 이루어졌는데요.

지난해 유럽에서 로잔과 제네바에서 남북 합동 공연이 이루어진 외에는 지금 뚜렷한 성과가 없는 실정입니다.

[답변]

그러면 이번에 유 총장님께 한 번 여쭤볼게요.

북한 ITF와 국내 ITF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답변]

북한의 ITF와 국내의 ITF 조직 자체가 현실적으로 서로 민간단체가 북한의 한 조직과 교류를 하는 게 사실상 어렵거든요.

그래서 현재는 그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하나가 됐을 때 저희가 만났을 때 가장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서로의 관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앵커]

사무총장님. 만약에 WT와 ITF 우리나라의 태권도와 북한의 태권도가 실제로 통합이 되면 어떤 점이 가장 좋을까요?

[답변]

서로 한쪽으로 쏠려서 항해하던 배가 수평을 이루고 그로 인해서 이제 균형성을 갖추면서 그걸 바탕으로 전 세계에 좀 더 우리나라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이 문화를 온전하고 완벽하게 더 세계에 정착시킬 수 있는 어떤 그런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요.

또 하나는 다양성에 대한 부분을 알려줄 수 있고. 그리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수 있는 어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이 태권도가 지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려는 노력을 남북이 같이 하고 있지 않습니까?

[교수]

태권도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충분히 등재될 만한 요건을 충족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현재 연행되고 있고 두 번째 세대 간에 거쳐서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리고 문화 사회적 그런 통합의 기능도 하고 있기때문에 남과 북이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공동 등재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앵커]

서 교수님 이렇게 태권도 통합에 대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답변]

태권도는 아리랑, 한글, 김치와 함께 남북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자 겨레의 브랜드입니다.

따라서 태권도는 단순히 무술, 무예, 스포츠의 영역을 뛰어넘어서 남북을 상징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우리가 풍요롭게 가꾸어 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될 때 남북 화해와 민족의 동질성, 한반도 평화 증진에 태권도가 큰 기여를 하기 때문에 남북 태권도 교류와 통합이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앵커]

오늘 이렇게 남북의 공동 문화유산 태권도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 가졌습니다.

함께 해주신 서성원 교수님, 유승희 사무총장님 감사드립니다.

남북의 태권도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북한 태권도 영상 마지막으로 준비했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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