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청년’ 故 이수현을 기억하십니까?
입력 2021.01.26 (17:46)
수정 2021.01.26 (18:2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01년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이수현씨의 부모가 아들의 영정과 유해를 들고 있다. <이수현,1월의 햇살>
여기 아들의 영정을 들고 오열하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 옆에 선 남성은 아버지입니다.
아들의 유해를 들고 말없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이곳은 2001년 일본 도쿄의 신오쿠보역입니다.
사진 속 청년은 이 부부의 아들 ‘이수현’입니다.
아들은 사진 속 아버지가 내려다보고 있는 저 아래 선로로 뛰어들었습니다.
생면부지의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달려오는 전동차에도 고민하지 않고 택한 행동이었습니다.
이씨와 이씨와 함께 뛰어내린 일본인, 선로에 떨어진 이 모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딱 20년이 흘렀습니다.
이 씨가 영면에 든 부산시립공원묘지를 어머니가 찾았습니다.
일주일에도 시간이 날 때면 몇 번이고 아들의 묘지를 찾는다는 어머니. 작은 잡초마저 손으로 뜯어낸 어머니의 관리 탓에 이 씨의 묘 주변에는 잔디만 가지런히 돋았습니다.
비석에 새겨진 사진 속 아들은 스물일곱 그때 모습 그대로인데 어머니는 일흔둘이 됐습니다. 겨울비가 2년 전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들의 곁으로 떠난 아버지의 묘지까지 적셨습니다.
26일 오전 열린 ‘의사 이수현 20주기 추모식’에는 제법 굵은 비가 내렸습니다.
26일 오전 부산시립공원묘지에서 이수현 씨의 20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국적’이 아닌 ‘사람’을 구하려 했던 이수현 기억해주길”
생전 음악을 사랑했던 이 씨와 함께 밴드를 했던 친구 장현정씨가 말했습니다.
“수현이는 일본인이라서 구한 것도 아니고 한국인이라서 구한 것도 아니고 인간이기 때문에, 위험에 처한 인간이기 때문에 움직였던 거죠. 저는 더도 덜도 말고 그 뭔가 아주 담백하지만 정말 아무나 할 수 없는 그런 인간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일본 측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일본을 대표해서는 마루야마 코우헤이 주 부산일본 총영사가 추모식을 찾았습니다. NHK 등 일본 언론도 다수 현장 취재에 나섰습니다.
마루야마 총영사는 “눈앞에 생명을 구하려 했던 이 씨는 앞으로도 영원히 한일 관계를 밝혀 비춰주는 햇살로 양국의 가교로 계속 남아있을 것”이라는 조사를 낭독했습니다.
아들의 사고 이후 2002년 월드컵과 부산 아시안게임, ‘한류’를 거치며 가까워진 두 나라는 다시 멀어졌습니다. 매년 일본에서 열리는 추모식에도 올해는 코로나19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아들의 죽음 이후 수없이 양국을 오갔다는 이 씨 어머니는 “ 양국이 가까운 나라라는 걸, 그래서 미워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했습니다.
26일 오전 부산시립공원묘지에서 이수현 씨의 20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이 씨의 묘지에는 지인들이 그의 삶을 정리한 책 <이수현, 1월의 햇살>이 놓였다.
■“남을 돕겠다” 이수현 장학회 수혜 학생 1000명
참석자들은 이 씨의 이야기가 그저 아름다운 동화에 그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런 바람으로 이 씨의 영문 약자를 따서 만들어진 ‘LSH아시아장학회’의 수혜 학생은 어느덧 1,000명을 넘었습니다.
올해는 일본인 감독이 이 씨의 이야기를 담아 만든 영화도 선을 보였습니다. 그게 이 씨가 꿈꿨던 세상일 거란 믿음에서입니다.
지인들이 이 씨의 삶을 정리한 책 <이수현, 1월의 햇살>도 나옵니다. 미리 받은 책에서 발견한 이 씨의 일기는 이랬습니다.
