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부정부패를 몰아내자”…현실과 한계는?

입력 2021.01.30 (08:27) 수정 2021.01.3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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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8차 당대회를 통해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부정부패가 심각하다는 점을 북한 최고지도자가 스스로 인정한 건데요.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하던 비리 행위 적발 업무도 규율조사부를 신설해 전담하도록 했습니다.

북한이 지금 부정부패와의 전쟁에 나선 이유와 한계점은 무엇인지, <클로즈업 북한>에서 분석해 보겠습니다.

[리포트]

지난해 11월, 김정은 위원장 주재로 진행된 북한 노동당 제7기 정치국 회의.

회의가 끝날 무렵, 김 위원장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은 손짓을 반복했다.

내용은 다름 아닌 평양의대의 범죄행위에 관한 것이었다.

[조선중앙TV/2020년 11월 : "엄중한 형태의 범죄 행위를 감행한 평양의학대학 당 위원회와 해당 부서들, 사법 검찰, 안전보위 기관들의 무책임성과 극심한 직무 태만 행위에 대하여 신랄히 비판됐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언급한 평양 의대 비리는 무엇이었을까.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평양의대 간부가 비리 행위로 직위 해제 됐다고 설명했다.

[하태경/국회 정보위원회 간사 : "평양의대 간부들의 직위해제 같은 게 있었는데 이유는 입시 비리가 있었고 또 평양의대 기숙사 신청하느라 주민들에게 강제 모금을 했다. 그리고 매관매직 있었다고 평양의대에..."]

1948년에 설립돼 북한에서는 가장 권위 있는 의학 수련 기관으로 알려진 평양 의과대학.

그런 곳에서 일어난 부정부패를 김정은 위원장이 나서 강하게 질책한 것인데, 주목할 점은 이런 부정부패가 비단 평양의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 연구원에서 하고 있는 ‘북한사회변동 조사’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의 사회 활동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뇌물’이 1위로 꼽혔다.

[정은미/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거의 모든 생에 곳곳에 그런 시기마다 뇌물을 써야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북한의 지금 부정부패 상황이 아주 심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 사회의 부정부패는 드라마를 통해서도 일부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북한 명문대 교수와 학생의 이야기를 다룬 북한 드라마 ‘교정의 윤리’.

["표기환이가 누구 아들인지는 알지요? (네, 표청일 강좌장 아들이지요?)"]

["옳습니다. 그러니 아버지 의리를 봐서도 그래, 어머니 성의를 봐서도 그래. 허 선생이 좀 감안해준다고 해서 우리 강좌에서 누가 탓할 사람이 없습니다."]

집안이 좋은 학생의 성적을 임의로 올려주거나, 더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해 교수에게 뇌물을 주는 등 북한 사회의 어두운 실상이 반영됐다.

또 다른 드라마는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 투입된 아들을 빼내기 위해 뇌물을 쓰는 부모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니 여보 당신이 아무래도 한번 갔다 와야 겠수다."]

오지 마을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들의 편지를 받고 고민에 빠진 아버지 기태. 결국 트럭에 돼지까지 싣고 건설 현장으로 향한다.

["우리 집안에 사내자식이라고는 그게 통 재산인데 내 그래서 저 차에다 두루두루 걷어 싣고 왔는데 자 옆에서들 잘 도와주시오."]

국가 건설 현장에도 청탁과 뇌물이 오감을 짐작게 하는 장면.

["여자 스웨터가 두 개라 남자 소가죽 구두가 한 켤레.. 구두 한 켤레 가져올 거면 운동화 두 켤레 가져오지.."]

독점화된 권력에 좌지우지될 수 밖에 없는 북한의 정치 사회적 구조로 분석된다.

[정은미/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공권력이 과잉 행사되거나 아니면 자의적으로 행사되더라도 전혀 이걸 견제할 수 있는 민주적 통제 장치가 없기 때문에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죠."]

북한 사회의 부정부패는 1990년대 중, 후반 ‘고난의 행군’을 계기로 심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 차원의 공식 배급이 중단되자 주민들은 먹고살기 위해 장마당에 뛰어들었고 그사이 상인들과 관리 사이에 검은 거래가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장마당 가판대를 얻거나 단속을 피할 때는 물론, 중국을 통해 들여오는 밀수품에 대해서도 단속 면제를 명분으로 한 뇌물이 오갔다.

월급이 턱 없이 부족한 공무원들이 뇌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김인태/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 "경제적 현실이 어려우면 그에 맞게끔 부정부패 현상이 증가한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 보다 확산했고 그때 당시 환경에서 북한 국가와 사회 전반에 대대적으로 확산된 현상이라고.."]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초부터 부정부패 척결 의지를 강력하게 드러냈다.

