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촉 중독 의혹’에 구금까지…나발니는 누구인가?

입력 2021.01.23 (22:03) 수정 2021.01.23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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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신경작용제 노비촉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야권 운동가 나발니가 치료를 받던 독일에서 러시아로 귀국하자마자 당국에 체포됐습니다.

나발니는 체포될 것을 알면서도 귀국을 강행했는데, 그 이유는 뭘까요?

모스크바 김준호 특파원이 전해왔습니다.

[리포트]

지난 17일, 베를린발 모스크바행 여객기안.

노비촉 중독 치료를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러시아 야권 운동가 나발니가 탑승합니다.

사경을 헤매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나발니에게 탑승객들이 박수를 보냅니다.

[나발니/러시아 야권 운동가 : "독일 정부에 그리고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비행을 무사히 마치기를 희망합니다."]

러시아 당국은 이미 며칠 전 나발니가 귀국하면 체포될 것이라고 밝힌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나발니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나발니/러시아 야권 운동가 : "제가 도착하면 체포될 것이라고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저는 죄가 없습니다."]

모스크바의 공항에 도착한 나발니는 당국의 예고대로 공항 입국심사대에서 체포됐습니다.

집행유예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당시 공항에 나왔던 나발니 지지자들과 기자 등 50여 명도 체포됐습니다.

[로젠블라트/모스크바 시민 : "나발니는 두려워하지 않고 귀국했고 자신의 자리에 섰습니다."]

당초, 나발니가 탄 여객기는 모스크바 남쪽의 브누코보 국제공항에 착륙할 예정이었지만 착륙 직전 갑자기 북쪽의 셰레메티예보 공항으로 착륙지가 변경됐습니다.

브누코보 공항의 제설차가 고장났다는 것이 공식적인 이유였지만, 현지 일부 언론은 브누코보 공항에 모인 나발니 지지자들을 따돌리기 위한 조치였다는 취지로 보도했습니다.

체포 다음 날 나발니가 구금된 경찰서에서 진행된 출장 재판에서 러시아 법원은 나발니에게 30일간의 구속 판결을 내렸습니다.

나발니는 재판 직후 올린 동영상에서 지지자들에게 거리로 나가 저항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나발니/러시아 야권 운동가 : "두려워하지 말고 거리로 나서십시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미래를 위해서."]

이곳이 바로 모스크바시 북동쪽에 위치한 나발니가 수감돼 있는 구치소입니다.

나발니는 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 3인실에 혼자 수감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변호사 출신의 나발니는 야권의 존재감이 거의 없는 러시아에서 푸틴 정권에 맞서는 사실상의 유일한 야권 운동가입니다.

지난 2017년엔 대규모 반부패 시위를 주도했고, 푸틴 대통령의 재출마 길을 열어 준 지난해 개헌에 대해선 '쿠데타'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나발니는 지난해 8월 시베리아의 톰스크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던 중 기내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곧 독일의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회복됐습니다.

독일 정부는 당시 검사 결과 나발니에게서 옛 소련에서 개발된 신경작용제 노비촉데 중독된 명백한 증거가 나왔다고 발표했지만, 러시아 정부는 관련성을 부인해 왔습니다.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독일 국방장관/지난해 9월 : "독일 연방군의 특수연구소가 나발니의 샘플로 독극물 검사를 했습니다."]

[푸틴/러시아 대통령/지난해 12월 17일/연말 정례 기자회견 : "누가 그를 신경 씁니까? 우리가 하려고 했다면, 아마도 끝까지 했을 것입니다."]

나발니가 체포되자 미국과 유럽연합 등은 성명을 통해 나발니의 석방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트위터를 통해 나발니가 즉각 석방돼야 하며, 나발니에 대한 공격은 러시아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실 역시 나발니의 석방과 공정한 조사를 촉구했고, 유럽연합도 나발니 체포를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스타노/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담당 대변인 : "나발니의 즉각적인 석방을 촉구합니다. 정적을 구금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러시아는 이 같은 각국의 석방 요구에 대해 국제법을 존중하고 자국 이슈나 다루라고 반박했습니다.

[라브로프/러시아 외무장관 : "나발니의 귀국과 구금에 관련된 모든 것은 법집행 권한 안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나발니는 구치소에 수감된 뒤에도 흑해에 면한 러시아 남부 도시 겔렌쥑에 있는 대규모 휴양시설의 동영상을 올렸습니다.

푸틴 대통령의 비밀 궁전이라며 공격을 이어간 겁니다.

[나발니/러시아 야권 운동가 : "시작부터 지금까지 이 유명한 장소의 유일한 소유주는 푸틴 대통령이었습니다."]

하지만 크렘린궁은 사실이 아니라며 일축했습니다.

[페스코프/크렘린궁 대변인 : "근거없는 주장이고 난센스입니다. 날조된 사실들의 편집이며 아무 것도 아닙니다."]

러시아에서 야당의 존재감은 미약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꾸준히 정권을 비판해 온 한 야권 정치인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 앞으로 러시아 정치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됩니다.