“나는 내가 젊다는 것을, 건강하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도울 것이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울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건강한 젊은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나는 젊고 건강한 대한민국의 젊은이다.”
“나는 이수현이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아름다운 청년’ 故 이수현을 기억하십니까?
-
- 입력 2021-01-26 17:46:19
- 수정2021-01-26 18:22:25
여기 아들의 영정을 들고 오열하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 옆에 선 남성은 아버지입니다.
아들의 유해를 들고 말없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이곳은 2001년 일본 도쿄의 신오쿠보역입니다.
사진 속 청년은 이 부부의 아들 ‘이수현’입니다.
아들은 사진 속 아버지가 내려다보고 있는 저 아래 선로로 뛰어들었습니다.
생면부지의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달려오는 전동차에도 고민하지 않고 택한 행동이었습니다.
이씨와 이씨와 함께 뛰어내린 일본인, 선로에 떨어진 이 모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딱 20년이 흘렀습니다.
이 씨가 영면에 든 부산시립공원묘지를 어머니가 찾았습니다.
일주일에도 시간이 날 때면 몇 번이고 아들의 묘지를 찾는다는 어머니. 작은 잡초마저 손으로 뜯어낸 어머니의 관리 탓에 이 씨의 묘 주변에는 잔디만 가지런히 돋았습니다.
비석에 새겨진 사진 속 아들은 스물일곱 그때 모습 그대로인데 어머니는 일흔둘이 됐습니다. 겨울비가 2년 전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들의 곁으로 떠난 아버지의 묘지까지 적셨습니다.
26일 오전 열린 ‘의사 이수현 20주기 추모식’에는 제법 굵은 비가 내렸습니다.
■“‘국적’이 아닌 ‘사람’을 구하려 했던 이수현 기억해주길”
생전 음악을 사랑했던 이 씨와 함께 밴드를 했던 친구 장현정씨가 말했습니다.
“수현이는 일본인이라서 구한 것도 아니고 한국인이라서 구한 것도 아니고 인간이기 때문에, 위험에 처한 인간이기 때문에 움직였던 거죠. 저는 더도 덜도 말고 그 뭔가 아주 담백하지만 정말 아무나 할 수 없는 그런 인간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일본 측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일본을 대표해서는 마루야마 코우헤이 주 부산일본 총영사가 추모식을 찾았습니다. NHK 등 일본 언론도 다수 현장 취재에 나섰습니다.
마루야마 총영사는 “눈앞에 생명을 구하려 했던 이 씨는 앞으로도 영원히 한일 관계를 밝혀 비춰주는 햇살로 양국의 가교로 계속 남아있을 것”이라는 조사를 낭독했습니다.
아들의 사고 이후 2002년 월드컵과 부산 아시안게임, ‘한류’를 거치며 가까워진 두 나라는 다시 멀어졌습니다. 매년 일본에서 열리는 추모식에도 올해는 코로나19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아들의 죽음 이후 수없이 양국을 오갔다는 이 씨 어머니는 “ 양국이 가까운 나라라는 걸, 그래서 미워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했습니다.
■“남을 돕겠다” 이수현 장학회 수혜 학생 1000명
참석자들은 이 씨의 이야기가 그저 아름다운 동화에 그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런 바람으로 이 씨의 영문 약자를 따서 만들어진 ‘LSH아시아장학회’의 수혜 학생은 어느덧 1,000명을 넘었습니다.
올해는 일본인 감독이 이 씨의 이야기를 담아 만든 영화도 선을 보였습니다. 그게 이 씨가 꿈꿨던 세상일 거란 믿음에서입니다.
지인들이 이 씨의 삶을 정리한 책 <이수현, 1월의 햇살>도 나옵니다. 미리 받은 책에서 발견한 이 씨의 일기는 이랬습니다.
“나는 내가 젊다는 것을, 건강하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도울 것이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울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건강한 젊은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나는 젊고 건강한 대한민국의 젊은이다.”
“나는 이수현이다”
-
-
정민규 기자 hi@kbs.co.kr
정민규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