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공항서 유해 찾은 4·3 행방불명 수형인 유족 재심 청구 “억울함 풀어달라”

입력 2020.10.1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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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국제공항 인근 4·3 유해 발굴 당시 모습

제주국제공항 인근 4·3 유해 발굴 당시 모습

제주 4·3 당시 제주공항 일대에서 처형된 것으로 추정되는 행방불명 수형인에 대한 재심 청구 심리가 오늘(19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진행됐습니다.

4·3 불법 군사 재판으로 형무소로 끌려간 뒤 생사조차 모르는 수형인의 유족 340여 명이 지난해부터 국가를 상대로 낸 재심 청구 신청에 따른 것으로, 오늘 재판은 지난 6월과 9월에 이은 세 번째 심문입니다.

특히 오늘 재심 청구인 40명 중 절반가량은 과거 제주공항 인근에서 유해가 발굴된 피고인들로, 이들은 4·3 당시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수감된 뒤 행방불명됐습니다.

오늘 법정에선 재심 청구 피고인 40여 명을 대신해, 유족들이 직접 출석해 심문에 응했습니다.

86살 문정어 할머니는 오늘 법정에서 1949년 행방불명된 오빠 고 문기호 피고인에 대한 기억을 진술했습니다.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 출신인 문기호 피고인은 신엄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경찰에 끌려간 뒤 행방불명됐는데, 4·3 수형인 명부에는 사형이 선고된 것으로 기록돼있습니다.

문 할머니는 “오빠는 동네에서 다른 보직도 맡지 않고 선생님으로 일했다. 동생인 저랑 놀아주기 위해 주말이면 오빠가 자전거를 타고 신엄학교에서 고성리까지 오갔다. 그러다 1949년 봄 마을 입구에서 오빠가 체포됐다는 말을 전해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문 할머니는 “오빠가 어디 있는지 수소문해서 관덕정 인근 경찰서 끌려간 사실을 알게 됐다“며 ”한 달 후 겨우 오빠와 면회가 됐는데‘어머니 말 잘 듣고 있어라. 목포 가서 6개월 살고 돌아올 것’이라고 오빠가 말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또, 문 할머니는 “나중에 오빠가 수감된 감옥 문이 다 열렸고,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사람들이 여러 대의 트럭에 실려가는 것을 봤다”며 “사람들을 왜 트럭에 싣고 가냐 물어봐도 경찰은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공항 근처까지 트럭을 따라가 보니 ‘다다다다’ 총소리가 났다”고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제주국제공항 인근 4·3 유해 발굴 당시 모습제주국제공항 인근 4·3 유해 발굴 당시 모습

실제 문 할머니의 오빠 고 문기호 피고인의 유해는 제주공항 인근에서 발견됐습니다. 문 할머니는 법정 진술 말미에 “너무 억울하고 한이 맺혔다.”며“오빠는 결혼도 못 하고 젊은 나이에 무슨 이유로 끌려가는지도 모른 채 처형됐다. 오빠가 잡혀간 뒤 어머니가 충격에 쓰러져 얼마 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재판장님이 재심으로 밝혀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문 할머니에 이어, 피고인 고 김여순 씨의 동생 김여권 할아버지(80)도 4·3 당시 아홉 살 기억을 하나씩 더듬으며 심문에 응했습니다.

김 할아버지는“형님은 기와를 만드는 기술자로, 대정읍 신평리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며“4·3 소개령이 내려져 가족들이 모슬포로 피난길에 올랐는데, 형님은 고향에 남겠다며 신평리 옹기굴에서 숨어 지내셨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할아버지는“경찰이 자수령을 내리자 부모님께서 형님께 자수하라고 권유했고, 형님이 스스로 경찰서에 갔다. 나중에 경찰서 바깥에 분뇨를 버리러 나온 형님을 세 번 정도 만난 뒤 형님 소식이 끊겼다. 그 뒤론 부모님이 백방으로 알아봐도 형의 생사를 알 길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김 할아버지는 소식이 끊긴 형의 제사를 아버지의 제사와 함께 지내왔는데, 세월이 흐른 뒤에야 제주공항에서 발굴된 형의 유해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김 할아버지는 진술 말미에“형님들 중에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분도 계시다”며“지금이라도 가족의 명예회복을 바란다”고 재판부에 호소했습니다.

앞으로 재판부는 변호인과 검찰 측이 제출한 증거와 의견서를 토대로 재심 개시 여부를 판단하게 됩니다.