2015년엔 형법까지 개정해 뇌물죄 형량을 최대 10년까지 늘렸고, 2016년에는 당 7차 대회를 통해 부정부패 근절을 다시 주문했다.

그러나 북한 사회에 뿌리 깊은 부정부패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정은미/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뇌물의 먹이사슬 구조라고 하는데 말단부터 최고위층까지 촘촘하게 뇌물의 먹이사슬 구조가 뻗쳐 있거든요. 때문에 말단에서 근절하겠다고 치면 상층으로 올라가는 수익들이 줄어드는 구조인 거죠."]

지난 8차 당 대회 폐막일. 김정은 위원장은 다시 한 번 단상에 올라 부정부패의 억제와 관리를 강조했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 : "전 당적, 전 국가적, 전 인민적으로 강력한 교양과 규율을 앞세워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세도, 관료주의, 부정부패, 세외 부담 행위와 같은 온갖 범죄 행위들을 견결히 억제하고 관리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이번 당대회에서는 규율조사부라는 전담 부서까지 신설해 부정부패 척결 의지를 드러냈다.

[김인태/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 "당 규율 위반을 전문으로 하는 규율조사부라는 집행부서까지 신설했고 당중앙위원회 지도기관인 검사 위원회 기능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그리고 중앙과 하부당 조직에 이르기까지 전당적인 기구 체계를 새로 정비했는데요. 그만큼 부정부패 현상을 심각하게 판단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 이러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부정부패 척결 의지는 지난해 2월 당 핵심 간부였던 리만건을 해임하면서도 드러났다.

[조선중앙TV/2020년 2월 :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은 리만건 박태덕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현직에서 해임했습니다."]

북한이 정치국 회의에서 고위 간부의 해임안을 다루고 이를 공개까지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

부정부패로 경제적 고충을 겪는 일반 주민들의 민심을 다독이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정은미/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부정부패 행위를 가만히 놔두면 간부들에 대한 인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겠죠. 결국은 국가 권력에 대한 불신 나아가서 체제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것을 초래하기 때문에 민심이 흉흉해지죠. 통치자로선 정치적인 대중적 기반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에 가만히 나둘 수 있는 사안이 아닌 거죠."]

대북제재와 국경 봉쇄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주민들의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나선 김정은 위원장..

부정부패를 뿌리뽑겠다는 의지를 거듭 천명하고 있지만, 경제난 속에서 현실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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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부정부패를 몰아내자”…현실과 한계는?
    • 입력 2021-01-30 08:27:15
    • 수정2021-01-30 10:3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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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8차 당대회를 통해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부정부패가 심각하다는 점을 북한 최고지도자가 스스로 인정한 건데요.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하던 비리 행위 적발 업무도 규율조사부를 신설해 전담하도록 했습니다.

북한이 지금 부정부패와의 전쟁에 나선 이유와 한계점은 무엇인지, <클로즈업 북한>에서 분석해 보겠습니다.

[리포트]

지난해 11월, 김정은 위원장 주재로 진행된 북한 노동당 제7기 정치국 회의.

회의가 끝날 무렵, 김 위원장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은 손짓을 반복했다.

내용은 다름 아닌 평양의대의 범죄행위에 관한 것이었다.

[조선중앙TV/2020년 11월 : "엄중한 형태의 범죄 행위를 감행한 평양의학대학 당 위원회와 해당 부서들, 사법 검찰, 안전보위 기관들의 무책임성과 극심한 직무 태만 행위에 대하여 신랄히 비판됐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언급한 평양 의대 비리는 무엇이었을까.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평양의대 간부가 비리 행위로 직위 해제 됐다고 설명했다.

[하태경/국회 정보위원회 간사 : "평양의대 간부들의 직위해제 같은 게 있었는데 이유는 입시 비리가 있었고 또 평양의대 기숙사 신청하느라 주민들에게 강제 모금을 했다. 그리고 매관매직 있었다고 평양의대에..."]

1948년에 설립돼 북한에서는 가장 권위 있는 의학 수련 기관으로 알려진 평양 의과대학.

그런 곳에서 일어난 부정부패를 김정은 위원장이 나서 강하게 질책한 것인데, 주목할 점은 이런 부정부패가 비단 평양의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 연구원에서 하고 있는 ‘북한사회변동 조사’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의 사회 활동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뇌물’이 1위로 꼽혔다.

[정은미/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거의 모든 생에 곳곳에 그런 시기마다 뇌물을 써야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북한의 지금 부정부패 상황이 아주 심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 사회의 부정부패는 드라마를 통해서도 일부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북한 명문대 교수와 학생의 이야기를 다룬 북한 드라마 ‘교정의 윤리’.

["표기환이가 누구 아들인지는 알지요? (네, 표청일 강좌장 아들이지요?)"]

