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한 달 만에 야스쿠니 ‘또 참배’…日 정부 “사적인 일” 억지

입력 2020.10.19 (10:07) 수정 2020.10.1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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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한 달 만에 또 참배했습니다.

아베 전 총리는 오늘(19일) 오전 9시 쯤, 일본 도쿄(東京) 치요다(千代田)구 구단(九段)에 세워진 야스쿠니신사를 찾아 참배한 뒤 기자들을 만나 "영령에게 존숭(尊崇·높이 받들어 숭배함)의 마음을 표하기 위해 참배했다"고 말했습니다.

아베 전 총리는 참배자 명부에 직함 없이 '아베 신조(安倍晋三)'라고만 적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대해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은 오늘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사인(私人)인 아베 전 총리 개인 (차원의) 참배로 알고 있다"면서 "개인의 '신교'(信敎) 자유에 관한 문제로 정부가 막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퇴임 후 사흘 만인 지난달 19일 자신의 트위터에 야스쿠니신사 경내에서 이동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올린 뒤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총리를 퇴임했다는 것을 영령에게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아베 전 총리는 제2차 집권을 시작한 이듬해인 2013년 12월 26일 현직 총리 신분으로 한 차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고, 이후 재임 중에는 한국과 중국을 의식해 봄·가을 큰 제사와 8.15 패전일(종전기념일)에 공물만 봉납했습니다.

하지만 '현직 총리'라는 정치적 부담을 벗자마자 한 달여 만에 두 차례나 야스쿠니를 직접 참배해 극우 성향을 재확인한 셈입니다.

아베 정계 계승을 표방하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 또한 지난 17일 야스쿠니신사의 가을 큰 제사(추계예대제)에 비쭈기나무(상록수의 일종)인 '마사카키'(木+神)를 '내각 총리대신' 명의로 바쳤습니다.

이에 가토 관방장관은 "사인으로서의 행동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이번 마사카키(공물) 봉납도 총리로서 적절히 판단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특히 스가 총리가 바친 공물에 '내각총리대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라는 명패를 세운 것에 대해선 "직함을 붙이는 것은 그 지위에 있는 개인을 나타내는 경우에 관례로 자주 행해진다"며 "어디까지나 사인으로서 봉납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억지 주장을 폈습니다.

스가 총리의 경우 아베 전 총리의 제2차 집권기인 7년 8개월여 동안 관방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았고, 공물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그가 총리 취임 후 처음 맞는 야스쿠니신사 가을 큰 제사에 공물을 봉납한 것은 직접 참배에 따른 외교적 부담을 피하면서 국내 정치적으로는 사실상의 참배 효과를 노린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는 1867년의 메이지(明治) 유신을 전후해 일본에서 벌어진 내전과 일제가 일으킨 여러 침략전쟁에서 일왕(천황·덴노)을 위해 목숨을 바친 246만 6천여 명의 영령을 떠받드는 시설입니다.

이 가운데 90%에 가까운 213만 3천 위는 일제가 '대동아(大東亞)전쟁'이라고 부른 태평양전쟁(1941년 12월~1945년 8월)과 연관돼 있습니다.

일제 패망 후 도쿄 전범 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을 거쳐 교수형에 처해진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 총리 등 7명과 무기금고형을 선고받고 옥사한 조선 총독 출신인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1880∼1950) 등 태평양전쟁을 이끌었던 A급 전범 14명이 1978년 합사(合祀) 의식을 거쳐 야스쿠니에 봉안됐습니다.

이 때문에 야스쿠니신사는 일본 우익 진영에는 '성소'(聖所)로 통하지만, 일제의 침략전쟁으로 고통을 겪었던 주변국 사람들에게는 '전쟁 신사'라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 아베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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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베, 한 달 만에 야스쿠니 ‘또 참배’…日 정부 “사적인 일” 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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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0-10-19 16:58:01
    국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한 달 만에 또 참배했습니다.

아베 전 총리는 오늘(19일) 오전 9시 쯤, 일본 도쿄(東京) 치요다(千代田)구 구단(九段)에 세워진 야스쿠니신사를 찾아 참배한 뒤 기자들을 만나 "영령에게 존숭(尊崇·높이 받들어 숭배함)의 마음을 표하기 위해 참배했다"고 말했습니다.

아베 전 총리는 참배자 명부에 직함 없이 '아베 신조(安倍晋三)'라고만 적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대해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은 오늘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사인(私人)인 아베 전 총리 개인 (차원의) 참배로 알고 있다"면서 "개인의 '신교'(信敎) 자유에 관한 문제로 정부가 막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퇴임 후 사흘 만인 지난달 19일 자신의 트위터에 야스쿠니신사 경내에서 이동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올린 뒤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총리를 퇴임했다는 것을 영령에게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아베 전 총리는 제2차 집권을 시작한 이듬해인 2013년 12월 26일 현직 총리 신분으로 한 차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고, 이후 재임 중에는 한국과 중국을 의식해 봄·가을 큰 제사와 8.15 패전일(종전기념일)에 공물만 봉납했습니다.

하지만 '현직 총리'라는 정치적 부담을 벗자마자 한 달여 만에 두 차례나 야스쿠니를 직접 참배해 극우 성향을 재확인한 셈입니다.

아베 정계 계승을 표방하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 또한 지난 17일 야스쿠니신사의 가을 큰 제사(추계예대제)에 비쭈기나무(상록수의 일종)인 '마사카키'(木+神)를 '내각 총리대신' 명의로 바쳤습니다.

이에 가토 관방장관은 "사인으로서의 행동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이번 마사카키(공물) 봉납도 총리로서 적절히 판단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특히 스가 총리가 바친 공물에 '내각총리대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라는 명패를 세운 것에 대해선 "직함을 붙이는 것은 그 지위에 있는 개인을 나타내는 경우에 관례로 자주 행해진다"며 "어디까지나 사인으로서 봉납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억지 주장을 폈습니다.

스가 총리의 경우 아베 전 총리의 제2차 집권기인 7년 8개월여 동안 관방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았고, 공물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그가 총리 취임 후 처음 맞는 야스쿠니신사 가을 큰 제사에 공물을 봉납한 것은 직접 참배에 따른 외교적 부담을 피하면서 국내 정치적으로는 사실상의 참배 효과를 노린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는 1867년의 메이지(明治) 유신을 전후해 일본에서 벌어진 내전과 일제가 일으킨 여러 침략전쟁에서 일왕(천황·덴노)을 위해 목숨을 바친 246만 6천여 명의 영령을 떠받드는 시설입니다.

이 가운데 90%에 가까운 213만 3천 위는 일제가 '대동아(大東亞)전쟁'이라고 부른 태평양전쟁(1941년 12월~1945년 8월)과 연관돼 있습니다.

일제 패망 후 도쿄 전범 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을 거쳐 교수형에 처해진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 총리 등 7명과 무기금고형을 선고받고 옥사한 조선 총독 출신인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1880∼1950) 등 태평양전쟁을 이끌었던 A급 전범 14명이 1978년 합사(合祀) 의식을 거쳐 야스쿠니에 봉안됐습니다.

이 때문에 야스쿠니신사는 일본 우익 진영에는 '성소'(聖所)로 통하지만, 일제의 침략전쟁으로 고통을 겪었던 주변국 사람들에게는 '전쟁 신사'라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 아베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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