한편, 지난해부터 재심이 신청된 4·3 행방불명 수형인 340여 명 가운데 현재까지 64명에 대한 심문 절차가 진행됐습니다. 오는 26일엔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던 행방불명 수형인 37명에 대한 재심 청구 공판이 예정됐고, 앞으로 6차례 남짓 재심 청구 공판이 나눠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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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공항서 유해 찾은 4·3 행방불명 수형인 유족 재심 청구 “억울함 풀어달라”
    • 입력 2020-10-19 17:23:01
    사회

제주국제공항 인근 4·3 유해 발굴 당시 모습

제주 4·3 당시 제주공항 일대에서 처형된 것으로 추정되는 행방불명 수형인에 대한 재심 청구 심리가 오늘(19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진행됐습니다.

4·3 불법 군사 재판으로 형무소로 끌려간 뒤 생사조차 모르는 수형인의 유족 340여 명이 지난해부터 국가를 상대로 낸 재심 청구 신청에 따른 것으로, 오늘 재판은 지난 6월과 9월에 이은 세 번째 심문입니다.

특히 오늘 재심 청구인 40명 중 절반가량은 과거 제주공항 인근에서 유해가 발굴된 피고인들로, 이들은 4·3 당시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수감된 뒤 행방불명됐습니다.

오늘 법정에선 재심 청구 피고인 40여 명을 대신해, 유족들이 직접 출석해 심문에 응했습니다.

86살 문정어 할머니는 오늘 법정에서 1949년 행방불명된 오빠 고 문기호 피고인에 대한 기억을 진술했습니다.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 출신인 문기호 피고인은 신엄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경찰에 끌려간 뒤 행방불명됐는데, 4·3 수형인 명부에는 사형이 선고된 것으로 기록돼있습니다.

문 할머니는 “오빠는 동네에서 다른 보직도 맡지 않고 선생님으로 일했다. 동생인 저랑 놀아주기 위해 주말이면 오빠가 자전거를 타고 신엄학교에서 고성리까지 오갔다. 그러다 1949년 봄 마을 입구에서 오빠가 체포됐다는 말을 전해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문 할머니는 “오빠가 어디 있는지 수소문해서 관덕정 인근 경찰서 끌려간 사실을 알게 됐다“며 ”한 달 후 겨우 오빠와 면회가 됐는데‘어머니 말 잘 듣고 있어라. 목포 가서 6개월 살고 돌아올 것’이라고 오빠가 말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또, 문 할머니는 “나중에 오빠가 수감된 감옥 문이 다 열렸고,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사람들이 여러 대의 트럭에 실려가는 것을 봤다”며 “사람들을 왜 트럭에 싣고 가냐 물어봐도 경찰은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공항 근처까지 트럭을 따라가 보니 ‘다다다다’ 총소리가 났다”고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제주국제공항 인근 4·3 유해 발굴 당시 모습
실제 문 할머니의 오빠 고 문기호 피고인의 유해는 제주공항 인근에서 발견됐습니다. 문 할머니는 법정 진술 말미에 “너무 억울하고 한이 맺혔다.”며“오빠는 결혼도 못 하고 젊은 나이에 무슨 이유로 끌려가는지도 모른 채 처형됐다. 오빠가 잡혀간 뒤 어머니가 충격에 쓰러져 얼마 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재판장님이 재심으로 밝혀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문 할머니에 이어, 피고인 고 김여순 씨의 동생 김여권 할아버지(80)도 4·3 당시 아홉 살 기억을 하나씩 더듬으며 심문에 응했습니다.

김 할아버지는“형님은 기와를 만드는 기술자로, 대정읍 신평리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며“4·3 소개령이 내려져 가족들이 모슬포로 피난길에 올랐는데, 형님은 고향에 남겠다며 신평리 옹기굴에서 숨어 지내셨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할아버지는“경찰이 자수령을 내리자 부모님께서 형님께 자수하라고 권유했고, 형님이 스스로 경찰서에 갔다. 나중에 경찰서 바깥에 분뇨를 버리러 나온 형님을 세 번 정도 만난 뒤 형님 소식이 끊겼다. 그 뒤론 부모님이 백방으로 알아봐도 형의 생사를 알 길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김 할아버지는 소식이 끊긴 형의 제사를 아버지의 제사와 함께 지내왔는데, 세월이 흐른 뒤에야 제주공항에서 발굴된 형의 유해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김 할아버지는 진술 말미에“형님들 중에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분도 계시다”며“지금이라도 가족의 명예회복을 바란다”고 재판부에 호소했습니다.

앞으로 재판부는 변호인과 검찰 측이 제출한 증거와 의견서를 토대로 재심 개시 여부를 판단하게 됩니다.

한편, 지난해부터 재심이 신청된 4·3 행방불명 수형인 340여 명 가운데 현재까지 64명에 대한 심문 절차가 진행됐습니다. 오는 26일엔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던 행방불명 수형인 37명에 대한 재심 청구 공판이 예정됐고, 앞으로 6차례 남짓 재심 청구 공판이 나눠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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