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주택에 설치된 수도 계량기
취재진이 찾은 부산의 한 주택가. 집마다 설치된 수도 계량기를 열어보니 모두 같은 회사의 제품입니다.
부산시에 물어보니 매년 6만 개 가량의 수도 계량기가 교체주고 있다고 합니다. 조달청 입찰을 통해 제품인데, 공교롭게 최근 몇 년 간 한 업체가 주택용 수도계량기 상당수를 납품했습니다. 입찰 금액만 17억이 넘었는데, 어떻게 한 업체가 수도계량기 대부분을 공급할 수 있었을까요?
부산시 주택용 수도계량기 입찰 내역. 2017년부터 절반가량의 입찰을 한 업체가 따냈다
■ 지역 업체 가산점…입찰 조건 어긴 정황
부산시는 조달청에서 주택용 15mm 건식 수도 계량기를 구매하고 있습니다. 건식 수도 계량기는 계량기에 직접 물이 들어가지 않는 구조로 만들어진 제품입니다. 부산시는 동파 방지를 위해 건식 수도 계량기를 구매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조건의 수도 계량기를 생산해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업체는 전국적으로 모두 7곳입니다.
앞서 부산시에 수도 계량기를 다량 납품한 업체는 유일한 지역 기업으로 입찰에서도 가산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KBS 취재 결과, 이 업체가 조달청이 진행한 입찰 조건을 어긴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중소기업 중앙회의 실태조사 대상제품 확인 절차
■ 직접 생산해야 하는데…제품 검정은 경기도에서?
조달청 입찰에 참여할 중소기업은 납품할 제품을 직접 생산한다는 '확인증'을 발급받아야 합니다. 발급은 중소벤처기업부의 위탁을 받은 중소기업 중앙회에서 맡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중앙회는 업체에서 발급 신청이 들어오면 현장 실태 조사를 나갑니다. 업체가 자신의 공장에서 직접 물건을 생산하는지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부산시에 수도 계량기 상당수를 납품한 업체도 직접 생산 확인증을 발급받아 2년 마다 갱신해왔습니다.
취재진은 수도 계량기의 직접 생산 확인기준을 확인해 봤습니다. 제품의 내갑·외갑 조립부터 시험 및 조정, 검정이 직접 생산 확인증 발급에 필요한 필수 공정입니다. 통상적으로 수도 계량기는 각 지역의 한국기계전기전자 시험연구원(이하 KTC)에서 검정을 진행합니다. 연구원들은 직접 생산 확인증이 필요한 공장에 가서 검정합니다. 물론 부산에도 KTC가 있습니다.
그런데 취재진이 수도 계량기 납품 업체의 직접 생산 확인증을 확보해 보니, 검정 장소가 수도 계량기를 생산하는 경기도의 또 다른 업체였습니다. 왜 굳이 경기도까지 제품을 보내 검정을 받았는지 궁금해 부산의 업체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업체 측은 '기술력'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부품을 사와 조립한 뒤 자체 검정을 하면 오차가 많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세밀한 조정을 거치면 불량품을 줄일 수 있는데, 이걸 경기도의 다른 공장에 맡기고 그곳에서 검정까지 받았습니다. 제품 직접 생산의 필수 공정인 '시험 및 조정' 능력이 떨어진 걸 사실상 인정한 셈입니다. 조달청 입찰 조건인 직접 생산 확인증이 제대로 발급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업체는 지난해 말에서야 자체 검정 설비를 보강해 자신들의 공장에서도 검정을 통과할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
부산시 계량기 검사센터에서 검사를 받는 수도 계량기
■ 현장 조사에도 한계…기관은 책임 떠넘기기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 직접 생산 확인증 발급을 신청하면 중소기업 중앙회는 실태 조사를 벌입니다.
해당 업체 공장에서 제품 생산이 가능한지 확인하는 절차인데, 여기에 허점이 있습니다. 현장 조사를 나갔을 당시 업체에 납품할 제품의 재료가 없으면 공장 설비 등만 점검한 뒤 확인증을 발급합니다.
제품 생산의 필수 공정 전체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수시 점검도 인력 부족 등으로 일부 업체에 한정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중앙회 측은 전국의 14만 개 가량 되는 공장을 모두 점검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수도 계량기와 관련해 부산시는 계약을 맺은 업체가 제품의 검정을 다른 곳에서 받은 걸 알았지만 책임은 미뤘습니다. 제품이 직접 생산 확인 기준에 맞는지 확인하는 건 중소기업 중앙회와 KTC의 몫이라는 겁니다. KTC는 직접 생산 확인증이 필요한 업체가 알아서 필수 공정 기준에 맞춰 검정을 신청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기관끼리 책임을 미룬다는 지적에 중소기업 중앙회는 "사전 모니터링 작업을 강화하고 현장 점검을 최대 3배까지 늘리는 방안을 마련해 올해부터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중소기업 중앙회에서 현장 조사 뒤 직접 생산 확인증을 발급해 주는 제품은 수도 계량기를 포함해 230여 개에 달합니다.