지금까지 모스크바에서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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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비촉 중독 의혹’에 구금까지…나발니는 누구인가?
    • 입력 2021-01-23 22:03:00
    • 수정2021-01-23 22:3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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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작용제 노비촉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야권 운동가 나발니가 치료를 받던 독일에서 러시아로 귀국하자마자 당국에 체포됐습니다.

나발니는 체포될 것을 알면서도 귀국을 강행했는데, 그 이유는 뭘까요?

모스크바 김준호 특파원이 전해왔습니다.

[리포트]

지난 17일, 베를린발 모스크바행 여객기안.

노비촉 중독 치료를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러시아 야권 운동가 나발니가 탑승합니다.

사경을 헤매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나발니에게 탑승객들이 박수를 보냅니다.

[나발니/러시아 야권 운동가 : "독일 정부에 그리고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비행을 무사히 마치기를 희망합니다."]

러시아 당국은 이미 며칠 전 나발니가 귀국하면 체포될 것이라고 밝힌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나발니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나발니/러시아 야권 운동가 : "제가 도착하면 체포될 것이라고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저는 죄가 없습니다."]

모스크바의 공항에 도착한 나발니는 당국의 예고대로 공항 입국심사대에서 체포됐습니다.

집행유예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당시 공항에 나왔던 나발니 지지자들과 기자 등 50여 명도 체포됐습니다.

[로젠블라트/모스크바 시민 : "나발니는 두려워하지 않고 귀국했고 자신의 자리에 섰습니다."]

당초, 나발니가 탄 여객기는 모스크바 남쪽의 브누코보 국제공항에 착륙할 예정이었지만 착륙 직전 갑자기 북쪽의 셰레메티예보 공항으로 착륙지가 변경됐습니다.

브누코보 공항의 제설차가 고장났다는 것이 공식적인 이유였지만, 현지 일부 언론은 브누코보 공항에 모인 나발니 지지자들을 따돌리기 위한 조치였다는 취지로 보도했습니다.

체포 다음 날 나발니가 구금된 경찰서에서 진행된 출장 재판에서 러시아 법원은 나발니에게 30일간의 구속 판결을 내렸습니다.

나발니는 재판 직후 올린 동영상에서 지지자들에게 거리로 나가 저항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나발니/러시아 야권 운동가 : "두려워하지 말고 거리로 나서십시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미래를 위해서."]

이곳이 바로 모스크바시 북동쪽에 위치한 나발니가 수감돼 있는 구치소입니다.

나발니는 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 3인실에 혼자 수감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변호사 출신의 나발니는 야권의 존재감이 거의 없는 러시아에서 푸틴 정권에 맞서는 사실상의 유일한 야권 운동가입니다.

지난 2017년엔 대규모 반부패 시위를 주도했고, 푸틴 대통령의 재출마 길을 열어 준 지난해 개헌에 대해선 '쿠데타'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나발니는 지난해 8월 시베리아의 톰스크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던 중 기내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곧 독일의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회복됐습니다.

독일 정부는 당시 검사 결과 나발니에게서 옛 소련에서 개발된 신경작용제 노비촉데 중독된 명백한 증거가 나왔다고 발표했지만, 러시아 정부는 관련성을 부인해 왔습니다.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독일 국방장관/지난해 9월 : "독일 연방군의 특수연구소가 나발니의 샘플로 독극물 검사를 했습니다."]

[푸틴/러시아 대통령/지난해 12월 17일/연말 정례 기자회견 : "누가 그를 신경 씁니까? 우리가 하려고 했다면, 아마도 끝까지 했을 것입니다."]

나발니가 체포되자 미국과 유럽연합 등은 성명을 통해 나발니의 석방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트위터를 통해 나발니가 즉각 석방돼야 하며, 나발니에 대한 공격은 러시아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실 역시 나발니의 석방과 공정한 조사를 촉구했고, 유럽연합도 나발니 체포를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스타노/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담당 대변인 : "나발니의 즉각적인 석방을 촉구합니다. 정적을 구금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러시아는 이 같은 각국의 석방 요구에 대해 국제법을 존중하고 자국 이슈나 다루라고 반박했습니다.

[라브로프/러시아 외무장관 : "나발니의 귀국과 구금에 관련된 모든 것은 법집행 권한 안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나발니는 구치소에 수감된 뒤에도 흑해에 면한 러시아 남부 도시 겔렌쥑에 있는 대규모 휴양시설의 동영상을 올렸습니다.

푸틴 대통령의 비밀 궁전이라며 공격을 이어간 겁니다.

[나발니/러시아 야권 운동가 : "시작부터 지금까지 이 유명한 장소의 유일한 소유주는 푸틴 대통령이었습니다."]

하지만 크렘린궁은 사실이 아니라며 일축했습니다.

[페스코프/크렘린궁 대변인 : "근거없는 주장이고 난센스입니다. 날조된 사실들의 편집이며 아무 것도 아닙니다."]

러시아에서 야당의 존재감은 미약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꾸준히 정권을 비판해 온 한 야권 정치인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 앞으로 러시아 정치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됩니다.

지금까지 모스크바에서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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