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유해 250여 구 추가 발굴
입력 2020.11.20 (19:27)
수정 2020.11.20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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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6.25 한국전쟁 당시 대전 산내 골령골이라는 곳에서는 민간인 수천 명이 군과 경찰에 의해 희생됐습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지난 9월부터 추가 발굴에 나서 유해 250여 구가 70년 만에 수습됐습니다.
정재훈 기자입니다.
[리포트]
층층이 쌓인 수많은 유골함.
팔순을 넘긴 할머니가 함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습니다.
70년 전 헤어져 평생 그리워해 온 큰 오빠를 찾기 위해섭니다.
1950년 6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형무소에 끌려간 뒤 소식이 끊긴 혈육입니다.
[신순란/대전시 산성동 : "우리 오빠가 여기에 묻혀 있지 않을까. 여태 그 마음으로 오빠가 계신다는 생각으로 찾아왔습니다."]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의 9번째 유해 발굴.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지입니다. 이 구덩이에서 수많은 유해가 켜켜이 쌓인 채 발견됐습니다.
유해 250여 구와 유품 600여 점이 수습됐습니다.
미성년자로 추정되는 유해도 나왔습니다.
[박선주/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장 : "치아가 아직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뿌리들로 봐서, 18세 이전의 치아들이 발견된 것으로 봐서 (그동안) 증언이 사실이었다."]
[박규용/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상임대표 : "10년을 허송하는 동안 희생자 유해는 삭아 없어졌고, 유가족 대부분은 세상을 등졌습니다. 진실을 밝힐 가해자도, 목격자도 찾기 어렵게 됐습니다."]
2006년 공식 발표된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자는 최소 3,400여 명 이상. 하지만 발굴된 유해는 300여 구에 불과합니다.
신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은 오빠의 유해를 찾는 것입니다.
[신순란/대전시 산성동 : "제 자식들더러 내가 죽기 전에 못 찾으면 너희들이라도 나중에 찾거든 나 대신 술이라도 부어 놓아라."]
KBS 뉴스 정재훈입니다.
6.25 한국전쟁 당시 대전 산내 골령골이라는 곳에서는 민간인 수천 명이 군과 경찰에 의해 희생됐습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지난 9월부터 추가 발굴에 나서 유해 250여 구가 70년 만에 수습됐습니다.
정재훈 기자입니다.
[리포트]
층층이 쌓인 수많은 유골함.
팔순을 넘긴 할머니가 함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습니다.
70년 전 헤어져 평생 그리워해 온 큰 오빠를 찾기 위해섭니다.
1950년 6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형무소에 끌려간 뒤 소식이 끊긴 혈육입니다.
[신순란/대전시 산성동 : "우리 오빠가 여기에 묻혀 있지 않을까. 여태 그 마음으로 오빠가 계신다는 생각으로 찾아왔습니다."]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의 9번째 유해 발굴.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지입니다. 이 구덩이에서 수많은 유해가 켜켜이 쌓인 채 발견됐습니다.
유해 250여 구와 유품 600여 점이 수습됐습니다.
미성년자로 추정되는 유해도 나왔습니다.
[박선주/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장 : "치아가 아직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뿌리들로 봐서, 18세 이전의 치아들이 발견된 것으로 봐서 (그동안) 증언이 사실이었다."]
[박규용/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상임대표 : "10년을 허송하는 동안 희생자 유해는 삭아 없어졌고, 유가족 대부분은 세상을 등졌습니다. 진실을 밝힐 가해자도, 목격자도 찾기 어렵게 됐습니다."]
2006년 공식 발표된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자는 최소 3,400여 명 이상. 하지만 발굴된 유해는 300여 구에 불과합니다.
신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은 오빠의 유해를 찾는 것입니다.
[신순란/대전시 산성동 : "제 자식들더러 내가 죽기 전에 못 찾으면 너희들이라도 나중에 찾거든 나 대신 술이라도 부어 놓아라."]