입찰 조건에 따라 직접 생산 확인증을 발급받은 업체가 필수 공정 절차를 어길 경우 최대 1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거나 1년간 확인증 신청이 제한됩니다. 하지만 적발되더라도 신청 제한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려운 경제 여건에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들. 입찰에서도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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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 계량기가 경기도로 간 이유는?…‘입찰 부정’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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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1-01-28 08:00:05
취재진이 찾은 부산의 한 주택가. 집마다 설치된 수도 계량기를 열어보니 모두 같은 회사의 제품입니다.
부산시에 물어보니 매년 6만 개 가량의 수도 계량기가 교체주고 있다고 합니다. 조달청 입찰을 통해 제품인데, 공교롭게 최근 몇 년 간 한 업체가 주택용 수도계량기 상당수를 납품했습니다. 입찰 금액만 17억이 넘었는데, 어떻게 한 업체가 수도계량기 대부분을 공급할 수 있었을까요?
■ 지역 업체 가산점…입찰 조건 어긴 정황
부산시는 조달청에서 주택용 15mm 건식 수도 계량기를 구매하고 있습니다. 건식 수도 계량기는 계량기에 직접 물이 들어가지 않는 구조로 만들어진 제품입니다. 부산시는 동파 방지를 위해 건식 수도 계량기를 구매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조건의 수도 계량기를 생산해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업체는 전국적으로 모두 7곳입니다.
앞서 부산시에 수도 계량기를 다량 납품한 업체는 유일한 지역 기업으로 입찰에서도 가산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KBS 취재 결과, 이 업체가 조달청이 진행한 입찰 조건을 어긴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 직접 생산해야 하는데…제품 검정은 경기도에서?
조달청 입찰에 참여할 중소기업은 납품할 제품을 직접 생산한다는 '확인증'을 발급받아야 합니다. 발급은 중소벤처기업부의 위탁을 받은 중소기업 중앙회에서 맡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중앙회는 업체에서 발급 신청이 들어오면 현장 실태 조사를 나갑니다. 업체가 자신의 공장에서 직접 물건을 생산하는지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부산시에 수도 계량기 상당수를 납품한 업체도 직접 생산 확인증을 발급받아 2년 마다 갱신해왔습니다.
취재진은 수도 계량기의 직접 생산 확인기준을 확인해 봤습니다. 제품의 내갑·외갑 조립부터 시험 및 조정, 검정이 직접 생산 확인증 발급에 필요한 필수 공정입니다. 통상적으로 수도 계량기는 각 지역의 한국기계전기전자 시험연구원(이하 KTC)에서 검정을 진행합니다. 연구원들은 직접 생산 확인증이 필요한 공장에 가서 검정합니다. 물론 부산에도 KTC가 있습니다.
그런데 취재진이 수도 계량기 납품 업체의 직접 생산 확인증을 확보해 보니, 검정 장소가 수도 계량기를 생산하는 경기도의 또 다른 업체였습니다. 왜 굳이 경기도까지 제품을 보내 검정을 받았는지 궁금해 부산의 업체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업체 측은 '기술력'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부품을 사와 조립한 뒤 자체 검정을 하면 오차가 많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세밀한 조정을 거치면 불량품을 줄일 수 있는데, 이걸 경기도의 다른 공장에 맡기고 그곳에서 검정까지 받았습니다. 제품 직접 생산의 필수 공정인 '시험 및 조정' 능력이 떨어진 걸 사실상 인정한 셈입니다. 조달청 입찰 조건인 직접 생산 확인증이 제대로 발급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업체는 지난해 말에서야 자체 검정 설비를 보강해 자신들의 공장에서도 검정을 통과할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
■ 현장 조사에도 한계…기관은 책임 떠넘기기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 직접 생산 확인증 발급을 신청하면 중소기업 중앙회는 실태 조사를 벌입니다.
해당 업체 공장에서 제품 생산이 가능한지 확인하는 절차인데, 여기에 허점이 있습니다. 현장 조사를 나갔을 당시 업체에 납품할 제품의 재료가 없으면 공장 설비 등만 점검한 뒤 확인증을 발급합니다.
제품 생산의 필수 공정 전체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수시 점검도 인력 부족 등으로 일부 업체에 한정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중앙회 측은 전국의 14만 개 가량 되는 공장을 모두 점검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수도 계량기와 관련해 부산시는 계약을 맺은 업체가 제품의 검정을 다른 곳에서 받은 걸 알았지만 책임은 미뤘습니다. 제품이 직접 생산 확인 기준에 맞는지 확인하는 건 중소기업 중앙회와 KTC의 몫이라는 겁니다. KTC는 직접 생산 확인증이 필요한 업체가 알아서 필수 공정 기준에 맞춰 검정을 신청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기관끼리 책임을 미룬다는 지적에 중소기업 중앙회는 "사전 모니터링 작업을 강화하고 현장 점검을 최대 3배까지 늘리는 방안을 마련해 올해부터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중소기업 중앙회에서 현장 조사 뒤 직접 생산 확인증을 발급해 주는 제품은 수도 계량기를 포함해 230여 개에 달합니다.
입찰 조건에 따라 직접 생산 확인증을 발급받은 업체가 필수 공정 절차를 어길 경우 최대 1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거나 1년간 확인증 신청이 제한됩니다. 하지만 적발되더라도 신청 제한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려운 경제 여건에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들. 입찰에서도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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