["옳습니다. 그러니 아버지 의리를 봐서도 그래, 어머니 성의를 봐서도 그래. 허 선생이 좀 감안해준다고 해서 우리 강좌에서 누가 탓할 사람이 없습니다."]

집안이 좋은 학생의 성적을 임의로 올려주거나, 더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해 교수에게 뇌물을 주는 등 북한 사회의 어두운 실상이 반영됐다.

또 다른 드라마는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 투입된 아들을 빼내기 위해 뇌물을 쓰는 부모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니 여보 당신이 아무래도 한번 갔다 와야 겠수다."]

오지 마을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들의 편지를 받고 고민에 빠진 아버지 기태. 결국 트럭에 돼지까지 싣고 건설 현장으로 향한다.

["우리 집안에 사내자식이라고는 그게 통 재산인데 내 그래서 저 차에다 두루두루 걷어 싣고 왔는데 자 옆에서들 잘 도와주시오."]

국가 건설 현장에도 청탁과 뇌물이 오감을 짐작게 하는 장면.

["여자 스웨터가 두 개라 남자 소가죽 구두가 한 켤레.. 구두 한 켤레 가져올 거면 운동화 두 켤레 가져오지.."]

독점화된 권력에 좌지우지될 수 밖에 없는 북한의 정치 사회적 구조로 분석된다.

[정은미/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공권력이 과잉 행사되거나 아니면 자의적으로 행사되더라도 전혀 이걸 견제할 수 있는 민주적 통제 장치가 없기 때문에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죠."]

북한 사회의 부정부패는 1990년대 중, 후반 ‘고난의 행군’을 계기로 심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 차원의 공식 배급이 중단되자 주민들은 먹고살기 위해 장마당에 뛰어들었고 그사이 상인들과 관리 사이에 검은 거래가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장마당 가판대를 얻거나 단속을 피할 때는 물론, 중국을 통해 들여오는 밀수품에 대해서도 단속 면제를 명분으로 한 뇌물이 오갔다.

월급이 턱 없이 부족한 공무원들이 뇌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김인태/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 "경제적 현실이 어려우면 그에 맞게끔 부정부패 현상이 증가한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 보다 확산했고 그때 당시 환경에서 북한 국가와 사회 전반에 대대적으로 확산된 현상이라고.."]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초부터 부정부패 척결 의지를 강력하게 드러냈다.

2015년엔 형법까지 개정해 뇌물죄 형량을 최대 10년까지 늘렸고, 2016년에는 당 7차 대회를 통해 부정부패 근절을 다시 주문했다.

그러나 북한 사회에 뿌리 깊은 부정부패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정은미/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뇌물의 먹이사슬 구조라고 하는데 말단부터 최고위층까지 촘촘하게 뇌물의 먹이사슬 구조가 뻗쳐 있거든요. 때문에 말단에서 근절하겠다고 치면 상층으로 올라가는 수익들이 줄어드는 구조인 거죠."]

지난 8차 당 대회 폐막일. 김정은 위원장은 다시 한 번 단상에 올라 부정부패의 억제와 관리를 강조했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 : "전 당적, 전 국가적, 전 인민적으로 강력한 교양과 규율을 앞세워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세도, 관료주의, 부정부패, 세외 부담 행위와 같은 온갖 범죄 행위들을 견결히 억제하고 관리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이번 당대회에서는 규율조사부라는 전담 부서까지 신설해 부정부패 척결 의지를 드러냈다.

[김인태/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 "당 규율 위반을 전문으로 하는 규율조사부라는 집행부서까지 신설했고 당중앙위원회 지도기관인 검사 위원회 기능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그리고 중앙과 하부당 조직에 이르기까지 전당적인 기구 체계를 새로 정비했는데요. 그만큼 부정부패 현상을 심각하게 판단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 이러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부정부패 척결 의지는 지난해 2월 당 핵심 간부였던 리만건을 해임하면서도 드러났다.

[조선중앙TV/2020년 2월 :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은 리만건 박태덕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현직에서 해임했습니다."]

북한이 정치국 회의에서 고위 간부의 해임안을 다루고 이를 공개까지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

부정부패로 경제적 고충을 겪는 일반 주민들의 민심을 다독이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정은미/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부정부패 행위를 가만히 놔두면 간부들에 대한 인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겠죠. 결국은 국가 권력에 대한 불신 나아가서 체제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것을 초래하기 때문에 민심이 흉흉해지죠. 통치자로선 정치적인 대중적 기반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에 가만히 나둘 수 있는 사안이 아닌 거죠."]

대북제재와 국경 봉쇄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주민들의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나선 김정은 위원장..

부정부패를 뿌리뽑겠다는 의지를 거듭 천명하고 있지만, 경제난 속에서 현실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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