KBS 뉴스 정재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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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유해 250여 구 추가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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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0-11-20 19:27:47
- 수정2020-11-20 19:43:00
[앵커]
6.25 한국전쟁 당시 대전 산내 골령골이라는 곳에서는 민간인 수천 명이 군과 경찰에 의해 희생됐습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지난 9월부터 추가 발굴에 나서 유해 250여 구가 70년 만에 수습됐습니다.
정재훈 기자입니다.
[리포트]
층층이 쌓인 수많은 유골함.
팔순을 넘긴 할머니가 함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습니다.
70년 전 헤어져 평생 그리워해 온 큰 오빠를 찾기 위해섭니다.
1950년 6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형무소에 끌려간 뒤 소식이 끊긴 혈육입니다.
[신순란/대전시 산성동 : "우리 오빠가 여기에 묻혀 있지 않을까. 여태 그 마음으로 오빠가 계신다는 생각으로 찾아왔습니다."]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의 9번째 유해 발굴.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지입니다. 이 구덩이에서 수많은 유해가 켜켜이 쌓인 채 발견됐습니다.
유해 250여 구와 유품 600여 점이 수습됐습니다.
미성년자로 추정되는 유해도 나왔습니다.
[박선주/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장 : "치아가 아직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뿌리들로 봐서, 18세 이전의 치아들이 발견된 것으로 봐서 (그동안) 증언이 사실이었다."]
[박규용/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상임대표 : "10년을 허송하는 동안 희생자 유해는 삭아 없어졌고, 유가족 대부분은 세상을 등졌습니다. 진실을 밝힐 가해자도, 목격자도 찾기 어렵게 됐습니다."]
2006년 공식 발표된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자는 최소 3,400여 명 이상. 하지만 발굴된 유해는 300여 구에 불과합니다.
신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은 오빠의 유해를 찾는 것입니다.
[신순란/대전시 산성동 : "제 자식들더러 내가 죽기 전에 못 찾으면 너희들이라도 나중에 찾거든 나 대신 술이라도 부어 놓아라."]
KBS 뉴스 정재훈입니다.
6.25 한국전쟁 당시 대전 산내 골령골이라는 곳에서는 민간인 수천 명이 군과 경찰에 의해 희생됐습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지난 9월부터 추가 발굴에 나서 유해 250여 구가 70년 만에 수습됐습니다.
정재훈 기자입니다.
[리포트]
층층이 쌓인 수많은 유골함.
팔순을 넘긴 할머니가 함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습니다.
70년 전 헤어져 평생 그리워해 온 큰 오빠를 찾기 위해섭니다.
1950년 6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형무소에 끌려간 뒤 소식이 끊긴 혈육입니다.
[신순란/대전시 산성동 : "우리 오빠가 여기에 묻혀 있지 않을까. 여태 그 마음으로 오빠가 계신다는 생각으로 찾아왔습니다."]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의 9번째 유해 발굴.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지입니다. 이 구덩이에서 수많은 유해가 켜켜이 쌓인 채 발견됐습니다.
유해 250여 구와 유품 600여 점이 수습됐습니다.
미성년자로 추정되는 유해도 나왔습니다.
[박선주/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장 : "치아가 아직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뿌리들로 봐서, 18세 이전의 치아들이 발견된 것으로 봐서 (그동안) 증언이 사실이었다."]
[박규용/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상임대표 : "10년을 허송하는 동안 희생자 유해는 삭아 없어졌고, 유가족 대부분은 세상을 등졌습니다. 진실을 밝힐 가해자도, 목격자도 찾기 어렵게 됐습니다."]
2006년 공식 발표된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자는 최소 3,400여 명 이상. 하지만 발굴된 유해는 300여 구에 불과합니다.
신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은 오빠의 유해를 찾는 것입니다.
[신순란/대전시 산성동 : "제 자식들더러 내가 죽기 전에 못 찾으면 너희들이라도 나중에 찾거든 나 대신 술이라도 부어 놓아라."]
KBS 뉴스 정재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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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기자 jjh119@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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